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5부 부담(負擔)
20화제34장 유택(幽宅)
셋 — 값
일지의 7월 24일자에 다른 안건이 하나 적혀 있다.

유해를 본토로 보내자는 제안이 대표부 밖에서 들어왔다. 보내려면 저쪽과 이야기해야 한다.
백영주가 막았다.
한 사람이 물었다. — 유해만 보내는 것도 아니 되는가.
— 유해를 보내려면 받는 쪽이 있어야 한다.
— 받는 쪽이 있다.
— 그 쪽을 무엇이라 부르고 문서를 보내는가.
— 이름을 적지 아니하고 보낼 수는 없는가.
— 이름을 적지 아니한 문서를 받는 정부는 없다.
— 그러면 이름을 적으면 어떻게 되는가.
— 우리가 지켜 온 한 줄이 그날로 뜻을 잃는다.
— 한 줄과 유해를 견주는 것인가.
— 견주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한 줄을 지키는 일만 맡겨져 있다.
— 맡겨지지 아니한 일은 하지 아니하는가.
— 하지 아니한다.
그는 그날 일지에 이유를 더 적지 않았다. 다음 줄은 다음 날짜다.
이 결정을 그가 잘못이라고 적은 곳은 열한 권 어디에도 없다. 스물아홉 해 뒤 유족이 수첩을 공개했을 때 연구자들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이 그 대목이었고, 찾은 것은 여백이었다.
자기가 옳다고 믿고 한 일은 뒤에 후회의 형태로 남지 않는다. 기록의 형태로 남는다.
넷 — 재산목록 제1호
장례는 7월 27일에 치렀다.
그날의 기록은 일지에 넉 줄이다. 참례한 사람의 수와 날씨와 시각과, 조기를 어느 높이에 걸었는가다.
조기의 높이가 넉 줄 가운데 두 줄을 차지한다. 반기로 걸려면 게양대가 있어야 하고, 대표부의 게양대는 임차 건물의 옥상에 있었다.
여드레 뒤 내무부가 문서 하나를 새로 만들었다. 정부 재산목록이다.
첫 줄이자 마지막 줄에 그 필지가 적혔다. 소재지와 면적과 취득일과 용도가 있다.
같은 필지의 등기부에는 다른 이름이 적혀 있다. 소유자는 호놀룰루의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두 장부가 같은 땅을 서로 다르게 적는다. 이 나라에서 그런 일이 처음 있는 것은 아니다. 열다섯 해 전 야마구치에서 같은 사무가 두 판본으로 적힌 적이 있다.
다른 것은 이번에는 어긋남을 알면서 적었다는 것이다.
내무부 직원이 물었다. — 재산목록에 등기 명의를 함께 적는가.
— 적으면 목록이 스스로를 부정한다.
— 적지 아니하면 목록이 틀린 것이 된다.
—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 목록은 우리가 무엇을 가졌다고 보는지를 적는 장부다.
— 등기부는 무엇을 적는 장부인가.
— 이 나라 밖의 법이 무엇을 인정하는지를 적는 장부다.
— 두 장부가 다르면 뒤에 누가 판단하는가.
— 뒤에 판단할 사람이 이 목록을 볼 것이다.
이 필지는 그 뒤로 늘지 않는다.
제7조는 본토에 있는 국민의 재산에 관한 권리를 정부가 등록한다고 적었다. 등록한 것은 남의 땅이고, 등록부는 뒷날 여러 권이 된다.
정부 자신의 목록은 한 줄에서 멈춘다.
목록의 서식은 여덟 줄짜리다. 일곱 줄이 빈 채로 인쇄되어 그대로 편철되었다.
빈 일곱 줄을 지우자는 의견이 한 번 있었다. 지우지 않았다. 지우면 이 목록이 처음부터 한 줄짜리 장부였던 것이 된다.
남의 땅을 사십일만 필지 적은 정부가 자기 이름으로 가진 땅은 묘지 하나였다. 그 하나도 등기부에는 남의 이름으로 적혀 있다.
묘비는 이듬해 봄에 세웠다.
앞면에 이름과 생몰년과 직함을 새겼다. 직함을 새길 것인가를 두고 한 차례 논의가 있었고, 새기지 않으면 이 묘가 무엇인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데서 끝났다.
글자는 한글이다. 영문 표기는 넣지 않았다. 넣으면 등기부에 적힌 이름과 한자리에서 읽히게 되기 때문이다.
뒷면은 비워 두었다. 옮기는 날에 적을 것이 있다고 보았다.
무엇을 적을지는 그때 정하지 않았다.
망명 국회 대통령 선출 회의록
단기 4298년(1965) 8월 12일. 호놀룰루. 등사 30부. 재적 의원 마흔셋, 출석 서른여덟.
— 제1호 의안. 대통령 궐위에 따른 선출의 건.
— 자격 심사 결과 후보 세 사람 전원 적격.
— 무기명투표. 유효 서른여덟. 당선자 한 사람.
말미 발언(속기 그대로). 「우리가 뽑은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명부입니다.」
그날 회의장 앞에 놓인 것은 투표함이 아니라 명부 아홉 권이었다.
하나 — 자격
이 정부는 열일곱 해 전의 헌법을 계승한다고 적었다. 그 헌법에서 대통령은 국회가 뽑는다.
본토에서는 그 조문이 세 해 만에 고쳐졌다. 국민이 직접 뽑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 개헌은 이 정부에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은 까닭은 시기가 아니라 절차다. 직접 뽑으려면 선거인을 세워야 하고, 선거인을 세우려면 어디에 몇이 사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간선이 남았다. 남은 것이지 고른 것이 아니다.
투표함 앞에 명부가 놓인 까닭도 같다. 이 회의의 정당성은 세 단으로 되어 있다.
대통령은 국회가 뽑는다. 국회는 선거인이 뽑는다. 선거인은 그해 부담금을 낸 사람이다.
세 단 가운데 두 단이 명부이고, 그 명부는 영수증으로 만들어진다.

후보는 셋이다. 자격 심사는 반 시간 만에 끝났다.
심사에서 확인한 것은 둘이다. 등록하였는가. 그해 부담금을 냈는가.
물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으나 조문에 없었다. 본토를 다스려 본 일이 있는가다.
세 사람 가운데 아무도 그런 일이 없다. 1950년 8월 이전에 본토에서 공직에 있었던 사람은 그해까지 모두 물러났거나 죽었다.
셋의 이력은 서로 닮아 있다. 하나는 열다섯 해를 대표부에서 일했고, 하나는 등록소를 여덟 해 맡았고, 하나는 재외 상공인이다.
셋 다 이 정부가 만든 자리에서 이 정부와 함께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다. 본토를 아는 방식은 셋 다 같다.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안다.
계승을 적은 정부에서 계승할 것을 겪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해가 1965년이다. 그 뒤로 이 정부가 계승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조문이 된다.
한 의원이 물었다. — 이 심사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이 무엇인가.
— 두 가지다. 등록과 납부다.
— 그 둘 말고 조문이 정한 것이 있는가.
— 없다.
— 본토에 있어 본 일을 묻지 아니하는가.
— 묻는 난이 없다.
— 난을 만들면 어떠한가.
— 만들면 이 회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홉 조를 고치는 것이 된다.
— 아홉 조를 고치는 데 몇 표가 드는가.
— 재적 삼분의 이다.
— 이 자리에 그만큼 있는가.
— 있다.
— 그러면 고칠 수 있지 아니한가.
— 고칠 수 있다. 다만 고치자는 안이 올라오지 아니하였다.
고칠 수 있는 자리에서 고치지 않은 것이 열한 번의 개정 가운데 어느 번호도 되지 못했다. 올라오지 않은 안은 부결된 안보다 기록이 적다.
둘 — 명부
선거인이 몇인지는 회의록 부속서 제2호에 있다. 세 줄짜리 표다.
| 어느 명부인가 | 그 명부에 있는 사람 |
|---|---|
| 추정 동포 인구 (1956년 추계, 이후 갱신 없음) | 3,000,000 |
| 등록 국민 | 940,000 |
| 그해 부담금을 낸 국민 — 선거인 | 410,000 |
첫 줄은 아홉 해 전의 종이에서 왔다. 그 뒤로 다시 센 일이 없다. 세려면 사람을 찾아야 하고, 찾을 권한이 이 정부에 없다.
둘째 줄은 지금까지 이름이 오른 사람의 합이다. 나간 사람을 빼는 절차가 아홉 조에 없으므로 이 줄은 줄지 않는다.
셋째 줄만 해마다 새로 만들어진다.
만드는 방법은 단순하다. 등록소가 그해 영수 기재를 옮겨 적어 올리고, 내무부가 그것을 합쳐 묶는다.
묶고 나면 아홉 권이 된다. 같은 해 등록 명부는 그보다 훨씬 두껍다.
같은 사람의 이름이 두 장부에 있다. 한쪽에는 이름만 있고 다른 쪽에는 이름과 액수가 있다.
액수가 적힌 쪽만 이 회의장에 들어온다.
한 장의 표에 세 가지 시간이 있다. 아홉 해 전의 짐작과, 열세 해 동안의 합과, 지난해 열두 달이다.
세 줄을 위에서 아래로 읽으면 이 나라의 크기가 세 번 줄어든다.
삼백만은 짐작이고, 구십사만은 종이이며, 사십일만은 돈이다.
돈까지 내려온 수만이 이 회의를 만든다.
다른 의원이 물었다. — 이 표의 첫 줄을 왜 그대로 두는가.
— 지우면 대신 적을 수가 없다.
— 짐작이라도 새로 하면 되지 아니한가.
— 새로 짐작하면 낮아진다.
— 낮아지면 무엇이 문제인가.
— 우리 예산이 그 수로 나뉜다.
— 나뉜 값이 커지면 좋은 것이 아닌가.
— 좋다. 다만 그 값이 커지면 이 정부가 작아진 것이 장부에 남는다.
— 남으면 안 되는가.
— 안 될 까닭은 없다. 남기자는 안을 올린 사람도 없다.
투표는 오후에 했다. 유효표 서른여덟에서 당선자가 나왔다.
회의록의 마지막 쪽에 발언 하나가 통째로 실려 있다. 요약하지 않고 속기 그대로 실은 것은 그 회기에서 이 한 줄뿐이다.
말한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발언자 표기란이 비어 있고, 비운 것이 실수인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선자는 그달 안에 취임했다. 취임 선서는 열두 낱말이고, 본토의 헌법에서 그대로 왔다.
선서문에 나오는 낱말 가운데 이 정부가 가진 것은 둘뿐이다. 국민과 법이다.
나머지는 그날 회의장 밖에 있었다.
회의록 30부 가운데 26부가 남아 있다. 넉 부는 뉴욕 사무실이 층을 옮길 때 없어졌다.
없어진 넉 부에 무엇이 더 적혀 있었는지를 묻는 것은 뜻이 없다. 등사는 같은 판으로 찍는다.
속기 그대로 실린 한 줄 — 「우리가 뽑은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명부입니다.」 말한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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