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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제97장 아홉 조

· 58화 중 55화 · 3,505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하나 — 세 칸

칸을 하나 더 그었다. 첫 칸과 셋째 칸 사이에 둘째 칸이 생겼다.

코르닐로프 55화 제97장 아홉 조 — 헤더컷

셋째 칸을 채우는 데 걸린 시간은 하루다. 아홉 장 가운데 여덟 장에서 셋째 칸이 첫 칸과 같았다.

둘째 칸을 채우는 데 걸린 시간이 넉 달의 나머지 전부다.

둘째 칸만 길다. 조문이 하는 일은 조문 안에 없다.

둘 — 여덟 장

여덟 장을 여기에 줄여 옮긴다. 총괄에서는 장마다 두 쪽에서 열한 쪽이다.

제1조. 영역은 1910년 8월 29일 이전과 같다고 적혀 있고 그 뒤에 단서가 붙어 있다. 단서가 가리키는 넓이는 1979년에 육백일흔두 제곱킬로미터였고 지금은 삼백스물여섯 제곱킬로미터다.

제2조. 국적을 만든 조항이다. 만들면서 「미합중국의 시민이 아니며」를 함께 적었다. 1960년대의 이민·병역·손해배상 소송에서 이 구절이 몇 번 인용되었는지는 둘째 칸에 있다. 인용한 쪽은 대개 이 나라 사람이 아니었다.

제4조. 국회가 의결한 법률을 미 의회에 보고하라고 적었다. 팔십 년 동안 보고된 것이 일만 구천사백일흔여섯 건이고 이 나라가 공포한 법률의 수와 한 건도 다르지 않다.

제5조. 통화·주화·관세·수출입·이민에 대통령의 승인을 요구했다. 승인을 구한 것이 이백서른한 건이다. 회기가 끝나도록 회신이 오지 않은 것이 열일곱 건이다.

제6조. 외교를 감독과 통제 아래 두었다. 팔십 년 동안 체결된 조약과 협정 삼천사백스물여섯 건이 전부 사전 동의를 거쳤다.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제7조. 유보지의 위치와 범위와 관할을 별도의 협정으로 미루었다. 그 협정의 부속서가 마흔한 번 고쳐졌고 국회 동의를 받은 것이 영 건이다.

제8조. 천연자원과 공익사업에 동등권을 주었다. 사십 년 동안 아무도 쓰지 않다가 1988년 이후에 삼백쉰여섯 건이 나왔다. 조문은 1947년의 문면 그대로다.

제9조. 정본을 영어본으로 정하고 개폐 권한을 미 의회에 두었다. 작년에 앞 문장이 고쳐졌다. 뒤 문장은 그대로다.


여덟 장의 둘째 칸에 어떤 낱말이 되풀이되는지를 대조실이 세었다. 총괄에는 싣지 않았다.

가장 많이 나온 넉 자가 보고와 승인과 동의와 협의다.

넷 다 이 나라가 먼저 움직이고 상대가 답하는 형식이다. 여덟 장 어디에도 명령이라는 낱말이 없다.

명령이 없는 까닭은 조문이 온건해서가 아니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정해져 있으면 명령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보고는 이쪽이 하고 승인은 저쪽이 한다. 동의를 구하는 것도 이쪽이고 협의를 청하는 것도 이쪽이다.

여덟 장의 둘째 칸에 적힌 문장의 주어를 세면 열에 아홉이 이 나라다.


작업 기록에 이어지는 문답이다.

— 여덟 장을 한 줄로 줄이면 무엇이 되는가.

— 여덟 조가 다 지켜졌다는 것이다.

— 지켜졌다는 말이 맞는가.

— 어겨진 적이 없다.

— 어길 뻔한 적은 있는가.

— 그것을 적은 칸이 없다.

— 왜 없는가.

— 어길 뻔한 것은 문서가 되지 않는다.


여덟 조는 팔십 년 동안 한 번도 어겨지지 않았다.

셋 — 이기는 조문

남은 한 장이 제3조다. 열아홉 쪽이다.

제3조는 다섯 문장이다. 적법절차와 평등보호, 언론과 신앙과 집회, 수색과 압수, 소급 처벌과 사권 박탈, 인신보호영장이다.

1947년에 이 조문은 새로 쓰인 것이 아니다. 필리핀 조직법 제5조가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와 제4조와 제5조와 제14조의 문면을 옮겨 놓은 것을 다시 옮긴 것이다.

옮기는 데 손을 댄 자리가 없다. 총괄의 첫 칸과 셋째 칸 사이에 다른 자가 하나도 없는 장은 이 장뿐이다.


이천삼백열아홉 자가 대조표에 올랐다. 조로 나누면 여덟 조에서 나왔다.

제3조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뜻이 달라지는 예순여덟 자 가운데 마흔넷이 제7조와 제8조에 있다. 나머지 스물넷은 다섯 조에 흩어져 있다.

이 법에서 가장 좋은 조문이 가장 정확하게 옮겨졌다.


둘째 칸은 판례집에서 뽑았다. 대법원 판례집에 조문 번호가 표시된 것만 세었다.

아홉 조 가운데 판결문에 가장 자주 나온 조문이 제3조다. 둘째가 제2조이고 셋째가 제4조다. 넷째부터는 서열을 매기는 뜻이 없다.

건수는 총괄에 싣지 않았다. 판례집에 번호가 표시되지 않은 채 인용된 것을 다 찾을 방법이 없어서 아래 값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섯 문장이 어디에 섰는지만 적었다.

제3조의 문장팔십 년 동안 그 문장이 선 자리
적법절차와 평등보호행정처분 취소와 재산 환수
언론·신앙·집회·청원정기간행물 등록 취소, 옥외집회 금지 통고
부당한 수색과 압수영장 없는 압수물의 증거능력
소급 처벌과 사권 박탈특별법에 의한 자격 제한
인신보호영장계엄 기간의 구금

1987년에 이 조문이 인용되었다. 인용한 쪽이 이겼다.

그해에 인용된 것은 다섯 문장 가운데 셋이다. 언론과 집회의 문장, 수색과 압수의 문장, 인신보호영장의 문장이다.

세 문장 다 1902년 필리핀 조직법 제5조의 문면이고 그 문면은 그보다 백 년이 더 앞선 미국 헌법 수정 조항의 문면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그해에 근거로 든 문장을 쓴 사람은 이 나라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실은 그해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 이 장의 둘째 칸에서 가장 긴 대목이다.


코르닐로프 55화 제97장 아홉 조 — 전환컷

그 대목을 정리하면서 대조실 안에서 오간 여덟 줄이다.

— 제3조가 이긴 사건을 다 세는가.

— 셀 수 있다.

— 그러면 세라.

— 세면 이 장이 더 길어진다.

— 길어지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 이 장이 길어질수록 앞의 여덟 장이 짧아 보인다.

— 여덟 장은 원래 짧다.

— 짧은 까닭이 다르다.


제3조로 이긴 사건의 목록은 이 조문이 얼마나 잘 쓰였는지를 보여 준다. 여덟 장이 짧은 까닭은 그 조문들이 잘 쓰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다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고하고 승인받고 동의를 구하는 조문에는 이기고 지는 자리가 없다.

이 법에서 가장 자주 이긴 조문은 이 법을 고치는 데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넷 — 견딜 만한 것

1976년에 조직법 개정 운동이 있었다. 문경식의 아들 문상헌이 세 해 동안 했고 발의까지 가지 못했다.

그때 나온 반대 논거를 대조실이 신문과 학회지에서 뽑았다. 서른 편 남짓이고 논거는 대개 같다.

가장 많이 쓰인 논거를 그대로 옮기면 한 문장이다. 이 법에는 제3조가 있다.

문상헌은 그 논거에 답하지 않았다. 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말이 옳아서였다고 그가 1979년에 적었다.

옳은 말에 답하려면 그 말이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를 먼저 세어야 한다. 그는 세지 못했다. 셀 자료가 그때 없었다.

자료가 나온 것은 사십칠 년 뒤다.


총괄을 마치기 전에 편찬회의가 한 번 있었다. 그 대목의 문답이다.

— 제3조가 있다는 말이 왜 반대 논거가 되는가.

— 이 법이 나쁘기만 한 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 그것은 사실이다.

— 사실이다.

— 사실을 말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다음이 있다.

— 그다음이 무엇인가.

— 나쁘기만 한 법은 고친다. 나쁘기만 하지 않은 법은 견딘다.

— 견디는 것이 나쁜가.

— 나쁘지 않다. 견딜 만한 것은 고쳐지지 않을 뿐이다.


제3조는 팔십 년 동안 이 법의 값을 낮추었다. 낮춘 것이 아니라 이 법을 셈에 올리기 어렵게 만들었다.

한쪽에 제4조와 제5조와 제6조와 제7조와 제8조가 있고 다른 쪽에 제3조가 있으면 사람들은 두 쪽을 같은 저울에 올린다.

올리면 저울이 기울지 않는다. 기울지 않는 저울은 값을 내지 않는다.

좋은 조문 하나가 나머지 여덟 조를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총괄 범례 제2항은 조문의 우열을 가리지 아니한다고 적혀 있다.

이 총괄은 우열을 가렸다. 열아홉 쪽짜리 장과 두 쪽짜리 장을 한 묶음에 넣은 것이 이미 그 일이다.

범례를 지우자는 말이 나왔고 지우지 않았다.

지우면 이 문서가 무엇을 하지 않으려다 하고 말았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등사한 사십 부 가운데 서른아홉 부가 본편 해제를 쓰는 사람들에게 나갔다.

한 부는 대조실 서가 맨 아래 칸에 남았다. 그 한 부의 표지 안쪽에 연필로 쪽수가 적혀 있다.

십구 대 이. 그 아래에 아무 말도 없다.


미 의회 대한민국 법률 보고 접수 대장 총괄, 1947~2027

편철 백구 책. 하원 서기관실 소관. 회기마다 한 책이고 두 회기가 한 책인 해가 열넷 있다.

국립문서관 정본 대조실이 2019년에 마이크로필름 사본을 받아 왔다.

대장의 칸은 여섯이다. 접수번호, 접수일, 법률의 이름, 원문 쪽수, 회부처, 처리.

여섯째 칸에 적히는 말은 세 가지뿐이다. 「회부」와 「종결」과 「무효」다.

총괄은 이 여섯 칸을 팔십 년치로 합산한 낱장 문서다. 표제 아래에 작성자란이 없다.

접수 대장 백구 책이 한 서가에 다 들어간다.

하나 — 백구 책

대장의 첫 책은 1947년 8월에 열렸다. 조직법 시행일과 같은 달이다.

첫 장 첫 줄의 접수번호는 일이고 법률의 이름 칸에 적힌 것은 그해 9월에 이 나라 국회가 의결한 첫 법률이다. 원문 쪽수는 넉 장이다.

회부처 칸에는 하원 도서(島嶼)위원회가 적혀 있다. 처리 칸에는 「종결」이 적혀 있다.

회부처 칸에 적힌 위원회의 이름은 팔십 년 동안 다섯 번 바뀌었다. 위원회가 없어지거나 소관이 옮겨 갔기 때문이다.

바뀐 다섯 번 가운데 어느 것도 이 나라에 알리지 않았다. 알릴 절차가 조문에 없다.

이 나라 외무부가 그 변경을 안 것은 회신 봉투의 발신처를 보고서다.

처리 칸에 적히는 말은 회부와 종결과 무효, 셋뿐이다. 팔십 년 치 백구 책에서 무효는 몇 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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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닐로프전 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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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의회(議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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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만세(萬歲)

8제14장 선언(宣言)9제15장 파리10제17장 영(零)11제18장 유월

제4부 공채(公債)

12제19장 위원부(委員部)13제22장 대체(代替)14제23장 두 갈래15제25장 장부(帳簿)16제27장 빚17제28장 청문(聽聞)18제30장 십칠만

제5부 군자금(軍資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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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전시(戰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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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부 대조(對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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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부 자주(自主)

55제97장 아홉 조56제98장 팔십 년57제99장 값58제100장 표지(表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