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13부 자주(自主)
56화제98장 팔십 년
하나 — 백구 책
이 대장이 무엇을 하는 문서인가는 조직법 제4조에 적혀 있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은 미 의회에 보고되어야 한다는 문장이다.

보고하라고만 적혀 있고 보고하지 않으면 어떻게 한다는 말은 없다. 벌칙도 없고 기한도 없다.
기한이 없는 의무를 팔십 년 동안 한 번도 어기지 않은 기록이 이 백구 책이다.
팔십 년 동안 이 나라가 만든 법률 가운데 보고에서 빠진 것이 없다.
대장의 서식에는 칸이 여섯인데 실제로 두 칸이 짝을 이룬다. 접수일과 처리다.
앞 칸은 워싱턴이 받은 날이고 뒤 칸은 워싱턴이 그것을 어떻게 했는가다. 이 나라가 보낸 날을 적는 칸은 대장에 없다.
보낸 날은 서울 쪽 문서에 있다. 두 벌을 맞춰 보면 평균 열이레가 걸렸다.
대조실이 사본을 받아 온 뒤 처음 한 일이 서식 대조였다. 그 작업 기록이다.
— 보낸 날을 적는 칸이 왜 없는가.
— 이 대장은 받는 쪽이 만든 것이다.
— 받는 쪽에는 보낸 날이 필요 없는가.
— 필요 없다. 접수일부터 회기가 센다.
— 그러면 보낸 날은 어디에 남는가.
— 보낸 쪽에 남는다.
— 두 칸을 한 장에 놓은 문서가 있는가.
— 없다.
— 만들 수 있는가.
— 만들면 그것이 새 문서가 된다.
두 칸을 한 장에 놓는 문서는 이 편에서 한 번 만들어진 적이 있다. 팔십 년보다 앞선다.
구미위원부 회계장부에 「약속된 것」과 「받은 것」이 나란한 두 칸으로 적혀 있었다. 표재선이 그렇게 서식을 짰다.
그 두 칸이 늘 같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고 그래서 두 칸으로 두었다.
이 대장은 한 칸이다.
팔십 년치 보고 건수를 구간으로 나누면 이렇다. 총괄 뒷면에 적혀 있다.
| 구간 | 보고 건수 |
|---|---|
| 1947~1959 | 2,146 |
| 1960~1979 | 4,318 |
| 1980~1999 | 5,672 |
| 2000~2019 | 5,914 |
| 2020~2027 | 1,426 |
합이 일만 구천사백일흔여섯이다. 이 나라 국회가 공포한 법률의 수와 한 건도 다르지 않다.
둘 — 네 건
여섯째 칸에 「무효」가 적힌 줄은 백구 책을 통틀어 넷이다.
1953년 귀속재산 처리에 관한 개정 법률, 1962년 외국인 토지에 관한 법률, 1971년 해저 광물 개발에 관한 법률, 1988년 외자 도입에 관한 개정 법률이다.
넷 가운데 셋이 제8조에 저촉되었고 하나가 제6조에 저촉되었다.
무효는 팔십 년에 네 번 나왔고 네 번 중 세 번이 같은 조문에서 나왔다.
무효 처분은 결의안 형식으로 온다. 문면은 넷이 거의 같다.
해당 법률의 이름과 공포 번호를 적고, 조직법 제4조에 유보된 권한에 의하여 이를 무효로 한다고 적고, 그 아래에 저촉 조문을 한 줄로 적는다.
저촉의 이유를 적는 줄은 없다. 서식에 그 칸이 없다.
넷 가운데 셋에서 이 나라 정부는 회신을 보내지 않았다. 하나에서 보냈고 그 회신의 요지는 재입법 계획이었다.
총괄을 만들면서 대조실이 무효 네 건의 뒤를 따라갔다. 그 작업 기록 열두 줄이다.
— 무효된 법률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가.
— 넷 다 폐지 절차를 밟았다.
— 폐지한 것은 누구인가.
— 이 나라 국회다.
— 무효 처분으로 이미 효력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 없어졌다.
— 그러면 왜 다시 폐지하는가.
— 법령집에서 지우려면 폐지 법률이 있어야 한다.
— 그 폐지 법률도 보고했는가.
— 하였다.
— 접수번호가 있는가.
— 넷 다 있다.
제5조는 다른 형식이다. 승인을 받기 전에는 법률이 되지 않으므로 회신이 오지 않으면 그 법률은 없는 것이 된다.
승인을 구한 것이 이백서른한 건이고 승인이 온 것이 이백열넷이다. 회기가 끝나도록 회신이 오지 않은 것이 열일곱이다.
열일곱 건은 대장 여섯째 칸에 「종결」로 적혀 있다. 무효가 아니다. 무효는 있는 것을 없애는 처분이고 이 열일곱은 있게 되지 않은 것이다.
받지 못한 답은 대장에서 답을 받은 것과 같은 칸에 적힌다.
제6조는 대장에 나오지 않는다. 조약은 법률이 아니므로 이 대장의 소관이 아니다.
외무부 조약목록으로 세면 팔십 년 동안 체결된 조약과 협정이 삼천사백스물여섯 건이고 전부 사전 동의를 거쳤다.
동의가 거부된 것이 여섯 건이다. 거부된 여섯 건은 체결되지 않았으므로 조약목록에도 없다. 여섯이라는 수는 외무부 조약국의 결재철에서 나왔다.

셋 — 적지 못한 칸
총괄은 낱장 한 장이고 그 한 장에 칸이 여섯이다. 대장의 여섯 칸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대조실이 그 아래에 일곱째 칸을 그었다. 칸 이름은 「보고 전에 고쳐진 법률」이다.
이 칸을 그은 것은 제4조가 보고를 요구하는 시점 때문이다. 제4조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보고하라고 적었다. 제정되기 전에 고쳐진 것은 보고할 대상이 아니다.
정부가 국회에 법률안을 내기 전에 법제처가 심사한다. 심사에서 조항이 빠지거나 문면이 바뀐다.
바뀐 까닭이 조직법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심사철에만 남는다. 관보에도 국회 회의록에도 남지 않는다.
법령심사철의 보존 연한은 오 년이다.
2027년 1월에 대조실이 법제처에 낸 조회와 그 회신 열 줄이다.
— 1947년 이후의 법령심사철이 남아 있는가.
— 보존 연한이 지난 것은 폐기되었다.
— 남은 것이 있는가.
— 1967년분 한 해치가 있다.
— 남은 까닭이 무엇인가.
— 그해 청사를 옮기면서 다른 상자에 섞여 들어갔다.
— 그 한 해치에서 조직법을 이유로 고쳐진 것이 몇 건인가.
— 열아홉 건이다.
— 다른 해의 값을 추정할 수 있는가.
— 추정할 자료가 없다.
1967년분 열아홉 건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심사철에 남아 있다. 열아홉 건 가운데 열넷이 조항을 통째로 뺀 것이고 다섯이 문면을 바꾼 것이다.
뺀 열넷 가운데 아홉이 제8조에 걸릴 만한 조항이었고 셋이 제5조, 둘이 제6조였다.
심사 의견란에 이유를 적은 것은 여섯 건뿐이다. 나머지 열셋에는 붉은 줄만 그어져 있다.
팔십 년 가운데 한 해는 열아홉이고 일흔아홉 해는 알 수 없다.
한 해의 값에 일흔아홉을 곱하는 방법이 있다. 대조실은 그 방법을 쓰지 않기로 했다.
1967년이 다른 해와 같은 해였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근거가 없는 곱셈은 수를 만들어 내는 일이지 세는 일이 아니다.
이 칸이 비는 까닭은 문서를 안 남긴 것이 아니다. 남겼고 폐기되었다.
폐기한 쪽은 이 나라의 행정기관이다. 워싱턴이 지우라고 한 적이 없다.
팔십 년 전 미군정청 문서에 통치의 비용이 현지로 넘어갔다는 대목이 있다. 넘어간 것은 비용만이 아니었다.
세는 일도 넘어갔다. 받는 쪽은 셀 이유가 없고 보내는 쪽은 셀 칸이 없다.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한 기록은 스스로 버린다.
하윤경은 일곱째 칸에 숫자를 적지 못했다.
한 번은 사선을 그었다. 사선은 값이 없다는 뜻으로 서식에서 쓰는 표시다.
이튿날 그것을 지웠다. 값이 없는 것과 값을 모르는 것이 같은 표시로 적히면 안 된다고 작업 기록에 적혀 있다.
칸은 그은 채로 두었다. 지우면 일곱째 칸이 있었다는 것도 남지 않는다.
대장 백구 책 가운데 마지막 책은 아직 열려 있다. 2027년 3월분까지 편철되어 있고 뒤가 비어 있다.
그 책의 마지막 줄 접수번호는 일만 구천사백일흔여섯이다.
다음 줄은 그어져 있고 비어 있다.
『자주의 계산 방법에 관한 시론』
국립문서관 정본 대조실 내부 문서. 2027년 3월. 스물두 쪽. 등사하지 않았다.
부록 제10권의 단위를 정하기 위하여 쓴 것이라고 첫 쪽에 적혀 있다.
목차는 넷이다. 단위의 후보, 세 가지 환산과 그 기각, 대체 방법, 남는 것.
스물두 쪽 가운데 열여섯 쪽이 기각의 사유다.
마지막 쪽에 결론란이 인쇄되어 있고 그 칸에 아홉 자가 적혀 있다.
「방법을 얻지 못하였다.」
자주에는 단위가 없다.
하나 — 단위(單位)
자료집 부록은 열 권이고 아홉 권에 수가 실린다. 그 아홉 권이 쓰는 단위는 넷이다.
건과 제곱킬로미터와 해와 자다. 넷 다 재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 건은 문서를 세고, 제곱킬로미터는 땅을 재고, 해는 시간을 재고, 자는 문면을 잰다.
열째 권의 표제는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표제가 재는 대상은 넷 어디에도 없다.
시론은 그 단위를 찾으려고 쓴 문서다.
첫 후보는 사람이었다. 자주를 잃은 사람의 수로 세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두 쪽 만에 기각되었다. 잃은 사람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7조의 유보지 안에서 이 나라 법이 적용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 안에 사는 이 나라 사람이 없다. 제8조로 광업권이 넘어간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의 수는 셀 수 있으나 그 수는 자주가 아니라 생업이다.
유보지 안에서 일한 이 나라 사람은 있다. 팔십 년치 노무 명부가 남아 있고 그 수는 셀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잃은 것을 세면 임금과 재해와 해고가 나온다. 셋 다 셀 수 있고 셋 다 노동의 항목이다.
같은 일을 이 나라 안의 다른 사업장에서 겪은 사람과 견주면 차이가 나온다. 그 차이는 관할의 값이지 자주의 값이 아니다.
잃은 것이 분명한데 잃은 사람이 없는 항목은 사람으로 세어지지 않는다. 시론은 이 후보를 두 쪽에서 닫았다.
둘째 후보는 돈이었다.
제8조로 외국 법인에 넘어간 광업권과 공익사업이 삼백아흔아홉 건이다. 그 삼백아흔아홉 건의 취득가와 그 뒤의 수익을 합하면 큰 수가 나온다.
시론은 그 계산을 하지 않았다. 계산할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다. 자료는 있다.
제8조로 넘어간 삼백아흔아홉 건의 취득가와 수익을 합하면 큰 수가 나온다. 시론은 그 계산을 하지 않았다.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다.
남은 2화 · 약 9,183자 · 약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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