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IONTOON

28화제51장 서식(書式)

· 58화 중 28화 · 3,527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하나 — 물음

문서철의 첫 각서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조선은 무엇인가.

코르닐로프 28화 제51장 서식(書式) — 헤더컷

물음이 어려운 것은 조선이 어느 칸에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은 적국의 영토였다. 삼십오 년 동안 적국의 법이 시행되었고 적국의 화폐가 돌았고 적국의 군대가 주둔했다.

조선 사람은 적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서류상 그러했다.

그러나 연합국은 조선을 적으로 다루지 않기로 이미 적어 두었다. 카이로에서 셋이 모여 그렇게 적었고 그 문서에는 조선의 이름이 들어 있다.

그 문서는 조선이 자유롭게 되고 독립하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언제인지는 「적당한 시기에」라고 적었다.

적당한 시기라는 말은 시기를 정하지 않은 말이다. 시기를 정하지 않으면 그 사이를 채울 서식이 필요하다.


채울 서식을 고르는 일이 이 문서철의 일이다.

정책과 서식은 다른 것이다. 정책은 무엇을 할 것인가이고 서식은 그것을 어느 종이에 적을 것인가다.

정책은 바뀐다. 서식은 잘 바뀌지 않는다. 서식을 바꾸려면 그 서식으로 이미 처리된 것을 전부 다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해 가을에 워싱턴은 정책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하지 못한 채로도 조선에는 매일 문서가 나가야 했다.

나가는 문서에는 근거를 적는 칸이 있다. 그 칸을 비워 두고 나가는 문서는 없다.

그해 가을에 그 칸을 채우고 있던 것은 포고문의 번호다. 포고문은 상륙하던 날 배 위에서 만들어진 문서다.

배 위에서 만든 문서를 근거로 이천오백만 명의 살림이 처리되고 있었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기록은 이 문서철에 없다.

이상하게 여기려면 견줄 것이 있어야 한다. 그해 가을 조선에 견줄 것은 그 문서 하나뿐이었다.

정책이 없는 동안에도 서식은 필요하다. 그래서 서식이 정책보다 먼저 정해진다.

둘 — 셋

둘째 각서가 전례 셋을 나란히 놓았다.

전례상대의 지위통치의 근거 문서
독일적국 · 중앙 정부 소멸점령 당국의 포고
일본적국 · 중앙 정부 존속항복 문서와 최고사령관 지령
필리핀적국이 아님미합중국 의회의 제정법

셋째 칸이 이 표의 요점이다. 앞의 둘은 군대가 만드는 문서이고 뒤의 하나는 의회가 만드는 문서다.

군대가 만드는 문서는 빠르고 짧다. 하루 만에 나가고 한 장이면 되고 고치는 데도 하루가 든다.

의회가 만드는 문서는 느리고 길다. 회기가 있어야 하고 위원회를 거쳐야 하고 표결을 해야 한다.

느린 것이 이 자리에서는 장점이 된다. 군대의 문서에는 기한이 붙어 있고 의회의 문서에는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의 서식이 조선에 맞지 않는 이유는 한 줄이다. 그 서식은 상대의 정부가 없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전제가 성립하면 점령 당국이 최고 권력이 된다. 그 자리에는 다툴 상대가 없다.

조선에는 없어질 중앙 정부가 없었다. 조선을 다스리던 정부는 다른 나라의 정부였고 그 정부는 도쿄에 있다.

도쿄의 정부는 없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서식이 그것을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서식이 조선에 맞지 않는 이유도 한 줄이다. 그 서식은 항복한 정부를 통해 다스린다.

통할 정부가 조선에는 없다. 총독부는 항복의 당사자가 아니라 항복의 결과로 없어진 관청이다.

없어진 관청 자리에 무엇을 놓을 것인가는 항복 문서가 정하지 않는다. 항복 문서가 정하는 것은 누가 항복을 받는가까지다.

두 서식이 다 맞지 않는 이유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둘 다 적을 다루는 서식이고 조선은 적이 아니다.

적이 아닌 땅을 적을 서식이 미국에 하나 있었다.

셋 — 남는 하나

셋째 각서가 그 하나를 적었다.

필리핀이다. 1898년부터 그해까지 사십팔 년이다.

그 사십팔 년 동안 미국은 적이 아닌 땅을 다스리는 문서를 세 벌 만들었다. 세 벌은 서로를 고쳐 쓴 것이다.

첫 벌은 1902년의 조직법이다. 여든여덟 조다. 그 안에 권리장전이 있고 입법의회가 있고 공유지 처분이 있고 특허권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쪽 가까이에 한 조가 있다. 그 조는 이 법에 따라 제정된 법률을 미합중국 의회에 보고하게 하고, 미합중국 의회가 그것을 무효로 할 권한을 유보한다고 적었다.

권한을 유보한다는 말은 지금 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쓰지 않는 권한은 쓰는 권한과 문면이 같다.

둘째 벌은 1916년의 존스법이다. 이 법은 앞의 것보다 부드럽다. 전문에 안정된 정부가 수립되는 대로 주권을 철회하겠다고 적혀 있다.

부드러워진 것은 문장이고 바뀌지 않은 것은 구조다. 총독의 거부권이 남았고 보고와 무효의 조가 남았다.

셋째 벌은 1934년의 법이다. 이 법에는 독립의 날짜가 적혀 있다. 십 년 뒤다.

날짜를 적은 법에서 가장 긴 조는 그 십 년 동안 무엇을 미국이 계속 정하는가를 적은 조다. 열여섯 항이다.

열여섯 항에는 통화가 있고 관세가 있고 수출입이 있고 이민이 있다. 외교가 있고 군사 유보지가 있고 상고심이 있다.

날짜를 적어 준 대가로 그 열여섯 항이 붙었다. 둘은 같은 법의 같은 쪽에 있다.

독립의 날짜를 얻는 일과 열여섯 항을 받는 일이 한 표결로 처리되었다. 나누어 표결하는 서식은 없었다.


넷째 각서를 기안한 사람과 검토한 사람의 문답이 같은 철에 있다.

검토자가 물었다. — 왜 이 계열을 고르는가.

코르닐로프 28화 제51장 서식(書式) — 전환컷

기안자가 답했다. — 다른 둘은 조선에 쓸 수 없다.

— 쓸 수 없는 것과 이것이 맞는 것은 다른 말이다.

— 맞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것에는 전례가 있다.

— 전례가 있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 전례가 있으면 새로 만들 것이 없다.

— 새로 만들면 무엇이 드는가.

— 회기가 든다. 위원회가 든다. 표결이 든다.

— 그것은 넉 달이면 된다.

— 넉 달 동안 조선에는 매일 문서가 나간다.

— 그 문서의 근거란에 무엇을 적을 것인가.

— 지금은 포고문 번호를 적고 있다.

— 포고문은 군대의 문서다.

— 그렇다. 그래서 바꾸려는 것이다.

— 군대의 문서를 의회의 문서로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 기한이 없어진다.

— 기한이 없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가.

— 좋고 나쁨은 우리가 정할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근거란에 적을 것이다.


전례가 있다는 말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넷 — 항목

서식을 고르면 항목이 따라온다. 이것이 서식의 성질이다.

빈 서식은 빈 종이가 아니다. 빈 서식에는 칸이 있고 칸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필리핀 계열의 서식에는 칸이 여덟쯤 있다. 영역, 국민, 권리, 입법, 승인, 외교, 유보지, 동등권이다.

칸의 이름을 정한 것은 1902년과 1916년과 1934년의 미국 의회다. 조선을 두고 정한 것이 아니다.

여덟은 그대로 옮겨지고 뒤에 하나가 더 붙는다. 붙이는 사람은 워싱턴에 있지 않다.

더 붙는 칸의 이야기는 이 부의 몫이 아니다. 지금 적을 것은 여덟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뿐이다.

칸이 있으면 그 칸을 채워야 한다. 채우지 않고 넘기려면 왜 비우는지를 적어야 하고, 그것을 적는 칸은 없다.

그러므로 서식을 고르는 일과 조문을 정하는 일은 같은 일이 아니면서 거의 같은 일이 된다.


이 문서철에서 아무도 조선의 독립을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할 이유가 없다. 카이로에 이미 적혀 있다.

각서 넷 어디에도 조선을 오래 붙들어 두자는 문장이 없다. 그런 문장이 필요하지도 않다.

붙들어 두는 일은 문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칸으로 한다. 칸은 문장보다 오래 남는다.

다섯 — 다 쓴 서식

이 계열의 서식은 그 무렵 쓸모를 다하고 있었다.

필리핀의 독립 날짜는 1946년 7월 4일이다. 1934년에 법으로 정해 두었고 그 사이에 전쟁이 있었으나 날짜는 바뀌지 않았다.

즉 이 각서들이 오가는 동안 그 서식은 마지막 해를 지나고 있었다.

사십팔 년을 쓴 서식이 여덟 달 뒤에 비게 된다. 비는 것은 서식이지 서식을 만든 사람들이 아니다.

그 서식을 다루어 본 사람들은 워싱턴에 그대로 있었다. 조문을 아는 사람과 판례를 아는 사람과 개정 이력을 아는 사람이 같은 건물에 있었다.

새 서식을 만들면 그 사람들을 다시 모아야 한다. 있는 서식을 쓰면 모을 것이 없다.

끝난 서식은 버려지지 않는다. 비어 있을 뿐이다.

여섯 — 참고 전례

넷째 각서의 참고 전례 칸에 적힌 것은 법률 이름 하나다.

앞의 세 각서는 그 칸에 둘이나 셋을 적었다. 여럿을 적는 것은 아직 고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나만 적히면 고른 것이다. 고른 것을 적는 자리와 결정하는 자리는 다르다. 이 칸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결정은 뒤에 다른 방에서 이루어졌고 그 방의 기록에는 이 각서가 첨부되어 있다. 첨부된 문서는 논의되지 않는다.

석 달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어느 초안의 오른쪽 여백에 연필로 열한 자가 적혔고 사흘 뒤에 그것이 활자로 앉았다.

여백이 본문이 되는 데 절차가 들지 않았듯이, 참고란이 근거란이 되는 데도 절차가 들지 않는다.


넷째 각서 아래쪽에 연필 글씨가 한 줄 있다. 네 글자다.

「전례 있음.」

쓴 사람의 이름은 없다. 이 문서철에는 기안자와 검토자의 직명만 적히고 서명은 별지로 나간다. 별지는 이 편철에 없다.


문경식, 『번역에 관한 각서』, 1971년 사가본, 제1장 「위촉」

사가본이다. 판권장에 부수가 적혀 있고 값이 적혀 있지 않다.

저자가 예순아홉에 냈다. 서문은 없고 제1장이 바로 시작한다.

제1장은 열한 쪽이고 그 가운데 여섯 쪽이 1945년 12월의 나흘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기를 「나」로만 적고 직함으로 적지 않았다.

표지 안쪽에 자필로 한 줄이 있다. 「이것은 변명이 아니다. 변명할 자리는 따로 있다.」

위촉장을 받은 사람은 사흘을 앓았다.

1971년 사가본 『번역에 관한 각서』 표지 안쪽에 자필 한 줄. 「이것은 변명이 아니다.」 위촉장을 받은 사람은 사흘을 앓았다.

남은 30화 · 약 106,197자 · 약 2시간 32분

내 서재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

코르닐로프전 58화

제1부 전신(電信)

1서장2제2장 사자(使者)3제3장 르보프4제5장 미발(未發)5제7장 감옥

제2부 의회(議會)

6제9장 개회(開會)7제12장 국제(國際)

제3부 만세(萬歲)

8제14장 선언(宣言)9제15장 파리10제17장 영(零)11제18장 유월

제4부 공채(公債)

12제19장 위원부(委員部)13제22장 대체(代替)14제23장 두 갈래15제25장 장부(帳簿)16제27장 빚17제28장 청문(聽聞)18제30장 십칠만

제5부 군자금(軍資金)

19제32장 없음20제35장 무명(無名)21제37장 셋과 하나

제6부 전시(戰時)

22제40장 광복군(光復軍)23제42장 각서(覺書)24제45장 위도(緯度)25제46장 상륙(上陸)

제7부 단독(單獨)

26제47장 유임(留任)27제49장 인민(人民)28제51장 서식(書式)29제52장 고문(顧問)30제54장 신탁(信託)31제55장 상대(相對)32제57장 전문(電文)

제8부 조직법(組織法)

33제58장 두 배34제60장 법안(法案)35제61장 물음36제62장 정본(正本)37제64장 조문(條文)38제65장 선포(宣布)

제9부 정본(正本)

39제66장 헌법(憲法)40제68장 승인(承認)41제70장 환(圜)

제10부 유보지(留保地)

42제73장 담43제75장 환율(換率)44제78장 개정(改正)45제80장 광장

제11부 동등(同等)

46제81장 개항(開港)47제83장 반환(返還)48제85장 예순

제12부 대조(對照)

49제87장 이본50제89장 유보51제90장 감독52제92장 빈칸53제94장 유고(遺稿)54제96장 표결(票決)

제13부 자주(自主)

55제97장 아홉 조56제98장 팔십 년57제99장 값58제100장 표지(表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