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6부 전시(戰時)
23화제42장 각서(覺書)
둘 — 앞의 둘
— 자료가 왔다.

— 무엇이 왔는가.
— 단체 사이의 합의 문서다. 갈래가 줄었다고 한다.
— 갈래가 줄었으면 둘째 이유가 약해진다.
— 그렇다.
— 그러면 첫째로 답하라.
— 첫째도 자료가 왔다.
— 그러면 셋째로 답하라.
— 셋째는 회람용 문서에 그대로 적을 수 없다.
— 그러면 재검토 시기를 정하지 않는다고 적으라.
둘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드러나지 않게 하려면 시기를 정하지 않으면 된다.
셋 — 삼십 년
문서는 삼십 년이 지나 공개되었다. 1973년이다.
삼십 년은 문서가 사람보다 오래 사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정해진 이유는 그 안에 든 사람들이 대개 자리에서 물러나 있기 때문이다. 물러난 사람의 판단은 더 이상 정책이 아니므로 공개해도 정책이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는 것은 그 판단을 상대로 삼았던 쪽이다.
극동국 편철 가운데 한국 관련 각서가 세 건이었고 제3호가 그중 마지막이다. 공개 목록에는 표제와 날짜만 실렸다.
열람실은 지하였고 신청서에 열람 사유를 적는 칸이 있었다. 대개는 연구라고 적는다.
목록을 보고 열람을 신청한 사람이 있다. 1943년에 그 요청서의 문안을 만든 사람이다. 그해에 그는 쉰한 살이었고, 열람하던 해에 여든한 살이었다.
그는 요청서를 다섯 번 고쳐 썼다. 고칠 때마다 앞의 두 이유에 맞추어 자료를 더 붙였다.
붙인 자료는 뒤로 갈수록 두꺼워졌다. 다섯째 판에서는 첨부가 본문보다 훨씬 두꺼웠다.
두꺼워진 것은 답이 아니라 답하려는 쪽의 성실함이었다.
그가 열람 뒤에 남긴 소감은 여덟 줄이다.
— 나는 삼십 년 동안 우리 자료가 모자랐다고 생각했다.
— 자료는 모자라지 않았다.
— 우리가 답한 것은 물음이 아니었다.
— 물음은 셋째 줄에 있었고 우리는 그 줄을 보지 못했다.
— 보았더라도 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 그 줄에 답하려면 우리가 아니라 저쪽이 달라져야 한다.
— 나는 그 삼십 년을 헛수고라고 부르지 않겠다.
— 다만 무엇을 한 것인지는 이제야 안다.
각서 제3호의 뒷장 회람란에는 서명이 넷 있어야 한다. 배포처가 넷이기 때문이다.
서명은 셋뿐이다. 지워진 배포처의 자리는 비어 있다.
지운 것이 언제인지는 공개본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카이로 선언 초안 3종 대조』 미합중국 국무부 역사실, 1994, 부록 A
부록 A는 종이 넉 장을 나란히 붙여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왼쪽부터 제1고, 제2고, 제3고, 그리고 발표된 확정본이다.
편자는 서문에서 한 가지를 미리 적어 두었다.
「세 고와 확정본 사이에 몇 차례 더 손이 갔는지는 확정하지 못하였다. 그 사이의 종이가 이 편철에 없다.」
부록 A에는 조선에 관한 대목만 잘라 붙였다.
넉 장은 크기가 다 다르다.
세 고는 문면이 같다. 다른 것은 종이와 타자기와 여백의 표시뿐이다.
제1고는 얇은 먹지이고 제2고는 도톰한 편지지다. 제3고에는 접힌 자국이 셋 있다. 세 번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는 뜻이다.
같은 대목을 칸에 넣으면 이렇다.
| 대목 | 제1고 | 제2고 | 제3고 | 확정본 |
|---|---|---|---|---|
| 그 나라의 이름 | 있다 | 있다 | 있다 | 있다 |
| 자유와 독립 | 있다 | 있다 | 있다 | 있다 |
| 시기를 정하는 말 | 가장 이른 시기에 | 가장 이른 시기에 | 가장 이른 시기에 | 적당한 시기에 |
세 줄 가운데 두 줄이 넉 장에서 같다. 바뀐 것은 셋째 줄이고, 바뀐 자리는 셋째 칸과 넷째 칸 사이다.
그 사이에 있던 종이가 이 편철에 없다.
없는 것을 두고 1994년의 편자들이 주고받은 말이 부록 A의 편자 주에 실려 있다.
— 사이의 고가 있었을 것이다.
— 있었다면 어디에 있는가.
— 회담장에서 고친 것은 편철되지 않는 일이 있다.
— 고친 사람의 이름을 적을 수 있는가.
— 적을 수 없다. 손글씨가 남은 종이가 없다.
— 그러면 무엇을 적는가.
— 앞의 말과 뒤의 말을 적는다.
— 그 사이는.
— 비워 둔다. 비워 두는 것도 결과다.

두 말은 길이가 다르다. 앞의 말은 때를 앞으로 당기고 뒤의 말은 때를 정하지 않는다.
정하지 않는 말은 약속을 깨지 않는다. 다만 언제 지킬지를 지키는 쪽이 정하게 한다.
받는 쪽에서는 두 말이 다 좋은 말로 읽힌다. 자유와 독립이라는 말이 앞에 있기 때문이다. 좋은 말 뒤에 붙은 짧은 부사를 세는 사람은 그때 많지 않았다.
그 문장에서 뒤에 일한 것은 앞의 두 낱말이 아니라 뒤에 붙은 한 마디다.
실사에서 이 한 마디는 뒤에 오래 인용된다. 인용하는 쪽이 둘이었고 둘이 서로 다르게 읽었다.
이 세계에는 그중 한 쪽이 없다. 다르게 읽을 상대가 하나 줄어 있다.
그런데도 이 자리에서 말은 똑같이 바뀐다.
상대가 없어도 바뀐다면, 그 말은 상대 때문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부록 A의 넷째 장 아래에는 발표 날짜가 인쇄되어 있다. 12월 1일이다.
앞의 세 장에는 날짜가 없다. 초고에는 대개 날짜를 적지 않는다. 언제 쓴 것인지는 쓴 사람만 알면 되기 때문이다.
쓴 사람은 그것을 적어 둘 이유가 없었다.
『전후 한국 처리 구상의 형성』 미합중국 국무부 역사실, 1994, 제4장
제4장의 표제는 「전제(前提)」다.
이 장은 구상을 소개하지 않고 구상이 서 있던 자리를 먼저 적는다.
편자는 첫 문단에서 이렇게 밝힌다.
「구상을 읽을 때는 무엇을 하려 했는가보다 무엇을 있다고 보았는가를 먼저 본다. 앞엣것은 문서에 적히고 뒤엣것은 적히지 않는다.」
제4장에는 지도가 한 장도 실려 있지 않다.
이 장에는 넷째 나라가 나오지 않는다.
하나 — 넷
미국의 구상은 여럿이 함께 맡는 것이었다. 몇 해 동안 함께 맡다가 넘겨준다는 것이고, 몇 해인지는 문서마다 달랐다.
함께 맡는 데 필요한 것은 함께 맡을 상대다. 상대는 셋이 거론되었고, 그중 둘은 이미 그 전쟁 안에 있었으며, 넷째 자리는 비어 있었다.
넷째 자리에 들어올 나라는 하나뿐이다. 그 나라가 그 전쟁에 들어오면 국경을 맞대고 있으므로 자연히 상대가 된다.
이 세계에서 그 나라는 그 전쟁에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오지 않은 사정은 이 보고서가 정하지 않고 두 가지 설을 나란히 적는다.
앞의 설은 유럽에서 쓴 것을 아직 채우지 못했다고 본다. 뒤의 설은 채웠더라도 그만큼을 동쪽으로 옮길 힘이 없었다고 본다.
두 설이 다투는 것은 이유이지 사실이 아니다. 오지 않았다는 것은 양쪽이 같이 적는다.
제4장의 검토 문답이 각주 열둘에 실려 있다.
— 넷이 아니면 셋으로 할 수 있는가.
— 셋이면 함께 맡는 뜻이 없어진다.
— 왜 없어지는가.
— 함께 맡는 것은 나누어 갖자는 것이 아니라 혼자 갖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 혼자 갖지 못하게 할 상대가 없으면.
— 그러면 혼자 갖는다.
— 혼자 갖는 것을 무어라 부르는가.
— 부를 이름은 그때 가서 정한다.
신탁은 사이좋게 하자는 제도가 아니라 서로를 막자는 제도다.
막을 상대가 없으면 제도가 서지 않는다. 서지 않는 제도는 논의에서 조용히 빠지고, 빠진 자리에는 회의록이 남지 않는다.
제4장이 지도를 한 장도 싣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나눌 것이 없으면 그릴 것도 없다.
둘 — 서식
남는 것은 하나가 맡는 일이다.
하나가 맡을 때 필요한 것은 명분이 아니라 서식이다. 누가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현지 사람을 어느 자리에 앉히고, 그 자리의 권한을 어디에 적어 두는가.
이것을 그때 미국은 이미 갖고 있었다. 1898년 이후 사십칠 년 동안 같은 계열의 법으로 섬 하나를 다스려 왔기 때문이다.
사십칠 년은 서식이 익는 시간이다. 처음 열 해는 다투고, 다음 스무 해는 고치고, 마지막 스무 해는 그냥 쓴다. 그냥 쓰는 동안 그 서식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관청마다 생긴다.
서식이 익었다는 것은 그것을 쓰는 데 아무 결심도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계열의 법은 통치를 자백하지 않는다. 조직법이라 부르고, 자치라 부르고, 정부를 조직한다고 적는다. 조문의 대부분은 그 나라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적고, 몇 조만이 그것을 누가 뒤집을 수 있는지를 적는다.
— 새 서식을 만들어야 하는가.
— 있는 것을 쓰면 된다.
— 그쪽과 이쪽은 사정이 다르다.
— 조문은 사정을 적지 않는다. 절차를 적는다.
— 절차가 같으면 결과도 같아지는가.
— 대개 그렇다.
— 그것이 이 서식의 좋은 점인가.
— 그것이 이 서식을 고르는 이유다.
있는 서식을 쓰는 것은 결정이 아니라 절약이다. 절약한 것은 시간이고, 그 시간에 다른 것을 정하지 않는다.
제4장의 마지막 문단은 두 줄이다.
한 줄은 이 시기의 문서 가운데 한국의 장래 지위를 새로 설계한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적는다. 다른 한 줄은 그것이 소홀함의 증거는 아니라고 적는다.
설계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서랍에 이미 있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 「일반명령 제1호」 초안 제2고 및 확정본, 1945년 8월
두 벌이 한 편철에 있다. 앞의 것이 초안 제2고이고 뒤의 것이 확정본이다.
제2고는 등사이고 확정본은 활자다. 제2고에는 여백이 넓고 확정본에는 여백이 없다.
문서가 정하는 것은 하나다. 어느 구역의 일본군이 누구에게 항복하는가.
제2고 첫 장 오른쪽 여백에 연필 글씨가 한 줄 있다.
확정본에는 그 줄이 여백이 아니라 본문에 있다.
이 문서는 나라를 나누는 문서가 아니다. 실사에서 나라를 나눈 것이 이 문서다.
실사에서 나라를 나눈 문서가 온다. 제2고 여백의 연필 한 줄이, 확정본에서는 본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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