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7부 단독(單獨)
32화제57장 전문(電文)
하나 — 앉을 자리
그해 삼월 서울에는 회의가 열릴 만한 방이 여럿 준비되어 있었다.

두 나라 대표가 마주 앉아 이 나라의 장래를 정하는 회의다. 그런 회의를 여는 데 필요한 것은 방이 아니다. 마주 앉을 쪽이다.
마주 앉을 쪽이 오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마주 앉을 쪽이 없다.
이 나라를 함께 맡기로 한 나라가 없으므로 함께 정할 회의도 없다.
회의가 없으면 정하는 일은 한 군데서 한다.
한 군데서 하는 것은 회의가 아니다. 결재다.
회의에는 속기록이 남고 결재에는 결재란이 남는다. 속기록에는 반대한 사람의 이름이 적히고 결재란에는 결재한 사람의 이름만 적힌다.
반대가 기록되지 않는 방식으로 정해지면 반대가 없었던 것이 된다.
전문의 앞 두 문단은 이렇다.
— 제1문단. 귀지의 3월 보고를 접수하였다.
— 제2문단. 조선의 장래 지위에 관하여 본국이 검토 중인 방안은 둘이다.
— 하나는 국제연합 총회에 상정하는 것이다.
— 하나는 본국 의회의 입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둘 — 견줌
앞의 방안부터 본다.
국제연합 헌장이 발효한 것은 다섯 달 전이다. 첫 총회의 앞 회기가 끝난 것은 지난달이다.
새로 생긴 기구는 규칙을 만들면서 일을 한다. 규칙을 만드는 일과 일을 하는 일이 같은 방에서 진행되면 둘 다 느려진다.
느린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느린 것에는 기한을 적을 수 없다. 기한을 적을 수 없는 방안은 견줄 때 진다.
— 제3문단. 국제연합 상정의 경우 신탁통치 이사회의 절차에 따르게 된다.
— 이사회의 운영 규칙은 아직 정하여지는 중이다.
— 제4문단. 의회 입법의 경우 참조할 수 있는 제정법이 셋 있다.
— 세 법률은 모두 태평양의 한 군도에 관한 것이다.
뒤의 방안에는 전례가 있다. 셋이다.
| 법률 | 연도 | 무엇을 정했는가 |
|---|---|---|
| 조직법 | 1902 | 정부의 형태와 본국 의회의 무효화 권한 |
| 자치법 | 1916 | 주권을 철회하는 조건 |
| 독립법 | 1934 | 독립까지의 기간과 그동안의 유보 사항 |
세 법률은 한 나라에 관한 것이고 삼십이 년에 걸쳐 있다. 앞의 것이 뒤의 것의 서식이 되었다.
세 번 써 본 서식은 어디가 걸리는지 알려져 있다. 걸리는 데를 아는 서식으로 새 문서를 만들면 물을 것이 적다.
전례가 있다는 것은 물을 것이 적다는 뜻이다.
전문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다.
— 제5문단. 두 방안을 비교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국제연합 상정은 절차가 정립되어 있지 아니하며 소요 기간을 예측할 수 없다.
— 의회 입법은 기존 서식을 이용할 수 있다.
— 의회 입법이 가장 신속하며 전례가 있음.
밑줄은 마지막 줄에 그어져 있다. 그 옆 여백에 같은 잉크로 한 줄이 더 적혀 있다.
— 전례가 있는 쪽이 대개 빠르다.
그은 사람은 서울에 있었다. 서울에서 이 넉 장을 읽은 사람은 마지막 줄이 결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줄은 결론의 형식으로 적혀 있지 않다. 비교의 형식으로 적혀 있다.
비교의 형식으로 적힌 결론은 반대하기 어렵다. 반대하려면 비교를 다시 해야 하고, 비교를 다시 하려면 항목을 더 넣어야 한다.
이 전문의 항목은 둘이다. 신속과 전례다.
넣을 수 있었던 셋째 항목이 있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묻는 절차다.
그 항목은 두 방안 어디에도 없다. 앞의 방안에도 없고 뒤의 방안에도 없다.
없는 이유는 반대해서가 아니다. 견주는 항목이 신속과 전례일 때 그 항목은 둘 다에서 진다.
두 방안 가운데 어느 쪽에도 이 나라 사람에게 묻는 절차가 없다.
이 전문의 배포처는 셋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서울이고 나머지 둘은 워싱턴 안에 있다.
조선에 관하여 그날 오간 종이 석 벌 가운데 조선에 온 것은 한 벌이다.
「재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 1946년도 세입세출 예산 및 정원 집계표」
본표 열두 쪽 뒤에 부표 한 쪽이 접혀 있다. 부표의 이름은 「필리핀 코먼웰스 대조표」다.
본표의 칸은 넷이다. 항목·예산액·정원·비고다.
부표의 칸은 다섯이다. 셋으로 지시받았고 둘이 더 늘었다.
부표를 붙인 사유는 표지 안쪽에 한 줄로 적혀 있다. 「전례 대조를 위함.」
부표를 만든 사람의 이름은 어느 쪽에도 없다.
본표 열두 쪽 어디에도 조선인 직원의 봉급을 따로 적은 칸은 없다.
하나 — 정원란
정원란은 두 줄로 갈라져 있다. 위가 미국인이고 아래가 조선인이다.
갈라 놓은 까닭은 사람의 나라가 달라서가 아니다. 봉급을 내는 데가 달라서다.
미국인은 본국 육군부의 명부에 실려 왔다. 명부에 실린 사람의 봉급은 본국 예산에서 나간다. 그 수는 지난가을 배에 실린 그대로다. 자릿수로 수백이다.
조선인은 이 청의 정원이다. 봉급은 이 예산에서 나간다. 그 수는 지난가을부터 달마다 늘었다. 자릿수로 수만이다.
한 해 동안 늘어난 것은 아래 줄뿐이다. 위 줄은 배가 한 번 더 오지 않는 한 늘지 않는다.

정원란 옆의 비고란은 좁다. 한 줄에 여남은 자가 들어간다.
아래 줄의 비고란에 가장 많이 적힌 것은 넉 자다. 「전임 관청.」
그 넉 자는 경력을 적는 말이지 자격을 적는 말이 아니다. 자격란은 이 표에 없다.
없는 칸에 적히지 않은 것은 뒤에 세어지지 않는다. 이 표에서 세어진 것은 사람의 수와 봉급의 합계뿐이다.
예산 편성 회의의 문답이 회의철에 한 쪽 반 남아 있다.
— 이 칸에 미국인과 조선인을 함께 적는가.
— 함께 적지 않는다.
— 왜인가.
— 봉급을 내는 데가 다르다.
— 미국인은 어디서 내는가.
— 본국 예산이다.
— 조선인은 어디서 내는가.
— 이 예산이다.
— 이 예산의 세입은 어디서 오는가.
— 대개 조선에서 온다.
— 그러면 이 표의 두 줄은 무엇을 견주는 것인가.
— 견주지 않는다. 나란히 놓을 뿐이다.
나란히 놓인 두 줄의 봉급은 같은 데서 나오지 않는다.
둘 — 전례
부표를 붙이라고 한 것은 본부다. 조선을 다룰 때 참조할 전례가 필리핀이라는 것은 지난가을 워싱턴에서 이미 정해졌다.
지시받은 칸은 셋이었다. 항목과 필리핀과 조선이다.
| 항목 | 필리핀 | 조선 |
|---|---|---|
| 통치의 형식 | 자치정부 | 군정 |
| 관할 인구 | 약 1,600만 | 약 2,500만 |
| 미국 측 최고 권한 | 고등판무관 | 군정장관 |
| 현지인 관리의 소속 | 자기 나라 정부 | 남의 나라 군정청 |
| 현지인 관리의 봉급 | 자기 나라 예산 | 자기 나라 세입 |
필리핀에서 관직을 맡은 사람은 거의 전부 필리핀 사람이다. 조선에서 관청 일을 하는 사람도 거의 전부 조선 사람이다.
비율만 내면 두 곳이 비슷하고 조선이 조금 더 높다. 미국인이 조선에 더 적게 왔기 때문이다.
비율이 같아도 뜻은 같지 않다. 아래 두 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관리는 자기 나라 정부에 속한다. 그 정부의 예산은 그 나라 의회가 의결한다. 미국 사람은 그 위에 하나 있다.
조선의 관리는 남의 나라 군정청에 속한다. 그 청의 예산은 그 청이 짜고 군정장관이 승인한다. 조선 사람이 그 예산을 의결하는 자리는 없다.
필리핀에는 열한 해 전부터 자기 의회가 있었다. 그 의회가 예산을 깎은 해도 있고 늘린 해도 있다. 깎고 늘리는 일이 기록으로 남는다.
조선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깎지 않아서가 아니라 깎을 자리가 없어서 없다.
기록이 없는 것과 다툼이 없었던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다툼은 기록을 만드는 자리에서만 기록이 된다.
필리핀에서 현지인 비율이 높은 것은 자치의 결과이고, 조선에서 높은 것은 자치가 없는 채로 손이 모자란 결과다.
셋 — 세입란
군정 예산의 세입은 대개 조선에서 걷는다. 세와 전매 수입과 관업 수입이다.
본국에서 오는 것은 따로 한 항목이 있고 그 항목의 이름은 원조다. 원조는 세입의 한 항목이지 세입 전체가 아니다.
여기까지는 어느 나라의 관청이나 같다. 걷어서 쓰고 쓴 것을 적는다.
다른 것은 그 예산을 누가 의결하는가다. 의결하는 자리가 없으면 예산은 편성과 승인만으로 확정된다.
편성하는 쪽과 승인하는 쪽이 같은 청 안에 있으면 그 예산은 청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않는다.
나가지 않는 문서는 고쳐지지 않는다. 고칠 사람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예산서가 한 해 동안 고쳐진 횟수는 표지 안쪽 결재란으로 알 수 있다. 결재란의 도장은 넷이고 넷이 다 이 청의 도장이다.
부표 뒷면에 연필로 여섯 줄이 적혀 있다. 지우개 자국이 두 군데 있다.
— 두 곳의 정원 비율을 냈다.
— 비율은 거의 같았다.
— 비율만으로는 뜻이 나오지 않는다.
— 소속과 봉급을 적는 칸을 둘 더 만들었다.
— 그 두 칸이 이 표에서 유일하게 어긋나는 칸이다.
— 지시받은 것은 비율이었다.
지시받은 것은 비율이었고, 뜻은 지시받지 않은 두 칸에 있었다.
관할이 두 배가 되었을 때 늘릴 수 있는 것은 둘이었다. 보내는 사람을 늘리거나 여기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다.
앞엣것에는 배와 명부와 본국 예산이 든다. 뒤엣것에는 이 청의 예산만 든다.
값이 싼 쪽을 고른 것이 아니다. 값을 치를 쪽이 다른 쪽을 고른 것이다.
고른 사람이 나쁜 뜻으로 고른 것도 아니다. 그해 봄에 그 청에서 급한 것은 곡식이고 전기고 기차였다.
급한 것을 먼저 하면 급하지 않은 것은 뒤로 간다. 예산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정하는 일은 그해 봄에 급하지 않았다.
뒤로 간 일에는 날짜가 붙지 않는다. 날짜가 붙지 않은 일은 이듬해에도 급하지 않다.
통치가 현지화되었다는 말은 이 표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 표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다.
통치의 비용이 현지로 넘어갔다.
정원란의 아래 줄만 달마다 늘었다. 통치의 비용이 현지로 넘어갔다 — 부표를 만든 사람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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