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9부 정본(正本)
40화제68장 승인(承認)
둘 — 여섯 주
그 등사물은 법령이 아니다. 관보에 실리지 않았고 번호도 없다.

번호가 없는 문서는 폐지되는 일도 없다.
『대한민국·미합중국 유보지 협정』 본문 및 부속서 A
1952년 서명. 같은 해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 시행되었다.
본문은 열두 조이고 열네 쪽이다. 부속서 A는 백서른 쪽이다.
국회에 회부된 것은 본문과 부속서 A의 목차다. 목차는 두 쪽이다.
부속서 A의 원본은 두 벌이다. 한 벌은 외무부에 있고 한 벌은 유보지 관리 사령부에 있다.
본문의 첫 줄은 조직법 제7조를 인용하고 시작한다.
그날 서명대에 놓인 것은 한 권이 아니라 두 권이었다.
하나 — 오 년
조직법 제7조는 두 문장이다.
앞 문장은 유보지를 유지하고 병력을 주둔시킬 권리를 정했다. 뒤 문장은 그 위치와 범위와 기간과 관할권을 별도의 협정으로 정한다고 했다.
앞 문장은 1947년 8월 15일에 효력이 생겼다. 뒤 문장은 오 년 동안 문장으로만 있었다.
그 오 년 동안 유보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구역이 있었고 울타리가 있었고 초소가 있었다.
협정이 없었을 뿐이다. 협정이 없는 동안 구역의 경계는 도면으로 관리되었고 도면은 사령부가 그렸다.
협정은 없던 것을 만든 문서가 아니라 있던 것을 적은 문서다.
교섭은 그해 봄에 서울에서 열렸다.
첫 회의에서 문서의 모양이 정해졌다. 본문은 짧게 하고 세목은 부속서로 미룬다.
그 모양을 누가 먼저 말했는지는 회의 요지에 없다. 요지에는 「양측 이의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다.
이의가 없었던 데에는 양쪽의 이유가 각각 있었다.
한쪽은 본문이 짧으면 국회에서 다툴 조문이 적어진다고 보았다. 다른 쪽은 부속서가 고치기 쉽다고 보았다.
두 이유는 같은 문장을 가리킨다. 부속서에 넣으면 뒤에 손이 덜 든다.
전례도 그 모양이었다. 다섯 해 전 마닐라에서 서명된 기지협정이 본문과 부속 문서로 나뉘어 있었다.
그 협정에서도 기지의 목록과 그 안의 관할권은 본문이 아니라 부속 문서에 있었다. 목록은 그 뒤로 여러 번 손질되었다.
교섭단이 참고한 것은 그 협정의 조문이 아니라 편철 방식이다. 조문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편철 방식은 옮기기 쉽다.
둘 — 백서른 쪽
본문 열두 조에 들어간 것은 이렇다. 목적과 정의가 둘, 유보지의 설정과 반환이 둘, 출입과 관할과 청구권이 셋, 시행과 개정과 유효기간이 셋, 그리고 부속서에 관한 조가 둘이다.
부속서 A에 들어간 것은 구역의 위치와 경계, 출입 절차, 관할권의 분배, 통신과 항공과 항만의 사용, 세관과 검역, 노무 공급과 그 조건이다.
세목이 부속서에 있으므로 본문의 조문은 대개 같은 꼴이다. 그 사항은 부속서 A가 정하는 바에 따른다는 꼴이다.
열두 조 가운데 아홉 조에 그 꼴이 있다.
남은 셋은 목적을 적은 조와 유효기간을 적은 조와 개정을 적은 조다.
개정을 적은 조가 제11조다. 두 항이다.
제1항은 본문의 개정을 정했다. 양국 정부가 합의하고 각기 국내 절차를 거친다. 이 나라의 국내 절차는 국회 동의다.
제2항은 부속서의 개정을 정했다. 양국 정부 대표의 합의로 하며 별도의 절차를 요하지 아니한다.
두 항은 나란히 있고 길이가 비슷하다. 다른 것은 한 항에 국내 절차가 있고 다른 항에 없다는 것뿐이다.
유효기간을 적은 조는 제12조다. 이 협정은 양국이 별도로 합의하여 종료할 때까지 효력을 가진다고 되어 있다.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것과 기한이 없는 것은 다른 말이다. 조문은 앞엣말로 적혔고 쓰이기는 뒤엣말로 쓰였다.
조직법 제7조가 정하라고 한 것은 넷이다. 위치와 범위와 기간과 관할권이다. 그 가운데 셋은 부속서로 갔고 하나가 이 조에 남았다.
남은 하나가 기간이고 그 칸에 수가 없다.
본문은 오 년을 기다려서 왔고 부속서는 서명한 날부터 고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셋 — 사십 분
국회 비준 동의 심의는 그해 늦여름에 있었다.
본회의 심의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다. 그 가운데 제11조에 걸린 시간이 사십 분이다.
회의록에 그 사십 분이 열여덟 쪽으로 남았다.
질의와 답변의 요지는 이렇다.
— 부속서를 고치는 데 국회가 필요 없다면 오늘 우리가 동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 본문이다.
— 본문 열두 조 가운데 아홉 조가 부속서를 가리킨다.
— 그렇다.
— 그러면 우리가 동의하는 것은 가리키는 손가락인가.
— 본문은 원칙을 정하고 부속서는 세목을 정한다.
— 원칙과 세목을 가르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 부속서 제1절에 있다.
— 그 제1절도 부속서인가.
— 그렇다.
— 부속서를 우리가 볼 수 있는가.
— 목차는 오늘 배부되었다.
— 목차 말고 본문이다.
— 백서른 쪽이고 아직 국어본이 없다.
— 국어본은 언제 되는가.
— 시행 뒤에 만든다.
— 시행 뒤에 만든 국어본과 오늘 서명한 영어본이 어긋나면 어느 쪽에 따르는가.
— 조직법 제9조에 따른다.

마지막 답에서 질의가 멎었다.
그 답은 틀린 답이 아니다. 조직법 제9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답한 사람은 조문을 읽었을 뿐이다.
읽은 조문이 답이 되는 자리에서는 더 물을 것이 없어진다. 물어서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동의안은 그날 표결에 부쳐져 가결되었다.
반대표가 있었다. 회의록에 수가 적혀 있고 이 회차에는 옮기지 않는다.
가결 뒤에 의장이 관례대로 한 줄을 읽었다. 부속서 A는 본 협정의 일부를 이룬다는 본문 제10조다.
일부를 이룬다는 말은 같은 문서라는 뜻이다. 같은 문서인데 고치는 절차가 다르다.
같은 문서의 두 부분 가운데 한 부분만 국회를 지난다.
부속서 A의 국어본은 이듬해에 나왔다.
나온 국어본은 국회에 회부되지 않았다. 회부할 근거가 본문에 없었다.
외무부는 그것을 참고 자료로 각 상임위원회에 한 부씩 보냈다. 보낸 날짜가 발송부에 적혀 있다.
받았다는 기록은 두 곳에만 있다.
『통화 개혁 관계 서류철』 승인 왕복 문서 일람
대한민국 재무부 이재국. 1953년 편철. 서류철은 세 권이고 일람은 한 장이다.
일람의 칸은 넷이다. 차수와 일자와 방향과 문서의 표제다.
사유를 적는 칸은 없다. 서식에 그 칸이 없다.
차수는 열한 번에서 끝난다. 마지막 줄의 문서 표제는 두 글자다.
돈의 이름을 바꾸는 일은 그 나라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 — 왕복
조직법 제5조가 승인 사항으로 든 것은 다섯이다. 통화와 주화와 관세와 수출입과 이민이다.
관세는 네 해 전에 한 번 거쳤다. 통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개혁의 내용은 두 가지다. 화폐의 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고치고 옛 단위 백을 새 단위 하나로 셈한다.
이 두 가지는 그 나라 안에서 정해졌다. 한국은행이 안을 만들었고 재무부가 요강으로 옮겼고 국무회의가 의결했다.
의결한 다음에 서류가 워싱턴으로 갔다. 갔다가 돌아왔고 다시 갔다.
왕복은 열한 번이다.
요강을 확정한 자리의 문답이 회의 요지에 남았다.
— 시행일을 언제로 잡는가.
— 승인이 온 뒤로 잡는다.
— 승인이 언제 오는지 아는가.
— 모른다.
— 모르는데 어떻게 날을 잡는가.
— 먼저 잡아 두고 그날까지 오면 그날 한다.
— 오지 않으면.
— 미룬다.
일람에서 넷만 옮긴다.
| 차 | 일자 | 방향 | 문서의 표제 |
|---|---|---|---|
| 1 | 1952.11.8 | 서울 → 워싱턴 | 통화 조치 요강 및 승인 요청 |
| 4 | 1952.12.19 | 워싱턴 → 서울 | 자료 보완 요구 (제2차) |
| 7 | 1953.1.16 | 서울 → 워싱턴 | 시행 예정일 변경 통보 (제1차) |
| 11 | 1953.2.11 | 워싱턴 → 서울 | 승인 |
열한 번 가운데 여섯 번이 자료 보완에 관한 것이다.
보완을 요구한 자료는 통화 발행고와 예금 잔액과 물가 지수다. 요구받은 자료는 그때마다 있었다. 없어서 늦은 것이 아니다.
옮겨 적고 영역하고 부수를 맞추어 봉하는 데 시간이 든다. 그 시간이 한 번에 삼 주에서 사 주다.
늦은 것은 자료가 아니라 자료가 오간 거리다.
둘 — 기술적 검토
시행 예정일은 두 번 밀렸다.
첫 번째는 그해 정월이고 두 번째는 이월 초다. 두 번 다 관보에 예고가 나가 있었고 두 번 다 정정 고시가 뒤따랐다.
정정 고시의 사유란에 적힌 것은 같은 넉 자다. 기술적 검토.
기술적 검토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 무렵 재무부는 실제로 검토를 하고 있었다. 다만 검토가 끝나서 밀린 것이 아니라 검토가 끝났는데도 밀렸다.
이재국 안에서 그 넉 자를 두고 오간 말이 인계 각서에 남았다.
— 사유란에 무엇이라고 쓸 것인가.
— 기다리는 중이라고 쓸 수는 없다.
— 기다리는 것이 사실이다.
— 사실이지만 서식에 그런 항목이 없다.
— 항목을 만들면 되지 않는가.
— 서식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 그러면 무엇이라고 쓰는가.
— 앞의 고시에 쓴 대로 쓴다.
— 앞의 고시에는 무엇이라고 썼는가.
— 기술적 검토라고 썼다.
서식에 칸이 없으면 사유는 다른 칸으로 들어간다. 다른 칸으로 들어간 사유는 그 칸의 이름으로 읽힌다.
이 나라의 문서에서 「기술적 검토」라는 넉 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늘어난 것은 검토가 아니다. 검토가 아닌 것을 담을 칸이 없었을 뿐이다.
칸이 없는 사유는 사라지지 않고 이름을 바꾸어 남는다.
「기다리는 중」이라고 쓸 칸은 서식에 없다. 칸이 없는 사유는 사라지지 않고 이름을 바꾸어 남는다.
남은 18화 · 약 64,312자 · 약 1시간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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