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ONTOON

11화제18장 유월

· 58화 중 11화 · 3,477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하나 — 유월

실사에서 1921년 6월 말에 아무르 강가의 한 도시에서 일이 있었다.

코르닐로프 11화 제18장 유월 — 헤더컷

그해 봄에 한인 무장부대가 그곳으로 모였다. 모인 뒤에 지휘 계통이 둘이 되었고 어느 쪽이 통솔하는가를 두고 갈렸다. 갈린 끝에 한쪽이 무장해제를 명하고 다른 쪽이 따르지 않았다.

그날의 사망자는 두 계통으로 남았다. 피해를 입은 쪽의 보고서는 육백여 명이라 적었고 명령을 낸 쪽의 보고서는 서른여섯 명이라 적었다. 두 수 사이가 열 배가 넘는다.

백 년 동안 두 수는 좁혀지지 않았다. 좁히려면 명부가 있어야 하고 명부를 만들 수 있는 쪽이 명부를 만들지 않았다.


무장해제를 명한 쪽의 권한은 어디서 나왔는가. 그 자리에 있던 조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 조직 위에 있는 국제 기구에서 나왔다.

그 기구는 1919년 봄에 모스크바에 섰고 이듬해 여름에 각국 대표를 불렀다. 부른 자리에서 강령을 주었고 강령에는 지휘를 하나로 하라는 조항이 있었다.

하나로 하라는 명령은 하나로 할 권한이 있는 데서만 나온다.


이 세계에 그 기구는 없다.

없으므로 그 명령이 없고, 명령이 없으므로 그 도시로 모이라는 문서도 없다. 문서가 없으면 사람은 모이지 않는다. 천 리 밖으로 부대를 옮기는 일은 부르는 문서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2003년의 조사팀이 러시아 쪽 문서보관소에 조회한 회신이 보고서에 실려 있다.


— 조회하신 1921년 6월 아무르 주 관계 명령 문서는 본 보관소에 없다.

— 없는 사유를 적어 달라는 요청에 답한다.

— 폐기된 것이 아니라 생산되지 않았다.

— 그 명령을 낼 기구가 이 나라에 설치된 적이 없다.

— 설치되지 않은 기구의 문서는 목록에 오르지 않는다.

— 목록에 없는 것은 조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셈이 갈리려면 셀 것이 있어야 한다.

둘 — 되돌아간 사람

부르는 문서가 없어도 사람은 그 자리에 있다.

1920년 겨울부터 1921년 봄까지 연해주와 북간도 사이에 흩어져 있던 무장부대의 규모는 자료마다 다르다. 삼천오백 명 안팎으로 적은 기록이 많고 그보다 적게 적은 것도 있다. 이 조사는 어느 쪽도 확정하지 않았다.

확정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급여를 주는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실사에서 그것을 대기로 한 곳이 그 국제 기구였고, 이 세계에는 그 자리가 비어 있다.


먹을 것과 겨울옷과 탄약은 어디선가 와야 한다. 오지 않으면 부대는 흩어진다. 흩어지는 데는 명령이 들지 않는다.

1921년 여름에 북간도로 되돌아간 부대의 문답이 생존자 면담에서 채록되었다. 채록은 1970년대에 이루어졌고 면담자는 이미 없다.


— 북으로 가는가.

— 가지 않는다.

— 부르는 문서가 왔다고 들었다.

— 온 적이 없다.

— 그러면 겨울은 어디서 나는가.

— 각자 있던 데로 간다.

— 있던 데가 없는 사람은 어찌하는가.

— 그런 사람은 남는다.

— 남아서 무엇을 하는가.

— 총을 지니고 있으면 총을 지닌 사람으로 산다.

—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 부를 이름이 없다.


이 문답은 부대의 해산을 다루지 않는다. 해산에는 절차가 있고 절차에는 문서가 따른다. 여기에는 절차가 없다.

절차 없이 흩어진 것을 무엇이라 부를지 조사관은 정하지 못했다. 보고서 본문에서는 「귀환」으로 적고 각주에서 그 낱말이 정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돌아갈 데가 있는 사람에게만 귀환이 되기 때문이다.


부를 이름이 없는 사람은 명부에 오르지 않는다. 명부에 오르지 않으면 뒤에 세어지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1921년 6월의 사망자는 없다. 없는 것은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이라고 적을 문서가 없다는 것이 이 조사의 결론이다.

죽지 않은 사람은 명부를 남기지 않는다.


총독부 경무국은 1925년부터 간도 방면의 단체 수를 세었다. 세기 시작한 해에 열넷이었고 삼 년 뒤에 아홉이었다.

세는 쪽은 총독부 하나였다. 세어지는 쪽에는 자기를 세는 문서가 없다.


1921년 가을에 북간도의 한 마을에서 만든 종이가 한 장 남아 있다. 마을 사람들이 총 열한 자루를 묻은 자리를 적은 것이다.

묻은 날짜는 적혀 있고 파낼 날짜는 적혀 있지 않다. 파냈다는 기록도 없다.

종이는 마을의 문서궤에 있었고 1970년대에 조사자에게 넘어갔다. 넘긴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채록에 적혀 있다.


「대한민국 구미위원부 회계 규정 및 사무 분장 규정」 1921년 개정

위원부는 1919년 워싱턴에 두었다. 규정은 두 해 만에 고쳐졌다.

고친 것은 회계 쪽이고 사무 분장 쪽은 자구만 손보았다.

전문 여덟 조 가운데 다섯 조가 영수(領收)에 관한 것이다.

개정 사유란은 한 줄이다. 「수입 항목이 하나로 되었으므로.」

그 한 줄을 적은 사람의 이름은 규정에 없다.

이 사무소에는 금고가 없다.

하나 — 여덟 조

워싱턴의 사무소는 방이 둘이다. 하나는 응접이고 하나는 사무다. 사무실 벽에 지도가 한 장 걸려 있고 그 지도는 조선이 아니라 미국이다.

미국 지도가 걸린 까닭은 분명하다. 이 사무소가 다니는 곳이 거기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와 하와이와 시카고와 뉴욕이다.

위원부를 세운 것은 1919년이고 세운 목적은 외교였다. 두 해가 지나 규정을 고칠 때 고쳐진 것은 외교가 아니라 회계다.


코르닐로프 11화 제18장 유월 — 전환컷

여덟 조는 이렇게 나뉜다. 제1조와 제2조가 사무 분장이고 제3조부터 제7조까지가 회계이며 제8조가 부칙이다.

회계 다섯 조는 전부 같은 것을 말한다. 받은 것을 적고, 적은 것을 두 장으로 만들고, 한 장을 낸 사람에게 준다.

제1조는 위원부의 직임을 셋으로 나눈다. 위원장과 서기와 발매원이다.

발매원은 상주가 아니다. 지방에 가서 파는 사람이고 삯은 판 만큼 받는 것이 아니라 다닌 날만큼 받는다. 판 만큼 받게 하면 못 사는 사람에게도 팔게 된다고 제2조 단서에 적혀 있다.

파는 자리는 대개 교회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이 흩어지기 전이 가장 좋다. 그 시각이 규정에 적혀 있지는 않다.


받은 돈은 그날 안에 은행에 넣는다. 제6조다. 금고가 없는 것은 그래서다. 금고가 있으면 밤을 넘기게 되고 밤을 넘긴 돈은 물어볼 것이 생긴다.

소액을 여럿에게서 받는 조직은 규정의 절반을 영수증에 쓴다.


— 다섯 조는 지나치지 않소.

— 지나치지 않다.

— 무엇 때문이오.

— 우리가 받는 돈이 한 사람에게서 오지 않기 때문이다.

— 한 사람에게서 오면 어떻소.

— 그 한 사람이 묻는다. 우리는 그에게만 답하면 된다.

— 지금은 어떻소.

— 지금은 낸 사람마다 묻는다.

— 낸 사람마다 어떻게 답하오.

— 답하지 않는다. 종이를 준다.

— 종이가 답이 되오.

— 종이는 답이 아니다. 다만 종이가 없으면 물음이 끝나지 않는다.

둘 — 자원(自願)

표재선이 워싱턴에 온 것은 1921년 시월이다.

그는 임시정부가 보낸 사람이 아니다. 임시정부에는 사람을 보낼 여비가 없다. 그는 제 여비로 왔고 그 여비는 상해에서 두 해 동안 모은 것이다.

그가 상해에서 한 일은 회계였다. 재작년 가을에 그가 편 장부의 수입란에는 적을 항목이 둘뿐이었다. 애국공채와 인구세다. 둘 다 미주에서 온다.

인구세는 사람 수로 걷는 것이고 걷을 사람이 사는 데서 걷어야 한다. 상해에 사는 조선인보다 미주에 사는 조선인이 많다. 그래서 인구세도 대개 미주에서 왔다.

두 항목이 다 한쪽에서 오면 장부는 한쪽만 보게 된다. 그는 그것을 두 해 동안 보았다.


그가 위원부에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다섯 줄이다.

— 나는 상해 재무부에서 두 해 동안 장부를 보았다.

— 그 장부의 수입은 전부 그쪽에서 온다.

— 나는 그쪽에서 세고 싶다.

— 여비는 내가 낸다.

—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있는 자리에 넣어 달라는 것이다.

회신은 넉 줄이다.

— 자리는 없다.

— 일은 있다.

— 급여는 정해진 것이 없다.

— 오려면 오라.


돈이 있는 데로 간 것이 아니다. 돈을 세는 자리가 거기밖에 없어서 간 것이다.

셋 — 이천삼백

도착해서 그가 처음 한 일은 명부를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공채를 파는 데 필요한 것은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살 사람의 이름이다. 이름이 없으면 권할 데가 없고 권할 데가 없으면 파는 일은 우연이 된다.

넉 달 동안 그는 네 가지 문서를 모았다. 교회 교인 명부, 사진결혼으로 들어온 이의 입국 기록, 농장 노동 계약자 명부, 한인회 회비 대장이다.

같은 이름이 여러 문서에 있었다. 겹치는 것을 지웠다. 지우고 남은 것이 이천삼백이다.


이름을 맞추는 일이 가장 오래 걸렸다.

한 사람이 이름을 셋 가진 경우가 흔했다. 호적에 오른 한자 이름, 교회에서 부르는 이름, 고용 계약서에 적힌 영문 표기다. 셋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 영문 표기는 적은 사람이 들은 대로 적은 것이고 적은 사람은 대개 조선말을 모른다.

그는 셋을 한 줄에 나란히 적기로 했다. 어느 것이 옳은지 정하지 않고 셋을 다 남겼다. 정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근거로 삼을 문서가 이 나라에 없었다.


— 미주에 사는 한인이 이천삼백이오.

— 아니다.

— 그러면 무엇이오.

— 이름이 확인된 수다.

— 나머지는 없소.

— 있다. 세지 못했다.

— 세지 못한 것은 어떻게 적소.

— 적지 않는다.

— 적지 않으면 없는 것이 되오.

— 된다.

— 그래도 적지 않겠소.

— 근거 없이 적은 수는 나중에 근거가 된다.

세지 못한 것은 적지 않는다. 근거 없이 적은 수는 나중에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천삼백의 명부는 그렇게 시작된다.

남은 47화 · 약 165,785자 · 약 3시간 57분

내 서재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

코르닐로프전 58화

제1부 전신(電信)

1서장2제2장 사자(使者)3제3장 르보프4제5장 미발(未發)5제7장 감옥

제2부 의회(議會)

6제9장 개회(開會)7제12장 국제(國際)

제3부 만세(萬歲)

8제14장 선언(宣言)9제15장 파리10제17장 영(零)11제18장 유월

제4부 공채(公債)

12제19장 위원부(委員部)13제22장 대체(代替)14제23장 두 갈래15제25장 장부(帳簿)16제27장 빚17제28장 청문(聽聞)18제30장 십칠만

제5부 군자금(軍資金)

19제32장 없음20제35장 무명(無名)21제37장 셋과 하나

제6부 전시(戰時)

22제40장 광복군(光復軍)23제42장 각서(覺書)24제45장 위도(緯度)25제46장 상륙(上陸)

제7부 단독(單獨)

26제47장 유임(留任)27제49장 인민(人民)28제51장 서식(書式)29제52장 고문(顧問)30제54장 신탁(信託)31제55장 상대(相對)32제57장 전문(電文)

제8부 조직법(組織法)

33제58장 두 배34제60장 법안(法案)35제61장 물음36제62장 정본(正本)37제64장 조문(條文)38제65장 선포(宣布)

제9부 정본(正本)

39제66장 헌법(憲法)40제68장 승인(承認)41제70장 환(圜)

제10부 유보지(留保地)

42제73장 담43제75장 환율(換率)44제78장 개정(改正)45제80장 광장

제11부 동등(同等)

46제81장 개항(開港)47제83장 반환(返還)48제85장 예순

제12부 대조(對照)

49제87장 이본50제89장 유보51제90장 감독52제92장 빈칸53제94장 유고(遺稿)54제96장 표결(票決)

제13부 자주(自主)

55제97장 아홉 조56제98장 팔십 년57제99장 값58제100장 표지(表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