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4부 공채(公債)
15화제25장 장부(帳簿)
둘 — 왼쪽 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의 이름은 지우지 않았다. 지우면 그 사람이 없었던 것이 되고, 없었던 것이 되면 이듬해에 다시 권할 자리가 사라진다.

그래서 왼쪽 칸은 해마다 길어졌다. 오른쪽 칸은 짧아진 해가 있었다.
두 칸의 길이가 벌어지는 것을 그는 열다섯 해 동안 보았다.
셋 — 한 번도
두 칸의 수는 같은 적이 없다. 언제나 왼쪽이 컸다.
— 두 칸이 같았던 해가 있었나.
— 없다.
— 아버지께서 그 차를 무어라 하셨나.
— 아직 오지 않은 것이라 하셨다.
— 손해라고는 하지 않으셨나.
— 그 말은 들은 적이 없다.
— 그러면 무엇을 손해라 하셨나.
— 적지 못한 것을 손해라 하셨다.
1930년에 집에서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그 무렵 그는 다섯 살이었다.
— 그해에 무엇이 달라졌나.
— 아버지가 저녁에도 적으셨다.
— 그전에는.
— 사무소에서만 적으셨다.
— 무엇을 적으시는지 보셨나.
— 적지 않으셨다. 보고 계셨다.
— 어느 쪽을 보셨나.
— 왼쪽이다.
— 무엇을 하셨나.
— 이름 옆에 작은 표를 하셨다.
— 무슨 표인가.
— 모른다. 지금도 모른다.
오른쪽 칸이 줄어든 해에 그가 오래 본 것은 왼쪽 칸이었다.
왼쪽 칸을 오래 보는 일은 회계가 아니다. 거기 적힌 것은 액수가 아니라 사람이고, 사람이 왜 못 내는지를 적는 칸은 그 종이에 없다.
없는 칸에 적을 것이 생기면 표를 한다. 표는 뜻이 없다. 뜻은 표를 한 사람에게만 있고, 그 사람이 죽으면 표는 자국이 된다.
— 어머니는 무어라 하셨나.
— 저녁에는 그만하시라고 하셨다.
— 아버지는.
— 다 적었다고 하셨다.
— 다 적으신 것이 맞았나.
— 종이는 그대로 펴져 있었다.
채록 제1장의 마지막 물음은 종이의 크기였다.
구술자는 두 손을 벌려 보였다. 채록본에 그 폭은 적혀 있지 않다.
「구미위원부 연도별 수입 집계표」 1921~1935. 회계철 제1권 권두 한 장.
표는 세로 열다섯 줄이다. 한 줄이 한 해다.
가로 칸은 넷이다. 연도, 수입, 전년 대비, 비고.
열다섯 줄 가운데 한 줄만 수입 칸이 비어 있다.
비어 있는 줄에도 비고가 붙어 있다. 여섯 자다.
표를 만든 사람은 그 줄을 지우지 않고 남겨 두었다.
돈이 마른 것은 사람이 마음을 바꿔서가 아니다.
하나 — 오분의 일
집계표에서 네 줄을 옮긴다. 비고란은 옮기지 않는다.
| 연도 | 수입(달러) | 전년 대비 |
|---|---|---|
| 1929 | 32,000 | — |
| 1930 | 19,000 | 0.59 |
| 1931 | 9,400 | 0.49 |
| 1932 | 6,200 | 0.66 |
| 1933 | (공란) | — |
네 해 만에 오분의 일이 된다.
표에는 결과만 있다. 왜 이 곡선이 나오는지는 표에 적을 칸이 없다.
전년 대비 칸은 나눗셈 하나다. 그 칸을 그은 것이 1930년이고 그전 아홉 해에는 없던 칸이다.
한 해가 그 자체로 읽히기를 그만두고 앞 해의 몫으로 읽히기 시작한 것이 그해다.
이 사무소의 수입은 두 갈래로 들어온다. 공채와 의연금이다. 둘 다 걷는 곳이 같다. 교회와 한인회다.
교회에 오는 사람이 그대로 있어도 수입은 준다. 사람이 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삯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
모금은 소득의 함수다. 신념의 함수가 아니다.
이 사무소가 열 해 동안 손질한 명부는 이천삼백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 이름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없어진 것은 그 이름들이 다달이 떼어 놓던 몫이다. 몫은 삯에서 나오고 삯은 밭에서 나온다.
밭이 사람을 부르지 않으면 명부는 그대로 있고 수입만 없다.
둘 — 삯
1932년 봄에 사무소가 서부의 발매원들에게 한 줄을 보냈다. 회계철에 사본이 남아 있다.
— 물음. 올해 권하지 못한 까닭을 한 줄로 적어 보내라.
— 리버사이드. 오렌지밭이 따는 삯을 반으로 내렸다. 반으로 내린 삯도 다 못 준다.
— 스톡턴. 아스파라거스밭이 올해 사람을 부르지 않았다. 부르지 않은 것은 값이 없어서다.
— 로스앤젤레스. 세탁소는 아직 연다. 맡기는 사람이 줄었다.
— 리버사이드. 권할 자리에 사람이 없다. 사람이 밭을 따라 옮겨 갔다.
— 스톡턴. 작년에 약속한 이가 셋 왔다. 셋 다 못 낸다고 말하러 왔다.
— 로스앤젤레스. 말하러 오는 것도 차비가 든다.
무너지는 차례가 있다.
농장 삯은 하루 단위로 정해지므로 그날로 내려간다. 세탁소는 값을 그대로 붙여 놓고도 맡기는 사람이 줄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 상점은 그다음이다.
구미위원부에 다달이 내던 사람의 대부분이 농장 인부다. 발매 대장의 직업란이 그것을 말한다.
먼저 끊긴 것은 가장 큰돈을 내던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자주 내던 사람들이다.

액수가 큰 매입은 해마다 몇 건뿐이고 그것은 마지막까지 남는다. 십 달러짜리가 먼저 사라진다.
십 달러가 대부분인 사무소에서 십 달러가 사라지면 남는 것은 표의 모양뿐이다.
사무소가 할 수 있는 일은 둘이다. 권하는 곳을 늘리거나 권하는 대상을 바꾸는 것이다.
앞엣것에는 여비가 든다. 뒤엣것에는 들지 않는다.
셋 — 빈 칸
1933년 줄의 수입 칸은 비어 있다.
집계를 하려면 지방에서 보고가 와야 한다. 보고가 오려면 발매가 있어야 하고, 발매가 있으려면 발매원이 있어야 한다.
그해 발매원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회의를 열려면 여비가 든다.
비고란에 인쇄된 여섯 자는 이렇다.
「본년도 집계 미실시.」
이 여섯 자가 영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를 만든 사람은 알고 있었다.
영은 센 것이다. 세어 보니 없었다는 뜻이다. 빈 칸은 세지 않은 것이다.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영은 센 것이고 빈 칸은 세지 않은 것이다.
지우면 열네 줄이 된다. 열네 줄짜리 표는 열네 해의 표다.
남겨 두면 열다섯 줄이고, 열다섯 줄 가운데 한 줄이 비어 있다는 것이 표에 남는다.
그는 남겨 두었다.
그해 회계철에 남은 문서는 넉 장이다. 넉 장 다 지방에서 온 것이 아니라 사무소가 스스로 만든 것이다.
가장 긴 것이 미수 명부다. 다달이 내겠다고 적어 놓고 그해에 한 번도 내지 못한 이들의 이름이다.
그 명부에는 합계가 없다. 합계를 내지 않기로 한 칸에서 옮겨 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첫 장 위쪽에 손으로 적은 것이 다섯 줄 있다.
— 이 명부는 회계 문서가 아니다.
— 합계를 내지 아니한다.
— 상해에 보내지 아니한다.
— 이듬해 봄에 이 이름들에게 다시 권한다.
— 권할 때 작년 일을 말하지 아니한다.
1934년 줄에는 수입이 있다. 1932년 줄보다 크다.
그 줄의 비고란에는 두 자가 적혀 있다. 「의연(義捐)」이다.
의연은 갚기로 하지 않은 돈이다. 공채는 갚기로 한 돈이고 그 약속이 증권에 인쇄되어 있다.
두 갈래를 한 칸에 담은 표에서 그 구별은 비고란 두 자에만 남는다.
두 자만으로는 그 돈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있게 적는 칸이 이 표에는 없다.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조선 사업 개관』 뉴욕, 1936. 편자 서문.
이 책은 반세기의 사업을 개관한다. 본문은 학교와 병원과 인쇄소의 연혁이다.
편자 서문은 넉 쪽이고 통계가 없다.
서문에 「우리 조선 사람들」이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온다.
무엇을 뜻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이 필요한 자리가 아니었다.
이 책의 색인은 고유명사만 싣는다.
이 서문에는 조건이 한 줄도 적혀 있지 않다.
하나 — 문
1933년에 공채는 팔리지 않았고 의연금도 끊겼다. 권하는 곳을 늘릴 여비가 없었으므로 권하는 대상을 바꾸었다.
표재선이 간 곳은 교회다. 조선에 나갔던 선교사들의 본국 인맥이다.
그들을 고른 까닭은 하나다. 그때 미국에서 조선을 아는 미국인은 그들뿐이었다.
아는 사람에게는 설명이 짧게 든다. 설명이 짧게 드는 것을 그는 비용으로 셈했다.
여비가 없는 해에 가장 싼 상대는 이미 알고 있는 상대다.
그해 여름의 서한 왕복이 회계철 뒤에 묶여 있다. 온 것과 보낸 것이 한 장씩이다.
— 귀하가 적어 보낸 액수를 그대로 보낸다.
— 용도는 묻지 않는다.
— 우리는 그곳 사정을 삼십 년 알고 있다.
— 다만 회계를 우리에게도 한 부 보내 주기 바란다.
— 우리 교인들이 우리 조선 사람들의 일을 알고 싶어 한다.
— 보내겠다.
— 서식은 이 사무소의 것을 쓴다.
— 칸이 둘이다. 약속된 것과 받은 것이다.
— 귀하가 보낸 것은 오른쪽 칸에 적힌다.
— 왼쪽 칸은 보내지 않는다.
조건이 붙지 않는 돈이 가장 좋은 돈이라는 것이 그의 규칙이었다. 이 돈에는 조건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확인하고 받았고, 확인한 것을 장부에 적었다.
조건이 없다는 것은 무엇에 쓰라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둘을 다 확인했다. 확인하지 못한 것이 하나 남았고, 그것은 조건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
조건의 자리에 없는 것을 확인하는 서식은 회계에 없다.
둘 — 여섯 번
그가 장부에 적은 것은 액수와 날짜다. 보낸 곳의 이름은 적었고 그들이 쓴 말은 적지 않았다.
유고 제4장에 그 대목이 있다.
— 말은 회계 항목이 아니다.
— 항목이 아닌 것을 장부에 적으면 장부가 흐려진다.
— 흐린 장부는 검사받을 때 진다.
— 나는 스물다섯 해 동안 검사받을 것을 생각하며 적었다.
그는 조건이 없음을 확인하고 받았다. 확인하지 못한 것이 하나 남았고, 그것은 조건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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