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7부 단독(單獨)
26화제47장 유임(留任)
넷 — 빈 구분
세 구분은 매수를 세었고 한 구분은 셀 것이 없었다.

권을 덮으면 두께가 한쪽으로 쏠린다. 간지가 넷인데 종이는 셋 뒤에만 있기 때문이다.
문서관은 그 권을 세워 두지 않고 뉘어 두었다. 세우면 기울어서 옆 권을 밀었다.
『대한민국 국사』 1975년판, 제10장 「광복과 국가의 성립」 도입부
문교부 검정. 중등 과정 하권. 제10장은 여덟 쪽이다.
도입부는 두 문장으로 되어 있고 두 문장 사이에 줄바꿈이 있다.
첫 문장은 1962년판부터 2003년판까지 한 글자도 고쳐지지 않았다.
둘째 문장은 판본마다 다르다. 네 판본에 네 문장이 있다.
교사용 지도서는 이 대목에 지도상의 유의점을 붙이지 않았다.
이 문장은 참이다.
하나 — 첫 문장
첫 문장은 이렇다.
「우리 민족은 분단을 겪지 아니하였다.」
문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문장이 가리키는 것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로 정해진다. 이 문장이 가리키는 것은 없었다.
같은 말을 쓰는 두 정부가 선 일이 없다. 같은 말을 쓰는 두 군대가 서로를 향해 선 일도 없다. 도(道)와 도 사이에 통행증이 필요한 구간이 생긴 일이 없다.
전력은 북에서 났고 그 전기는 남으로 갔다. 갈 때 아무 문서도 필요하지 않았다. 실사에서는 그 송전이 삼 년 만에 끊겼고 끊긴 날에 남쪽의 등이 함께 꺼졌다.
여기서는 끊긴 날이 없다. 끊을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문장이 참인 방식이다. 참인 문장은 고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사십일 년 동안 고쳐지지 않았다.
참인 문장을 오래 두면 그 문장이 다른 문장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대신 차지하는 것은 문장의 잘못이 아니다.
첫 줄에 놓인 문장은 그 장의 뜻을 정한다. 뒤에 무엇이 오든 앞의 것이 먼저 읽힌다.
그 문장이 참이 된 자리는 문서 한 장이다.
일반명령 제1호 제2고 첫 장 오른쪽 여백에 연필 글씨가 있었다. 대시를 빼면 열한 자다. 사흘 뒤에 그 열한 자가 활자로 앉았다.
여백이 본문이 되는 데는 회의가 필요하지 않았다. 막을 상대가 없는 자리에서는 절차도 필요하지 않다.
교과서는 이 대목을 적지 않는다. 교과서가 적는 것은 결과이고, 결과에는 여백이 남지 않는다.
적지 않은 것은 감춘 것이 아니다. 교과서를 쓴 사람들은 그 여백을 보지 못했다. 그 편철이 공개된 것은 1975년판이 나온 뒤의 일이다.
분단을 겪지 아니하였다는 문장과 그 열한 자는 같은 문서에서 나왔다.
둘 — 둘째 문장
첫 문장 다음에 무엇을 적을 것인가는 사십일 년 동안 정해지지 않았다.
네 판본이 고른 문장은 이렇다.
| 판본 | 둘째 문장 |
|---|---|
| 1962 | 그것은 우리 겨레가 하나였기 때문이다 |
| 1975 | 그리하여 국토는 온전하였다 |
| 1990 | 그 온전함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따로 살핀다 |
| 2003 | 분단을 겪지 아니한 대신 우리가 겪은 것이 있다 |
1962년판의 문장은 이 편이 부정하는 문장이다. 겨레가 하나여서 선이 그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선을 그을 상대가 그 자리에 오지 않았을 뿐이다.
오지 않은 이유는 조선에 있지 않았다. 이십팔 년 전 팔월의 어느 사흘에 있었고, 그 사흘은 조선 사람 누구도 알지 못했다.
1962년판은 그것을 몰라서 그렇게 적은 것이 아니다. 그 시기에 그 자리에 적을 수 있는 문장이 그것뿐이었다.
1962년판 편수 자료에 그 대목의 심의 의견이 세 줄 남아 있다.
— 원인을 적어야 한다. 원인이 없으면 학생이 우연으로 읽는다.
— 원인을 우리가 아는가.
— 모른다. 다만 우리 쪽에서 찾는 편이 낫다.
무엇이 없었는지를 적으려면 없는 것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없는 것에는 대개 이름이 붙지 않는다.
그래서 1962년판은 있는 것의 이름을 적었다. 겨레는 있는 것이고 하나라는 말은 좋은 말이다.
1990년판 개정 편수 회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대목에서 오간 말이 열두 줄이다.
한 편수관이 말했다. — 1975년판의 둘째 문장을 그대로 두자.
다른 편수관이 말했다. — 온전하였다는 말은 상태를 적은 말이다.
— 상태를 적는 것이 무엇이 그른가.
— 상태를 적으면 그 상태를 누가 관리했는지를 적지 않게 된다.
— 그것은 다음 장에 있다.
— 다음 장에 있는 것과 이 문장 다음에 있는 것은 다르다.
— 어떻게 다른가.
— 학생은 장을 넘기기 전에 한 번 쉰다. 쉬는 동안 남는 것이 그 두 문장이다.
— 그러면 무엇으로 고치는가.
— 따로 살핀다고 적자.
— 따로 살핀다는 말은 여기서 살피지 않는다는 말이다.
— 그렇다. 다만 살필 것이 있다는 것은 적힌다.
— 살필 것이 무엇인지는 적지 않는가.
— 이 쪽에는 그것을 적을 자리가 없다.

— 자리를 만들면 되지 않는가.
— 자리를 만들려면 쪽수를 늘려야 하고 쪽수는 검정 기준에 걸린다.
— 그러면 이 줄은 다음 판본으로 넘어가는가.
— 넘어간다.
1990년판이 고른 것은 답이 아니라 답을 적을 자리다.
2003년판은 그 자리에 목적어를 넣지 않았다. 겪은 것이 있다고만 적고 무엇을 겪었는지는 적지 않았다.
네 판본의 둘째 문장을 나란히 놓으면 방향이 하나 보인다. 문장이 점점 뒤로 미룬다.
1962년판은 이유를 적었고, 1975년판은 상태를 적었고, 1990년판은 뒤에 살피겠다고 적었고, 2003년판은 겪은 것이 있다고만 적었다.
미루는 문장은 틀리지 않는다. 틀리지 않는 문장은 고칠 이유도 생기지 않는다.
셋 — 온전한 국토
1975년판의 둘째 문장은 국토를 말한다. 국토는 땅이고 땅에는 임자가 적히지 않는다.
그 판본의 제10장은 여덟 쪽이고 그 여덟 쪽이 끝나면 제11장이 온다.
제11장의 표제는 이렇다. 「대한민국 조직법과 초기의 국가 건설.」
제11장 첫 문장은 법의 이름과 번호와 날짜를 적는다. 미합중국 공법의 번호가 그 자리에 인쇄되어 있다.
번호는 어느 나라 의회의 몇 번째 회기인지를 가리킨다. 교과서는 그 번호를 그대로 싣고 무엇의 번호인지는 풀어 적지 않는다.
풀어 적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하나다. 학생이 그 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온전한 국토를 누가 다스렸는지는 제11장에 있다. 온전하였다는 말과 다스렸다는 말 사이에 쪽수가 하나 끼어 있다.
쪽수 하나는 읽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두 문장이 같은 쪽에 있지 않으면 두 문장을 한꺼번에 기억하기 어렵다.
교과서 편수의 실무에서 이것을 쪽 배분이라고 부른다. 어느 문장과 어느 문장을 한 쪽에 둘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정하는 사람은 문장을 고치지 않는다. 자리만 옮긴다. 자리를 옮기는 데는 심의가 필요하지 않다.
1975년판의 쪽 배분을 정한 기록은 편수 자료에 남아 있지 않다. 남길 서식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친 것은 남고 옮긴 것은 남지 않는다. 팔십 년치 문서를 뒤에 세는 사람이 걸리는 자리가 여기다.
두 문장을 갈라 놓는 데 드는 것은 쪽수 하나다.
넷 — 외운 문장
첫 문장은 사십일 년 동안 시험에 자주 나왔다. 빈칸을 채우는 형식이었다.
빈칸은 대개 「분단」 자리에 뚫렸다. 답은 두 글자다.
두 글자를 채운 학생은 그 문장을 오래 기억한다. 채워 넣은 것은 잊히지 않는다.
그 자리에 무엇이 대신 왔는지는 빈칸이 아니었으므로 채워 넣을 일이 없었다.
시험에 나오는 것과 나오지 않는 것 사이에는 아무 뜻도 없다. 출제 범위는 배분표로 정하고 배분표는 쪽수로 만든다.
쪽수로 만든 것이 한 세대의 기억이 된다. 그 세대는 지금 일흔이 넘었다.
값은 이 회차에서 계산하지 않는다. 이 문장의 값을 계산하려면 팔십 년치 문서가 있어야 하고, 그중 몇 항목은 셀 수 없다.
셀 수 없는 항목이 있다는 것을 아는 데도 팔십 년이 걸린다.
지금 적을 수 있는 것은 문장 하나가 참이라는 것뿐이다. 참인 것은 다툼이 되지 않는다.
다툼이 되지 않는 문장은 오래 산다.
국립문서관에 1975년판 한 권이 소장되어 있다. 어느 중학교 도서실에서 나온 것이다.
제10장 도입부 첫 문장 아래에 연필 밑줄이 있다. 둘째 문장에는 없다.
조선인민공화국 선포문 및 재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 회신, 1945년 9월~12월
두 문서가 한 편철에 있다. 앞의 것이 등사 두 장이고 뒤의 것이 활자 한 장이다.
앞의 것에는 발신처가 적혀 있고 수신처가 적혀 있지 않다.
뒤의 것에는 수신처가 적혀 있지 않고 발신처만 적혀 있다.
편철한 사람이 두 문서 사이에 간지를 넣고 연필로 한 줄을 적었다.
「보낸 곳과 받은 곳이 서로 다르게 적혀 있음. 대조 불가.」
회신은 종이 한 장이다.
하나 — 선포
1945년 9월 6일, 서울의 한 여학교 강당에 사람이 모였다.
모인 명목은 전국의 대표가 모이는 대회다. 대표를 뽑은 절차는 곳마다 달랐고 어떤 곳은 절차가 없었다.
그날 저녁에 나라 하나가 선포되었다. 이름은 조선인민공화국이다.
선포문은 등사 두 장이다. 첫 장에 강령이 있고 둘째 장에 사람의 이름이 있다.
이름은 스물 몇이다. 그 가운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 몇 사람은 그때 나라 밖에 있었고 자기 이름이 오른 것을 몰랐다.
주석 자리에 오른 이름의 사람은 그때 태평양 건너에 있었다. 그가 조선에 닿는 것은 그해 10월 중순이다.
이것은 실사와 같다. 실사에서도 그 명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다른 것은 그 문서가 놓이는 자리다. 실사에서 이 선포문은 여러 문서 가운데 하나였다.
그해 가을 조선에는 자기가 정부라고 적은 문서가 여럿 있었고, 그 여럿은 서로를 상대로 삼을 수 있었다.
여기서는 그 여럿이 한 상대만 갖는다. 상대가 하나면 문서끼리 다투지 않고 문서가 한 곳으로 올라간다.
1945년 9월, 강당에서 나라 하나가 선포된다. 그 문서와 군정청 회신은 서로를 가리키지 않아, 편철에는 「대조 불가」가 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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