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석 제4부 원내(院內)
18화제30장 손
1985년에 그가 받아 든 판결문에 이 대장은 나오지 않는다. 대장이 인쇄물이 된 것은 그보다 두 해 뒤다.
그날 그가 떠올린 것은 판결 제5항이었다. 사십 년은 합리적 기간이 아니라는 줄이다.

기간을 세는 일은 시작한 날을 정하는 일이다. 그는 자기가 세기 시작한 날을 알고 있었다.
채록자는 그날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때로 돌아가면 다르게 하겠느냐는 물음이었다.
구술자는 답하지 않았다. 제3장은 그 자리에서 끝난다.
채록자 주에 한 줄이 붙어 있다. 「구술자가 손을 들어 대장의 크기를 그려 보였다. 그 동작은 녹음에 남지 않는다.」
1949년 봄, 반려된 열두 건은 다시 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이 왔다.
그 봄에 그가 한 일도 전과 같았다. 세고, 번호를 붙이고, 대장에 적었다.
다만 한 가지가 달랐다. 이번에는 연서인 명부의 빈칸을 세지 않았다. 넷이 나흘을 세어도 끝나지 않을 분량이었다.
적는 손은 하나다. 적으라고 하는 사람과 적힌 것을 읽을 사람은 매번 다르다.
『조선 참정권 청원운동사 1920~1949』
조선사편수회 편(編). 1955년 6월 간행. 사백열두 면. 종장 「청원운동의 종결」.
본서는 청원의 건수와 연서인 수와 처리 결과를 연도순으로 싣는다.
청원의 내용에 관한 평가는 편찬 방침에 따라 싣지 않는다.
종장은 세 면이고 그중 두 면이 1949년의 한 건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본 운동은 1949년으로 종결된 것으로 본다.」
1949년 4월, 조선에서 올라온 청원이 처음으로 무게로 셈해졌다.
하나 — 짐표
서명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1948년 11월이다. 그달에 조선에서 올라온 청원 열두 건이 서식 미비로 반려되었다.
반려 이유란에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절차를 갖추어 다시 제출할 것.
조선에서는 그 한 줄을 지침으로 읽었다. 갖추라고 했으니 갖추면 되는 것으로 읽었다.
겨울 동안 열세 도에 접수처가 놓였다. 도청 회의실과 부청 강당과 향교와 예배당이다. 접수처마다 인쇄한 서식과 등사한 취지문이 갔다.
접수원들은 서명을 받으면서 칸 채우는 법을 함께 가르쳤다. 본적을 적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면사무소에서 떼어 오라고 일렀다.
접수처에 온 사람이 물었다. — 이 칸에는 무엇을 적는가.
접수원이 답했다. — 본적이다. 면사무소에 있다.
— 오른쪽 끝의 좁은 칸은 무엇인가.
— 비워 두어도 된다.
— 비워 두어도 되는 칸을 왜 인쇄해 놓았는가.
— 나도 모른다. 서식이 그렇게 왔다.
그 좁은 칸을 비워 둔 용지가 몇 장인지는 그해 봄에 아무도 세지 않았다.
경성역에서 부친 화물은 궤짝 열둘이다. 한 궤짝에 서명 용지가 이만오천 장 안팎씩 들었다.
부산에서 배에 실리고 시모노세키에서 다시 실려 도쿄역 화물 취급소에 닿은 것이 4월 9일이다. 짐표의 품명란에는 「서류」라고 적혀 있다.
받으러 간 사람은 의원단 서기실의 서기 둘이다. 손수레를 두 번 빌렸다.
취급소 직원이 물었다. — 품명이 서류로 되어 있다. 서류가 맞는가.
서기가 답했다. — 맞다.
— 열두 궤짝이 전부 서류인가.
— 전부 서류다.
— 무엇을 적은 서류인가.
— 이름이다.
— 이름만 적은 서류를 열두 궤짝 부치는 사람은 처음 본다.
— 나도 처음 받는다.
세는 데 아흐레가 걸렸다. 서기실 인원 넷이 붙었고 그동안 다른 일은 미뤄졌다.
센 값은 삼십만 사백열두 장이다. 접수 대장에는 「三〇〇,〇〇〇」으로 올려 적었다. 끝의 사백열두 장을 버린 것은 대장의 수량란이 여섯 자리였기 때문이다.
칸이 여섯 자리라서 사백열두 사람이 지워졌다. 그것을 그때는 아무도 셈으로 치지 않았다.
궤짝은 서기실 뒤 복도에 세워 두었다. 복도 폭이 좁아 한 줄로만 놓을 수 있었다.
한 줄로 놓으니 복도 끝에서 끝까지 닿았다. 그 뒤로 서기실 사람들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한 사람이 서서 기다렸다.
둘 — 취지(趣旨)
서명 용지는 반절 갱지 한 장이다. 위쪽 사분의 일에 취지가 인쇄되어 있고 아래에 성명과 본적과 주소를 적는 칸이 있다.
인쇄된 취지는 두 줄이다. 스물아홉 해 동안 나온 조선 참정권 청원 문안 가운데 가장 짧다.
문안을 정한 것은 열세 도의 접수처 대표다. 1949년 2월에 경성에 모였고 이틀이 걸렸다. 회의록은 남아 있지 않고 문안만 남았다.
정수를 몇 석으로 해 달라고 적자는 안이 있었다. 예순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세 해 전에 의원단이 내고 심의되지 않은 법률안의 숫자다.
그 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숫자를 적으면 그 숫자를 깎는 흥정이 시작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 하나. 중의원의원선거법의 직접국세 십오 원 요건을 조선에서 폐지할 것.
— 둘. 조선의 의원 정수를 인구에 비례하여 정할 것.
두 줄 아래에는 요구가 없고 숫자가 넷 있다.
조선 인구 2,512만. 제국 인구 1억 654만. 조선 스물세 석. 총 정수 497석.
나눗셈은 인쇄하지 않았다. 나누는 것은 읽는 사람이 하게 두었다.

간사 하나가 물었다. — 취지가 두 줄이면 짧지 않은가. 앞선 청원은 대개 열 장이었다.
— 짧게 쓴 것이 아니라 지운 것이다.
— 무엇을 지웠는가.
— 사정을 지웠다. 사정을 적으면 사정을 심사한다.
— 사정을 심사하면 안 되는가.
— 스물한 해 동안 심사받았다. 회답은 매번 시기상조였다.
— 두 줄이면 무엇을 심사하는가.
— 숫자를 심사한다. 숫자에는 시기가 없다.
요구를 숫자로 바꾸면 답도 숫자로 나와야 한다. 그것이 이 두 줄의 계산이었다.
조사보고서는 스물아홉 해를 한 장에 실었다.
| 연도 | 건수 | 연서인 | 처리 |
|---|---|---|---|
| 1920 | 1 | 105 | 심의 미료 |
| 1921~1941 | 21 | 기재 없음 | 심의 미료 |
| 1948 | 12 | 10,000 남짓 | 반려 |
| 1949 | 1 | 300,000 | 접수되지 아니함 |
셋째 열에 「기재 없음」이 스물한 해 동안 이어진다. 연서인을 세지 않은 것이 아니라 회답에 그 수를 적는 칸이 없었다.
넷째 열의 마지막 여섯 자는 1949년에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이듬해에 정해진다.
셋 — 자격(資格)
청원은 신민 누구나 할 수 있다. 제국헌법 제30조가 그렇게 되어 있고 그 조문은 조선에서도 같다.
문제는 조문이 아니라 서식이다.
총독부 청원 취급 규정의 서식 제3호에는 오른쪽 끝에 좁은 칸이 하나 있다. 표제는 「이해관계」다. 그 칸 아래 활자가 작은 주(註)가 붙어 있다.
「선거에 관한 법률의 개폐를 구하는 청원에 있어 이해관계인은 선거인명부에 등재된 자로 한다.」
이 주가 언제 인쇄에 들어갔는지는 규정 개정 연혁에 남아 있지 않다.
서기가 물었다. — 이해관계란에 무엇을 적는가.
사무국 직원이 답했다. — 선거인명부 등재 번호다.
— 번호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 비워 둔다.
— 비운 것도 세는가.
— 센다. 세되 이해관계인 수에서는 뺀다.
— 그러면 이 서류는 몇 사람의 청원이 되는가.
— 대조해 보아야 안다.
— 삼십만을 대조하는가.
— 삼십만을 대조한다.
대조를 지시한 사람은 우재현이다. 그는 수가 나오면 그 수를 가지고 사무국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명부 사본은 도청에서만 뗄 수 있다. 열세 도에 열람 신청을 냈고 회신이 다 오는 데 두 달이 걸렸다.
회신이 늦은 도의 서명은 그동안 미확인으로 두었다. 미확인은 대조표에서 빈칸과 같은 자리에 놓인다.
빈칸과 미확인을 갈라 적은 대조표는 만들지 않았다. 만들 이유가 없었다. 둘 다 이해관계인 수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조에는 스무 날이 더 걸렸다. 기준으로 쓴 것은 1945년 확정 명부다. 그 뒤 명부의 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두주에 적혀 있다.
명부에서 이름이 확인된 서명자는 만이천이다. 값이 나온 날 우재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산은 세 줄이면 끝난다.
조선 선거인은 삼십팔만 사천사백열둘이고 조선 인구는 이천오백십이만이다. 백분의 일점오삼이다.
서명한 삼십만 가운데 만이천이면 백분의 사다. 인구에서의 비율보다 두 배 반 높다.
같은 값을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조선 선거인 백 명 가운데 셋이 이 서명에 이름을 올렸다.
남은 이십팔만 팔천은 서명했으나 서명한 것으로 세어지지 않는다.
세어지지 않는 까닭은 요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들이 없애 달라고 한 것이 바로 그 요건이다.
요건을 없애 달라는 청원은 요건을 갖춘 사람만 낼 수 있다.
이것은 함정이 아니다. 함정은 누가 파 놓은 것이고 이 서식은 아무도 파 놓지 않았다.
칸을 만든 사람과 주를 붙인 사람과 그 서식을 인쇄한 사람은 각자 자기 일을 했다. 그 일이 겹치는 자리에 이십팔만 팔천이 있다.
넷 — 종결(終結)
조사보고서 종장은 여섯 해 뒤에 쓰였다. 쓴 사람은 조선사편수회 조사원이고 이름은 판권장에만 있다.
종장의 표제어는 「종결」이다.
편찬 간사가 물었다. — 종결이라고 쓸 근거가 있는가.
조사원이 답했다. — 1949년 뒤로 청원이 오지 않았다.
— 오지 않은 것이 근거가 되는가.
— 편찬에서는 된다. 없는 해는 비워 두고, 비운 해가 이어지면 끝난 것으로 적는다.
— 끝난 것과 그친 것은 다르지 않은가.
— 다르다. 그러나 우리 서식에는 그친 것을 적을 칸이 없다.
요건을 없애 달라는 청원은 요건을 갖춘 사람만 낼 수 있다. 처리란의 여섯 자 「접수되지 아니함」은 이듬해에야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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