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1부 전신(電信)
2화제2장 사자(使者)
보리스 사빈코프, 『모길료프의 사흘』, 제3장
1923년 파리 간행. 러시아어 초판. 발행 부수는 판권장에 적혀 있지 않다.
제3장의 표제는 「종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이 변명이 아니라고 적었다. 변명할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제3장 첫머리에 저자가 붙인 주가 하나 있다. 이 장에 나오는 대화는 그날 밤 숙소에서 적어 둔 것에 의거한다.
적어 두지 못한 대화는 이 장에 넣지 않는다.

합의는 그 사흘에 이루어졌다. 나중에 무너진 것은 합의가 아니다.
하나 — 초안
8월 22일 아침 육군차관이 모길료프에 닿았다. 대본영은 도시 남쪽 언덕에 있고 참모부는 그 별관을 썼다.
그 자리에 간 사람은 군인이 아니었다. 그는 십오 년 동안 정부를 무너뜨리는 일을 했고 그해 여름에는 정부의 차관이었다. 대본영이 그를 상대로 앉힌 것은 그가 군을 알아서가 아니라 정부를 대신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가 갖고 간 것은 요구가 아니었다. 요구를 받으러 간 것도 아니었다. 그의 가방에는 종이 한 장이 있었고 그 종이에는 네 항이 적혀 있었다.
회고록 제3장은 그 문면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옮겨 놓은 이유는 뒤에 나온다.
一. 제3기병군단을 페트로그라드 근교로 이동시킨다. 이동을 요청하는 쪽은 정부다.
二. 군단은 도착한 날부터 정부의 처분에 둔다.
三. 수도의 계엄은 정부가 편다. 집행은 군관구가 맡는다.
四. 군단에 캅카스 기병사단을 넣지 아니한다. 군단장은 따로 정한다.
첫 항에서 정한 것은 자리다. 시내가 아니라 근교다. 두 낱말의 사이가 이 일의 전부였다. 시내에 들어온 군단은 계엄의 집행자가 되고 근교에 선 군단은 계엄의 배경이 된다. 배경으로 서 있는 부대는 명령을 기다리는 부대이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네 항 가운데 셋은 대본영이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이다. 넷째 항만 다르다. 넷째 항은 부대의 편성과 인사에 관한 것이고 그것은 총사령관의 소관이다.
이 종이의 첫 줄은 군을 부르는 문장이 아니라 정부가 군을 불렀다고 적어 두는 문장이다.
둘 — 사흘
첫 회담은 그날 오전에 열렸다. 회고록은 그 자리의 문답 가운데 여섯 마디를 적어 두었다.
총사령관이 물었다. — 이 종이는 누가 썼소.
— 내가 썼소.
— 정부의 문서요.
— 아직 아니오. 정부의 문서가 되려면 각의를 거쳐야 하오.
— 그러면 이것은 무엇이오.
— 내가 받아 온 말을 적은 것이오.
— 받아 온 말은 종이가 아니오.
— 그래서 적었소.
둘째 회담은 이튿날 저녁이었다. 여기서 넷째 항이 걸렸다.
— 사단 하나를 빼라는 것은 무슨 뜻이오.
— 수도에 들이기에 마땅치 않소.
— 마땅치 않다는 것은 군사적 판단이오, 정치적 판단이오.
— 정치적 판단이오.
— 정치적 판단으로 부대 편성을 정하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정하겠소.
— 그다음은 정부가 정하오. 그것이 정부요.
— 좋소. 넣지 않겠소.
— 군단장은.
— 그것은 내가 정하오.
셋째 회담은 24일 아침에 열렸고 짧았다. 회고록은 그 자리에서 오간 말을 두 마디만 적었다.
— 요청서는 어디 있소.
— 이 종이가 요청서요.
— 서명이 없소.
— 서명은 돌아가서 받소.
— 서명 없는 요청으로 군단을 움직이라는 말이오.
— 그렇소.
회고록은 이 대목에 한 줄을 붙였다. 그때 나는 그 말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해 여름에는 서명 없이 움직인 일이 서명을 받고 움직인 일보다 많았다.
셋 — 팔월 십구일
사흘 동안 두 사람이 되풀이해 꺼낸 문서가 하나 있다. 사흘 앞서 페트로그라드에서 온 전문이다.
그 전문은 짧고 문면이 한 가지로 읽히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이 들어 있고 승인한다는 말은 들어 있지 않다.
대본영은 그것을 승인으로 읽었다. 원칙에 동의했으면 실행에도 동의한 것이라고 보았다.
정부는 그것을 승인의 예고로 읽었다. 원칙에 동의한다는 말은 문안이 오면 결재하겠다는 뜻이라고 보았다.
회고록은 어느 쪽이 옳은지 적지 않는다. 다만 그 전문이 대본영에 닿은 경로를 한 문단으로 적어 두었다.
전문은 암호로 갔다. 대본영 전신과가 그것을 풀어 다른 종이에 옮겨 적었다. 회람된 것은 옮겨 적은 종이다. 푼 사람의 이름은 남아 있고 원문과 옮긴 것을 대조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 사흘 동안 두 사람이 근거로 삼은 문면은 아무도 원본과 맞춰 보지 않은 문면이다.
대신 적어 둔 것이 있다.

— 나는 그 전문을 22일 기차 안에서 다시 읽었다.
— 두 번 읽었고 두 번 다르게 읽혔다.
— 나는 그것을 그때 문장의 흠이라고 생각했다.
— 문장의 흠이 아니었다. 그렇게 쓴 것이었다.
— 어느 쪽으로도 읽히는 문장은 쓴 사람에게 두 개의 길을 남긴다.
—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두 사람은 사흘 동안 합의했고, 합의의 근거로 서로 다르게 읽히는 종이 한 장을 쓰고 있었다.
넷 — 두 부
24일 오후 그는 대본영을 떠났다. 페트로그라드행 열차는 밤을 꼬박 달린다.
그 밤에 그가 한 일이 이 장의 표제가 된 일이다. 그는 무릎에 가방을 놓고 네 항을 두 번 베껴 적었다. 군용 괘지를 썼고 잉크는 차장에게 얻었다.
베낀 두 부에는 날짜와 장소가 들어갔다.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모길료프. 그리고 그 아래에 이 문면이 사흘 동안 대본영에서 다투어진 문면과 같다는 한 줄을 적고 자기 이름을 적었다.
서명은 그의 것뿐이다. 상대의 서명은 없다.
— 나는 그때 왜 두 부를 만들었는지 적어 두지 않았다.
— 뒤에 여러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 나는 매번 다르게 답했다.
— 여기 적는 것도 그중 하나다.
— 사흘 동안 나는 종이가 없다는 말을 세 번 들었다.
— 세 번째에 나는 그 말을 그만 듣고 싶었다.
이튿날 대본영에서 군단 이동 명령이 나갔다. 명령서의 근거란에 적힌 것은 8월 19일의 전문이다.
기차에서 베낀 두 부는 근거란에 적히지 않았다. 적힐 자리가 없었다. 명령의 근거란에는 상급 기관의 문서 번호를 적게 되어 있고, 차관이 손으로 베낀 종이에는 번호가 없다.
열차는 25일 아침 페트로그라드에 닿았다. 그는 그날 오후 두 부 가운데 한 부를 부서 문서철에 넣었다. 다른 한 부는 넣지 않았다.
문서철에 들어간 한 부는 접수 도장을 받았다. 도장에는 날짜와 부서만 찍힌다. 무엇이 들어왔는지는 문서철 목록에 적는데, 그 자리에 적힌 것은 「대본영 출장 복명 관계」 여덟 자다.
여덟 자 안에 네 항은 들어가지 않는다. 목록을 보고 그 종이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그 종이를 넣은 사람뿐이다.
넣지 않은 것을 그는 그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회고록을 쓰는 시점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다만 그 이유는 지금도 대지 못한다고 적었다.
제3장은 여기서 끝난다. 마지막 줄은 종이에 관한 것이다. 그 사본은 접힌 자국이 셋이다. 한 번은 가방에 넣느라 접었고 나머지 둘이 언제 생겼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르보프 심문조서
페트로그라드 예심판사부. 1917년 9월. 사건 표제는 「팔월 이십육일 문서 작성 경위에 관한 건」이다.
조서는 아홉 쪽이고 증거 목록이 한 쪽 붙어 있다. 증거 제1호는 종이 한 장이다.
조서 양식은 제7호를 썼다. 물음과 답을 좌우로 나누지 않고 위아래로 적는 양식이다.
이 양식에서는 답이 없으면 「답변 없음」이라고 적는다.
이 조서에는 답이 적히지 않은 물음이 하나 있다.
8월 26일 저녁 르보프가 겨울궁전 집무실에 있었다. 그는 나흘 전에도 그 방에 왔고 사흘 전에는 모길료프에 있었다.
르보프는 그해 여름 관직에 있지 않았다. 봄까지 종무원 총감이었고 오월에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관직에 없는 사람이 대본영과 총리 집무실을 오간 것이 이 사건의 형식이다.
관직에 없으면 문서가 없다. 공무로 간 사람에게는 출장 명령과 복명서가 있고 그 사람에게는 둘 다 없었다. 있는 것은 그가 두 곳에 있었다는 사실뿐이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를 만난 사람들뿐이다.
그날 그가 전한 것은 세 가지였다. 총리가 그것을 적어 달라고 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적었다. 증거 제1호가 그 종이다.
一. 페트로그라드에 계엄을 편다.
二. 모든 군사와 민사의 권력을 총사령관에게 넘긴다.
三. 각료는 전원 사퇴한다. 총리와 육군차관은 대본영으로 온다.
이 세 항은 사흘 전 대본영에서 합의된 네 항과 다르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방향이 반대다. 네 항은 군단을 정부의 처분에 두는 문서이고 세 항은 정부를 총사령관의 처분에 두는 문서다.
한 사람이 사흘 사이에 두 가지를 다 들었다면 둘 중 하나는 잘못 들은 것이다.
하나 — 기억
예심의 첫날은 그 종이의 작성 경위만 물었다.
심문관이 물었다. — 이 종이를 누가 썼소.
— 내가 썼소.
— 어디서 썼소.
— 겨울궁전 집무실에서 썼소.
— 누가 쓰라고 했소.
— 총리가 적어 달라고 했소.
— 무엇을 보고 적었소.
— 보고 적은 것은 없소.
— 그러면 무엇으로 적었소.
— 기억으로 적었소.
— 기억한 것은 언제 들은 것이오.
— 사흘 전 모길료프에서 들었소.
— 들은 말을 그대로 적었소.
— 뜻을 적었소.
— 뜻과 말은 같지 않소.
— 같지 않소.
네 항과 세 항, 사흘 사이에 방향이 뒤집힌 두 장의 종이. 조서 아홉 쪽에는 답이 적히지 않은 물음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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