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닐로프 제8부 조직법(組織法)
33화제58장 두 배
셋 — 세입란
넘어간 비용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되돌리려면 넘겨받은 쪽이 그만두어야 하고, 그만두면 그날부터 곡식과 전기와 기차가 멈춘다.

부표는 본표 뒤에 접어 넣었다. 접은 자국이 하나다. 접힌 쪽이 안으로 들어가서 권을 세워도 부표는 보이지 않는다.
이듬해 예산서에는 부표가 없다. 붙이라는 지시가 그해에는 오지 않았다.
전례 대조는 한 번으로 끝났다. 한 번 대조한 뒤에는 대조할 것이 없다. 두 곳이 같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조선 쪽의 칸이 이미 채워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사』 2003년판, 제10장 보론 「1946년 7월의 마닐라」
보론은 본문과 활자 크기가 다르다. 두 쪽이다.
앞 쪽은 그날의 식순을 적고 뒤 쪽은 같은 주에 있었던 다른 서명을 적는다.
이 보론은 1990년판에 없다. 2003년판에서 처음 들어갔다.
넣은 사유는 편수 자료에 한 줄로 남아 있다. 「전례로 다룰 것.」
보론의 마지막 문장은 물음이 아니라 평서다.
1946년 7월 4일 정오, 마닐라에서 기 하나가 내려가고 기 하나가 올라갔다.
하나 — 정오의 식순
식은 짧았다. 기를 내리고 기를 올리고 조약에 서명한다.
내려간 기는 사십팔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올라간 기는 그전에도 한 번 올라간 적이 있고 그때는 오래가지 않았다.
날짜를 그날로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합중국이 자기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는 쪽이 날짜를 골랐다.
날짜를 고른 쪽이 있다는 것은 그날 식장에서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문제 삼을 자리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날은 좋은 날이었다.
사십팔 년 동안 그 섬에서 만들어진 법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으면 이렇다.
먼저 조약이 있었다. 그다음에 조직법이 왔고 열네 해 뒤에 자치법이 왔다. 다시 열여덟 해 뒤에 독립법이 왔고 그 이듬해에 자치정부가 섰다.
법의 이름이 바뀔 때마다 그 섬 사람의 몫이 늘었다. 늘어난 몫은 되돌려지지 않았다. 그 점에서 이 사십팔 년은 앞으로 나아간 사십팔 년이다.
다만 법을 만든 곳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다섯 개의 법이 다 같은 의사당에서 나왔다.
보론 앞 쪽 마지막 문단은 이렇다.
— 이 식은 삼십 분 만에 끝났다.
— 삼십 분에 끝난 것은 식이지 절차가 아니다.
— 절차는 열두 해 전에 시작되었고 그날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 시작한 날짜와 끝난 날짜가 다 적혀 있는 나라를 우리는 그때 부러워하였다.
부러워한 것은 독립이 아니라 날짜였다.
둘 — 같은 주
같은 주에 마닐라에서 다른 서명이 있었다. 식장보다 작은 방이었고 사진이 남지 않았다.
그해 봄에 미 의회가 통상법 하나를 만들었다. 앞으로 두 나라 사이의 관세와 환율을 정하는 법이다.
그 법에 한 조항이 들어 있었다. 미합중국의 시민과 법인이 필리핀의 천연자원과 공익사업에서 필리핀 사람과 같은 권리를 갖는다는 조항이다.
같은 권리라는 말은 좋은 말이다. 이 말에는 어느 쪽을 낮추는 뜻이 없다. 문면만 보면 두 나라 사람이 나란히 선다.
나란히 서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두 나라의 자본이 같은 크기일 때만 문면대로다. 크기가 다르면 같은 문이 한쪽에만 넓다.
그 법에는 환율을 정하는 조항도 있었다. 두 나라 돈의 값을 정해 두고 여러 해 동안 바꾸지 않기로 한 것이다.
같은 날 다른 법도 만들어졌다. 전쟁 피해를 갚는 법이다. 그 법의 돈은 앞의 법을 받아들이는 것과 묶여 있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돈이 오지 않는다. 도시 하나가 그 전해에 부서졌고 그 도시를 다시 세울 돈이 그 돈이었다.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그 나라 헌법이 그 조항과 어긋났다.
그 나라 헌법은 천연자원과 공익사업을 자기 나라 사람과 자기 나라 법인에게만 열어 두었다. 열두 해 전에 그 헌법을 만들 때 넣은 조항이다.
그러므로 통상법을 받으려면 헌법을 고쳐야 했다. 고치는 방법은 그 나라 헌법에 적혀 있다. 의회의 의결과 국민투표다.
이듬해 봄에 그 투표가 있었다. 결과는 이 회차에 적지 않는다.
보론 뒤 쪽은 이 대목을 세 줄로 적었다.
— 열두 해 전에는 헌법에 무엇을 넣으라고 하였다.
— 이번에는 헌법에서 무엇을 빼라고 하였다.
— 빼라고 한 것은 자기 나라 사람에게만 열어 두었던 문이다.
넣으라고 한 것과 빼라고 한 것은 같은 손이 하였다.
셋 — 날짜를 읽은 쪽
서울에서 이 소식은 하루 뒤에 실렸다. 신문 한 면의 아래쪽이다.
읽은 사람들이 먼저 센 것은 햇수다. 사십팔 년이다. 그다음에 센 것은 자기 쪽의 햇수다. 서른여섯 해다.
두 수를 나란히 놓으면 뒤엣것이 짧다. 짧은 쪽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해 여름 서울에서 그 두 수를 나란히 놓는 일은 흔했다.
흔했던 까닭은 앞엣것에 끝나는 날짜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서울의 신문은 마닐라의 식을 큰 활자로 싣지 않았다. 큰 활자를 쓴 것은 쌀값과 전기 사정이었다.
작은 활자로 실린 기사에도 사십팔이라는 수는 들어 있었다. 그 수를 읽은 사람은 자기 쪽의 수를 소리 내어 세지 않았다. 세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군정청 법무부 조선인 직원들의 말이 그 무렵 통역 각서에 옮겨져 있다.
— 저 나라는 언제 날짜를 받았는가.
— 열두 해 전이다.

— 열두 해를 기다렸다는 말인가.
— 그렇다.
— 우리에게도 그런 문서가 있는가.
— 없다.
— 카이로에서 무어라 하였는가.
— 적당한 시기에 자유롭게 독립시킨다고 하였다.
— 적당한 시기가 언제인가.
— 적혀 있지 않다.
— 적혀 있지 않은 것은 누가 정하는가.
— 적은 쪽이 정한다.
기다릴 날짜가 있는 쪽과 없는 쪽의 차이는 기다리는 마음의 차이가 아니다. 셈의 차이다.
날짜가 있으면 남은 햇수를 셀 수 있다. 셀 수 있으면 그 햇수 동안 무엇을 할지 정할 수 있다.
날짜가 없으면 셀 것이 없다. 셀 것이 없는 쪽은 정하는 대신 기다린다.
넷 — 조문을 읽은 쪽
워싱턴에서 같은 소식을 읽은 사람은 신문을 먼저 보지 않았다. 관보를 샀다.
표재선은 그해 쉰일곱이었다. 스물다섯 해 동안 그가 한 일은 문서를 넣는 것과 셈을 맞추는 것이다.
관보를 산 날 그가 꺼낸 것은 열한 해 전에 등사한 원지 여덟 장이다. 사무소 문서철 맨 뒤에 있었다.
그 여덟 장에는 열여섯 항이 옮겨져 있다. 그중 마지막 항이 미합중국의 시민과 법인의 권리를 정하는 항이었다.
그는 그 항을 가장 짧다고 적어 두었었다. 짧다는 것과 작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회계에서 짧은 항목은 대개 뒤에 커진다. 짧게 적힌 것은 그때 다툴 일이 없다는 뜻이고, 다툴 일이 없다는 것은 아직 값이 붙지 않았다는 뜻이다.
값이 붙는 날이 오면 그 항목은 길어진다. 길어질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처음에 적어 둔 짧은 문면이다.
유고 제7장에 그날 저녁의 대조가 여덟 줄로 남아 있다.
— 열한 해 전 나는 제16항을 가장 늦게 깨어날 조항이라 적었다.
— 깨어나는 데 열한 해가 걸렸다.
— 열한 해는 내 예상보다 짧다.
— 깨어난 자리도 내 예상과 다르다.
— 나는 그것이 그 나라 헌법 안에서 깨어날 줄 알았다.
— 밖에서 깨어나 헌법을 고치라고 하였다.
— 조항이 헌법보다 늦게 만들어졌는데 헌법을 고친다.
— 이런 셈은 내 장부에 없다.
마지막 줄이 이 회차의 값이다. 그는 그것을 셈으로 보았고 셈에는 그런 칸이 없었다.
그날 그가 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다. 그 조항을 조선에 놓아 보지 않았다.
놓아 보려면 조선에 그 조항을 받을 자리가 있어야 한다. 열두 해 전에 그가 같은 이유로 하지 않은 일이다.
이번에는 이유가 달랐다. 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리가 생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생기는 중인 것은 아직 셈할 수 없다.
셈할 수 없는 것을 그는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은 것은 문서가 되지 않는다.
그가 스물다섯 해 동안 지킨 규칙이 그것이다. 오지 않은 것을 있는 것으로 세지 않는다. 그 규칙 덕분에 그의 장부는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은 장부는 뒤에 증거가 된다. 증거가 될 때 그 장부가 무엇을 증명하게 되는지는 장부를 적는 사람이 정하지 못한다.
두 달 뒤에 워싱턴에서 법안 하나가 제출된다. 그 법안의 여덟째 조가 그가 그날 읽은 조항과 같은 말로 되어 있다.
그는 그 법안이 나온 뒤에야 그것을 읽는다. 읽은 날 그가 한 일은 관보를 한 부 더 산 것이다.
한 부는 사무소에 두고 한 부는 접어서 저고리 안주머니에 넣었다.
넣어 둔 것은 넉 달 뒤 청문회장까지 그대로 간다. 꺼내지는 않았다.
미 상원 제출 법안 S.2288 「대한민국 조직법안」 제1독회 원문. 제79차 의회 제2회기. 1946년 9월.
열두 쪽이고 마지막 쪽은 절반이 비어 있다.
표제 아래에 부제가 붙어 있다. 「조선에 있어서 민정의 시행을 잠정적으로 규정하고 기타의 목적을 위한 법률안.」
「잠정적으로」는 부제에 있고 본문 아홉 조에는 없다.
제출자란에 의원 한 사람의 이름이 있다. 기초자를 적는 칸은 이 서식에 없다.
제1독회 원문에는 심의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접수와 회부만 적힌다.
이 법안을 쓴 사람은 새 문장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하나 — 기초자란
법안을 낸 것은 상원 의원 한 사람이다. 쓴 것은 국무부 극동국이다.
미 의회의 법안 서식에는 쓴 사람을 적는 칸이 없다. 낸 사람만 적는다. 그래서 이 법의 문면에 대한 물음은 뒷날 어디로도 돌아가지 못한다.
극동국이 책상에 올려 놓은 것은 셋이다. 사십사 년 전의 조직법, 서른 해 전의 자치법, 열두 해 전의 독립법이다.
셋은 다 미 의회가 만든 법이고 셋 다 한 섬을 다룬다. 셋 다 이미 통과된 문장이다.
이미 통과된 문장에는 큰 장점이 있다. 다시 다투지 않는다.
책상에 올라오지 않은 것도 둘 있다. 독일을 다룬 문서와 일본을 다룬 문서다.
그 둘은 적국을 다루는 서식이다. 조선은 적국이 아니다. 적국이 아닌 땅에 군정을 편 전례가 이 나라에는 하나뿐이었다.
전례가 하나뿐일 때 그 전례를 고를 것인가는 물음이 되지 않는다. 물음이 되려면 견줄 것이 둘 이상 있어야 한다.
쓴 사람을 적는 칸이 없는 법안 열두 쪽. 새 문장을 거의 쓰지 않은 그 문면은 어느 섬의 세 법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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