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석 제3부 개표(開票)
13화제20장 등원(登院)
셋 — 오른쪽 앞줄
회의록은 관보와 달리 부군면에 배부되지 않는다. 조선에서 이것을 받아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7구에서 뽑힌 사람은 그것을 알고 스무 부를 제 돈으로 사서 대구로 부쳤다.
몇 부가 닿았는지는 유고에 적혀 있지 않다.
『재내지 조선인 정치사 자료』 제2집 · 구술 제7편
1981년. 등사 이백 부.
구술자는 1930년대에 도쿄 3구에서 선거 사무를 본 사람이다. 구술 당시 일흔여덟이었다.
채록은 1979년 겨울에 세 차례 있었고 녹음은 남기지 않았다.
제7편의 표제는 「우리 표는 어디로 갔는가」다.
내지에서 조선 사람이 던진 표는 조선 스물세 석에 한 장도 들어가지 않는다.
하나 — 이백십만
1944년 통계에서 내지에 사는 조선 사람은 백구십사만이다. 이듬해 봄에는 이백십만 안팎이 된다.
내지는 1925년부터 납세 요건이 없다. 만 스물다섯 이상 남자이고 한 곳에 한 해를 살면 선거인이 된다.
조선에 사는 사람은 직접국세 십오 엔을 내야 표가 있다. 내지에 사는 사람은 한 해를 살면 표가 있다.
같은 사람이 바다를 건너면 요건이 바뀐다.
다만 한 해를 한 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 조건이 조선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
탄광과 토목 현장은 일이 끝나면 옮긴다. 옮기면 한 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표가 있는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는 정은 오래 눌러산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 정은 많지 않다.
— 우리 동네에서는 표가 있는 사람이 절반이 넘었다.
— 고향에서는 백에 하나 반이라고 들었다.
— 나는 그 말을 처음 듣고 잘못 들은 줄 알았다.
— 다시 물었더니 같은 말을 했다.
1932년에 도쿄 3구에서 조선 사람이 뽑힌 뒤로 그 정에는 선거 사무를 보는 집이 정해져 있었다.
정해진 집은 명부 열람 기간에 문을 열어 두었다. 제 이름이 명부에 있는지 보러 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부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는 가서 보아야 안다. 그것은 바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같다.
둘 — 본적란
내지 선거인 명부는 주소로 만든다. 본적란이 있고 거기에 조선의 부군면이 적힌다.
적히기만 한다. 본적별로 세는 표가 없다.
그러므로 내지의 조선 사람 가운데 선거인이 몇인지는 어느 서류에도 없다.
조선 사람의 수를 세는 서류가 내지에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협화회가 세었다.
협화회는 회원을 세었고 회원증을 세었다. 표를 세지는 않았다.
사람을 세는 쪽과 표를 세는 쪽이 다른 서식을 썼다. 두 서식은 한 번도 나란히 놓이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선거 사무를 본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町) 단위로 안다.
정 단위의 앎은 합쳐지지 않는다. 합칠 서식이 없기 때문이다.
— 몇 명이었는지 묻는가.
— 나는 우리 정의 수는 안다. 옆 정은 모른다.
— 도쿄 3구 전체는 아무도 세지 않았다.
— 세는 서식이 없었다.
— 세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은가.
— 같지 않다. 표는 던져졌고 세어졌고 계산에 들어갔다.
— 다만 누구의 표였는지가 남지 않았다.
표는 세어졌고 사람은 세어지지 않았다.
1981년에 이 구술을 채록한 연구회가 처음 하려던 일이 그 대조였다. 두 서식을 나란히 놓으면 값이 나온다고 보았다.
협화회 서류는 1945년을 넘기며 대부분 없어졌다. 선거인 명부는 구청 단위로 몇 해치만 보존한다.
연구회는 값을 내지 못했다. 못 낸 채로 제2집을 냈다.
셋 — 대표
내지에서 조선 사람이 던진 표는 사백육십여섯 개 자리에 흩어진다.
한 구에 몇 백씩 흩어지면 그 구의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 도쿄 3구처럼 몰려 사는 구에서는 다르다. 그런 구가 내지에 여럿은 아니다.
조선 인구 이천오백십이만은 현주지로 센 값이다. 내지에 사는 이백십만은 그 안에 없다.
그 이백십만은 내지 인구 칠천사백사십삼만 안에 있다.
그러므로 조선 스물세 석의 근거가 된 인구에서 이백십만은 이미 빠져 있고, 같은 이백십만이 내지 사백육십육 석의 근거 인구에는 들어가 있다.
이 셈을 1945년에 한 사람은 없다.
문서에 처음 적히는 것은 1952년이다. 그때 내지에 사는 조선 사람은 삼백만이 된다.
삼백만이면 한 석의 값인 백구만의 세 배에 가깝다. 그 세 배는 조선의 정수에 붙지 않는다.
스물세 사람 가운데 내지에 살아 본 사람이 없지는 않다. 그 사람들도 조선에서 뽑혔다.
원내에서 내지 조선인의 일을 말하려면 그 일을 제 선거구의 일로 만들어야 한다. 만들지 못하면 말할 자리가 없다.
— 우리가 도쿄에서 표를 던지면 그 표는 도쿄 사람 몫으로 센다.
— 그러면 고향의 스물세 석은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 상관이 없다.
—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대표를 가진 것인가.
— 도쿄 3구의 대표를 가졌다.
— 도쿄 3구의 대표는 우리 이야기를 하는가.
— 한 번 했다. 그 뒤로는 하지 않았다.

그해 유월에 도쿄에서 두 무리가 마주쳤을 때 인사가 없었다는 것을 구술자는 뒤에 들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들은 대로 옮긴 말이 제7편에 석 줄 있다.
—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쿄 3구에서 뽑혔다.
— 저 사람들은 조선에서 뽑혔다.
— 우리는 같은 선거를 치른 것이 아니다.
구술 제7편에 숫자는 셋 나온다. 이백십만과 사백육십육과 스물셋이다.
셋 다 구술자가 신문에서 읽은 수다.
제7편의 마지막 물음은 채록자가 던졌다.
— 그때 인사를 했으면 무엇이 달라졌겠는가.
—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 그래도 물으신다면.
— 우리가 몇인지 아무도 세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 누군가 물었을지도 모른다.
구술은 여기서 끝난다. 채록자는 그 뒤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제87회 제국의회 중의원 회의록 제9호
1945년 6월 21일. 제9차 본회의. 예산 관계 질의의 마지막 날이다.
속기 사백스물여덟 째 줄부터 사백예순 째 줄까지가 조선 제7구 선출 의원의 질의다.
질의는 세 항이고 셋째 항의 원문은 이렇다.
「조선에 배정된 스물세 석은 사백육십육에 대한 비율입니까, 사백구십칠에 대한 비율입니까.」
정부위원의 답변은 한 줄이다.
「법문에 정한 바 없음.」
정부위원은 답을 피하지 않았다. 답을 했고, 그 답이 문제였다.
하나 — 첫 질문
등원 열사흘째다.
회파가 없는 의원의 질의 시간은 의장이 정한다. 그날 스물세 사람 몫으로 정해진 시간은 십이 분이었다.
십이 분을 스물셋으로 나누면 한 사람에 삼십일 초다.
스물세 사람은 나누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 몰아주었다.
십이 분을 누구에게 줄지는 등원 사흘째 밤에 정해졌다. 스물세 사람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앉은 것이 그 밤이다.
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셋째 항을 넣자고 한 사람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넣지 말자는 사람도 없었다. 스물두 사람은 그것이 예산 질의에 들어갈 항인지를 판단하지 못했다.
속기록에는 발언 시간이 분 단위로 적힌다. 초 단위는 적히지 않는다.
질의는 세 항이다. 첫째가 조선 세입의 예산 계상 방식이고 둘째가 징용 수당의 지급 지연이다.
앞의 두 항에는 답변이 길게 붙었다. 속기로 각각 스무 줄이 넘는다.
셋째 항의 답변은 한 줄이다.
의원이 물었다. — 조선에 배정된 스물세 석은 사백육십육에 대한 비율인가, 사백구십칠에 대한 비율인가.
정부위원이 답했다. — 법문에 정한 바 없다.
— 정한 바 없다는 것은 어느 쪽도 아니라는 뜻인가.
— 어느 쪽인지를 법문이 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 그러면 이 스물셋은 무엇을 나눈 값인가.
— 나눈 값이 아니다. 정한 값이다.
— 정한 값에도 근거는 있어야 한다.
— 근거는 제반 사정이다.
분자는 법률에 있고 분모는 법률에 없다.
둘 — 분모
두 분모로 계산하면 값이 이렇게 나온다.
| 분모 | 조선 의석비 | 인구비 23.6%와의 차 |
|---|---|---|
| 466 (내지 정수) | 4.94% | 18.7%포인트 |
| 497 (총 정수) | 4.63% | 19.0%포인트 |
두 값은 다르다. 다르지만 둘 다 이십삼 점 육에서 멀다. 멀리 있는 정도가 서로 비슷하다.
인구를 셀 때는 분모가 다투어지지 않는다. 국세조사가 제국을 한 번에 세기 때문이다.
의석을 셀 때만 분모가 둘이 된다. 사백육십육은 내지의 수이고 사백구십칠은 거기에 외지 서른하나를 더한 수다.
법률 제34호가 한 일은 별표를 고친 것뿐이다. 고친 별표가 어느 쪽 총계에 붙는 것인지는 조문에 적혀 있지 않다.
그날 방청석에서도 원내에서도 이 다툼을 대수롭지 않게 본 사람이 많았다.
다른 의원이 물었다. — 두 값이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을 다투는가.
제7구 의원이 답했다. — 오늘은 다르지 않다.
— 내일은 다른가.
— 내지 정수가 늘면 두 값이 갈라진다.
— 늘 예정이 있는가.
— 예정은 모른다. 다만 정수는 조문 하나로 고쳐지는 수다.
— 그러면 어느 쪽이 늘겠는가.
— 고치는 자리에 앉은 사람 쪽이 는다.
분모를 정하지 않으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도 정해지지 않는다.
셋 — 여덟 번
이 질문은 그 뒤 사십오 년 동안 여덟 번 더 나온다.
나온 해는 1949년, 1957년, 1962년, 1968년, 1972년, 1976년, 1983년, 1987년이다. 묻는 사람은 여섯이고 그중 둘이 두 번씩 물었다.
답은 여덟 번 다 같다. 「법문에 정한 바 없음」이다. 문언이 한 자도 바뀌지 않는다.
두 번째로 물은 사람은 네 해 뒤의 같은 사람이다. 그때는 세 항이 아니라 한 항이었다.
여덟 번 가운데 다섯은 본회의 질의였고 셋은 위원회 질의였다. 위원회 질의는 회의록 부속서에만 남는다.
부속서는 부수가 적고 배부처가 좁다. 같은 답이 같은 문언으로 남았는데도 그중 셋은 찾기 어렵다.
「법문에 정한 바 없음.」 같은 여덟 자가 사십오 년 동안 여덟 번 더 돌아온다. 한 자도 바뀌지 않는다. 그중 셋은 부속서에 묻혀 찾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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