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8부 조직법(組織法)
37화제64장 조문(條文)
둘 — 좋은 조문
제3조는 이 법에서 가장 긴 조다. 다섯 문장이고 그 다섯이 다 권리를 적는다.

문면은 이렇다. 「누구든지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생명·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당하지 아니하며, 법의 평등한 보호를 거부당하지 아니한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 신앙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률, 평온히 집회하고 청원할 권리를 침해하는 법률은 제정할 수 없다.」
「부당한 수색과 압수를 받지 아니한다.」 「소급하여 처벌하는 법률과 사권을 박탈하는 법률은 제정할 수 없다.」
「인신보호영장의 특권은 반란 또는 침략의 경우로서 공공의 안전이 요구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정지되지 아니한다.」
이 다섯 문장은 미합중국 헌법 수정조항의 문면이다. 한 자도 깎지 않았다.
깎지 않은 까닭은 사십오 년 전에 이미 깎지 않기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 섬의 조직법 제5조가 같은 문면이고, 그 조문은 그 뒤 사십사 년 동안 손대어지지 않았다.
옮겨 쓰는 서식의 좋은 점이 여기 있다. 좋은 조문도 함께 옮겨진다. 옮기는 쪽이 인심을 쓴 것이 아니라 그 서식에 그 조문이 이미 들어 있었다.
인심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서식으로 들어온 조문은 뺄 수도 없다. 뺄 이유를 대려면 서식 전체를 다시 짜야 한다.
그해 여름 이 조문을 조선말로 읽은 사람들은 여기서 오래 머물렀다. 머물 만한 조문이다.
전해까지 이 땅에서 치안유지법이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에게 이 다섯 문장은 새 세상의 문장이었다. 실제로 새 세상의 문장이 맞다.
이 조문은 팔십 년 동안 한 자도 고쳐지지 않는다. 고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법에서 가장 좋은 조문은 변질되지 않는다. 변질되지 않는 것이 이 조문이 하는 일이다.
좋은 조문 하나가 있으면 그 법 전체를 낱낱으로 다투기 어려워진다.
제4조를 다투는 사람은 제3조를 함께 든 법을 다투게 된다. 제7조를 다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법을 나쁘다고 말하려면 제3조를 뺀 나머지만 골라 말해야 하고, 그렇게 고르는 말은 길고 어렵다. 길고 어려운 말은 오래 가지 못한다.
1987년에 이 조문이 다시 인용된다. 그때 인용한 쪽은 옳았다. 옳은 인용이 무엇을 붙들어 두었는지는 팔십 년 뒤에 계산된다.
셋 — 가운데 넷
제4조부터 제7조까지가 이 법의 가운데다.
제4조는 두 문장이다. 「대한민국의 입법권은 대한민국 국회에 속한다.」 그리고 「국회가 제정한 모든 법률은 미합중국 의회에 보고되어야 하며, 미합중국 의회는 이를 무효로 할 권한과 권능을 이에 유보한다.」
앞 문장이 입법권을 주고 뒤 문장이 그 위에 자리를 하나 둔다.
제5조는 통화와 주화와 관세와 수출입과 이민의 법률에 대통령의 승인을 붙인다. 「승인을 얻기 전에는 법률이 되지 아니한다.」
제6조는 외교를 「미합중국의 직접적인 감독과 통제 하에」 둔다. 사전 동의 없이 조약을 맺거나 외채를 지지 못한다.
제7조는 유보지를 둔다. 위치와 범위와 기간과 그 안의 관할권은 「별도의 협정으로 정한다.」
이 넷 가운데 국어본에서 가장 말썽이 된 것은 제6조다. 「감독과 통제」 넉 자다.
조선말에서 감독은 학교와 공사장에 쓰는 말이고 통제는 전시에 쓰는 말이다. 두 말을 나란히 놓으면 앞말이 뒷말을 덮는다.
덮인 채로 읽으면 제6조는 살펴본다는 뜻이 된다. 원문에는 그 덮임이 없다. 두 낱말이 같은 무게다.
같은 것을 열두 해 전에 워싱턴에서 적어 둔 사람이 있었다. 그 원지는 등사되지 않았고 서울에 오지 않았다.
「별도의 협정으로 정한다」는 제7조의 마지막 여덟 자도 같은 성질이다. 자율의 여지처럼 읽히고, 실제로 그해에는 자율의 여지였다.
국어본 뒤에 붙은 해제의 문답이다. 해제는 법무부가 만들었다.
— 제4조의 보고는 무엇을 하는 절차인가.
— 법률을 저쪽 의회에 보내는 절차다.
— 보내면 어떻게 되는가.
— 대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아니한다.
— 그러면 왜 두는가.
— 무효로 할 권한이 함께 적혀 있기 때문이다.
— 그 권한은 자주 쓰이겠는가.
— 자주 쓰이지 아니할 것이다.
— 자주 쓰이지 아니하는 권한은 없는 것과 같지 아니한가.
— 같지 아니하다. 보내는 쪽이 보내기 전에 고친다.
무효로 할 권한이 하는 일은 무효로 하는 것이 아니다. 보고 전에 고치게 하는 것이다.
이 대목은 그해에 아무도 크게 여기지 않았다. 크게 여길 이유가 없었다. 그때 이 나라에는 아직 국회가 없었고 제정할 법률도 없었다.
없는 것을 두고 다투는 사람은 없다. 다툴 것이 생기는 날에는 다툴 근거가 이미 조문에 정해져 있다.
넷 — 잠자는 조문

제8조는 짧다. 미합중국의 시민과 법인이 대한민국의 천연자원의 개발과 이용과 처분, 그리고 공익사업의 설치와 운영에서 대한민국의 국민 및 법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조문이다.
이 조문은 그해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동등한 권리는 두 쪽이 다 그 권리를 쓸 수 있을 때 뜻이 생긴다. 그해 여름 이 땅에는 광업권을 살 자본도 발전소를 세울 자본도 거의 없었다.
없는 쪽과 있는 쪽에게 같은 문을 열어 주면 그해에는 아무도 그 문을 지나지 않는다. 지나갈 사람이 생기는 것은 뒤의 일이다.
사십 년 뒤에 이 조문이 문면 그대로 깨어난다. 그때 고쳐진 자는 하나도 없다.
조문이 사십 년을 자는 동안 이 조문을 다툰 사람도 없다. 다툴 일이 없는 조문은 개정 목록에 오르지 않는다.
개정 목록에 오르지 않은 채로 사십 년을 지난 조문은 그 사십 년만큼 단단해진다. 오래 있었다는 것이 그 조문의 근거가 된다.
다섯 — 마지막 두 문장
제9조는 이 법에서 가장 짧다. 두 문장이다.
앞 문장은 이렇다. 「본법의 정본은 영어본으로 한다. 국어본과 영어본이 상충하는 경우에는 영어본에 의한다.」
뒤 문장은 이렇다. 「본법의 개정·변경 또는 폐지의 권한은 미합중국 의회에 유보된다.」
앞 문장을 낸 사람은 서울에 있다. 뒤 문장을 낸 사람은 이 문서철에 없다.
뒤 문장은 앞 문장보다 짧고 앞 문장보다 크다. 이 법을 고치는 권한이 어디 있는지를 한 줄로 정한다.
고치는 권한이 밖에 있으면 안에서 나오는 모든 개정 논의는 발의 전에 끝난다. 발의되지 않은 것은 표결되지 않고, 표결되지 않은 것은 기록에 남지 않는다.
남지 않은 것은 뒤에 세어지지 않는다. 이 편의 청구서에서 셀 수 없다고 적히는 항목 하나가 여기서 생긴다.
앞 문장이 하는 일은 해석의 결론을 미리 정하는 것이다.
앞의 여덟 조에서 무엇이 다투어지든 그 다툼은 두 본의 문면 차이에서 시작된다. 시작된 다툼의 결론은 이미 여기 적혀 있다.
「감독」이 약한 말인가 강한 말인가를 다투는 사람은 국어본을 든다. 결론은 영어본이 낸다.
해제의 마지막 문답이다. 두 쪽 가운데 마지막 여섯 줄이다.
— 국어본과 영어본이 다른 자리가 있는가.
— 옮기는 일에는 늘 있다.
— 다르면 어느 것을 따르는가.
— 제9조에 적혀 있다.
— 그러면 국어본은 무엇인가.
— 읽기 위한 것이다.
여덟 조의 뜻을 정하는 것은 여덟 조가 아니라 아홉째 조다.
국어본 표지의 「참고용」 세 자는 이듬해 판부터 없어진다.
없앤 까닭은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참고용인지 아닌지는 표지에 찍지 않아도 제9조에 적혀 있다.
세 자가 없어진 뒤로 국어본의 표지는 영어본의 표지와 같아졌다. 두께도 비슷하다.
같은 표지의 두 권을 나란히 꽂아 놓으면 어느 쪽이 정본인지 겉으로는 알 수 없다.
『대한민국 국사』 2003년판, 제11장 「대한민국의 선포」 도입부
제11장은 이 교과서에서 사진이 가장 많은 장이다. 아홉 장 가운데 일곱이 그날 것이다.
본문 첫 문단은 네 판본이 다 같다. 다른 것은 둘째 문단이다.
1962년판과 1978년판과 1991년판과 2003년판의 둘째 문단이 다 다르다.
2003년판은 그날 낭독된 문서의 이름을 처음으로 적었다.
적은 것이 시비가 되어 이듬해 편수 자료에 소명이 한 장 붙었다. 소명은 한 줄이다. 「사실이다.」
1947년 8월 15일 정오, 서울에서 대한민국이 선포되었다.
하나 — 한 해 이르다
실사의 같은 일은 이듬해에 있었다. 여기서는 한 해 이르다.
이른 까닭은 빠져 있는 것이 많아서다. 협의할 상대가 없었고, 나눌 선이 없었고, 물어야 할 위원회가 없었다.
없는 것이 많으면 절차가 짧아진다. 짧아진 절차는 대개 빠르다고 불린다.
그해 봄에 워싱턴에서 나간 전문의 마지막 문단이 그것을 미리 적어 두었다. 의회 입법이 가장 신속하며 전례가 있다는 문단이다.
가장 신속한 길로 가면 한 해를 번다. 번 한 해에 무엇을 하지 못하게 되는지는 그 전문에 없다.
식은 정오에 시작했다. 식순은 넷이다. 기를 올리고, 선서하고, 낭독하고, 축사를 듣는다.
사람이 모인 수는 어느 문서에도 없다. 그날 신문은 인산인해라고 적었고 수를 적지 않았다.
그해 여름 서울에서 세는 일을 하는 관청은 있었으나, 사람이 모인 자리의 수를 세는 일은 그 관청의 업무가 아니었다.
세지 않은 것은 뒤에 다투어지지 않는다. 그날 몇 사람이 있었는가는 지금도 정설이 없다.
기는 정오에 올랐다. 올린 기는 그해 봄에 도안이 정해진 것이고, 도안을 정한 회의의 기록은 남아 있다.
기의 도안을 정할 때 이 나라는 스스로 정했다. 물어야 할 곳이 없었고 승인을 받을 조문도 없었다.
조직법 아홉 조에 기를 다루는 조는 없다. 없는 것은 자유다. 그해 여름 이 나라의 자유는 조문에 없는 자리에 있었다.
그날 낭독된 문서의 이름을 교과서는 2003년판에서 처음 적었다. 시비가 붙자 소명은 한 줄이었다 —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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