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9부 잔고(殘高)
36화제63장 금(金)
확인서는 1951년부터 해마다 한 장씩 왔다. 봉투도 같고 활자도 같다. 바뀐 것은 연도 네 자와 담당자 서명뿐이다.
정본은 재무부 금고에 넣고 부본은 결산 부속명세에 붙인다. 붙일 때마다 같은 일이 생긴다. 부속명세에는 수량이 적히는데 확인서에는 수량이 없다.

확인서에 수량란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은 상자를 세고 봉인 번호를 적는다.
부속명세를 만드는 사람은 해마다 같은 처리를 한다. 확인서에서 상자 수를 옮겨 적고, 수량란에는 1953년 제1차 결산의 숫자를 다시 쓴다.
두 숫자는 서로를 확인하지 않는다. 하나는 상자를 센 것이고 하나는 무게를 적은 것이다.
사십 년 전에 부두에서 상자를 센 것을 사십 년 동안 은행이 그대로 세고 있다.
그해 봄에 금값이 올랐다. 재무부 안에서 한 번 오간 문답이 각서로 남았다.
— 지금 팔면 얼마인가.
— 계산해 두었다.
— 말해 보라.
— 말하지 않겠다.
— 왜 말하지 않는가.
— 액수를 말하면 다음 질문이 온다.
— 무슨 질문인가.
— 그것으로 몇 해를 버티느냐는 질문이다.
— 버틸 수 있는가.
—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버티고 나면 없다.
— 없어지면 무엇이 남는가.
— 부담금이 남는다. 부담금은 국민이 있어야 걷힌다.
팔 수 있는 것을 팔지 않는 동안에만 이 정부는 자산이 있는 정부다.
같은 각서에 명의 이야기가 이어 붙어 있다.
— 은행은 이 계정의 이름을 언제 고치는가.
— 명의인이 고치라고 하면 고친다.
— 다른 정부가 고치라고 하면.
— 그 정부는 이 계정의 명의인이 아니다.
— 명의인은 누구인가.
— 확인서에 적힌 이름이다.
— 그 이름을 쓰는 정부가 둘이면 어떻게 하는가.
— 은행에는 둘을 가리는 규정이 없다.
— 규정이 없으면 무엇으로 하는가.
— 서류로 한다. 계정을 연 쪽의 서류가 있고 다른 쪽의 서류는 없다.
은행에는 나라를 가리는 규정이 없다. 계정을 가리는 규정만 있다.
1990년 확인서에도 별지가 한 장 딸려 있다. 상자 수와 봉인 번호가 적힌 쪽이다.
별지에는 상자마다 한 줄씩 있다. 줄 끝마다 「이상 없음」이 찍혀 있고, 별지의 표제는 「외관 검사 결과」다.
봉인 번호는 1951년 것과 같다. 마흔 해 동안 한 번도 뜯지 않았다는 뜻이다.
뜯으면 세어야 한다.
『외교단 명부 대조 검토』
미합중국 국무부 의전실 내부 검토서. 1991년 8월 말, 워싱턴.
배포는 의전실과 유럽국·동아시아국에 한한다.
— 1940년 7월 이후 본 명부에 끊김 없이 등재되어 온 공사관 셋의 등재 사유가 소멸하였다.
— 소멸 사유는 본국 정부의 회복이다. 등재는 승격으로 처리하고 삭제하지 아니한다.
같은 기간 등재를 유지해 온 대표부 하나에 대하여는 별도의 검토를 요하지 아니한다. 등재 사유에 변동이 없다.
1991년 가을에 나온 명부에는 앞 판에 있던 표제가 하나 없다.
하나 — 세 줄
1940년 7월, 워싱턴은 발트 삼국의 병합을 승인하지 아니한다고 적었다. 그 문장 하나로 세 공사관이 문을 닫지 않았다.
문을 닫지 않았을 뿐이지 올라가지도 못했다. 그 오십일 년 동안 다른 나라의 공사관은 차례로 대사관이 되었다. 승격은 본국이 신청하는 것이고, 그 셋에게는 신청할 본국이 없었다.
그래서 1990년판 명부의 「공사관」 표제 아래에는 셋뿐이었다.
그 셋이 오십일 년 동안 무엇으로 버텼는지는 이 검토서에 없다. 다른 서류에 있다. 1940년에 미국 안에 있던 본국 자산이 묶였고, 묶인 것이 공관의 운영비가 되었다. 모자라는 해에는 건물을 세놓았다.
이 대표부가 무엇으로 버티는지도 서류에 있다. 배에 실은 것과 사람이 낸 것이다.
두 자리가 같은 답에 닿았다는 것을 검토서는 다루지 않는다. 다룰 항목이 없다.
— 이 셋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 지우지 않는다. 줄을 고친다.
— 무엇을 고치는가.
— 표제를 대사관으로 고치고 대리공사를 대사로 고친다.
— 새로 등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 이 세 줄은 오십일 년 동안 끊긴 일이 없다.
— 끊기지 않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아는가.
— 해마다 낸 명부가 있다. 오십일 권이다.
— 그러면 나머지 한 줄은.
— 나머지 한 줄은 고칠 것이 없다.
— 왜 없는가.
— 그 정부는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
| 명부의 표제 | 1990년 판 | 1991년 가을 판 |
|---|---|---|
| 공사관 | 세 줄 | 표제 없음 |
| 그 밖의 대표부 | 한 줄 | 한 줄 |
한 표제는 아래가 비어서 없어졌고, 다른 표제는 아래가 하나여서 남았다.
둘 — 마흔한 권
그해 팔월 마지막 주에 대표부 참사관이 그 공사관 한 곳에 인사를 갔다. 갈 이유는 없었다. 명부에서 옆쪽에 있었을 뿐이다.

— 오늘 짐을 싸는가.
— 싼다. 오십일 년치다.
— 무엇이 가장 무거운가.
— 명부다. 해마다 한 권씩 왔다.
— 그것도 가져가는가.
— 가져간다. 우리 쪽 문서고에는 이 오십일 년이 없다.
—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 저기서는 우리가 그동안 없었던 것으로 적혀 있다.
— 우리 것도 해마다 한 권씩 온다.
— 안다. 다른 표제 아래 있었다.
— 그 표제를 본 적이 있는가.
— 해마다 보았다. 우리 줄을 찾으려면 그 쪽을 지나야 한다.
— 무슨 말을 해 주면 좋겠는가.
— 없다.
— 정말 없는가.
—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돌아갈 데가 있는 쪽이 하는 말이다.
오십일 년 동안 문을 닫지 않은 것과 오십일 년 동안 돌아가지 않은 것은 같은 명부에 나란히 적힌다.
돌아갈 나라가 생기면 명부에서 나가고, 생기지 않으면 명부에 남는다.
참사관이 들고 간 것은 1951년 명부 한 권이었다. 그해 판에 이 대표부가 처음 실렸고, 세 공사관은 열두 해째 실려 있었다.
그쪽에서는 그 권을 받지 않았다. 같은 것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참사관은 돌아와 1991년 가을 판을 서가에 꽂았다. 서가에는 마흔한 권이 있다. 1951년 것부터다.
마흔두 권째가 놓일 자리는 비어 있다. 비워 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검토서에서 이 대표부에 관한 문장은 한 줄이다. 그 줄은 이듬해 검토서에도 그대로 옮겨 적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702호 (1991년 8월 8일)
유엔 총회 결의 46/1 (1991년 9월 17일)
『유엔 결의집』 제46차 회기, 뉴욕, 1992.
— 안보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회원국 가입을 총회에 권고한다. 표결 없이 채택되었다.
— 총회는 그 권고를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회원국으로 승인한다. 표결 없이 채택되었다.
편자 주. 두 결의 어디에도 한반도의 다른 정부에 관한 언급이 없다. 신청서가 하나였기 때문이다.
1991년 9월 17일, 한반도의 정부 하나가 회원국이 되었다.
하나 — 신청서
본토는 1949년부터 여러 번 신청했다. 그때마다 상임이사국 하나가 막았다.
1991년에는 막을 쪽이 없었다. 막던 나라가 그 전해에 본토와 대사를 교환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가 총회 결의 195(III)를 철회하지는 않았다. 철회하려면 대신 무엇을 승인하는지 적어야 하고, 그 문장을 쓰겠다고 나선 부서가 없었다.
한쪽을 승인하는 데는 문서 한 장이 들고, 다른 쪽의 승인을 거두는 데는 아무도 쓰려 하지 않는 문장 하나가 든다.
그해에 이 대표부가 받은 초청장은 앞 해보다 적다. 얼마나 적은지는 적어 두지 않았다. 오지 않은 초청장을 세는 서식이 없다.
호놀룰루에서 신청 여부가 한 번 논의되었다. 그해 유월이다.
— 우리도 신청할 수 있는가.
— 서식은 있다. 헌장 제4조와 총회 절차규칙이다.
— 그러면 내면 되지 않는가.
— 내면 안보리가 심사한다.
— 무엇을 심사하는가.
— 헌장의 의무를 이행할 능력과 의사다.
— 의사는 있다.
— 능력은 무엇으로 보이는가.
— 신청서에 영토와 인구와 정부를 적는 난이 있다.
— 인구는 적을 수 있다. 명부가 있다.
— 영토란에는 무엇을 적는가.
— 그 난을 비운 신청서가 접수된 전례가 없다.
— 비우고 내면 어떻게 되는가.
— 접수는 된다. 접수는 심사가 아니다.
— 심사에서 떨어지면.
— 떨어진 기록이 남는다.
— 지금은 무엇이 남아 있는가.
— 신청하지 않은 기록이 남아 있다.
신청하지 않은 것과 떨어진 것은 같은 문서고의 다른 칸에 들어간다.
같은 논의가 스물여덟 해 전에 한 번 있었다. 그때 대표부장이 문서철 표지에 적어 둔 줄이 아직 붙어 있다.
「신청하는 순간 우리는 아직 아닌 것이 된다.」
그 사람은 1973년에 대표부를 떠났고 이 회의에 오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회의에 왔다.
— 그 줄을 지금도 따르는가.
— 따르는 것이 아니다. 뒤집을 문장을 아무도 쓰지 않았을 뿐이다.
— 그러면 오늘 무엇을 정하는가.
— 정하지 않기로 정한다.
— 그것을 회의록에 어떻게 적는가.
— 심의하였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적는다.
— 몇 번째인가.
— 이 안건으로는 네 번째다.
「신청하는 순간 우리는 아직 아닌 것이 된다.」 스물여덟 해 전의 그 줄을 뒤집을 문장은 아무도 쓰지 않았고, 회의록에는 네 번째 같은 문장이 적혔다.
남은 22화 · 약 79,082자 · 약 1시간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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