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석 제1부 을안(乙案)
3화제4장 선(線)
을호와 병호로 넘어가면 항목의 성격이 바뀐다.
| 항 | 1942년 2월 기재 | 1945년 2월까지의 개정 |
|---|---|---|
| 산유지 | 팔렘방·발릭파판·타라칸 | 없음 |
| 월 소요량 | 인쇄판 그대로 | 없음 |
| 정제 능력 | 인쇄판 그대로 | 없음 |
| 가용 수송선 총톤수 | 약 육백만 총톤 | 서른일곱 번 |

산유지 항에 적힌 세 곳은 이 표가 인쇄된 시점에 남방군의 것이 아니었다. 잠정협정의 기한이 끝나기 스무날 전이다.
표는 아직 갖지 않은 것을 항목으로 인쇄한다. 갖지 못할 경우를 위한 항목은 없다.
을호와 병호는 서식이 같고 쓰임이 다르다. 을호는 땅에서 나오는 것을 적고 병호는 그것을 옮기는 것을 적는다.
땅은 움직이지 않는다. 배는 움직인다. 그래서 을호는 세 해 동안 인쇄판 그대로이고 병호만 손을 탄다.
석 장 가운데 세 해 동안 움직인 것은 한 줄이다.
병호 여백에 연필로 오간 것이 있다.
— 이 줄을 매월 고치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가.
— 정해져 있다. 참모부 제3과다.
— 고친 값을 어디에 보고하는가.
— 보고하지 않는다. 다음 달 표에 적는다.
수송선 총톤수 항의 첫 값은 개전 없이 맞은 그해 겨울의 상선대 규모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 시점까지 남방 항로에서 잃은 배가 없기 때문이다.
세 해 뒤의 값은 여기에 적지 않는다. 다만 서른일곱 번의 개정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는 원철을 넘겨 보면 안다. 매번 아래로 갔다.
서른일곱 번째 개정은 등사판을 다시 뜨지 않고 손으로 적혀 있다.
그 줄은 병호 맨 아래에 있다. 아래에는 인쇄된 괘선이 세 줄 더 있고 전부 비어 있다.
『중등 국사(中等國史)』 제9장 「대동아의 안정기」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수과 검정필 제1147호. 1952년판. 중등학교 제3학년용.
제9장은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세 해를 다룬다. 본문 열한 쪽, 연표 한 쪽, 도판 두 장.
단원 첫 문장은 「이 삼 년 동안 대동아는 안정되었다」이다.
조선 내 인가 중등학교에서 1961년판이 나올 때까지 사용되었다.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수과 검정 도서. 1952년 3월 검정, 같은 해 4월 발행
안정이라는 말은 이 교과서에서 폭격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나 — 안정기(安定期)
열한 쪽의 배분부터 적는다. 남방 자원이 여섯 쪽, 대동아 각지의 회의가 세 쪽, 중국 전선이 두 쪽이다.
중국 전선 두 쪽에는 지명이 열하나 나오고 전투 이름은 하나도 없다. 두 쪽의 결론은 전선이 대체로 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연표 한 쪽에는 서른두 항목이 실려 있다. 스물아홉은 남방과 대동아 회의이고, 셋은 조선 안의 일이다. 셋 다 제도가 시작된 날짜다. 끝난 날짜는 하나도 없다.
편수과가 이 단원을 쓴 것은 1951년 겨울이다. 삼 년을 한 단원으로 묶을지 세 단원으로 나눌지가 먼저 다투어졌고, 한 단원으로 묶기로 하면서 단원 제목이 정해졌다. 나누면 해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적어야 하고, 묶으면 적지 않아도 된다.
단원의 논지는 다섯 줄로 요약된다.
— 이 삼 년 동안 대동아는 안정되었다.
— 남방의 자원은 제국의 공업을 지탱하였고, 각지의 주민은 제국의 지도 아래 질서를 얻었다.
— 미국은 이 지역의 일에 관여하지 아니하였다. 관여하지 아니한 것은 제국의 방침이 바르게 섰기 때문이다.
— 제군의 아버지와 형은 이 안정을 지키기 위하여 일하고 있다.
— 안정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안정에는 값이 있다. 그 값을 치르는 것이 총후의 의무다.
앞의 넉 줄은 안정을 설명하고 마지막 한 줄은 값을 걷는다. 값의 내역은 적히지 않는다.
셋째 줄이 이 단원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쓰인 줄이다. 미국이 오지 않은 것을 제국의 공으로 적었다. 오지 않은 쪽의 사정은 한 자도 적지 않았다. 적으면 공이 아니라 운이 되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안정을 설명하려고 쓰인 것이 아니라 값을 걷으려고 쓰였다.
둘 — 세 서식
세 해 동안 조선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서식으로 확인된다. 서식이 늘면 걷는 것이 는 것이고 서식이 그대로면 그대로인 것이다.
| 항목 | 1941년 | 1944년 |
|---|---|---|
| 미곡 공출제 | 실시 중 | 실시 중 |
| 조선 징병제 | 없음 | 징집 개시 |
| 국민징용령 조선 적용 | 없음 | 적용 |
| 폭격 | 없음 | 없음 |
첫 줄과 마지막 줄은 세 해 동안 같다. 가운데 두 줄은 없던 것이 생긴 것이다.
징병제는 1942년 5월 각의 결정으로 정해졌고 1944년에 징집이 시작되었다. 국민징용령은 1944년에 조선에 적용되었다. 걷는 서식이 둘 늘었다.
폭격이 없다고 해서 걷는 것이 줄지는 않았다. 줄 이유가 표 어디에도 없다.
서식이 늘 때마다 종이가 하나씩 늘었다. 공출 통지서, 배급 통장, 징용 영장, 그리고 영장을 받은 집의 문에 붙이는 표찰이다. 종이는 면사무소에서 나가고 면사무소로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은 종이의 수를 세는 서식이 따로 있다.
세 해 동안 조선에서 새로 생긴 것은 이 종이들이다. 없어진 종이는 없다.
학무국이 도(道)에 조회한 것이 1953년 문서철에 남아 있다.
— 제9장을 배우는 학년에서 안정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 어느 도가 회신하였다. 전쟁이 끝난 줄 아는 학생이 있다.
— 몇인가.
— 세지 않았다.
— 세라.
— 세는 서식이 없다.

서식이 없는 것은 걷지 않는 것이고, 걷지 않는 것은 없는 것으로 처리된다.
셋 — 부재(不在)
폭격이 없었으므로 방공법을 고칠 이유가 없었다. 소개(疏開)도 없었다.
도시가 그대로 있었으므로 공장이 그대로 있었고, 공장이 그대로 있었으므로 배급도 공출도 그대로 있었다.
없어진 것 하나가 아무것도 끝내지 않았다.
제도를 푸는 데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근거는 대개 무언가가 끝났다는 문서다. 그 문서가 나오지 않았다.
중국 전선은 계속되었다. 남방에서 온 유류는 수송선 톤수만큼만 왔고 그 톤수는 해마다 줄었다.
줄어드는 쪽과 그대로인 쪽이 한 장부에 있으면 차액은 걷어서 메운다. 메우는 쪽은 늘 걷기 쉬운 쪽이다.
전시는 끝나는 제도가 아니라 갱신되는 제도가 되었다. 갱신에는 만기가 없다.
만기가 없는 제도는 해마다 조금씩 더 걷는다. 더 걷으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1944년 여름 총독부 문서에 그 명분의 이름이 처음 나온다. 정무총감이 묻고 국장이 답하였다.
— 내년에 무엇을 더 걷는가.
— 걷을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회신이 셋이다.
— 남아 있지 않은데 걷으라 하면 어떻게 되는가.
— 걷힌다. 다만 다음에 걷히지 않는다.
— 그러면 무엇을 주는가.
— 줄 것이 하나 있다. 곳간에서 나가지 않는 것이다.
— 무엇인가.
— 표(票)다.
이 문답에서 표는 처음부터 값을 매길 대상으로 나온다. 권리로 나오지 않는다.
곳간에서 나가지 않는다는 말은 정확한 말이다. 의석은 쌀이 아니고 쇠도 아니다. 인쇄된 별표 한 장에 숫자를 적어 넣으면 생긴다.
조선 인구 이천오백십이만에 그 숫자를 얼마로 적을 것인지가 그 뒤 반 년의 실무가 된다.
참정권은 전시가 끝나서 나온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아서 나왔다.
1952년판 제9장은 1961년판에서 여덟 쪽으로 줄었다. 줄어든 세 쪽은 남방 자원 쪽이다.
「안정기」라는 단원 제목은 1986년판까지 남았다.
도판 두 장은 유전과 제철소다. 세 해를 다룬 단원에 사람이 찍힌 도판은 없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조사과 「참정권 실시 준비 조사」
1944년 7월. 조사자료 제87호. 등사판 62면. 취급주의.
제1편 청원 연혁, 제2편 지방의회 운영 실적, 제3편 내지 선거제도 개요, 제4편 소견.
본 조사는 실시의 가부를 논하지 아니한다. 실시할 경우의 준비 사항만을 조사한다.
제4편은 세 면이다. 그 세 면에만 조사자의 말이 있다.
이 조사서에는 청원한 사람의 이름이 없다.
제1편이 예순두 면 가운데 열아홉 면을 쓴다. 그 열아홉 면에 적힌 것은 연도와 문서 번호와 회답 일자뿐이다. 낸 사람의 이름은 첫 해 한 줄에만 있다.
하나 — 스물한 해
시작은 1920년 2월이다. 민원식 외 백다섯 명이 「중의원의원선거법ヲ조선ニ시행ノ건」을 냈다.
그 뒤로 국민협회가 같은 것을 스물한 해 동안 냈다. 문서 번호는 해마다 새로 붙었고 본문은 대체로 같았다. 조사서는 그 사실을 두 줄로 적었다.
회답은 원문 그대로 옮겼다. 옮긴 까닭이 제1편 두주에 있다. 「회답 문안의 추이를 보기 위함.」
— 1922년. 조선의 민도에 비추어 시기상조로 인정함.
— 1929년. 지방제도의 운용 실적을 더 보아야 할 것으로 인정함. 시기상조.
— 1936년. 국어 보급의 정도를 감안하건대 아직 시기상조.
— 1941년. 현하 시국에 비추어 시기상조.
추이는 없었다. 앞에 붙는 말이 바뀌었을 뿐이다. 민도, 지방제도, 국어, 시국.
넷을 스물한 해에 나누어 쓰면 한 까닭당 다섯 해 남짓이 된다. 조사서는 그 셈을 하지 않았다. 회답만 나란히 놓았다.
네 까닭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넷 다 조선 쪽에 모자란 것을 가리킨다. 민도가 모자라고, 실적이 모자라고, 국어가 모자라고, 때가 모자란다.
모자란 것이 얼마나 차면 되는지를 적은 회답은 스물한 통 가운데 없다. 기준이 없으면 도달했다는 판정도 없다.
묻는 문장은 스물한 번 바뀌었고 답하는 문장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미룬 까닭은 스물한 해 동안 넷뿐이었다. 민도, 지방제도, 국어, 시국. 1944년 여름, 총독부는 「실시 준비」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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