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5부 부담(負擔)
21화제36장 국교(國交)
일본국과 본토 정부 간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1965년 6월 조인. 조약문 일본어본·조선어본 각 1통. 아래는 조선어본에서 옮긴 두 조각이다.
— 전문. 양국은 그 상호 관계의 력사적 배경에 비추어, 선린의 관계와 주권 상호 존중의 원칙에 립각한 관계의 정상화를 상호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3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조선 반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확인한다.

이 조문 어디에도 결의의 번호는 적혀 있지 않다.
낱말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열일곱 해 전 12월에 총회가 통과시킨 결의가 있다. 그 결의는 한 정부를 두고 「한국의 그 지역에 대하여 유효한 지배와 관할권을 가지는 합법정부」라고 적었다.
가리킨 정부는 지금 이 조약의 당사자가 아니다.
전문도 한 낱말을 비켜 갔다. 력사적 배경이라고만 적고 그 배경이 무엇인지는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은 것을 양쪽이 서로 다르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전문의 쓸모다. 조약의 전문은 대개 그렇게 쓰인다.
그래서 조문은 낱말만 가져왔다. 번호를 적으면 읽는 사람이 원문을 편다. 원문을 펴면 그 결의가 누구를 두고 적힌 것인지가 나온다.
낱말은 옮겨 적을 수 있고 근거는 옮겨 적을 수 없다. 옮겨 적힌 낱말은 원래보다 강해진다. 아무도 원문을 펴지 않기 때문이다.
조약문이 대표부에 들어온 것은 조인 사흘 뒤다. 신문에서 오려 낸 것이 먼저 왔고 정본 사본은 그 뒤에 왔다.
대표부는 그날 안에 본부로 보고를 올렸다. 본부의 회신은 이틀 뒤에 왔다.
대표부가 올렸다. — 제3조에 결의의 번호가 없다.
— 확인하였는가.
— 조선어본과 일본어본을 대조하였다. 두 본 다 없다.
— 없는 것을 어떻게 다투는가.
— 없다는 것 자체를 적어 낸다.
— 어디에 내는가.
— 사무국 법률국에 각서로 낸다.
— 각서를 내면 회람되는가.
— 회람되지 아니한다. 접수만 된다.
— 접수만 되는 문서를 왜 내는가.
— 내지 아니하면 이 조문에 아무도 이의하지 아니한 것이 된다.
— 낸 문서는 어디에 남는가.
— 사무국 접수부에 남는다.
—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가.
— 뒤에 이 낱말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찾는다.
조약에는 딸린 문서가 하나 더 있다. 재일 조선인의 법적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그 협정이 무엇을 정했는지는 이 회차에서 다루지 않는다. 다투어지는 것은 이듬해 오사카의 한 법정에서다.
각서는 그달 안에 냈다. 넉 쪽이고, 셋째 쪽에 결의의 전문이 붙어 있다.
붙인 까닭은 하나다. 조약이 인용하지 않은 문서를 이쪽이 인용하면, 두 문서가 한 서가에 놓이게 된다.
이 정부가 그해에 한 일은 원문을 서가에 다시 올려놓은 것이다.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각서 첫 쪽의 오른쪽 위에 접수인이 찍혀 있다.
날짜가 있고 번호가 있다. 그 아래에 처리란이 있다.
처리란은 비어 있다.
일곱 해 뒤 본토의 고급중학교 력사교과서가 제3조를 인용한다. 인용은 한 줄이고 조문 그대로다.
교과서에도 결의의 번호는 없다. 조약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사카 지방재판소 단기 4299년(1966) 행(行) 제71호
영주 자격 확인 청구 사건 판결
1966년 11월 선고. 등본 3통. 원고는 실명 기재를 원하지 아니하여 이하 원고로만 적는다.
—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 이유 중. 이 협정은 두 정부 사이에 체결된 것이다. 원고가 자기 지위의 근거로 드는 문서는 그 두 정부 어느 쪽의 문서도 아니다.
이유 말미. 원고가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자인지 여부는 이 사건의 판단에 필요하지 아니하다.
원고가 구한 것은 자격이었다. 법정이 답한 것은 관할이었다.
하나 — 원고
원고는 1953년 2월에 시모노세키 등록소에서 등록했다.
그때 스물여덟이었고 등록 순번은 넉 자리다. 국민증을 받은 것은 그해 여름이다.
납부란은 열세 칸이 채워져 있다. 요율이 정해진 1961년 이전의 다섯 칸은 헌금 기재이고, 그 뒤 다섯 칸은 부담금 영수다. 앞의 세 칸은 발급 첫해의 사무 처리로 비어 있다가 뒤에 소급 기재되었다.
협정영주가 주는 것은 세 가지다. 퇴거를 강제할 수 있는 사유가 좁아지고, 나갔다 들어오는 데 드는 허가가 정형화되고, 자녀에게 같은 자격이 이어진다.
셋째가 신청이 몰린 까닭이다. 자기 대의 일이 아니라 다음 대의 일이기 때문이다.
원고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큰아들은 그해에 열여섯이었다.
이 수첩을 들고 그는 1966년 봄에 영주 자격을 신청했다.
창구는 서류를 받지 않았다. 받지 않은 사유는 서면으로 나왔고 두 줄이다. 신청 자격이 있는 자는 협정이 정한 정부의 국민으로 등록된 자다.
원고가 물었다. — 나는 등록한 국민이다.
— 어느 쪽에 등록하였는가.
— 여기 수첩이 있다.
— 이 수첩을 발급한 곳이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다.
— 그러면 나는 등록하지 아니한 것이 되는가.
— 그 판단은 이 창구가 하지 아니한다.
— 어디가 하는가.
— 정하여진 곳이 없다.

정하여진 곳이 없다는 답을 받고 그는 재판소로 갔다.
소를 낸 목적은 영주 자격이 아니었다고 그는 뒤에 말했다. 자기가 무엇인지 적힌 종이를 한 장 갖고 싶었다는 것이다.
행정이 판단하지 않는 것을 사법이 판단해 줄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사법은 다툼을 푸는 곳이지 사람을 정의하는 곳이 아니다.
둘 — 당사자
변론은 세 차례 열렸다.
원고 측 주장은 단순하다. 자기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그 증거가 이 수첩이며, 이 협정은 재일 한인의 지위를 정한 것이므로 자기에게도 미친다.
피고 측 주장도 단순하다. 협정은 두 정부가 맺은 것이다. 그 두 정부가 정한 명부에 없는 사람에게 협정이 정한 자격을 줄 근거가 없다.
두 주장은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다른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고가 낸 자료 가운데 하나가 원고의 외국인등록 원표다. 이 나라에 사는 외국 사람은 모두 그 원표에 적힌다.
원표에는 국적 등을 적는 난이 있다. 원고의 그 난에 적힌 것은 반도의 옛 이름 두 글자다.
그 두 글자는 국적이 아니다. 국적을 적을 수 없는 사람에게 붙여 온 표기이고, 붙인 지 스무 해가 되었다.
원고 측은 그 난이 국적이 아니라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피고 측도 같은 것을 근거로 삼았다.
같은 칸이 두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그 칸이 아무것도 정하지 않는 칸이기 때문이다.
재판장이 물었다. — 원고가 드는 그 수첩은 어느 정부가 발급한 것인가.
— 대한민국 정부다.
— 이 나라가 승인한 정부인가.
— 승인 여부를 나는 알지 못한다.
— 승인하지 아니하였다.
— 승인하지 아니하면 이 수첩은 무엇이 되는가.
— 이 법정은 그것을 정하지 아니한다.
— 그러면 무엇을 정하는가.
— 원고가 이 협정이 정한 자격에 해당하는지를 정한다.
— 해당하지 아니하면 나는 무엇인가.
— 그 물음은 이 사건의 청구 취지에 없다.
— 청구 취지를 고치면 물을 수 있는가.
— 고쳐도 판단할 법이 없다.
이 법정이 하지 않은 것은 판단이 아니다. 판단할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아 주지 않은 것이다.
망명정부 대표부가 이 소송에 보조참가를 검토했다. 검토는 두 달 걸렸고 결론은 하지 않는 것이었다.
참가하려면 참가인의 자격을 법정이 먼저 정해야 한다. 이 정부가 무엇인지를 오사카의 한 지방재판소가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판단이 유리하게 나오면 얻는 것은 이 사건 하나이고, 불리하게 나오면 그 판단이 문서로 남는다.
문서로 남으면 뒤에 다른 나라의 법정이 그것을 본다. 판례는 국경을 넘어 인용되지 않지만 서가에서는 넘어간다.
검토 각서의 마지막 줄이 그 말로 되어 있다. 우리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적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대표부가 물었다. — 참가하지 아니하면 원고는 혼자 다투는가.
— 혼자 다툰다.
— 우리가 그를 도울 다른 방법이 있는가.
— 문서를 보내 줄 수 있다.
— 어떤 문서인가.
— 그가 우리 국민임을 확인하는 문서다.
— 그 문서를 법정이 받는가.
— 받는다. 증거로 받는다.
— 받으면 무엇이 되는가.
— 우리가 그를 국민이라 부른다는 사실이 인정된다.
— 그가 국민이라는 것이 인정되는 것이 아닌가.
— 아니다.
셋 — 판단하지 않은 것
판결은 11월에 나왔다. 이유는 다섯 쪽이고 마지막 문단이 한 줄이다.
원고가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자인지 여부는 이 사건의 판단에 필요하지 아니하다.
이 한 줄이 이 판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 된다. 인용하는 쪽은 대개 원고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었고, 인용하는 까닭은 이 줄이 자기들에 관하여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하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 아니다. 정하지 않은 것은 다음에 정할 사람에게 넘어간다. 이 사건에서 다음은 오지 않았다.
그해 일본에 사는 이 나라 사람은 구십만 언저리다.
그 가운데 협정이 정한 명부에 오른 사람이 있고, 이 정부의 명부에 오른 사람이 있고, 어느 쪽에도 오르지 않은 사람이 있다.
셋째가 몇인지를 이때는 아무도 세지 않았다. 세는 부서가 두 정부 어느 쪽에도 없고, 세더라도 그 수를 적을 칸이 어느 서식에도 없다.
두 해 뒤 그 수를 처음 적은 것은 정부가 아니었다.
세지 않은 동안에도 사람은 어느 쪽으로든 옮겨 갔다. 옮기는 데 필요한 서류는 저쪽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 하나뿐이다.
이쪽 명부에서 이름을 빼는 절차는 여전히 없다. 그래서 옮겨 간 사람은 두 명부에 동시에 있게 된다.
일곱 해 전 겨울에 등록국이 같은 물음을 받고 같은 답을 냈다. 그때와 다른 것은 옮겨 가는 쪽이 배를 타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어느 명부에도 오르지 않은 사람이 몇인지 아무도 세지 않았다. 두 해 뒤 그 수를 처음 적은 것은 정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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