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의 역사
1945년, 조선에 배정된 제국의회 의석 스물세 석
1945년 4월 1일, 일본은 조선에 중의원 의석 스물세 석을 배정했다. 납세액 요건이 붙은 제한선거였고, 시행 전에 전쟁이 끝나 선거는 없었다.
1945년 4월 1일, 일본은 조선에 제국의회 중의원 의석 스물세 석을 배정하는 개정 중의원의원선거법을 공포했다. 이 법에 따른 선거는 한 번도 치러지지 않았다. 시행 시점이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법은 작동한 제도가 아니라 문서로만 남은 조항이다. 다만 조항의 내용은 남아 있고, 그 내용은 당시 제국이 조선을 어떤 자리에 두려 했는지를 꽤 정확히 보여준다.
왜 하필 전쟁 막바지였나
이 법이 1944년 말에 논의된 이유는 조선에서 더 뽑아 쓸 것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3년 병역법이 개정되어 조선인에게 징병제가 적용됐고, 1944년부터 실제 징집이 시작됐다. 같은 해 국민징용령도 조선에 전면 적용됐다. 조선인을 병력과 노동력으로 쓰는 규모가 커질수록, 의무만 지우고 권리는 주지 않는 상태를 그대로 두기 어려워졌다. 조선인 참정권은 1944년 말 각의에서 처우 개선 방침의 하나로 결정됐다. 당시 총리 고이소 구니아키는 직전까지 조선총독이었다.
그러나 이 조치에 반대한 쪽은 조선총독부였다. 조선인 의원이 제국의회에 들어오면 총독 통치가 의회에서 비판받게 되고 조선 통치의 특수성이 흔들린다는 이유였다. 이 반대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 법이 무의미한 선전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실효가 전혀 없는 조치라면 굳이 막을 이유가 없다.
법은 무엇을 정했나
조선에 배정된 것은 중의원 의석 스물세 석이었다. 선거구는 열세 개였고, 대만에는 다섯 개 선거구에 다섯 석이 배정됐다.
핵심은 자격 요건이다. 선거권은 스물다섯 살 이상 남자 가운데 직접국세를 15엔 이상 내는 사람에게만 주어졌다. 납세액으로 유권자를 거르는 제한선거였다. 같은 시점 내지에는 이런 요건이 없었다. 일본 본토는 1925년 보통선거법으로 납세 요건을 이미 폐지했고, 스물다섯 살 이상 남자면 누구나 투표했다. 조선에 적용된 15엔이라는 기준은 일본이 1890년 제1회 총선거 때 쓰던 것과 같은 수준이다. 당시 일본에서 그 문턱을 넘은 사람은 전체 인구의 1퍼센트 남짓이었다.
납세 요건을 붙인 선거 자체가 조선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1920년대부터 도와 부에 자문기구가 설치되어 의원 일부를 선거로 뽑았고, 여기에도 납세액 기준이 걸려 있었다. 1945년의 법은 이미 지방에서 쓰던 방식을 제국의회 차원으로 옮긴 것에 가깝다.
의석 수도 인구에 비례하지 않았다. 당시 조선 인구는 2천 5백만 명 안팎이었고 배정된 의석은 스물세 석이다. 내지의 중의원 정원은 466석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의석 하나가 감당하는 인구가 내지의 일곱 배에 가까웠다.
귀족원 의석은 실제로 채워졌다
선거는 치러지지 않았지만, 임명은 이루어졌다.
같은 시기 귀족원령도 개정되어 조선과 대만에서 칙선의원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정원은 두 지역을 합쳐 열 명 이내였다. 1945년 4월 3일, 조선인 일곱 명이 귀족원 칙선의원에 임명됐다. 김명준, 박상준, 박중양, 송종헌, 윤치호, 이진용, 한상룡이다. 대체로 총독부 통치에 협력해 온 인물이었고, 뒷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됐다.
조선인이 귀족원에 들어간 것 자체가 처음은 아니다. 그 전에도 조선 귀족 신분으로 개별 임명된 사례가 있었다. 1945년의 임명이 달랐던 것은 제도 개정에 따라 조선이라는 지역 몫으로 자리가 생겼다는 점이다.
주목할 것은 순서다. 임명으로 채우는 상원 의석은 법 공포 이틀 뒤에 채워졌고, 선거로 뽑아야 하는 하원 의석은 다음 총선거로 미뤄졌다. 즉시 실행된 쪽은 고르지 않아도 되는 쪽이었다.
치러지지 않은 선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법을 참정권 확대로 부르는 것도, 선전에 불과했다고 잘라 말하는 것도 각각 사실의 절반만 담는다.
확대라 부르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납세 요건이 붙은 제한선거였고, 의석은 인구에 한참 못 미쳤으며, 무엇보다 시행되지 않았다. 반대로 빈 선전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이것은 실제로 공포된 법률이었고, 귀족원 임명은 집행됐으며, 통치 기구 안에서 반대에 부딪혔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향한 방향이다. 참정권은 독립의 대체물이 아니라 그 반대편 경로였다. 조선이 의석을 받는다는 것은 조선이 일본의 한 지방으로 편입된다는 뜻이다. 1920년대의 참정권 청원 운동이 독립운동 진영에서 타협으로 규정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원을 주도한 것은 총독부와 가까운 단체들이었고, 요구의 내용도 조선을 일본 안에 확실히 들여놓아 달라는 것이었다.
남는 질문은 하나다. 스물세 명이 466석 의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표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수다. 그러나 의회의 발언대는 표와 다르게 쓰이기도 한다. 역사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시행 시점이 오기 전에 8월 15일이 왔기 때문이다.
이 사이트에서 연재한 『스물세 석』은 그 선거가 실제로 치러진 세계를 다룬 대체역사 소설이다. 스물세 명이 의사당에서 보낸 마흔다섯 해를 자료집 형식으로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