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7부 의석(議席)
26화제46장 선례(先例)
하나 — 부록
직원이 물었다. — 이 문서를 어떻게 받는가.

— 배포처가 아니면 받지 못한다.
— 우리는 배포처인가.
— 아니다.
— 그러면 볼 수 없는가.
— 판매처에 있다. 값이 붙어 있다.
— 사 오면 되는가.
— 사 오면 된다.
대표부는 그것을 사 왔다. 값은 대표부의 그달 소모품비에서 나갔고 영수증이 문서철에 붙어 있다.
우리에 관하여 적힌 문서를 우리가 돈을 주고 산 것은 그해가 처음이 아니다. 다만 값이 적힌 것은 그해가 처음이다.
둘 — 방향
스물두 해 전 각서는 이렇게 끝났다. 본 사안에 선례가 없다. 선례가 생길 것이다.
선례는 생겼다. 다만 방향이 반대다.
결의 2758이 정한 것은 하나의 자리에 두 대표단이 있을 때 어느 쪽을 앉힐 것인가다. 자리는 그대로 있다. 나라도 그대로 있다. 바뀐 것은 그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어느 정부에서 오는가다.
이 정부의 사안은 그 반대다. 앉을 자리가 처음부터 없고, 그 자리를 놓고 다투는 상대도 없다.
다투려면 둘이 같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본토 정부는 이 건물에 아무것도 요구하고 있지 않다. 가입 신청을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신청은 이듬해에 온다.
그래서 이 정부의 지위는 남과 겨루어 지켜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서 그 자리에 있다. 대표부는 그 둘을 오래 구별하지 않았다.
법률국의 기초자와 검토자가 주고받은 것이 보고서 여백에 남아 있다. 초고를 회람할 때 붙인 쪽지다.
검토자가 물었다. — 부록 열한째 항을 본문으로 올릴 수 있는가.
— 올릴 수 없다.
— 왜인가.
— 본문은 회원국의 대표권을 다룬다.
— 그 실체는 회원국이 아닌가.
— 아니다.
— 그러면 이번 결정이 그 실체에 미치는가.
— 미치지 아니한다. 미칠 자리가 없다.
— 미치지 아니한다고 본문에 적어도 되는가.
— 적으면 그것이 판단이 된다.
결의 2758이 정한 것은 누가 앉는가이지 누가 있는가가 아니다.
셋 — 유형
부록의 열넉 항은 넉 칸으로 나뉜다.
| 유형 | 처리 | 항 |
|---|---|---|
| 폐지 | 근거 결의를 들어 지위가 없어졌다고 적는다 | 2 |
| 승계 | 다른 실체가 그 지위를 이었다고 적는다 | 5 |
| 미결 | 판단하지 아니한다고 적는다 | 4 |
| 해당 없음 | 문의가 지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적는다 | 3 |
이 정부는 셋째 칸에 있다.
셋째 칸의 넉 항 가운데 셋은 접수된 지 다섯 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만 스물두 해다.
미결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렇게 읽으면 언젠가 정해진다는 말이 된다. 문서에서는 다르다. 미결은 정하지 않기로 한 것에 붙이는 이름이다. 정하기로 한 것에는 기한이 붙고 담당이 붙는다. 부록 셋째 칸에는 기한 난이 없다.
미결로 적힌 물음이 스물두 해 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이 보고서에 없다. 물음이 접수되고 답이 나오지 않는 동안 물어본 창구는 답 없이 일을 해야 한다.
답 없이 하는 처리는 규칙이 되지 않는다. 규칙이 아닌 것은 창구마다 다르게 한다. 이 정부의 국민증을 들고 선 사람이 어느 창구에서 무엇이 되는지가 창구에 따라 갈린 것은 그래서다.
폐지는 어렵다. 폐지하려면 무슨 근거로 없애는지를 적어야 하고, 적으면 그 근거가 다음 사안에 쓰인다.
폐지에는 근거가 필요하고 미결에는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미결이 폐지보다 오래간다.
백영주가 물었다. — 이 분류가 우리에게 유리한가.
— 폐지가 아니므로 유리하다.
— 승계도 아니다.
— 승계로 적히면 우리 지위를 이은 쪽이 생긴다.
— 그러면 남는 것은 미결뿐인가.
— 그렇다.
— 미결로 남으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남아 있을 수 있다.
— 그 밖에는.
— 그 밖은 이 문서에 없다.
그해 겨울 백영주는 그 스물여섯 쪽을 봉투에 넣었다.
겉에 선례라고 적힌 봉투다. 스물두 해 동안 비어 있던 것이 그날 처음으로 무게를 가졌다.

안에 든 것은 남의 대표권을 다룬 문서다. 이 정부의 이야기는 부록 열한째 항 넉 줄이고, 그 넉 줄의 마지막 낱말이 미결이다.
봉투는 서랍 둘째 칸에 들어갔다. 첫째 칸에는 국민증 견본이 들어 있다.
견본에는 이름 대신 갑(甲)이라고 적혀 있고 납부란은 비어 있다. 스무 해 동안 그 칸에서 나온 적이 없다.
두 칸에 든 것은 같은 종류다. 하나는 우리를 미결로 적은 남의 문서이고 하나는 우리가 만든 빈 서식이다.
『백영주 외무 일지』 1973년분
단기 4327년(1994) 유족 공개. 대학 노트 열두 권 가운데 열째 권. 표지에 4306이라고만 적혀 있다.
— 8월. 「신청서가 들어왔다. 우리 것이 아니다.」
— 9월. 「안보리는 권고하지 아니하였다. 표는 하나로 끝났다.」
그해 마지막 장. 「우리는 이겼다. 이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르겠다.」
1973년 8월, 본토 정부가 유엔에 가입을 신청했다.
하나 — 접수
가입의 절차는 헌장 제4조에 있다. 두 항이고 둘째 항이 절차다.
가입은 안보리의 권고에 따라 총회가 결정한다. 순서가 정해져 있다. 안보리가 먼저 권고하고 총회가 나중에 결정한다. 권고가 없으면 총회는 결정할 것을 갖지 못한다.
신청서는 사무총장에게 접수된다. 접수되면 안보리에 회부되고, 안보리는 가입심사위원회에 넘긴다. 위원회는 신청국이 헌장의 의무를 수락하고 이행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지를 본다.
본토 정부의 신청서는 여름에 접수되었다. 문서 번호가 붙었고 회원국 전부에 배포되었다. 배포처 명부에 이 정부의 대표부도 들어 있다. 옵서버 대표부는 회기 문서를 받는다.
그래서 이 정부는 본토 정부의 가입 신청서를 우편으로 받았다.
신청서에는 선언 하나가 붙는다. 헌장의 의무를 수락하고 이행할 의사가 있다는 선언이다. 절차 규칙이 그것을 요구한다. 문면은 정해져 있고 어느 나라가 내든 같다.
대표부의 젊은 직원 하나가 그 선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읽은 이유는 문면이 짧아서였다.
직원이 물었다. — 이것을 어디에 넣는가.
— 문서철에 넣는다.
— 어느 문서철인가.
— 정하여진 것이 없다.
— 대표권 문서철에 넣으면 되는가.
— 대표권이 아니다. 가입이다.
— 그러면 가입 문서철에 넣는다.
— 우리에게 가입 문서철이 있는가.
— 하나 있다. 1949년 것이다.
그 문서철은 스물넉 해 동안 열린 적이 없다. 안에 든 것은 신청서 사본 한 부와 표결 결과 한 장이다.
백영주는 그것을 그날 처음 열었다. 1949년에 그는 이 건물에 없었다. 대표부에 온 것이 1954년이고 대표부장이 된 것이 1958년이다. 스물넉 해 전의 그 신청은 그가 이어받은 문서지 그가 낸 문서가 아니다.
표결 결과 한 장은 등사지다. 위쪽에 날짜가 있고 아래에 이사국 이름이 줄지어 있으며 이름마다 옆 칸에 한 글자씩 적혀 있다. 찬성과 반대와 기권이다.
같은 서랍에 두 나라의 가입 신청서가 들어갔다. 어느 것도 회원국이 되지 못한 신청서다.
둘 — 앞의 신청
1949년 1월에 대한민국이 가입을 신청했다. 안보리 표결은 그해 4월 8일이다.
찬성 아홉, 반대 둘이다. 아홉은 충분한 수다. 그런데 반대 둘 가운데 하나가 상임이사국이었다.
헌장 제27조 3항은 실질사항의 결정에 상임이사국의 동의 투표가 들어 있어야 한다고 적는다. 아홉이라는 수는 이 요건을 넘어서지 못한다. 아홉은 이겼고 결정은 성립하지 않았다.
같은 해 2월에 다른 신청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도 권고되지 않았다.
그해 반도에는 정부가 둘 있었고 둘 다 회원국이 되지 못했다. 그 뒤로 스물넉 해 동안 그 상태가 유지되었다. 유지된 이유는 어느 쪽이 옳으냐를 정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정할 자리가 안보리인데 안보리는 실질사항을 다수로 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들여보내는 데는 여럿의 찬성이 필요하고 막는 데는 하나의 반대로 족하다. 이 비대칭이 반도의 두 정부를 스물넉 해 동안 같은 자리에 두었다.
같은 자리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스물넉 해 사이에 한쪽은 땅을 얻었고 한쪽은 땅을 잃었다.
같은 것은 이 건물 안에서의 자리다. 이 건물 안에서 두 정부는 스물넉 해 동안 똑같이 회원국이 아니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 건물의 명부에 적히지 않는다.
명부에 적히지 않는 것은 이 정부가 오래 이용해 온 조건이다.
셋 — 한 표
표결이 있기 전에 대표부는 훈령을 하나 받았다. 본부에서 온 것이고 다섯 줄이다.
— 본토 정부의 가입 신청에 관하여.
— 대표부는 어느 나라에도 반대를 요청하지 아니한다.
— 요청하면 우리가 이 사안의 당사자가 된다.
— 당사자가 되면 우리 지위가 이 사안의 표결에 걸린다.
— 침묵으로 대한다.
이 훈령의 초안을 쓴 것은 대표부장이다. 본부는 초안을 고치지 않고 승인해 훈령으로 내려보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가 자기에게 내린 훈령이다. 문서철에는 훈령으로만 남았고 초안은 남지 않았다. 초안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일지에 적어 두어 알려진 것이다.
1973년 가을 안보리는 본토 정부의 신청을 권고하지 않았다.
이 회차는 그 표결의 찬반 수를 적지 않는다. 적을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상임이사국 하나가 반대하면 나머지 수는 결과를 바꾸지 못하고, 결과를 바꾸지 못하는 수를 적으면 그 수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적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반대한 이사국이 상임이사국이었다는 것.
1949년에 그 자리에서 반대한 나라와 1973년에 그 자리에서 반대한 나라는 다르다. 두 나라는 스물넉 해 전에 서로 반대편에 있었다. 1949년에 대한민국을 막은 나라는 1973년에 본토를 들여보내자는 쪽이었고, 1949년에 대한민국을 들여보내자던 나라가 1973년에 막았다.
조문은 그 사이에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
표는 그대로이고 쥔 손만 바뀌었다.
안보리는 권고하지 않았다. 그해 일지의 마지막 장에 적힌다 — 우리는 이겼다. 이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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