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3부 등록(登錄)
9화제14장 혈통(血統)
넷 — 열에 하나
— 나는 그 물음을 받은 날을 적어 두었다.

— 1952년 2월 11일이다.
— 나는 그날 고치지 아니한다고 답했다.
— 나는 그 답을 서른세 해 동안 옳다고 여겼다.
— 지금도 그 답이 틀렸다고 여기지 않는다.
— 다만 나는 그날 하나를 하지 않았다.
— 나는 몇 명인지를 묻지 아니하였다.
묻지 않은 것과 틀린 것은 다르다. 이 편은 그 둘을 같은 저울에 올리지 않는다.
물었더라도 답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1952년 2월에 이 정부에는 분모가 없다. 등록은 넉 달 뒤에 시작한다.
그리고 1952년에 이 조문에 걸리는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이 조문이 사람을 세기 시작하려면 이 나라의 국민이 이 나라 밖의 사람과 혼인하는 일이 흔해져야 하고, 그렇게 되는 데는 한 세대가 든다.
한 세대 뒤에 그 수를 세는 부서가 생긴다. 그때 그 부서는 이 조문을 고치는 안을 올린다. 그 안이 어떻게 되는지는 제9조가 정한다.
세기 시작하면 값이 나온다. 값이 나오면 그 값을 놓고 표결을 한다. 표결은 두 번 열리고 두 번 다 문턱을 넘지 못한다. 부결 사유는 두 번 다 한 낱말이다. 계승.
사십육 해 뒤에 이 문면은 본토가 아닌 곳에서 고쳐진다. 개정은 소급하지 않는다. 소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세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회차는 그 수를 적지 않는다. 그때 그것을 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초안 넉 장은 1952년 3월에 정서(淨書)로 넘어갔다. 정서한 사람이 여백의 연필 자국을 지웠다. 지우라는 지시는 없었다. 정서할 때 여백을 지우는 것이 그 사람이 배운 방식이었다.
윤계원은 그 사실을 그달에 알았다. 그는 다시 적지 않았다. 유고에 사유가 한 줄로 있다. 여백은 조문이 아니어서 다시 적을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망명정부 재무 담당 「단기 4285년도 임시 세입 추계표」
1952년 3월 작성. 등사 1부. 야마구치 임시 청사 보관분.
결재란은 비어 있다. 표제 아래에 손으로 적은 단서가 한 줄 있다.
이 표는 걷을 수 있는 것을 적은 것이 아니라 걷을 수 없는 것을 적은 것이다.
이 나라의 첫 예산서는 빈칸으로 시작한다.
세입 추계표는 예산의 앞장이다. 세출은 뒤에 온다. 앞장이 정해지지 않으면 뒤장은 적을 수 없다.
이 표는 한 장이다. 항목이 일곱이고, 그 가운데 여섯이 비어 있다.
| 세목 | 추계액 | 사유 |
|---|---|---|
| 관세 | 없음 | 세관이 없다 |
| 소득세 | 없음 | 과세 관할이 없다 |
| 재산세 | 없음 | 과세 대상지가 없다 |
| 법인세 | 없음 | 등기할 법원이 없다 |
| 전매 수입 | 없음 | 전매 사업이 없다 |
| 수수료 | 소액 | 여권과 증명서 발급 |
| 국민 부담금 | 미정 | 요율을 정하지 못하였음 |
여섯 칸의 사유는 모두 같은 말이다. 다스리는 땅이 없다는 말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적었을 뿐이다.
수수료 칸의 「소액」은 액수가 아니라 짐작이다. 그해 이 정부의 여권을 받아 주는 나라가 줄고 있었고, 받는 나라가 줄면 신청도 준다. 그 칸은 이듬해에 한 번 더 줄어든다.
세금은 나라가 땅에 매기는 것이다. 땅이 없으면 매길 곳이 없다.
일곱째 칸에는 사유가 없다. 대신 「미정」이 적혀 있다.
미정인 것은 액수가 아니라 이름이었다. 그 자리를 무엇이라고 부를지가 그날 하루의 안건이다.
재무 담당이 물었다. — 이 표를 이대로 올리는가.
— 이대로 올린다.
— 빈칸이 여섯이다.
— 빈칸이 여섯인 것이 이 나라의 형편이다.
— 마지막 칸의 이름을 무엇으로 적는가.
— 세라고 적을 수 있는가.
— 적을 수 없다.
— 까닭이 무엇인가.
— 세는 다스리는 땅에서 걷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 땅이 없다.
— 헌금이라고 적는가.
— 헌금은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 내지 않아도 되는가.
— 되지 아니한다.
— 그러면 무엇이라고 적는가.
— 내는 사람이 스스로 진다는 뜻이 드는 이름으로 적는다.
— 부담금이라고 적겠다.

매길 수 없는 나라는 국민에게 지운다.
요율은 이 표에 없다. 요율이 정해지는 것은 아홉 해 뒤다.
그 아홉 해 동안 이 칸에 들어간 것은 헌금이었다. 헌금은 낼 수 있는 사람만 냈고, 낸 사람의 이름은 따로 적혔다. 따로 적힌 그 명부가 뒤에 무엇이 되는지는 이 표를 만든 사람들이 예상한 것이 아니다.
표의 왼쪽 위 여백에 연필로 적힌 나눗셈이 하나 있다. 세출 추계를 국민 수로 나눈 것이다. 나눈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그때 국민 수는 아직 세지 않았으므로 분모는 어림이다. 어림으로 나눈 값을 지우지 않고 둔 까닭은, 그것이 이 나라에서 처음 나온 한 사람 몫이기 때문이다.
이 표에 도장을 찍은 사람은 없다. 표가 정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정한 것은 낱말 하나뿐이다.
대한민국 관보(망명정부) 제41호
단기 4285년(1952) 4월 28일. 야마구치 임시 청사 발행. 등사 300부.
— 법률 제1호 대한민국 국적법을 이에 공포한다.
— 본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본 호 300부 가운데 11부는 등록소 예정지로 보낸다.
1952년 4월 28일, 이 정부는 국민을 아홉 조로 적었다.
하나 — 같은 날
그날은 대일강화조약이 발효한 날이다.
발효로 일본은 주권을 회복했다. 같은 발효로 재일 한인은 일본국적을 잃었다. 잃는 절차는 이레 전 통달로 미리 정해져 있었고, 잃는 데는 본인의 신청이 필요하지 않았다.
잃은 사람의 주머니에서 그날 바뀐 종이는 없다. 외국인등록증명서의 국적란에는 그전에도 「조선」이 적혀 있었고 그 뒤에도 「조선」이 적힌다.
바뀐 것은 그 두 글자 뒤에 있던 것이다. 전날까지 그 사람은 일본국적을 가진 채 「조선」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날부터는 아무 국적도 없이 「조선」이라고 적힌다.
공포일을 그날로 고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초실 기록에 그 자리가 있다.
한 사람이 물었다. — 공포일을 언제로 하는가.
— 4월 28일로 한다.
— 그날은 조약이 발효하는 날이다.
— 그래서 그날로 한다.
— 그날 재일 육십만이 일본국적을 잃는다.
— 안다.
— 잃은 다음 날 아침에 그 사람들에게 국적이 없다.
— 그래서 그날 우리 법이 있어야 한다.
— 우리 법이 있으면 그 사람들에게 국적이 있는가.
— 등록하면 있다.
이 마지막 두 줄 사이가 이 편의 전부다.
없어지는 쪽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없어진다. 생기는 쪽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해야 생긴다.
같은 날 하나가 자동으로 없어지고 하나가 신청으로 생겼다.
둘 — 조문
아홉 조는 짧다. 전문이 육백 자가 되지 않는다. 조마다 한 문장 또는 두 문장이다.
대한민국 국적법
망명정부 법률 제1호. 단기 4285년(1952) 4월 28일 공포·시행
제1조 (목적) 영토 밖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과 그 확인 절차를 정한다.
제2조 (국민) 출생한 당시에 부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제3조 (등록) 국민은 등록한다. 등록하지 아니한 자의 국적은 확인하지 아니한다.
제4조 (부담금) 등록한 국민은 매년 부담금을 낸다. 부담금의 액은 소득에 따라 정한다.
제5조 (국민증) 정부는 등록한 국민에게 국민증을 발급한다. 국민증은 여권에 갈음한다.
제6조 (참정) 등록하고 부담금을 낸 국민은 의원을 선출하고 의원이 된다.
제7조 (재산) 본토에 있는 국민의 재산에 관한 권리는 소멸하지 아니한다. 정부는 그 권리를 등록한다.
제8조 (귀환) 본토에 정부의 통치가 회복되는 날, 등록한 국민은 본토로 돌아갈 권리를 가진다.
제9조 (개정) 이 법은 본토 회복 전에는 국회 재적의원 삼분의 이 이상의 찬성으로만 개정한다.
읽는 순서가 곧 절차다. 사람을 정하고, 그 사람을 적고, 적은 사람에게 돈을 받고, 돈을 받은 사람에게 종이를 주고, 종이를 가진 사람에게 표를 준다.
제2조가 사람을 만들고 제3조가 그 사람을 지운다. 두 조문 사이에 있는 것은 마침표 하나다.
제1조의 「영토 밖에」는 그때 임시라는 뜻이었다. 밖에 있다는 것은 안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낱말이 다른 뜻으로 읽히기 시작하는 데 스무 해가 걸린다.
아홉 조 가운데 여덟 조가 등록한 사람에 관한 조문이다. 등록하지 않은 사람에 관한 조문은 제3조 뒷문장 하나다.
셋 — 삼분의 이
제9조는 안전장치로 만들어졌다. 만든 쪽은 기초실이 아니라 국회다.
그때 이 정부의 국회는 1950년 8월에 배에 오른 의원들로 이어지고 있었다. 재적이 몇인지는 그해에 두 번 바뀌었다. 바뀐 까닭은 사망과 소재 불명이다.
한 의원이 물었다. — 삼분의 이는 무엇을 막는가.
— 사람을 줄이는 개정을 막는다.
— 늘리는 개정도 같이 막힌다.
— 늘리는 개정은 반대할 사람이 없다.
— 반대할 사람이 없는 안건은 상정되지 아니한다.
— 왜 상정되지 아니하는가.
— 상정하려면 누가 발의하여야 한다. 발의하는 사람은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 늘어난 국민은 표가 되지 아니하는가.
— 그 사람들은 아직 등록하지 아니하였다.
— 등록하지 아니한 사람은 표가 없다.
없어지는 쪽은 자동으로, 생기는 쪽은 신청으로. 관보 열한 부가 등록소 예정지로 떠나고 등록이 넉 달 뒤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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