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3부 만세(萬歲)
10화제17장 영(零)
하나 — 다섯 줄
애국공채는 증서다. 증서에는 액면과 이자와 상환 시기가 적혀 있고, 상환 시기는 「독립 후」로 되어 있다.

날짜가 아닌 조건을 상환기로 적은 증서는 값을 매길 수 없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을 사는 사람은 값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산 사람은 대개 미주와 하와이의 동포다. 농장과 세탁소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한 사람이 사는 액수는 작았다. 작은 것이 여러 장 모였다.
다섯 줄 가운데 첫 줄은 빚이다. 애국공채는 판 것이 아니라 꾼 것이고, 꾼 것을 세입란에 적는 것은 서식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넷은 갚지 않아도 된다. 다만 넷 다 사람의 형편과 마음에서 온다.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은 청해서 받는 돈이다. 청하는 쪽은 다음 해에 다시 청해야 하고, 다시 청할 때마다 지난해에 무엇을 했는지 보여야 한다.
1921년 봄에 의정원에서 결산 심사가 있었다. 심사 기록은 요약으로 남았다.
— 세입이 다섯 줄이고 세출이 열두 줄이다.
— 그렇다.
— 모자라는 것은 무엇으로 메웠는가.
— 메우지 않았다.
— 메우지 않으면 어찌 되는가.
— 지출을 하지 않는다.
— 하지 않은 지출은 결산서에 적히는가.
— 적히지 않는다.
— 어찌하여 적히지 않는가.
— 하지 않은 것은 적을 칸이 없다.
마지막 답은 회계의 상식이다. 상식이었으므로 아무도 그것을 문제로 적지 않았다.
한 일에는 문서가 둘 남는다. 시킨 쪽의 문서와 받은 쪽의 문서다. 하지 않은 일에는 그 둘이 다 없다. 없앤 것이 아니라 생기지 않는다.
결산서가 세는 것은 쓴 돈이지 쓰지 못한 계획이 아니다.
둘 — 여섯째 줄
실사의 같은 표에는 줄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줄의 이름은 판본마다 다르다. 「러시아 원조」로 적힌 판본이 있고 다르게 적힌 판본이 있다. 액수는 지금도 정해지지 않았다. 얼마가 약속되었고 얼마가 도착했고 얼마가 상해까지 왔는지 셋이 다 다르게 전한다.
전달 경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몇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 그 손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가 다르게 전한다.
백 년 동안 이 문제를 다룬 글이 여러 편 나왔다. 어느 글도 액수를 확정하지 못했다. 확정하려면 보낸 쪽의 문서와 받은 쪽의 문서를 맞추어야 하는데, 보낸 쪽의 문서를 보관하던 나라가 그 뒤로 두 번 바뀌었다.
정해지지 않은 채로 그 줄은 있었다.
있었기 때문에 다툴 것이 생겼다. 다툼은 회계로 시작해서 노선이 되었고 노선이 된 다음에는 되돌아오지 못했다. 갈라진 자리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름을 적지 않는다.
이 세계의 결산서에 그 줄은 없다. 없는 줄을 두고는 아무도 갈라지지 않는다.
갈라지지 않은 것이 이 세계가 얻은 것이고, 얻은 것은 그것 하나다.
그 줄이 없다는 것은 세입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얼마나 적은지는 셈할 수 없다. 없는 것의 크기는 없는 채로는 재지지 않는다.
잴 수 있는 것은 그 돈이 하던 일이다. 그 돈이 실사에서 무엇을 샀는지는 남은 문서로 알 수 있다. 인쇄기와 여비와 무기와 사람의 한 해였다.
이 세계에서 그 넷은 사지 못한다. 사지 못한 것은 결산서에 적히지 않는다.
넷 가운데 인쇄기가 가장 싸고 가장 오래 쓴다. 인쇄기가 있으면 신문이 나가고 신문이 나가면 걷는 명분이 생긴다. 명분이 생기면 다음 해의 의연금이 는다.
그래서 인쇄기는 지출이 아니라 세입의 앞자리다. 그 앞자리를 살 돈이 세입에 없다.
세입이 적으면 세입을 늘릴 것을 못 산다. 못 사면 이듬해 세입이 더 적다.
셋 — 여비
연통제는 1919년에 정한 제도다. 국내의 도와 군과 면에 책임자를 두고 상해와 연락하는 조직이다.
하는 일은 셋이다. 국내의 사정을 올려 보내고, 공채와 인구세를 걷어 부치고, 상해에서 내려오는 문서를 돌린다. 셋 다 사람이 걸어 다녀야 되는 일이다.
이 제도에 사람 삯은 없다. 책임자는 자기 일을 따로 가지고 있고 연통 일은 덧붙여서 한다.
삯이 없어도 드는 것이 있다. 여비와 우편값과 등사 재료다.
1920년까지는 그것이 갔다. 액수가 크지 않아 세출의 뒤쪽 줄에 붙어 있었다.
1921년에 끊긴다.
실사에서 이 조직은 검거로 무너졌다. 총독부 경찰이 도 단위 책임자를 잡으면서 선이 끊어졌고 잡히지 않은 선도 위험해져서 스스로 멈추었다.
이 세계에서는 그보다 먼저 다른 것이 끊긴다.
1921년 여름에 국내 책임자 한 사람과 재무부 사이에 오간 문서가 있다. 왕복 넉 장이고 요약이 남았다.
— 이달 여비를 받지 못하였다.
— 다음 달에도 보내지 못한다.

— 그러면 사람을 보내지 말라는 것인가.
— 보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보낼 돈이 없다는 것이다.
— 둘이 다른 말인가.
— 다르다. 앞엣것은 지시고 뒤엣것은 사정이다.
— 지시가 없으면 우리는 계속하는가.
— 계속하라고 적으면 여비를 주어야 한다.
— 그러면 무엇이라고 적는가.
— 아무것도 적지 않는다.
— 아무것도 적히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 각자 사정대로 한다.
「각자 사정대로 한다」는 명령이 아니다. 명령이 아니므로 어긴 것이 되지 않고, 어긴 것이 되지 않으므로 벌할 것도 없다.
벌할 것이 없는 조직은 조직이 아니다.
잡혀서 끊어진 선은 사람을 바꾸어 잇는다. 돈이 없어 끊어진 선은 바꿀 사람이 없다.
1921년 가을에 국내에서 올라온 보고는 그해 봄의 절반이 못 된다. 이듬해에는 세지 않았다. 세는 일에도 사람이 든다.
선이 끊어진 것을 상해에서 아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보고가 오지 않는 것과 보낼 것이 없는 것이 문서에서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내무부는 1922년 봄에 국내 조직의 현황을 조회했다. 회신은 넉 달 뒤에 왔고 도 단위로 답한 곳이 절반이 되지 않았다.
답하지 않은 곳이 없어진 것인지 답할 여비가 없는 것인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구분하려면 사람을 보내야 하고, 사람을 보내는 것이 여비다.
넷 — 세 줄
1921년도 결산서의 세입은 네 줄이다. 빠진 것은 중국인 기부다.
한 번 받은 곳에 두 번 청하려면 명분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 그해에 그 명분을 만들지 못했다.
1922년도는 세 줄이다. 빠진 것은 인구세다.
— 인구세 줄이 없어졌다.
— 걷지 못하였으니 없다.
— 항목은 두어도 되지 않는가.
— 걷지 못한 항목을 두면 다음 해에 사유를 적어야 한다.
— 사유가 무엇인가.
— 걷을 사람이 국내에 없다.
— 그것을 적으면 어찌 되는가.
— 이 정부가 국내에 없다는 것이 문서로 남는다.
인구세는 국내에서 걷는 유일한 줄이었다. 그 줄이 빠지면서 세 줄이 남았다.
인구세를 걷는 데는 두 가지가 든다. 사람이 어디에 몇인지 아는 일과 걷어서 부치는 일이다. 앞엣것을 하던 것이 연통제고 뒤엣것도 연통제였다.
연통제가 끊긴 해와 인구세 줄이 빠진 해 사이는 한 해다. 두 문서는 서로를 인용하지 않는다. 하나는 내무부 문서철에 있고 하나는 재무부 문서철에 있다.
남은 세 줄은 애국공채와 미주 의연금과 잡수입이다. 앞의 둘은 걷는 곳이 같다. 미주다.
1922년에 이 정부의 세입은 사실상 한 곳에서 온다.
걷는 곳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 하나가 정하는 것이 는다는 뜻이다. 정한다는 말을 쓰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워싱턴의 사무소는 걷은 돈을 상해로 부친다. 부치는 쪽이 얼마를 언제 부칠지 정하고, 상해는 온 것을 받는다. 온 것이 적으면 적은 대로 쓴다.
이것을 지시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때 없었다. 지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곳에서 오는 돈에는 조건이 붙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시기 미주에서 걷은 돈에는 붙지 않았다. 걷은 사람이 조건을 붙이지 않는 곳에서만 걷었기 때문이다.
조건은 그때 붙지 않았다. 스물네 해 뒤에 붙는다. 붙일 때 쓰인 것은 그가 이십오 년 동안 정확하게 적어 둔 장부다.
세 해분 결산서는 한 문서철에 함께 편철되어 있다. 뒤로 갈수록 쪽이 준다.
1922년도 결산서는 세입란과 세출란을 한 쪽에 넣었다. 등사 원지를 아끼려고 그렇게 했다고 표지 주기에 적혀 있다.
등사 원지는 한 장으로 여러 장을 찍는다. 원지가 상하면 글자가 뭉개지고 뭉개진 쪽은 다시 찍어야 한다.
1922년도 결산서에는 뭉개진 쪽이 두 장 있다. 두 장 다 세출란이다.
원지 값은 세출의 어느 줄에도 없다. 그 줄은 잡비에 들어가고 잡비에는 명세가 붙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관한 조사』, 국사편찬위원회 근현대사연구실, 2003, 제2장 「1921년 6월, 아무르」
이 조사는 열두 건을 다룬다. 열두 건 모두 다른 나라 문서에는 있고 우리 문서에는 없는 사건이다.
조사 방법은 셋이다. 관계 기관 조회 · 문서보관소 열람 · 생존자 면담.
제2장에서는 셋이 모두 같은 답을 얻었다. 해당 문서 없음.
없음을 확인하는 데 스물두 달이 걸렸다.
조사관은 제2장 첫머리에 한 줄을 적었다. 「이 장은 결론이 먼저 나오고 근거가 뒤에 온다.」
이 조사가 찾아낸 것은 문서가 아니라 문서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 — 유월
있었던 일은 기록을 모아 확인한다. 모을 것이 많으면 오래 걸리고 적으면 빨리 끝난다.
없었던 일은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모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이려면 있을 만한 데를 모두 열어 보아야 하고, 있을 만한 데의 목록은 아무 데도 없다.
2003년의 조사팀이 스물두 달을 쓴 것은 열어 볼 데를 정하는 데 열 달을 썼기 때문이다. 나머지 열두 달이 여는 데 들었다.
「1921년 6월, 아무르」 — 다른 나라 문서에는 있고 우리 문서에는 없는 사건. 결론이 먼저 오고, 근거가 뒤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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