스물세 석 제2부 입법(立法)
7화제10장 칙선(勅選)
셋 — 두 문
같은 날 대만인 세 사람도 임명되었다. 대만의 정원도 열 사람 이내다. 세 사람이면 일곱 자리가 빈다.

조선은 일곱에 셋이 비고 대만은 셋에 일곱이 빈다. 두 곳의 비율이 뒤집혀 있다.
뒤집힌 까닭을 적은 문서는 나오지 않았다. 인구로 보면 조선이 대만의 네 배 남짓이고, 임명 수로 보면 두 배가 조금 넘는다.
두 비율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해에 적어 둔 사람은 없다.
서기관실 등본철 여백에 좌석 배정 각서가 한 장 끼어 있다.
— 조선 칙선 칠 석은 최후열 좌측에 배치함. 대만 삼 석은 그 우측에 배치함.
— 배치는 임명 연월 순에 따름. 종전 의원과의 좌석 교체는 행하지 아니함.
좌석표는 관보에 실리지 않는다. 관보에 실리는 것은 이름과 직함까지다.
일곱 사람이 어디에 앉았는지는 자료집 제2권에 그 각서 사진판으로만 남는다.
『우재현 유고』 제2절
1971년 유족 공개분. 등사 사십 부. 표지에 「비매·배포 금지」가 찍혀 있다.
제2절의 표제는 「사흘」이다.
— 나는 그 관보를 4월 6일에 보았다. 대구에서 관보는 늘 사흘 늦게 온다.
— 일곱 사람 중 셋을 나는 안다. 한 사람과는 스무 해를 알았다.
그날 저녁에 정한 것을, 나는 그때 문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재현은 그때 쉰두 살이었다.
하나 — 사흘
관보는 경성에서 인쇄되어 철도편으로 내려온다. 대구부청 게시판에 붙는 것은 대개 사흘째 되는 날 오전이다.
4월 6일 오전에 붙은 것은 두 장이었다. 4월 1일자와 4월 3일자다.
그는 뒤엣것을 먼저 읽었다. 이름이 있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앞엣것은 숫자와 요건뿐이었다. 조선 이십삼이 어디에 붙는 이십삼인지 그 관보만 보아서는 알 수 없다. 별표는 게시판에 붙는 발췌본에서 잘려 있었다.
유고는 그 잘림에 관해 한 줄을 남겼다.
— 붙은 것은 두 장이었고, 읽을 수 있는 것은 한 장이었다.
유고 제2절은 그 일곱 이름을 옮겨 적지 않았다. 옮겨 적지 않은 까닭이 그 아래 두 줄에 있다.
— 이름을 적으면 이 글이 그 사람들에 관한 글이 된다.
— 이 글은 그 사람들에 관한 글이 아니다.
셋을 안다고만 적혀 있다. 하나는 스무 해를 알았고, 하나는 같은 조합에 이름을 올렸었고, 하나는 그의 혼사에 왔었다.
세 사람이 누구인지는 유고에도 자료집에도 없다.
그는 그 셋을 나쁘게 적지 않았다. 좋게도 적지 않았다. 사십오 년 자료집 제3권 해제는 그것을 유고의 특징으로 꼽았다.
『우재현 유고』에는 사람을 평하는 문장이 거의 없다. 대신 숫자와 절차가 많다. 스물여섯 해 뒤에 쓴 글에서도 그렇다.
그는 부러워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부러움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고 적었다.
둘 — 저녁
그날 저녁 정미소 사무실에 세 사람이 있었다. 그와 그의 아우와 조합 서기다.
유고는 그 저녁의 말을 되도록 그대로 옮겼다고 적어 두었다. 스물여섯 해 뒤에 옮긴 것이므로 그대로일 수는 없다. 유고는 그것도 적어 두었다.
아우가 물었다. — 형님이 아는 분이 셋이나 들어갔으니 좋은 일 아닌가.
그가 답했다. — 좋은 일이다.
— 그러면 왜 종일 아무 말이 없었는가.
— 저 일곱을 나는 셀 수 없다.
— 일곱이면 일곱이지 무엇을 못 세는가.
— 일곱이 몇 사람을 대신하는지 셀 수 없다는 말이다. 저 자리는 사람이 뽑은 자리가 아니다.
조합 서기가 물었다. — 뽑은 자리는 셀 수 있는가.
— 있다. 표를 세면 된다. 진 사람도 세어진다.
— 진 사람을 세어 무엇에 쓰는가.
— 다음에 쓴다.
조합 서기는 그 저녁에 더 묻지 않았다. 유고는 그 침묵도 적어 두었다.
이 자리에 있던 셋 가운데 뒤에 이름이 남는 사람은 하나다. 아우는 1949년 명부에도 없고 조합 서기는 그해 가을에 징용으로 나갔다.
유고는 이 대목 뒤에 한 줄을 따로 놓았다. 그 줄만 행을 바꾸어 가운데에 적혀 있다.
— 임명된 자리는 셀 수 없고 뽑힌 자리는 셀 수 있다.

그는 그날 저녁에 출마를 정했다.
정한 까닭은 두 가지로 적혀 있다. 하나는 위의 한 줄이다. 다른 하나는 일곱 사람이 이미 임명으로 갔다는 것이다.
임명으로 가는 문은 이미 지나갔다. 남은 문은 하나였다.
문이 하나뿐이면 그 문으로 가는 것은 결단이 아니다. 유일한 길을 결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뒤에서 보는 사람의 버릇이다.
셋 — 종이
유고는 그날 밤에 그가 무엇을 적었는지도 남겨 두었다.
그가 적은 것은 이름이 아니었다. 숫자 하나였다.
— 二十三
그 아래에 그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스물세 석을 무엇과 비교해야 하는지 그때 그는 알지 못했다. 조선 인구도, 내지 정수도, 한 석에 몇 사람이 붙는지도 그 종이에 없다.
숫자 하나만 있는 종이였다.
1971년의 유고는 그 종이를 두고 한 문장을 덧붙였다.
— 나는 그날 저 숫자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 시작인 숫자는 늘어난다. 나는 늘리는 일을 하기로 했다.
— 늘리는 데 걸린 세월을 여기에 적지 않겠다. 적으면 변명이 된다.
유고 제2절은 거기서 끝난다. 다음 절의 표제는 「제7구」다.
그 종이는 남아 있지 않다. 남아 있는 것은 남아 있지 않다는 유족의 진술뿐이다.
조선총독부 「제1회 중의원의원 선거 입후보 예정자 조사표」
1945년 4월. 경무국 보안과 서식 제3호. 세 장.
각 도 경찰부가 보고한 것을 한 장에 옮겨 적었다. 총 백열아홉 명.
난은 여섯이다. 번호, 성명, 씨(氏), 직업, 재산, 사상 관계.
성명란과 씨란을 나란히 둔 서식은 이것이 처음이다.
이 표에는 본인이 적은 칸이 하나도 없다.
| 번호 | 성명 | 씨(氏) | 직업 | 사상 관계 |
|---|---|---|---|---|
| 七 | 우재현 | 우촌(禹村) | 정미업 | 공란 |
| 十一 | 이하 생략 | 이하 생략 | 면장 | 요시찰 을(乙) |
| 十九 | 이하 생략 | 이하 생략 | 의생(醫生) | 공란 |
| 二十四 | 이하 생략 | 이하 생략 | 대서업 | 요시찰 병(丙) |
두 이름은 같은 줄에 나란히 인쇄되었다. 위아래가 아니라 옆이다.
옆에 놓이면 둘 다 이름이 된다. 위아래로 놓이면 하나가 다른 하나의 주석이 된다. 서식을 짠 사람이 그것을 알고 그렇게 했는지는 문서에 없다.
이 서식은 마흔세 해 뒤 자료집 제7권에 그대로 복제된다. 그때는 두 이름 옆에 세 번째 칸이 붙는다.
마지막 칸의 표제는 「사상 관계」다.
백열아홉 명 중 스물두 명의 칸이 비어 있다.
보안과장이 물었다. — 빈 칸이 스물둘이다.
계원이 답했다. — 그렇다.
— 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가.
— 조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 그러면 조사하지 못했다고 적으면 된다.
— 적을 칸이 없다. 이 난은 해당 사항이 있을 때만 적게 되어 있다.
— 없는 것과 못 본 것이 같은 모양으로 남는가.
— 남는다.
칸이 없어서 적지 못한 것과 적을 것이 없어서 비운 것이 한 서식 안에서 구별되지 않는다.
이 표는 도쿄로 가지 않았다. 총독부 안에서만 돌았다.
세 장 가운데 마지막 장 아래에 여백이 넉 줄 있다. 여백 위에 한 줄이 인쇄되어 있다.
— 추가분은 별지로 함.
별지는 남아 있지 않다.
내무성 지방국 「조선 선거구 획정 조사」
1945년 4월. 지방국 선거과. 조선총독부 내무국 협의. 등사판 41면 및 부도(附圖) 한 장.
제1 획정 방침 · 제2 구역 및 정수 · 제3 참고 통계.
제1 획정 방침은 세 줄이다.
「도(道)를 단위로 함. 부득이한 경우 도 경계를 넘을 수 있음. 정수는 인구에 준하되 최소 일(一)로 함.」
표지에는 「내무성 지방국 조사자료」가 인쇄되어 있고 그 아래에 배부처 열세 곳이 손으로 적혀 있다.
부도에서 붉게 고쳐진 경계는 한 곳이다.
하나 — 열세 구
조선을 열세 구로 나누고 스물세 석을 붙였다.
| 구 | 구역 | 인구(천) | 정수 | 한 석당(만) |
|---|---|---|---|---|
| 제1구 | 경기도 (남부 3군 제외) | 2,755 | 2 | 137.8 |
| 제2구 | 충청북도 | 970 | 1 | 97.0 |
| 제3구 | 충청남도 및 경기도 남부 3군 | 1,857 | 1 | 185.7 |
| 제4구 | 전라북도 | 1,704 | 2 | 85.2 |
| 제5구 | 전라남도 | 2,486 | 2 | 124.3 |
| 제6구 | 경상남도 | 2,318 | 2 | 115.9 |
| 제7구 | 경상북도 | 2,600 | 2 | 130.0 |
| 제8구 | 황해도 | 2,120 | 2 | 106.0 |
| 제9구 | 평안남도 | 1,815 | 2 | 90.8 |
| 제10구 | 평안북도 | 1,769 | 2 | 88.5 |
| 제11구 | 강원도 | 1,727 | 2 | 86.4 |
| 제12구 | 함경남도 | 1,899 | 2 | 95.0 |
| 제13구 | 함경북도 | 1,100 | 1 | 110.0 |
계는 인구 이천오백십이만에 정수 스물셋이다. 나누면 한 석에 백구만이다.
제3구가 백팔십오만 칠천으로 가장 크고 제4구가 팔십오만 이천으로 가장 작다. 조선 안의 격차는 두 배가 조금 넘는다.
정수 배분은 인구를 백구만으로 나누고 남는 자리를 큰 소수부터 채우는 방식이다. 방식 자체는 내지에서 쓰던 것과 같다.
같은 방식을 쓰되 나누는 값이 다르다. 내지에서는 십육만으로 나누고 조선에서는 백구만으로 나눈다.
조선은 열세 구, 스물세 석. 나누는 값은 내지에서 십육만, 조선에서 백구만이다. 같은 방식이 왜 두 값을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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