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7부 단독(單獨)
31화제55장 상대(相對)
셋 — 두 번
그 통역석에 앉았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뒷날 이렇게 말했다.

— 나는 판결을 두 번 읽었다.
— 한 번은 종이에서 읽고 한 번은 입으로 읽었다.
— 종이에서 읽을 때는 남의 문장이었다.
— 입으로 읽으면 내 목소리가 되었다.
— 피고가 나를 보았다.
— 판사를 보지 않고 나를 보았다.
— 형을 정한 사람은 내가 아닌데 형을 말한 사람은 나였다.
— 그 자리에서 조선말은 나 하나였다.
통역인의 이름 칸이 판사 이름 아래에 있는 것은 서식을 만든 사람의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서식은 대개 자리 순서대로 칸을 놓는다.
다만 그 칸에 이름을 적는 사람은 자기 이름이 어디에 놓였는지를 매번 본다. 서식은 뜻이 없어도 자리를 가르친다.
그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 일을 넉 달 하고 다른 부서로 옮겼다.
옮긴 이유를 그는 뒷날에도 적지 않았다. 옮겨 달라고 청한 문서가 인사철에 있고, 사유란에 「본인 희망」이라고만 적혀 있다.
사유를 적지 않아도 되는 칸이 있는 것은 적을 수 없는 사유가 있기 때문이다.
넷 — 상대
이 다섯 권이 보여 주는 것은 다툼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다툼에 심판이 생겼다는 것이다.
심판이 생기면 다투는 두 쪽은 서로에게 하던 말을 심판에게 하게 된다. 상대를 설득하는 말과 심판을 설득하는 말은 같지 않다.
상대를 설득하려면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심판을 설득하려면 심판이 무엇을 싫어하는지만 알면 된다.
앞엣것은 오래 걸리고 뒤엣것은 빠르다. 사람은 빠른 쪽을 고른다.
빠른 쪽을 고르는 일이 몇 해 이어지면 두 쪽 다 상대를 설득하는 법을 잊는다.
잊은 자리에 남는 것은 심판에게 잘 보이는 기술이다. 그 기술은 배우기 쉽고 쓰기 쉽고 물려주기도 쉽다.
그리고 심판은 이 나라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값을 하나 적어 둔다.
이 나라의 좌와 우는 서로를 이길 방법을 스스로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찾을 필요가 없어진 것은 그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빠른 길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빠른 길이 옆에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그 길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강요당하지 않았으므로 그 길을 고른 문서가 남지 않는다.
고르지 않기로 한 것은 문서를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값은 이 편철에서 셀 수 없다.
싸움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심판이 생긴 것이다.
편철 다섯 권은 1948년에 인계 목록에 올랐다. 목록에 적힌 항목은 권수와 연월과 매수다.
인계받은 곳은 이 나라의 관청이다. 인계한 곳도 그해까지는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관청이었다.
목록의 비고란은 다섯 권이 다 같다. 「원문 영문.」
표지에는 두 가지 말이 있고 안쪽 종이에는 한 가지 말만 있다. 앞엣것이 표지고 뒤엣것이 기록이다.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규정」 및 군정장관 훈령 제19호, 1946년 2월
한 장에 앞뒤로 인쇄되었다. 앞이 규정이고 뒤가 훈령이다.
규정은 여섯 조이고 훈령은 세 항이다. 두 문서의 시행일이 같다.
결재본이 따로 남아 있다. 결재본의 표제 앞에는 글자가 세 자 더 있었다.
인쇄에 넘기기 전에 지웠다. 줄을 긋지 않고 종이를 긁어 지웠다.
긁은 자리는 종이가 얇아졌고 그대로 편철되었다.
규정 제1조는 이 나라 전부를 대표한다고 적었다. 제3조가 그것을 다시 정했다.
하나 — 지운 세 자
지워진 세 자가 무엇인지는 결재본을 빛에 비추면 보인다.
무엇을 가리키던 말인지는 알기 쉽다. 나라의 어느 쪽인가를 적는 말이다.
지운 이유도 어렵지 않다. 이 나라에는 그 말이 가리킬 다른 쪽이 없다.
가리킬 것이 없는 말을 문서에 두면 뒤에 읽는 사람이 없는 것을 찾는다. 문서를 만드는 사람은 그런 말을 먼저 지운다.
붙일 데가 없는 말은 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기구는 이름에서부터 나라 전부다.
전부를 대표하는 기구가 생기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오래 바라던 일이다.
여러 해 동안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이 그 일을 하려 했고 대개 반쪽이거나 밖에 있었다. 이번 것은 반쪽이 아니고 안에 있다.
그러므로 이 문서의 첫 조는 좋은 조문이다. 좋은 조문이라는 말을 이 편에서 쓰는 자리가 많지 않으므로 여기에 적어 둔다.
— 제1조. 본원은 대한 국민을 대표하는 자문기관으로 한다.
— 제2조. 본원은 의장 한 사람, 부의장 두 사람과 의원으로 구성한다.
— 제3조. 본원의 의결은 군정장관의 승인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세 조가 이어져 있다.
첫째 조가 무엇인지를 정하고 둘째 조가 누가인지를 정하고 셋째 조가 그것이 언제 무엇이 되는지를 정한다.
세 조 가운데 가장 짧은 것이 셋째다.
나머지 세 조는 이렇다.

— 제4조. 본원의 의원은 군정장관이 위촉한다.
— 제5조. 본원은 군정장관의 자문에 응하며 필요한 사항을 건의할 수 있다.
— 제6조. 본원의 사무는 군정청 관방에서 처리한다.
여섯 조 가운데 대표라는 말이 나오는 곳은 제1조 하나다.
나머지 다섯은 위촉과 승인과 자문과 건의와 사무를 정한다. 그 다섯의 주어는 전부 같은 자리다.
대표한다는 말과 결정한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다.
둘 — 제삼조
「승인으로 효력이 발생한다」는 문장의 앞뒤를 나눠 읽는다.
승인 전에는 효력이 없다. 효력이 없는 의결은 의결이 아니라 의견이다.
의견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자문기관은 의견을 내는 곳이고, 좋은 의견은 좋은 결정을 만든다.
다만 의견에는 기한이 없다.
승인하지 않아도 부결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 있다. 부결에는 이유를 적어야 하고 그대로 두는 데에는 적을 것이 없다.
— 훈령 제19호 제1항. 본원의 의결은 문서로 하여 군정장관에게 제출한다.
— 제2항. 승인하지 아니한 의결은 재의에 부치지 아니한다.
— 제3항. 본원의 의결과 그 처리 결과는 공표하지 아니한다.
세 항을 나란히 놓으면 길이 하나로 난다.
내는 길은 제1항에 있고 되돌아오는 길은 제2항에서 끊긴다. 제3항은 그 끊긴 자리를 밖에서 보이지 않게 한다.
이 형식이 그해 겨울에 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대표하는 기구를 두고 승인하는 자리를 따로 두는 서식은 다른 바다 건너에서 사십 년 전에 이미 쓰였다.
그쪽에서는 그 서식이 몇 번 고쳐졌다. 고쳐질 때마다 대표하는 쪽의 칸이 넓어졌고 승인하는 자리는 그대로 있었다.
넓어진 칸과 그대로 있는 자리 가운데 뒤엣것이 서식의 뼈다.
| 조항 | 문면 | 문면이 정하는 것 |
|---|---|---|
| 규정 제1조 | 「대한 국민을 대표하는 자문기관」 | 범위. 반쪽이 아니다 |
| 규정 제3조 | 「군정장관의 승인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 시점. 승인 전에는 없다 |
| 훈령 제2항 | 「재의에 부치지 아니한다」 | 되돌릴 길. 없다 |
| 훈령 제3항 | 「공표하지 아니한다」 | 셀 수 있는가. 없다 |
공표하지 않으면 승인하지 않은 것이 몇 건인지 아무도 세지 못한다.
셋 — 도장
제1차 회의는 이월에 열렸다. 의장이 뽑히고 부의장이 둘 뽑혔다.
세 사람의 이름은 이 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다. 규정 어디에도 그 이름은 없다. 규정에는 자리만 있다.
그 자리에 누가 앉는가는 그해 조선에서 가장 큰 다툼이었다. 신문이 그 다툼을 매일 실었다.
자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다툼이 되지 않았다. 규정 제3조에 이미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를 두고 다투는 동안 자리의 크기는 다른 데서 정해졌다.
제2차 회의의 회의록에 문답이 하나 남아 있다.
— 우리가 정한 것은 언제부터 정해진 것이 되는가.
— 승인한 날부터다.
— 승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 그대로 둔다.
— 그대로 두는 것은 부결인가.
— 부결이 아니다.
—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 승인을 기다린다.
— 기다리는 동안 그것은 무엇인가.
— 문서다.
— 무엇의 문서인가.
마지막 물음의 답이 회의록에 적히지 않았다.
적히지 않은 것이 답이 없어서인지 답을 적지 않기로 해서인지는 이 회의록으로 알 수 없다.
의결서에는 도장이 둘 찍힌다.
하나는 의장의 것이고 하나는 승인란의 것이다.
앞의 도장은 그 문서가 이 기구의 것이라는 표시다. 뒤의 도장은 그 문서가 문서가 되었다는 표시다.
앞의 것은 만든 것을 가리키고 뒤의 것은 살린 것을 가리킨다.
두 도장 가운데 하나만 찍힌 종이는 이 기구 안에서만 종이다.
도장을 새로 파는 데에는 날이 걸린다. 이 기구의 도장은 제1차 회의 전에 이미 와 있었다.
새기고 옻칠하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누가 의장이 되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도장에 새겨진 것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기구 이름이기 때문이다.
자리보다 도장이 먼저 있었다는 것은 이 기구를 두기로 한 쪽이 이 기구를 먼저 그렸다는 뜻이다.
먼저 새겨진 것은 이름이 아니라 틀이다.
결재본의 긁어 지운 자리는 지금도 그대로 있다.
빛에 비추면 세 자가 보인다. 지운 것은 글자고 남은 것은 자국이다.
미 국무부 극동국 → 주한 정치고문, 전문 제188호, 1946년 3월
인쇄 전신 넉 장. 문단마다 번호가 붙어 있고 번호는 다섯까지 간다.
첫 장 위쪽에 취급 등급과 배포처가 있다. 배포처는 셋이다.
밑줄이 한 줄 있다. 넷째 장 마지막 문단이다.
밑줄은 발신 부서가 그은 것이 아니다. 잉크가 다르고 자가 없이 그었다.
이 전문에는 회신 요구가 없다. 회신을 받을 항목이 없기 때문이다.
넉 장 가운데 밑줄이 그어진 것은 한 줄이다.
워싱턴발 전문 넉 장에 회신 요구가 없다. 다른 잉크로, 자 없이 그어진 밑줄 한 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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