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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제14장 선언(宣言)

· 58화 중 8화 · 3,548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하나 — 삼월

선언서는 한 장이고 서명은 서른셋이다. 낭독한 자리는 인사동의 요릿집이었고 종로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따로 읽었다. 그날 오후에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고 그 뒤 두 달 동안 온 도에서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코르닐로프 8화 제14장 선언(宣言) — 헤더컷

총독부는 헌병과 경찰과 군대를 썼다. 검거된 사람의 수는 총독부가 세었다. 죽은 사람의 수는 두 계통으로 남았고 두 계통은 크게 어긋난다. 어긋난 채로 백 년이 지났다.

여기까지가 실사와 같다. 낱말 하나 다르지 않다. 재작년 팔월 페트로그라드에서 있었던 일은 조선총독부의 편제를 바꾸지 않았고 헌병의 배치도 바꾸지 않았다.


선언서는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문안을 쓴 사람이 있고 활자를 짠 사람이 있고 종이를 댄 사람이 있고 밤에 나른 사람이 있다.

넷 가운데 앞의 하나만 이름이 남았다. 뒤의 셋에는 값이 들었고 값이 든 것은 누군가 냈다. 낸 사람의 이름은 뒤의 셋과 함께 남지 않았다.

삼월의 문서에서 이름이 남은 자리는 서명란이고, 값이 든 자리는 서명란이 아니다.


검거된 사람 가운데 학생이 많았다.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의 신문조서는 대개 같은 물음으로 시작해서 같은 물음으로 끝난다. 그 끝을 한 장 옮긴다.


— 삼월 일일 오후에 어디 있었는가.

— 종로에 있었다.

— 무엇을 하였는가.

— 만세를 불렀다.

— 누가 부르라 하였는가.

— 아무도 부르라 하지 않았다.

— 그러면 왜 불렀는가.

— 앞에서 부르기에 불렀다.

— 부른 다음에는 무엇을 하려 하였는가.

—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조서에서 검사가 얻은 것은 없다. 배후를 대라는 물음에 댈 배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배후가 없는 운동은 수사하기 어렵고 이어 가기는 더 어렵다.

마지막 물음이 이 조서의 전부다.

만세는 사람이 부른다. 그다음은 사람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정한다. 조직을 두려면 모일 자리와 부칠 돈과 적을 종이가 있어야 하고, 셋 다 어디선가 와야 한다.

삼월에 있었던 것은 사람이고, 사월부터 드는 것은 돈이다.

둘 — 문

실사에서 이 운동 뒤에 문이 둘 열렸다.

하나는 상해다. 정부를 세우고 이름을 붙이고 외교로 승인을 구하는 길이다. 문서와 공채와 청원서가 이 문으로 나간다.

이 문으로 나가는 것은 종이다. 종이는 값이 싸다. 다만 종이만으로는 사람을 먹이지 못하고 사람을 먹이지 못하면 조직이 남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밖이다. 강령과 조직과 급여가 그 문으로 들어온다. 그 문은 1919년 3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렸고 이듬해 여름에 각국 대표를 불렀고 그다음 해에 돈이 나왔다.

들어오는 것에는 조건이 붙는다. 조건이 붙는다는 것을 그때 조선 사람들이 몰랐던 것은 아니다. 알고도 받은 쪽과 알아서 받지 않은 쪽으로 갈렸고, 갈린 자리가 실사에서 이십 년을 갔다.

이 세계에 둘째 문은 없다. 1919년 3월의 모스크바에는 문을 열 조직이 없고, 1920년 여름의 그 도시에는 대표를 부를 기구가 없다. 없는 까닭은 재작년 팔월의 사흘에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삼월 다음에 열리는 문은 하나다.


1962년에 문교부가 중등 국사 교과서를 검정했다. 제7장 도입부 다섯 줄을 두고 심의회에서 문답이 있었다. 심의록은 요약만 남았고 발언자의 이름은 직위로만 적혀 있다.


— 이 문단 다음에 무엇을 적는가.

— 상해에 정부가 섰다고 적는다.

— 그다음은.

— 그다음은 제8장이다.

— 제7장을 다섯 줄로 끝내는가.

— 적을 것이 다섯 줄이다.

— 「길은 하나였다」는 무슨 뜻인가.

— 우리가 갈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 그 말이 맞는가.

— 맞다. 다만 뜻이 하나 더 있다.

— 무엇인가.

— 고를 것이 없었다는 뜻이다.

— 그것도 적는가.

— 적지 않는다.


교과서는 갈라지지 않은 것을 적고 고를 것이 없었던 것은 적지 않았다. 두 문장은 한 사실의 앞뒤다.

앞만 적으면 자랑이 되고 둘을 다 적으면 계산이 된다. 1962년판은 자랑을 골랐다.

자랑을 고른 것을 나무랄 수 없다. 1962년에 이 나라의 근본법은 미합중국 공법이었고 그 조문은 국어본이 정본이 아니었다. 교과서가 자랑할 수 있는 대목은 많지 않았다.

갈라질 것이 없는 길은 걷기 쉽다. 걷기 쉬운 까닭이 그 길뿐이어서인 경우가 있다.


1962년판 제7장에는 사진이 한 장 실려 있다. 종로 거리를 위에서 찍은 것이고 사람은 알아볼 수 없다.

이 사진은 1962년판부터 1991년판까지 같은 자리에 실렸다. 판이 바뀔 때마다 인쇄가 흐려졌고 마지막 판에서는 거리와 사람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사진 밑의 설명은 여섯 자다. 「삼일운동 당시.」 어느 날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그해 삼월과 사월과 오월 가운데 어느 날인지 확인하려면 원판을 찾아야 하고, 원판이 어디 있는지는 검정 서류에 적혀 있지 않다.


코르닐로프 8화 제14장 선언(宣言) — 전환컷

「파리강화회의 사무국 접수문서 목록」 및 조선 관계 청원서 처리 기록, 1919년 5월

사무국은 들어온 문서마다 번호를 매기고 그 옆에 처리 구분을 적는다.

처리 구분은 넷이다. 본회의 상정 · 위원회 회부 · 반려 · 참고 편철.

넷 가운데 셋에는 회신이 따라간다. 회신이 없는 것은 마지막 하나다.

조선 관계 문서는 1919년 4월과 5월에 걸쳐 접수되었다.

처리란에 적힌 것은 마지막 하나다.

접수 원부는 회의가 끝난 뒤 사무국 문서과로 넘어갔다. 지금도 있다.

청원서는 접수되었다. 접수가 처리의 전부였다.

하나 — 접수번호

사무국의 절차는 세 단계다. 들어온 문서에 번호를 매기고, 발신 주체를 확인하고, 소관을 정한다.

첫 단계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우표를 붙여 보내면 번호가 나온다. 번호가 나온다는 것은 그 문서가 있었다는 뜻이고 그 이상은 아니다.

걸리는 것은 둘째 단계다. 발신 주체가 승인된 나라의 정부가 아니면 셋째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다. 소관이 없는 문서에는 배정할 위원회가 없다.


넷 가운데 어느 것으로 처리되는가에 따라 뒤가 달라진다.

처리 구분다음 단계회신
본회의 상정의사일정에 오른다있다
위원회 회부소위원회로 간다있다
반려발신자에게 돌아간다있다
참고 편철없다없다

반려된 문서에는 회신이 따라간다. 편철된 문서에는 아무것도 따라가지 않는다.


문서과의 처리 문답이 기록으로 남았다. 사무국은 판단이 갈리는 건에 대하여 담당자의 문답을 요약해 두게 되어 있었다.


— 이 문서는 어디에서 왔는가.

— 나라 이름이 적혀 있다.

— 그 이름이 명부에 있는가.

— 없다.

— 그러면 무엇으로 접수하는가.

— 대표라고 적혀 있다.

— 누가 준 대표인가.

— 그것은 이 문서에 적혀 있지 않다.

— 준 쪽이 없으면 대표가 아니다.

— 그러면 반려하는가.

— 반려하려면 돌려보낼 곳이 있어야 한다.

— 돌려보낼 곳이 없으면 어찌하는가.

— 편철한다.


청원서의 문면은 길지 않다. 나라의 이름과 잃은 날짜와 되찾겠다는 뜻이 적혀 있고, 뒤에 근거로 든 것이 붙어 있다.

근거로 든 것은 그해 봄에 널리 읽힌 원칙 몇 조다. 원칙은 승전국이 말했고 승전국의 회의는 승전국의 것이다. 원칙을 인용하는 것과 원칙의 적용을 받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편철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버리면 문서가 없어지고 편철하면 남는다.

남은 문서는 백 년 뒤에 열람된다. 열람되는 것과 읽히는 것은 다르다. 1919년에 이 문서를 읽어야 할 사람은 회의장 안에 있었고 문서는 회의장 밖에 편철되었다.

둘 — 남은 하나

실사에서도 이 청원은 상정되지 않았다. 여기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고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파리에서 결정된 것은 조선의 일이 아니었다. 회의는 진 나라의 땅을 나누는 회의였고 조선은 진 나라의 땅이 아니라 이긴 편에 선 나라의 땅이었다. 나눌 대상이 아니면 의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것은 그다음이다.


실사에서 파리의 실패 뒤에 다른 곳이 있었다. 두 해 뒤에 그곳에서 답이 왔고 답에 돈이 붙어 있었다. 그 돈이 온 뒤로 상해의 다툼은 성격이 바뀐다. 노선의 다툼이 회계의 다툼이 되었다.

이 세계에 그곳은 있으나 답할 기구가 없다. 각국의 운동을 부르고 강령을 주고 돈을 보내는 기구가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구가 서지 않은 까닭은 1917년 팔월의 사흘에 있다.

답하지 않는 곳은 나쁜 답을 주지도 않는다. 그것이 이 세계가 얻은 전부다.


파리에서 상해로 보낸 보고가 남아 있다. 보고서 뒤에 붙은 별지의 문답이다. 별지에는 발신자 이름이 없다.


— 접수번호를 받았다.

— 번호는 문서가 있었다는 표시다.

— 상정은 되지 않는다.

— 사유는 듣지 못하였다.

— 다음은 어디로 가는가.

— 워싱턴이다.

— 워싱턴에 아는 사람이 있는가.

— 있다.

— 워싱턴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한 적이 있는가.

— 없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곳으로 가는가.

—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곳이 거기뿐이다.


그해 여름에 워싱턴에 사무소가 하나 생긴다. 이름은 구미위원부다. 하는 일은 둘이다. 미국 사람에게 조선을 알리는 것과 미국에 사는 조선 사람에게서 돈을 걷는 것이다.

앞의 일은 성과를 재기 어렵고 뒤의 일은 재기 쉽다. 재기 쉬운 쪽이 남고 재기 어려운 쪽은 해마다 예산이 준다.

그 사무소가 스물다섯 해 동안 무엇을 얼마나 걷었는지는 장부에 남았다. 그 장부를 편 사람은 이때 아직 상해에 있다.

이 세계에서 조선이 두드릴 문은 하나다. 하나뿐인 문은 고른 문이 아니다.

하나뿐인 문은 고른 문이 아니다. 그해 여름 워싱턴에 사무소가 서고, 스물다섯 해 치 장부를 펼 사람은 아직 상해에 있다.

남은 50화 · 약 176,166자 · 약 4시간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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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닐로프전 58화

제1부 전신(電信)

1서장2제2장 사자(使者)3제3장 르보프4제5장 미발(未發)5제7장 감옥

제2부 의회(議會)

6제9장 개회(開會)7제12장 국제(國際)

제3부 만세(萬歲)

8제14장 선언(宣言)9제15장 파리10제17장 영(零)11제18장 유월

제4부 공채(公債)

12제19장 위원부(委員部)13제22장 대체(代替)14제23장 두 갈래15제25장 장부(帳簿)16제27장 빚17제28장 청문(聽聞)18제30장 십칠만

제5부 군자금(軍資金)

19제32장 없음20제35장 무명(無名)21제37장 셋과 하나

제6부 전시(戰時)

22제40장 광복군(光復軍)23제42장 각서(覺書)24제45장 위도(緯度)25제46장 상륙(上陸)

제7부 단독(單獨)

26제47장 유임(留任)27제49장 인민(人民)28제51장 서식(書式)29제52장 고문(顧問)30제54장 신탁(信託)31제55장 상대(相對)32제57장 전문(電文)

제8부 조직법(組織法)

33제58장 두 배34제60장 법안(法案)35제61장 물음36제62장 정본(正本)37제64장 조문(條文)38제65장 선포(宣布)

제9부 정본(正本)

39제66장 헌법(憲法)40제68장 승인(承認)41제70장 환(圜)

제10부 유보지(留保地)

42제73장 담43제75장 환율(換率)44제78장 개정(改正)45제80장 광장

제11부 동등(同等)

46제81장 개항(開港)47제83장 반환(返還)48제85장 예순

제12부 대조(對照)

49제87장 이본50제89장 유보51제90장 감독52제92장 빈칸53제94장 유고(遺稿)54제96장 표결(票決)

제13부 자주(自主)

55제97장 아홉 조56제98장 팔십 년57제99장 값58제100장 표지(表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