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12부 대조(對照)
53화제94장 유고(遺稿)
둘 — 열한 부
열한 부 가운데 아홉은 대학과 도서관에 있다. 두 부는 기증본이고 둘 다 이 문서관에 있다.

기증본에는 기증자란이 있다. 한 부는 저자의 유족이 넘긴 것이고 다른 한 부의 기증자란에 적힌 이름은 아들의 이름이다.
기증 연도는 2016년이다. 그 전해에 그 사람은 책을 한 권 냈다. 그 책 마지막 두 쪽이 이 책의 한 쪽을 찍은 사진이다.
제4장 열두째 쪽을 폈다.
의견서 다섯 줄 가운데 넷은 활자다. 다섯째 줄은 넷째 줄 아래 빈자리에 연필로 적혀 있다.
— 정하는 것이 중요하지 무엇으로 정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 어차피 조문은 같기 때문이다.
연필 아래에 볼펜으로 적힌 한 줄이 더 있다. 다른 사람의 글씨다.
「같지 않았습니다」
두 글씨 사이는 서른네 해다. 볼펜과 이 방 사이는 열아홉 해다.
셋 — 앞장
그 아래에 이 방이 적을 자리가 남아 있었다.
적지 않았다. 대조실은 문서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것이 이 방의 유일한 금지다.
대신 촬영을 청구했다. 청구서의 목적란에는 「보존 촬영」이라고 적었다. 다른 목적란이 없다.
촬영 청구 협의 여덟 줄이다.
— 이 쪽만 찍는가.
— 이 쪽만 찍는다.
— 조문이 없는 쪽이다.
— 조문이 없다.
— 대조 자료로 편철되는가.
— 맨 앞에 놓는다.
— 앞에 놓으면 대조표가 아닌 것이 첫 장이 된다.
— 그렇다.
대조표 묶음은 십삼 년 동안 제1조에서 시작했다. 2024년부터 그 앞에 사진 한 장이 붙는다.
사진에는 조문이 없다. 조문에 관하여 두 사람이 손으로 적은 글씨가 있다.
한 사람은 이 조문을 만든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 조문을 고치려다 못 한 사람이다. 둘 다 이 방의 일을 본 적이 없다.
대조표의 첫 장은 조문이 아니다.
해제는 두 줄이다. 첫 줄은 서지다. 판형과 쪽수와 인쇄소와 부수를 적는다.
인쇄소 이름은 판권장에 있고 지금은 없는 곳이다. 부수는 삼백이고 확인된 것은 열하나다. 서지에는 그 두 수를 나란히 적는다.
둘째 줄은 이렇다.
「본 사진은 대조의 대상이 아니라 대조의 사유다.」
기증본은 촬영이 끝난 뒤 상자에 다시 들어갔다. 열람은 사본으로 한다.
사본에는 글씨가 그대로 나온다. 연필은 흐리게 나오고 볼펜은 진하게 나온다. 촬영 담당자가 연필 쪽만 두 번 더 찍었다.
상자 표제에는 저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기증자의 이름은 안에 있다.
「대한민국 조직법 국어 정본화에 관한 법률안」 제안 이유서
대한민국 국회. 2025년 4월 접수. 의안번호와 발의 의원 명단이 첫 장에 있다.
법안은 두 조와 부칙 한 항이고 한 쪽에 다 들어간다.
이유서는 다섯 문단이고 역시 한 쪽이다.
첨부 자료는 한 종이다. 국립문서관 정본 대조실의 대조표 묶음이고 쪽수가 이유서의 삼백 배가 넘는다.
다섯 문단 가운데 넷은 그 묶음이 무엇인지를 적는다.
셋째 문단만 이 법안이 무엇이 아닌지를 적는다.
정본을 바꾸는 일은 법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하나 — 셋째 문단
발의에 필요한 수는 열이다. 그 수를 채우는 데 넉 달이 걸렸다.
넉 달이 든 까닭은 반대가 많아서가 아니다. 이 법안이 무엇을 하는 법안인지를 설명하는 데 시간이 들었다.
설명이 어려웠던 것은 이 법안이 하지 않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첨부 묶음이 국회에 들어간 것은 그해 3월이다. 상자 열한 개로 나뉘어 실렸다.
이 묶음을 만든 방은 사람이 둘인 방이고 그 가운데 한 자리는 반년마다 사람이 바뀌었다. 십사 년 동안 바뀌지 않은 자리는 하나다.
의안 접수 서류의 참고 자료란에는 기관 이름만 적는다. 사람 이름을 적는 칸이 그 서식에 없다.
법안 제1조는 목적이다. 제2조는 두 항이다.
제1항은 이 나라 영역 안에서 조직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국어본을 정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제2항은 그 국어본이 어느 것인가를 정한다. 1947년 관보에 공포된 본으로 한다.
부칙은 시행일 한 항이다.
제2항이 있어야 하는 까닭을 아는 사람은 그때까지 많지 않았다. 국어본이 넷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2013년이고 알려진 자리는 배포하지 않는 중간보고였다.
넷 가운데 하나를 고르려면 넷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적어 둔 문서는 한 곳에만 있었다.
고른 것은 1947년 관보본이다. 고른 근거는 공포본이라는 것 하나다.
넷 가운데 실무에서 가장 오래 쓰인 것은 1962년 편람본이고 가장 널리 인쇄된 것은 1988년 법제처본이다.
그 둘을 두고 공포본을 고른 까닭은 정본을 정하는 기준이 오래 쓰인 것도 널리 퍼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의 제2항은 십사 년치 대조표가 없으면 쓸 수 없는 조항이다.

이유서 셋째 문단은 두 문장이다.
「본 법률안은 「대한민국 조직법」의 개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본의 언어를 정하는 것이다. 동법 제9조 후단에 따라 개정·변경 또는 폐지의 권한이 본원에 없음을 발의자들은 인지하고 있다.」
앞 문장이 이 법안의 요지이고 뒤 문장이 그 요지가 나온 자리다.
고칠 수 없는 법에 대하여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예순 해 동안 여러 사람이 물었다. 답이 하나 나온 것이 이 두 문장이다.
소관 위원회 심사 질의 열두 줄이다. 2025년 6월이다.
— 이 법안이 조직법을 고치는가.
— 고치지 아니한다.
— 그러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 다툴 때 드는 본이 달라진다.
— 지금까지 무엇을 들었는가.
— 영어본이다.
— 그것을 정한 것은 누구인가.
— 이 법 제9조다.
— 제9조는 그대로 두는가.
— 그대로 둔다.
— 제9조를 그대로 두고 제9조가 정한 것을 바꾸는 것이 되는가.
— 이 나라 안에서 되는지를 이 법안이 정한다.
고칠 수 없는 법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읽는 차례를 정하는 일이다.
둘 — 이의 없음
법안이 접수된 다음 달에 외교부가 조회를 냈다. 주미대사관을 거쳐 미 국무부에 보냈다.
조회 사유란에는 「국내법 제정에 따른 사전 협의」라고 적혀 있다.
이 조회는 조문이 요구한 것이 아니다. 제6조는 조약과 협정과 외채를 들었고 국내법은 들지 않았다.
들지 않은 것을 보내는 절차가 언제 생겼는지는 외교부 문서에 없다. 처음 보낸 해를 찾으면 1961년이 나온다.
1961년에 보낸 것도 국내법이었고 그때도 회신은 이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번 보내고 회신이 오면 보내는 쪽이 그다음부터 그것을 절차로 여긴다. 절차로 여기는 데는 문서가 들지 않는다.
예순넉 해 동안 이 조회를 거른 해가 없다. 그만두어도 되는지를 물은 문서도 없다.
회신은 아홉 주 만에 왔다. 전문 여섯 줄이다.
회신 전문 여섯 줄이다. 외교부 번역본으로 옮긴다.
— 본건은 미합중국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 미합중국은 본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
— 본건은 대한민국의 국내 절차에 속한다.
— 본법의 영어본은 미합중국 법령전서의 문면 그대로 존속한다.
— 본법 제9조 후단은 본건의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
— 회신 이상.
여섯 줄 가운데 조문을 든 것은 다섯째 줄 하나다.
앞의 넷은 이의가 없다는 말을 네 번 다르게 적은 것이다. 다섯째 줄만 새 내용이고, 그 줄은 이 법안이 건드리지 못한 것을 적었다.
이의가 없다는 것은 이 법안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달라지는 것이 그쪽에 없다는 뜻이다.
이 회신은 여섯 줄 가운데 다섯 줄이 예의이고 한 줄이 답이다.
법안은 소관 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에 올랐다.
첨부 묶음은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부피 때문이다. 대신 요약 한 장을 배부했다.
요약 한 장에는 대조표에서 뽑은 예가 셋 실려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제1조의 「같다」다.
셋만 뽑은 데 다른 이유는 없다. 넷째를 넣으면 한 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세 예는 조문 순서대로 실렸다. 제1조와 제4조와 제6조다.
제7조와 제8조의 예는 뽑히지 않았다. 그 두 조에는 요약에 실을 만한 어긋남이 없다.
요약 한 장의 아래쪽 넉 줄은 비어 있다. 인쇄한 뒤에 남은 자리다.
본회의 배부 자료는 남은 자리를 채우지 않는다. 채우면 한 장이 아니게 된다.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 회의록 및 표결 기록
2026년 6월 11일. 회의록은 백열두 쪽이고 표결 기록은 그 가운데 두 쪽이다.
이 안건에 든 시간은 사십일 분이고 그 가운데 이십육 분이 토론이다.
찬성 토론이 둘이고 반대 토론이 하나다.
표결 기록에는 찬성한 사람과 반대한 사람과 기권한 사람의 이름이 각각 실린다.
이 회차는 그 이름을 옮기지 않는다.
2026년 6월 11일, 이 나라 근본법의 정본이 우리말이 되었다.
하나 — 반대 토론
찬성 토론에 선 두 사람이 든 것은 같은 자료다. 십사 년치 대조표다.
한 사람은 국어본 판본 사이의 백열아홉 곳을 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제1조의 「같다」를 들었다. 둘 다 그날 배부된 요약 한 장에 실린 것이다.
찬성 토론의 요지는 하나다. 어긋난 자리가 있고 어긋났을 때 우리가 드는 본이 남의 말로 되어 있다.
두 사람 다 그 표를 만든 방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발언에서 기관을 드는 것은 관례가 아니다.
한 사람은 묶음의 두께를 손으로 재어 보였다. 회의록에는 그 대목이 괄호 안 한 줄로 남았다.
반대 토론은 한 사람이고 열한 분을 썼다. 그날 이 안건에서 가장 긴 발언이다.
찬성 토론은 둘, 반대 토론은 하나. 그날 이 안건에서 가장 긴 발언은 열한 분짜리 반대 토론이었다.
남은 5화 · 약 19,585자 · 약 28분
좋아요와 책갈피는 이 기기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