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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서장

· 58화 중 1화 · 3,599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조선 선출 의원 사십오 년 자료집』 전 8권 · 편찬 서문

중의원 헌정자료실 편(編). 1990년 4월 간행. 비매품.

제1권에서 제7권까지는 문서를 싣고, 제8권은 통계와 색인과 부록을 싣는다.

본문은 국어로 인쇄한다. 조선어로 제출된 문서는 번역하여 싣고, 원문은 제8권 부록에 사진판으로 싣는다.

편찬은 중의원 의석 재배분 특별위원회 조사원이 맡았다.

스물세 석 1화 서장 — 헤더컷

이 자료집에는 이긴 기록이 한 번 있다.

이 서문은 그 한 번이 무엇이었는지 적지 않는다.


적지 않는 것은 편찬 규정 때문이 아니다. 세 번 써 보고 세 번 지웠다.

지운 이유는 매번 같았다. 무엇을 이겼는지 서문에 적어 두면 그 뒤에 일어난 일이 전부 그 승리의 결과처럼 읽힌다. 결과인지 아닌지는 문서가 말할 일이지 내가 말할 일이 아니다.

편찬에는 다섯 해가 걸렸다. 1985년 가을에 특별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조사원 여섯이 배치되었고, 내가 맡은 것은 비율 산정이었다. 이 자료집은 그 일의 부산물이다.

간행이 결정된 것은 지난겨울이다. 특별위원회가 최종보고서를 내고 나자 조사에 쓴 문서를 어디에 둘 것인지가 남았다. 헌정자료실이 받겠다고 했고, 받는 조건이 여덟 권으로 묶어 내는 것이었다.


여덟 권에 무엇이 들었는지만 적는다.

실은 것연도
제1권법률과 별표, 선거구 획정1944~1945
제2권제1회 선거 기록과 등원 명부1945~1946
제3권원내 문서와 의원단 규약1946~1957
제4권회기별 표결부와 증원안1957~1976
제5권제1차·제2차 소송 기록1968~1980
제6권제3차 소송 기록과 판결1983~1985
제7권재배분 심의와 법률, 편찬 중에 나온 문서1985~1988
제8권통계·색인·부록1945~1990

이긴 기록은 제6권에 있다. 자료집은 여덟 권이다.


제2권 등원 명부에 이름이 스물셋 있다. 제7권 등원 명부에는 마흔하나 있다. 사십오 년 동안 그 숫자가 바뀐 것은 한 번이다.

제7권의 뒤쪽 절반은 1988년에 나온 문서다. 연도로 보면 제3권에 들어갔어야 한다. 늦게 나왔으므로 뒤에 붙였다.

자료집은 일이 일어난 순서가 아니라 문서가 나온 순서로 묶인다.


제8권 부록의 표제는 「비(比)」다.

거기에는 이름이 없고 사건도 없다. 백분율이 열 줄 적혀 있을 뿐이다. 무엇을 무엇으로 나눈 값인지는 줄마다 아래에 산식으로 달았다.

부록에는 사람이 없다.


열 줄로 정한 경위는 편찬 회의 속기에 남아 있다. 1989년 11월이다.


자료실장이 물었다. — 부록에 표를 하나 더 넣는다고 들었다. 무엇을 세는 표인가.

— 비율이다.

— 무엇의 비율인가.

— 열 줄이다. 여덟 줄은 셀 수 있었다.

— 나머지 두 줄은.

— 한 줄은 분자가 영이다. 한 줄은 분모를 모른다.

— 모르는 것을 표에 넣는가.

— 넣는다. 비워 두면 없는 것이 되고, 없는 것이 되면 다음 사람이 세지 않는다.


열 줄의 값은 이 서문에 옮기지 않는다. 제8권에 있다.

옮기지 않는 까닭은 하나다. 비율은 한 줄만 떼어 놓으면 커 보이거나 작아 보인다. 사십오 년치를 한 장에 놓고 나서야 그 값이 큰지 작은지 말할 수 있다.


제8권 부록에는 사진판이 한 묶음 더 있다. 사십오 년 동안 조선어 원문 그대로 회의록에 실린 문서다.

그 묶음은 얇다.


제3권과 제7권에 같은 이름이 있다. 우재현이다. 제3권에서는 규약에 서명한 사람이고, 제7권에서는 서류를 반려한 사람이다. 같은 손이다.

두 문서는 세 해 사이에 쓰였다. 자료집에서는 네 권 떨어져 있다.

성이 같은 것에 관해서는 제7권 해제에 적어 두었다. 서문에는 적지 않는다.


여덟 권은 지난주에 제본되어 헌정자료실 서가에 들어갔다. 분류 번호는 조선 관계 자료가 아니라 선거 관계 자료로 붙었다.

그것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그 번호를 고쳐 달라고 하지 않았다.

1990년 4월
중의원 의석 재배분 특별위원회 조사원
우형선(禹亨善) 적음


「제국국책수행요령(帝國國策遂行要領)」 · 1941년 11월 5일 어전회의 결정

대본영정부연락회의 안(案)을 같은 날 어전회의가 원안대로 결정하였다.

一. 제국은 현하의 위국을 타개하여 자존자위를 완수하고 대동아의 신질서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때 대미영란 전쟁을 결의하고 좌기 조치를 취한다.

(가) 무력 발동의 시기를 12월 초두로 정하고 육해군은 작전 준비를 완정한다.

(나) 대미 교섭은 별지 요령에 의하여 이를 행한다.

(다) 독일·이탈리아와의 제휴 강화를 도모한다.

(라) 무력 발동 직전에 태국과의 사이에 군사적 긴밀 관계를 수립한다.

二. 대미 교섭이 12월 1일 오전 영시까지 성공하면 무력 발동을 중지한다.

방위연수소 전사실 소장 대본영정부연락회의 관계 문서철 제1철. 별지 갑안·을안 첨부

이 결정문은 전쟁을 정한 문서가 아니다. 전쟁의 기한을 정한 문서다.

하나 — 단서(但書)

두 항이 한 장에 있다. 제1항은 12월 초두라 적었고 제2항은 12월 1일 오전 영시라 적었다.

사이는 스무 날 남짓이다.

제2항은 뒤에 붙인 것이 아니다. 초안 단계부터 있었다. 연락회의 기록에 붙은 부속 문서에 그 경위가 남아 있다. 추밀원 의장이 묻고 총리대신이 답하였다.


스물세 석 1화 서장 — 전환컷

— 제2항은 무엇을 위하여 두는가.

— 교섭이 성립할 경우를 위하여 둔다.

— 성립할 것으로 보는가.

— 보지 않는다.

— 보지 않는 것을 문서에 적는가.

— 적는다. 적어 두지 않으면 성립하였을 때 멈출 근거가 없다.

— 근거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 준비가 스스로 굴러간다. 준비는 멈추라는 문장이 없으면 멈추지 않는다.


그해 가을에 이 문답은 형식으로 읽혔다. 방 안의 누구도 교섭이 성립한다고 보지 않았다.

형식으로 적어 둔 문장이 스무 날 뒤에 근거가 된다.

결정문은 개전을 결정하였고, 같은 결정문 안에 개전을 멈출 자리가 인쇄되어 있었다.

둘 — 넉 줄

별지는 둘이다. 갑안은 길고 을안은 짧다.

갑안은 중국 주병 기한과 삼국동맹의 해석과 통상 무차별을 다 적었다. 을안은 그것을 덜어냈다. 덜어낸 자리에 기한이 들어갔다.

외무대신이 연락회의에서 을안의 쓰임을 설명하였다.


— 을안은 갑안이 깨졌을 때 내는 것이다.

— 그러면 갑안을 먼저 낸다.

— 갑안은 열흘을 쓴다. 을안에 남는 것은 열흘이다.

— 열흘로 무엇을 하는가.

— 석유를 받는다. 그 밖의 것은 뒤에 다시 이야기한다.


을안 본문은 넉 줄이다. 비고가 한 줄 더 붙는다.


— 제1. 일본국 및 미합중국 정부는 어느 쪽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이외의 남동아시아 및 남태평양 지역에 무력적 진출을 행하지 아니할 것을 확약한다.

— 제2. 양국 정부는 네덜란드령 인도에서 각기 필요로 하는 물자의 획득이 보장되도록 상호 협력한다.

— 제3. 양국 정부는 통상 관계를 자산 동결 이전의 상태로 복귀시킨다. 미합중국 정부는 소요의 석유를 일본국에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 제4. 미합중국 정부는 일지 양국의 화평에 관한 노력에 지장을 주는 행동에 나서지 아니한다.

— 비고. 필요에 응하여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주둔군을 북부로 이주시킬 용의가 있음을 약속할 수 있다.


넉 줄 가운데 셋은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문장이다. 달라는 것은 한 줄뿐이고 그 한 줄이 석유다.

석 달 전에 남부 불인으로 들어갔고 그 사흘 뒤에 석유가 끊겼다. 을안은 들어간 것을 물리고 끊긴 것을 다시 받겠다는 문서다.


넉 줄 어디에도 조선은 없다.

불인이 있고 네덜란드령 인도가 있고 중국이 있다. 조선은 교섭의 대상이 아니라 교섭하는 쪽의 일부였으므로 적힐 자리가 없었다.

조선이 한 번도 적히지 않은 이 넉 줄에서 사십오 년이 나온다.


결정문 원본에는 붉은 줄이 한 군데 그어져 있다. 제2항의 「12월 1일 오전 영시」다.

누가 그었는지는 문서철에 적혀 있지 않다. 그은 시점도 적혀 있지 않다.

문서철을 정리한 전사실 조사관은 정리 카드에 한 줄을 남겼다. 「가필 아님. 표시선으로 봄.」


『잠정협정안 철회 경위 연구』 제3장 「11월 25일 밤」

외무성 외교사료관 편. 조사총서 제12집. 1978년 3월 간행.

조사원 다섯 명, 조사 기간 삼 년. 미국 국립문서관 공개분 열람 두 차례.

본 연구는 1941년 11월 22일에 작성된 잠정협정안 초안이 어찌하여 25일 밤에 철회되지 아니하였는가를 밝히기 위하여 착수되었다.

결론을 먼저 적는다. 밝히지 못하였다.

같은 책 서장 제2절 「연구의 한계」

1941년 11월 22일 국무부 극동과의 책상에 종이가 두 통 있었다.

하나 — 초안

두 통은 성격이 다르다. 하나는 잠정협정안이고 하나는 「합중국급일본국간협정ノ기초개략」이다. 뒤의 것을 뒷날 사람들은 각서라 부른다.

잠정협정안은 삼 개월짜리다. 삼 개월 동안 서로 움직이지 않고 그 사이에 본교섭을 한다는 것이다.

기초개략에는 기한이 없다. 기한이 없는 대신 조건이 있다.

항목잠정협정안 (11월 22일 초안)기초개략
중국적지 않는다전면 철병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남부 철병, 북부는 이만 오천 이하전면 철병
석유민수용에 한하여 공급 재개적지 않는다
기한삼 개월없다

표의 마지막 줄이 두 통의 차이 전부다. 나머지 줄은 이 줄에서 갈라져 나온다.

한 통은 시간을 판다. 한 통은 시간을 팔지 않는다.

1941년 11월 25일 밤, 한 통은 철회되지 않았다. 삼 년을 조사한 다섯 사람도 그 까닭을 밝히지 못했다.

남은 57화 · 약 199,323자 · 약 4시간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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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석전 58화

제1부 을안(乙案)

1서장2제2장 두 통3제4장 선(線)

제2부 입법(立法)

4제6장 총독(總督)5제7장 안(案)6제9장 삼십사호(三十四號)7제10장 칙선(勅選)8제13장 획정(劃定)

제3부 개표(開票)

9제15장 유권(有權)10제16장 열세 곳11제17장 표(票)12제18장 개표(開票)13제20장 등원(登院)14제22장 무엇에 대한 비율입니까

제4부 원내(院內)

15제25장 통역(通譯)16제27장 회기(會期)17제28장 증원(增員)18제30장 손

제5부 청원(請願)

19제31장 삼십만(三十萬)20제33장 절차(節次)21제34장 태웠다

제6부 강화(講和)

22제37장 호적(戶籍)23제39장 세율(稅率)24제41장 학교25제44장 여자

제7부 합동(合同)

26제46장 합동(合同)27제48장 개헌(改憲)28제49장 한 줄29제51장 서른한 석

제8부 배율(倍率)

30제53장 배율(倍率)31제55장 공장32제57장 길33제60장 젊은 사람34제62장 서기(書記)35제64장 제소(提訴)

제9부 각하(却下)

36제65장 각하(却下)37제66장 이유 하나38제68장 재소(再訴)39제69장 유효(有效)

제10부 사정(事情)

40제71장 사정(事情)41제72장 위헌(違憲)42제74장 시정(是正)43제76장 세대(世代)44제78장 설계(設計)45제80장 배(倍)

제11부 주문(主文)

46제82장 변론(辯論)47제83장 주문(主文)48제84장 이유 둘49제85장 삼대일(三對一)

제12부 배분(配分)

50제87장 산식(算式)51제88장 마흔한 석52제91장 선서(宣誓)

제13부 비(比)

53제92장 유고(遺稿)54제94장 이름55제96장 회기 마흔56제97장 발의(發議)57제99장 백분(百分)58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