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1부 승선(乘船)
2화제2장 돌출부(突出部)
하나 — 여울
8월 1일 8군 사령관은 낙동강 동쪽으로 물러서라고 지시했다. 강에 걸린 다리는 전부 끊었다. 끊은 것은 선을 만들기 위해서다.

강은 선이 되지 않았다. 8월은 갈수기다. 그해 강물은 낮았고 자갈톱이 드러나 있었다.
강폭이 넓은 자리는 오히려 안전했다. 물이 깊기 때문이다. 위험한 자리는 강이 좁아지고 자갈이 쌓인 여울이었고, 그런 자리에는 지도에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 이름이 없는 자리에는 관측소도 없다.
관측반 보고, 8월 5일 22시 40분. — 하류 여울에 인원 이동 있음. 수심 허리 이하로 판단됨.
— 도하 지점은 오항나루 남쪽. 정확한 위치는 확인 못 함.
8월 6일 03시 20분. — 도하 계속 중. 개략 팔백.
— 저지 병력 없음. 요청함.
8월 6일 05시 10분. — 요청에 대한 회신 없음.
— 회신 없음을 보고함.
닷새 뒤 제4사단은 전부 건넜다. 클로버잎고지와 오봉리능선을 잡았다.
여기까지는 실사와 같다. 공간사 제14장의 앞 절반이 이 대목이고 문장이 한 줄도 다르지 않다.
다리를 끊는 것은 강을 선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다리가 있던 자리만 지우는 일이다.
둘 — 왕복
같은 주에 남쪽에서도 싸움이 있었다.
8월 7일부터 14일까지 마산 방면에서 공격이 있었다. 투입 병력은 약 이만이다. 진주 고개에 닿지 못하고 원위치로 돌아왔다.
실사에서 이 복귀가 여단을 풀어 주었다. 마산이 조용해졌으므로 제1임시해병여단은 북쪽으로 갈 수 있었다. 여단은 마산과 낙동강 사이를 두 번 왕복했다.
왕복이 가능하려면 두 곳 가운데 한 곳이 반드시 조용해야 한다.
조용하다는 것은 판단이지 관측이 아니다. 관측은 접적의 유무를 적고 판단은 그것이 계속될지를 적는다. 8월 중순 마산에서 그 판단을 적은 문서는 남아 있지 않다.
8군 작전참모부가 물었다. — 여단을 뺄 수 있는가.
여단 참모장이 답했다. — 뺄 수 있다. 남쪽이 조용하면.
— 조용한가.
— 어제 아침부터 조용하지 않다.
— 언제 조용해지는가.
— 모른다.
— 모른다는 것을 적어도 되는가.
— 적어라. 나는 그것 말고 적을 것이 없다.
— 여단이 가지 않으면 돌출부는 어떻게 되는가.
— 그것은 내가 적는 칸이 아니다.
여단 작전일지 8월 17일 항은 두 줄이다.
— 북상 준비를 명받았음. 05시.
— 15시, 명령이 취소되었음. 사유 기재 없음.
취소에 사유를 적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유를 적으려면 그것을 판단한 부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날 그 판단을 한 부서는 사유를 적는 부서가 아니었다.
전사는 이런 자리를 잘 다루지 못한다. 일어난 일에는 시각과 좌표와 사상자가 붙는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는 그 셋이 다 없다. 남는 것은 취소 통보 한 줄이다.
한 부대가 두 곳에 필요할 때, 문서에 남는 것은 간 곳뿐이다.
셋 — 밀양
돌출부는 창녕 남쪽에서 강을 안고 있다. 닫히지 않으면 그 자리가 통로가 된다. 통로는 서쪽으로 열리지 않는다. 강이 있기 때문이다. 남동으로 열린다.
남동에 밀양이 있다.
지도 위에서 밀양은 후방이다. 후방이라는 말은 적이 오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 아니다. 적이 올 것을 계산에 넣지 않은 곳이라는 뜻이다.
밀양은 고지가 아니다. 밀양은 분기점이다. 대구에서 내려온 철길과 부산으로 가는 철길이 거기서 만난다.
방어선을 지도에 그리면 곡선이다. 그 곡선 안쪽에서 사람과 물건이 움직이는 경로는 곡선이 아니다. 단선 철도 하나다.
군수참모부 각서, 8월 18일. — 밀양 이북 수송이 정지될 경우의 대안 경로를 조회함.
— 회신. 대안 경로 없음.
— 도로가 있음. 우기 뒤 노면으로는 일일 소요를 채우지 못함.
회신은 두 줄이고 둘째 줄이 첫째 줄을 뒤집는다. 대안이 없다고 적은 다음에 도로가 있다고 적었다. 있으나 쓸 수 없는 것을 무엇이라고 적을지 그 부서는 정하지 못했다.
선을 지키는 것과 그 안을 잇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1950년 8월에 그 둘은 같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1961년 공간사 제14장은 여기까지 적고 끝난다. 마지막 문단 뒤에 여백이 한 쪽 반 남아 있다.
편찬자는 그 여백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넣을 것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편찬 각서에 적혀 있다.
여백이 한 쪽 반인 것은 조판의 사실이다. 장이 끝나면 다음 장은 새 쪽에서 시작한다. 제14장이 짧아서 남은 여백이 아니라 제15장이 없어서 남은 여백이다.

제2군수지원사령부 철도 수송 일보 제216호~제220호
1950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등사 갱지 다섯 장, 좌철.
서식은 상단에 구간, 좌열에 품목, 우열에 발송과 접수와 잔량을 적게 되어 있다.
일보는 24시에 마감하여 이튿날 06시에 사령부로 올린다.
다섯 장 가운데 뒤의 세 장은 마감 시각란이 비어 있다.
다섯 장이 한 철에 묶여 있다.
철을 풀면 순서가 흐트러지므로 풀지 않았다. 복사대에 그대로 올려 찍었다.
서식은 같다. 손이 다르다. 앞의 두 장과 뒤의 세 장은 다른 사람이 적었다.
앞의 두 장은 정자로 적혀 있고 뒤의 세 장은 흘려 적혀 있다. 흘려 적은 쪽이 급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뒤의 세 장에는 고친 자국이 없다. 고칠 것이 없는 종이는 빨리 적힌다.
| 일보 | 대구—밀양 | 밀양—부산 | 마감 시각 |
|---|---|---|---|
| 8월 14일 | 기재 | 기재 | 24시 |
| 8월 15일 | 기재 | 기재 | 24시 |
| 8월 16일 | 기재 | 공란 | 기재 없음 |
| 8월 17일 | 기재 | 공란 | 기재 없음 |
| 8월 18일 | 공란 | 공란 | 기재 없음 |
공란은 영이 아니다. 영을 적으려면 영이라고 적으면 된다. 이 서식에는 영을 적는 칸이 따로 있다.
공란은 채울 것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 정확히는 채울 것을 적어 보낼 사람이 그 구간 끝에 없었다는 뜻이다.
이 서식을 만든 사람은 그런 경우를 넣지 않았다. 넣었다면 그 칸의 이름이 접수가 아니라 접수 여부였을 것이다.
8월 16일자 여백에 연필로 붙은 부기.
— 밀양역에서 회신 없음. 두 번 조회함.
— 삼랑진으로 돌려 보라고 지시함.
— 삼랑진에서도 회신 없음.
통화 기록, 8월 17일 09시 14분. 부산 수송사무소와 대구 수송사무소.
— 오늘 몇 편이 내려오는가.
— 모른다.
— 어제는 몇 편이었는가.
— 그것도 모른다. 밀양에서 접수가 오지 않는다.
— 그러면 무엇을 적어 올리는가.
— 빈칸으로 올린다.
— 빈칸으로 올려도 되는가.
—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칸이 없다.
빈칸은 그날 그 사령부가 가진 가장 정확한 기재였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읽지 못했다.
사령부 지시, 8월 18일 11시.
— 일보의 공란을 추정치로 채워 올릴 것.
— 회신. 추정의 근거가 없음.
— 근거는 뒤에 붙이라.
— 뒤에 붙일 것이 생기면 그때 적겠음.
8월 18일자 일보는 그대로 올라갔다. 추정치는 끝내 적히지 않았다.
같은 날 정부는 대구에서 부산으로 옮겼다. 옮긴 경로는 이 일보가 비워 둔 구간이다.
방어선은 지도에서 하나다. 물자가 다니는 길로 보면 대구 쪽과 부산 쪽으로 둘이다.
선 하나를 지키는 계획과 선 둘을 지키는 계획은 같은 종이에 적히지 않는다.
다섯 장 가운데 마지막 장의 뒷면에 백묵 가루가 묻어 있다. 역 게시판에 한 번 붙였다가 뗀 자국이다.
붙였을 때 그 종이의 앞면이 보였는지 뒷면이 보였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부산항 승선 통제 각서 제1호
1950년 8월 17일 09시. 발신 부산항만사령부. 수신 제1·제2·제3부두 통제소와 헌병 파견반.
게시는 각 통제소 정문 안쪽 게시판. 등사 각 3부.
본 각서는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유효하다.
별도의 지시는 내려오지 않았다.
하단 여백에 접수 도장이 셋 찍혀 있고 그중 하나는 날짜가 지워져 있다.
이 각서는 사람을 다섯으로 나눈다.
하나 — 다섯 항
전문은 백 자가 되지 않는다. 그대로 옮긴다.
승선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정한다.
一. 정부
二. 군
三. 관공서 직원과 그 가족
四. 등록된 재외국민
五. 그 밖의 사람
앞 항이 끝나기 전에 뒤 항을 태우지 아니한다.
이 각서에 숫자는 다섯 개뿐이다. 항의 번호다.
승선 순서를 정하는 것은 배가 모자랄 때 하는 일이다. 모자라지 않으면 순서는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이 각서는 배가 모자란다는 사실을 적지 않고도 적고 있다.
첫째 항은 그날 부산에 없었다. 정부가 대구에서 내려온 것은 이튿날이다. 각서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첫째로 적어 두고 나머지를 그 뒤에 세웠다.
빈자리를 첫째로 두는 것은 행정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자리를 먼저 정해 두어야 뒤에 다투지 않는다. 다투지 않으려고 만든 순서가 뒤에 무엇을 다투는 근거가 되는지는 이 각서를 쓴 사람의 소관이 아니었다.
각서를 기초한 자리의 말이 항만사령부 일지 뒷장에 남았다.
— 넷째와 다섯째를 굳이 나눌 필요가 있는가.
— 있다. 넷째는 명부가 있다.
— 다섯째는.
— 명부가 없다.
— 명부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세는가.
— 세지 않는다. 순서만 정한다.
넷째 항에는 명부가 있고 다섯째 항에는 없다. 세지 않고 순서만 정한 종이 한 장이 부두 게시판에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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