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10부 유보지(留保地)
42화제73장 담
하나 — 오백 미터
법원이 손에서 놓은 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일은 그해 여름 국도에서 났다.

유보 구역의 담에서 오백 미터 떨어진 곳이다. 군용 화물차가 길가의 점포 두 채와 그 앞 담장을 들이받아 부수었다. 다친 사람은 없다. 부서진 것은 점포의 앞면과 진열대와 담장 열두 자다. 값은 그 자리에서 셈해져 조서에 적혔다.
검찰은 운전한 인원을 기소했다. 죄명은 과실로 남의 물건을 부순 것이다. 공판은 두 번 열렸고, 첫 공판에서 변호인이 서면 한 장을 냈다.
첫 공판의 문답이 공판조서에 남았다.
— 지금 낸 서면은 무엇인가.
— 증명서다.
— 무엇을 증명하는가.
— 사고 당시 피고인이 공무 집행 중이었다는 것이다.
— 누가 발행한 것인가.
— 소속 사령부다.
— 공무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적혀 있는가.
— 물자의 수송이라고 적혀 있다.
— 어느 물자를 어디로 옮기던 중인가.
— 그 칸은 서식에 없다.
— 이 법원이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가.
— 확인할 절차가 없다.
검사는 증명서의 진위가 아니라 범위를 다투었다. 담 밖의 국도가 공무의 장소인가를 물은 것이다. 물음은 조서에 남았고 답은 남지 않았다. 답할 자리가 그날의 절차에 없었다.
둘 — 마지막 줄
그 물음에 답이 없는 채로 결정이 났다.
재판장이 적은 결정 이유는 세 걸음이다.
첫째, 담 밖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담 안의 조항은 쓰지 않는다.
둘째, 담 밖의 일이라도 공무 집행 중의 행위이면 재판권은 저쪽에 전속한다.
셋째, 공무 집행 중이었는지는 증명서로 정한다. 이 법원에는 그 증명서를 심사할 근거가 없다.
이유의 끝 대목을 옮긴다.
— 이 법원은 증명서의 내용이 사실인지를 판단하지 아니한다.
— 판단하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할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
— 근거가 될 조문은 이 법원의 관할 밖에서 만들어졌다.
— 그러므로 이 사건에 관하여 이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
이유의 마지막 줄에 적힌 근거는 조직법 제7조가 아니다.
「유보지 협정 부속서 A 제3차 개정 제2항」이다.
제7조는 별도의 협정으로 정한다고만 했다. 정한 것은 협정이고 협정이 다시 미룬 것을 정한 것은 부속서다. 재판장은 그 마지막 것을 적었다.
법률이 아니라 부속서가 이 나라 법원의 문을 닫았다.
점포 주인은 배상을 받을 길을 따로 찾아야 했다. 협정에는 청구권 조항이 있다. 그 조항은 청구를 받는 창구를 정하고 지급의 몫을 나눈다. 걸리는 시간은 조항에 적혀 있지 않다.
저쪽 나라 법원에 바로 내는 길도 물어졌다. 그 길은 조직법 제2조 후단에서 멈춘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미합중국의 시민이 아니며 그 지위를 이유로 어떠한 청구도 할 수 없다. 그 문장은 1947년에 국적을 만들려고 넣은 문장이다.
국적을 세운 문장과 청구를 막은 문장이 같은 문장이다.
두 길이 다 막힌 뒤에 이 사건에서 오간 것은 종이뿐이다.
결정문 사본은 검찰과 변호인과 법원 문서고에 한 벌씩 갔다. 점포 주인에게 간 것은 주문 세 줄이 적힌 등본 한 장이다.
담장은 그해 겨울에 다시 섰다. 세운 것은 그 집 주인이다.
그 담이 언제까지 서 있는 것인지를 물으러 간 사람들이 다섯 해 뒤에 있었다.
『유보지 협정 개정 교섭 보고서』 대한민국측 대표단
1966년. 교섭은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여섯 차례 열렸다.
보고서는 스물두 쪽이다. 경과가 열네 쪽이고 나머지가 평가와 건의다.
평가는 두 항목으로 나뉜다. 성과와 미결이다.
성과는 세 줄이고 미결은 한 줄이다.
두 항목에 같은 사항이 한 번씩 들어 있다.
줄일 수 있는 것은 수가 적혀 있는 것뿐이다.
하나 — 구십구 년
그해 봄에 마닐라에서 기지협정이 고쳐졌다. 1947년에 서명된 그 협정의 존속기간은 구십구 년이었다. 1966년의 개정으로 이십오 년이 되었고 끝나는 해가 1991년으로 정해졌다.
여든 해가 지워지고 스물다섯 해가 남았다. 남았다는 말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그 개정의 내용이다.
서울에는 사흘 뒤에 알려졌다. 그 주에 외무부가 교섭 준비를 지시했고 대표단이 넉 주 만에 꾸려졌다. 대표단은 아홉 사람이다. 외무부가 넷이고 국방부가 둘이고 법무부가 하나이며 나머지 둘은 재무부와 상공부에서 왔다.
훈령은 세 항이다. 기한 조항을 넣을 것과 구역의 반환 절차를 문면으로 적을 것과 노무 조건의 협의 창구를 둘 것이다. 첫 항에만 밑줄이 그어져 있다.
대표단이 첫 회의에 들고 간 대조표가 이것이다. 두 문서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다.
| 마닐라 협정 | 유보지 협정 | |
|---|---|---|
| 서명 | 1947 | 1952 |
| 처음 정한 기간 | 99년 | 정하지 않음 |
| 1966년 개정 | 25년으로 단축 | 개정 없음 |
| 남은 해 | 25 | 셀 수 없음 |
마지막 칸이 이 교섭의 이유다.
저쪽은 여든 해를 줄였고 이쪽은 줄일 여든 해가 없었다.
둘 — 넣자
대표단이 들고 간 요구는 하나다. 기한 조항을 새로 넣자는 것이다. 넣자는 요구는 고치자는 요구와 다르다. 고치는 것은 적힌 수를 바꾸는 일이고 넣는 것은 없던 조문을 만드는 일이다.
이 차이가 첫 회의에서 곧바로 나왔다.
교섭 요지에 남은 문답이다.
— 마닐라에서 한 것을 여기서도 하자.

— 마닐라에서 한 것은 수를 고친 것이다.
— 여기에는 수가 없다.
— 없으므로 넣자는 것이다.
— 넣는 것은 부속서의 일이 아니다.
— 그러면 본문으로 하자.
— 본문의 개정에는 양쪽의 국내 절차가 든다.
— 우리 쪽 절차는 국회 동의다.
— 이쪽 절차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 무엇이 더 있는가.
— 이 협정의 근거가 법률이다. 기간을 협정으로 정하라고 한 것이 그 법률의 조문이다.
— 협정에 기한을 넣는 것과 그 법률은 무슨 상관인가.
— 협정이 기한을 정하면 유보지의 권리에 끝이 생긴다.
— 끝이 생기는 것이 기한이다.
— 그 권리를 준 것은 협정이 아니라 법률이다.
법률은 조직법이다. 유보지를 유지할 권리를 정한 것이 제7조이고 그 조문의 개폐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는 제9조에 적혀 있다. 제9조 뒷문장은 이 법의 개정과 변경과 폐지의 권한을 미합중국 의회에 유보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한을 넣으려면 길이 두 갈래다. 하나는 협정 본문을 고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법률을 고치는 길이다. 앞의 길은 뒤의 길에서 막히고 뒤의 길에는 이 나라의 발의권이 없다.
부속서는 고치기 쉬웠고 본문은 고치기 어려웠고 법률은 이쪽에서 고칠 수 없었다.
셋 — 성과
여섯 번째 회의에서 상대측 답이 나왔다.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기한을 두지 않겠다는 말은 없었고 두겠다는 말도 없었다.
대표단이 서울로 돌아와 보고서를 짜던 자리의 문답이 초안 여백에 남았다.
— 검토하겠다는 답을 어디에 적는가.
— 미결에 적어야 한다.
— 미결에만 적으면 여섯 번 간 것이 없던 일이 된다.
— 없던 일은 아니다. 요구를 처음 문서로 냈다.
— 문서로 낸 것은 성과인가.
— 앞의 교섭에서는 이 요구를 낸 적이 없다.
— 그러면 성과에 적자.
— 그러면 미결에는 무엇을 적는가.
— 같은 것을 적는다.
보고서의 성과 항목은 세 줄이다. 첫 줄은 구역 출입 절차의 간소화 합의고, 둘째 줄은 기한 조항 신설 요구에 대하여 상대측이 검토를 약속한 것이며, 셋째 줄은 노무 조건 협의 창구의 상설화다.
미결 항목은 한 줄이다. 기한이다.
평가 항목의 서식에는 성과와 미결에 같은 사항을 겹쳐 적지 말라는 규정이 없다. 규정이 없으므로 겹쳐 적혔다. 이 보고서를 받은 부서에서 그 겹침을 지적한 문서는 남아 있지 않다.
같은 한 줄이 성과 항목에도 있고 미결 항목에도 있다.
건의 항목은 두 줄이다. 다음 교섭을 이태 안에 열 것과 기한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이다.
이태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이 보고서 다음에 편철된 문서철이 말한다. 그 철의 표제는 유보지 협정 개정 교섭 제2차이고 안에 든 문서는 넉 장이다. 넉 장 가운데 셋이 일정 조회이고 하나가 연기 통보다.
보고서 표지의 여백에 연필로 적힌 줄이 하나 있다. 검토의 기한은, 까지만 적혀 있다.
뒤가 없다.
근거가 없어 멈춘 자리가 있는가 하면, 근거가 없는데도 해마다 나가는 문서가 있었다.
『환율 변경에 관한 사전 협의』 대한민국 재무부 → 미합중국 재무부
1969년. 문서는 세 쪽이다. 본문이 한 쪽이고 별지가 두 쪽이다.
표제에 승인이라는 두 자가 없다. 신청이라는 두 자도 없다.
회신은 여드레 뒤에 왔다. 한 줄이다.
이 문서가 편철된 철의 분류 번호는 「제5조 관계」다.
한 장짜리 본문의 첫 줄에 적힌 것은 조문의 번호가 아니라 십육 년 전 문서의 번호다.
조직법 제5조가 승인 사항으로 든 것은 법률이다. 통화와 주화와 관세와 수출입과 이민에 관한 법률이라고 적혀 있다. 환율의 변경은 법률이 아니다. 고시다. 고시의 근거가 되는 법률은 이미 있고 그 법률은 제정될 때 한 번 승인을 거쳤다. 그러므로 이 변경은 제5조가 요구하는 절차의 밖에 있다.
밖에 있는데도 문서가 갔다.
이재국 안에서 그것을 두고 오간 문답이 기안 용지 뒤쪽에 적혀 있다.
— 이것은 승인 사항이 아니다.
— 아니다.
— 아닌데 왜 보내는가.
— 지난번에도 보냈다.
— 지난번은 무엇을 근거로 보냈는가.
— 그 전번에 보냈기 때문이다.
— 그 전번은.
— 오십삼년이다.
— 오십삼년에는 무엇을 근거로 보냈는가.
— 그때 것은 법률이었다.
— 그러면 그때는 근거가 있었고 지금은 없다.
— 그렇다.
— 그러면 안 보내면 되지 않는가.
— 안 보내면 왜 안 보냈는지를 적어야 한다.
환율 변경은 승인 사항이 아니다. 아닌데도 문서가 간다. 지난번에 보냈고 그 전번에도 보냈기 때문이다. 안 보내면, 왜 안 보냈는지를 적어야 한다.
남은 16화 · 약 58,913자 · 약 8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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