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석 제10부 사정(事情)
42화제74장 시정(是正)
하나 — 붙인 자리
고칠 곳은 같은 법률 안에 있고, 고칠 자리는 같은 방 안에 없다.

둘 — 내려간 값
스물다섯 석은 분자에 붙었다. 그리고 분모에도 붙었다.
조선 의석은 계에서 차지하는 몫으로 잰다. 계가 늘면 조선의 몫은 저절로 준다.
1945년에 4.63퍼센트였다. 1976년에 4.24퍼센트다. 그사이 조선에서 한 석도 가져가지 않았다.
같은 셈을 인구까지 넣어서 하면 값이 하나 더 나온다. 의석비를 인구비로 나눈 값이다.
1945년에 조선 인구는 제국 인구의 23.6퍼센트였고 의석은 4.63퍼센트였다. 나누면 0.196이다.
1972년에 인구비는 24.5퍼센트로 올랐고 의석비는 4.41퍼센트로 내렸다. 나누면 0.180이다.
1983년에는 26.0퍼센트와 4.24퍼센트다. 나누면 0.163이다.
이 값에는 그때 이름이 없었다. 회의록에도 없고 판결에도 없다.
값을 내는 데 필요한 것은 국세조사와 별표뿐이다. 둘 다 인쇄되어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다.
내는 사람이 없어서 없었던 값이다. 이름이 붙는 것은 열 해 뒤다.
아무도 조선 몫을 줄이지 않았다. 그대로 둔 것이 줄인 것이다.
병 회파가 말했다. — 한 가지만 회의록에 남겨 달라.
좌장이 물었다. — 무엇인가.
— 이번 개정으로 조선 의석의 비율이 얼마가 되는지다.
— 그것은 협의 사항이 아니다.
— 협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 달라는 것이다.
— 적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 다음에 이 방에 앉는 사람이 그 값을 보게 된다.
— 회의록은 협의 사항을 적는다.
— 그러면 값은 적지 말아 달라. 내가 값을 적어 달라고 한 것만 적어 달라.
— 그것은 적는다.
— 적어 두면 다음 사람이 세겠는가.
— 세지 않을 수도 있다.
— 그러면 왜 적어 달라고 하는가.
— 세지 않은 것과 적히지 않은 것은 다르다.
회의록 제3회에 그 비율은 없다. 그 비율을 적어 달라고 한 말이 있다.
협의회는 제5회로 끝났다. 의장에게 올린 보고는 넉 줄이고, 넉 줄 안에 외지라는 말은 없다.
그해 여름 의사부는 별표 제1의 새 인쇄본을 각 실에 돌렸다.
별표 제2는 함께 돌리지 않았다. 고쳐진 것이 없으므로 다시 인쇄할 까닭이 없었다.
새 인쇄본은 넉 장이고 마지막 장 뒷면은 비어 있다.
그 뒷면에 별표 제2를 같이 찍으면 종이는 늘지 않는다. 그렇게 하자고 한 사람은 없었다.
중의원 사무국 「제87회~제120회 조선 선출 의원 재적 명단」
1977년 조사. 회기마다 조선 선출 의원의 재적을 적은 것을 여섯 장으로 묶었다.
제1장이 제87회부터고 제6장이 제120회까지다. 이름 옆에 재적한 회기를 적고, 재적이 끊긴 자리에 사유를 적는다.
사유란에 적을 수 있는 말은 셋이다. 사망·사임·낙선.
명단은 사람 순서가 아니라 선거구 순서로 적힌다.
이것은 사람을 세는 명단이 아니라 자리를 세는 명단이다.
| 구 | 성명 | 재적 회기 | 사유 |
|---|---|---|---|
| 제1구 | 윤상호 | 87~93 | 사망 |
| 제3구 | 고범식 | 87~99 | 낙선 |
| 제7구 | 우재현 | 87~107 | 사임 |
| 제13구 | 남정학 | 87~90 | 낙선 |
제87회 첫 줄부터 스물세 이름이 있고 제120회에도 스물세 이름이 있다. 같은 이름은 하나도 없다.
가장 오래 남은 것이 제7구다. 제107회에서 끊겼고 사유는 사임이다.
스물세 자리는 서른두 해를 지났고 스물세 사람은 지나지 못했다.
사무국 직원이 물었다. — 사유란에 셋만 적는가.
조사를 맡은 사람이 답했다. — 셋만 적는다.
— 넷째가 있다.
— 무엇인가.
— 세금이다. 직접국세를 못 내면 다음에 나오지 못한다.
— 그것은 낙선에 넣는다.
— 나오지 못한 것과 나와서 진 것은 다르다.
— 다르다. 그러나 서식에 칸이 셋이다.
— 칸을 넷으로 하면 되지 않는가.
— 서식은 사무국이 정한다. 이 명단은 조사다.
넷째 사유는 낙선란에 들어갔다. 몇인지는 이 명단으로 알 수 없다.
칸이 셋이라서 사유도 셋이 되었다.
제6장 뒤쪽에 성과 본적이 앞장과 같은 이름이 셋 있다. 제1구와 제3구와 제13구다.
제7구는 없다.
마지막 장 여백에 조사자가 연필로 두 줄을 그었다. 한 줄은 제87회의 스물세 이름 아래고 한 줄은 제120회의 스물세 이름 아래다.
두 줄 사이에 서른두 해가 있다. 두 줄 위와 아래에 적힌 수는 같다.

『우재현 유고(禹在賢 遺稿)』 1978년 증보판 · 범례 및 해설 말미
1971년 유족 공개분에 해설을 붙여 다시 낸다. 등사 사십 부를 활판 삼백 부로 바꾼다.
본문 스물여덟 절은 한 자도 고치지 않는다. 오자도 고치지 않고 쪽 아래에 적어 둔다.
해설은 유족이 청하여 손자가 썼다. 열아홉 쪽이다.
해설의 마지막 줄은 이러하다. — 할아버지는 문을 만들었다.
1978년 봄, 스물세 살짜리가 자기 할아버지에게 각주를 달았다.
하나 — 등사(謄寫)
우재현은 1968년 여름에 죽었다. 유고가 나온 것은 세 해 뒤다.
남은 것은 공책 열한 권이다. 첫 기입이 1944년 겨울이고 마지막 기입이 1967년 겨울이다. 스물세 해를 열한 권에 적었으니 한 해에 반 권이 안 된다.
유족이 그것을 스물여덟 절로 끊었다. 끊은 자리는 공책이 바뀌는 자리가 아니라 해가 바뀌는 자리다.
세 해가 걸린 이유는 제14절에서 제16절까지다.
그 세 절은 1950년 봄 사흘 동안 서기실에서 쓴 것이다. 서명 뭉치를 앞에 놓고 쓴 것이고, 쪼개지 않기로 한 경위가 거기 있다.
유족은 그 세 절을 빼고 낼 것인지를 두 해 동안 정하지 못했다.
장남이 말했다. — 이 세 절은 빼는 것이 낫다.
차남이 물었다. — 왜 빼는가.
— 읽는 사람이 그것만 읽는다.
— 그것만 읽으면 무엇이 되는가.
— 아버지가 삼십만 장을 막은 사람이 된다.
— 막은 것은 사실이다.
— 사실인 것과 그것만 남는 것은 다르다.
— 그러면 뒤에 무엇을 붙여야 하는가.
— 붙일 것이 있으면 붙였다.
세 절은 그대로 실렸다. 붙일 것을 찾지 못해서 그대로 실렸다.
빼지 않기로 한 것과 변호하기로 한 것은 그때 같은 결정이 아니었다.
1971년판은 등사 사십 부다. 표지에 「비매·배포 금지」가 찍혀 있고 뒤에 배포처 명단이 있다.
원내에 스물여덟 부, 유족에 여섯 부, 대구에 여섯 부다. 그해 재적하던 조선 선출 의원은 스물셋이고, 남은 다섯 부는 사무국에 갔다.
받은 사람이 돌려주는 규정은 없다. 명단만 있다.
일곱 해 동안 유고가 원내에서 인용된 것은 두 번이다.
두 번 다 제2절이다. 1945년 4월 귀족원에 조선인 일곱이 임명되던 날 저녁에 적은 한 줄이다.
— 임명된 자리는 셀 수 없고 뽑힌 자리는 셀 수 있다.
두 번째로 인용한 사람은 그 줄을 칭찬으로 썼다. 유고 전체를 읽었는지는 회의록에 남지 않는다.
둘 — 열아홉 쪽
1977년 겨울에 유족이 다시 내기로 했다. 활판으로 삼백 부다.
적힌 이유는 둘이다. 등사본이 스러진다는 것과 인용이 늘었다는 것이다.
적히지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인용이 늘면 제14절도 언젠가 인용된다.
해설을 쓸 사람을 정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
원내 사람은 쓸 수 없다. 원내 사람이 쓰면 의원단 문서가 된다. 대구 사람은 1949년을 모른다.
집안에서 열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우재현의 손자이고 차남의 아들이다. 그해 스물셋이고 법과 이년생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 해설을 네가 써라.
아들이 물었다. — 무엇을 쓰는 해설인가.
— 열한 권이 무슨 책인지를 적는 해설이다.
— 제14절은 어떻게 적는가.
— 그 대목은 사정을 적어라.
— 사정을 적으면 변호가 된다.
— 변호가 왜 안 되는가.
— 변호를 적으면 그 뒤로 그 대목은 변호가 필요한 대목이 된다.
— 지금도 그렇다.
— 지금은 아무도 안 적었다. 적으면 인쇄된다.
— 그러면 무엇을 적을 작정인가.
— 각주를 적을 작정이다.
변호와 각주의 차이는 길이가 아니다. 뒤에 무엇이 오게 하느냐다.
그는 원칙을 셋 세웠고 그것을 해설 첫 쪽에 적었다.
첫째, 본문에 없는 말을 해설에 넣지 않는다. 둘째, 본문과 어긋나는 문서가 있으면 어긋난 채로 나란히 싣는다. 셋째, 좋다 나쁘다를 적지 않는다.
셋째 원칙이 유족과 다툰 자리다. 유족이 청한 것이 그 하나였기 때문이다.
해설 열아홉 쪽의 배치는 이렇다.
앞의 열두 쪽은 연보와 출전이다. 어느 절이 언제 쓰였고 그 무렵 원내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쪽마다 대어 놓았다.
다음 다섯 쪽이 제14절에서 제16절까지의 해제다.
마지막 두 쪽이 맺음이다.
다섯 쪽에 그가 넣은 것은 문서 넷이다.
의원단 규약 제4조. 1948년 11월 반려 대장의 이유란. 1949년 서명 뭉치의 접수 서식. 그리고 1950년 청원위원회 처리 일람의 비고란이다.
넷을 나란히 놓으면 반려가 규약대로였다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규약을 발의한 사람의 이름이 첫 문서에 있다는 것도 보인다.
둘 다 보이게 놓고 그는 아무 말도 붙이지 않았다.
문서 넷을 나란히 놓으면 반려도 보이고 그 규약을 발의한 이름도 보인다. 둘 다 보이게 두고, 해설의 마지막 줄은 이렇다 — 할아버지는 문을 만들었다.
남은 16화 · 약 55,921자 · 약 8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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