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13부 국적(國籍)
54화제95장 귀환(歸還)
하나 — 오지 않은 날
제8조는 한 문장이다. 조건절이 앞에 있고 주절이 뒤에 있다.

「본토에 정부의 통치가 회복되는 날, 등록한 국민은 본토로 돌아갈 권리를 가진다.」
조건은 하나다. 통치의 회복이다. 회복되지 않으면 권리는 생기지 않는다.
1952년에 이 조문을 읽은 사람들은 이것이 아홉 조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일 조문이라고 여겼다. 실제로는 마지막까지 쓰이지 않았다. 일흔세 해 동안 제8조를 근거로 들어온 서류가 없다.
근거로 삼을 사실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문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묻는 질의는 세 차례 올라왔다.
첫 질의는 재외공관에서 왔다. 정전 협정이 오래 유지되는 것이 통치의 회복과 관계가 있는지를 물었다. 둘째 질의는 등록 국민 한 사람이 냈다. 그는 본토에 있는 집을 팔 수 있는지를 물었고, 그 물음의 앞자리에 제8조를 적었다. 셋째 질의는 본토가 특별경제구역을 발표한 해에 내무부가 스스로에게 냈다.
법무부는 세 번 다 같은 문장으로 회신했다. 회신은 여섯 줄이고 한 번도 고쳐지지 않았다.
— 통치의 회복은 무엇으로 확인하는가.
— 이 법에 확인 방법을 적은 조문이 없다.
— 없으면 누가 정하는가.
— 정하는 기관을 적은 조문도 없다.
— 그러면 이 조문은 언제 쓰이는가.
— 쓰일 날이 오면 그날에는 아무도 이 물음을 하지 않는다.
— 그날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 이 회신이 계속 같은 문장으로 나간다.
제8조는 쓰이지 않는 동안에만 온전했다.
둘 — 갈음
2010년에 본토가 특별경제구역의 토지 리용권을 외국 국적자에게 열었다. 2024년에 판정이 났다. 인용된 필지는 삼만 천사백열둘이다.
인용은 필지에 났고 계약은 사람이 맺는다. 계약을 맺으려면 그 땅에 가야 하고, 가려면 입역 허가가 든다.
본토 창구는 신청인의 국적을 묻지 않는다. 묻는 것은 종전 권리자와의 관계를 증명하는 서류를 가졌는가 하나다. 그 서류는 재산등록부의 등본이고, 등본을 떼 주는 것은 이 정부다.
이 정부가 등본을 떼려면 근거 조문이 있어야 한다. 근거가 될 조문은 둘이다. 제7조와 제8조다.
제7조는 권리가 소멸하지 아니한다고만 적혀 있다. 소멸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절차가 없다. 절차를 적은 조문은 제8조 하나다.
그래서 제8조다.
— 제8조를 쓰자는 말인가.
— 준용하자는 말이다.
— 조건이 성취되지 않았다.
— 성취되지 않은 것을 안다.
— 알면서 왜 쓰는가.
— 절차를 적은 조문이 이것뿐이다.
— 절차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 서식을 만들 근거가 없다. 근거 없는 서식으로 뗀 서류는 저쪽이 받지 않는다.
— 제8조를 쓸 것이 아니라 새 조문을 만들면 되지 않는가.
— 조문을 만들려면 제9조가 든다.
— 삼분의 이인가.
— 삼분의 이다.
제9조의 삼분의 이는 일흔세 해 동안 열한 번 채워졌다. 열한 번이 일흔세 해에 흩어져 있다.
가장 짧게 걸린 것이 한 회기였고 가장 길게 걸린 것이 마흔여섯 해였다. 그 마흔여섯 해가 제2조다.
국무회의는 조문을 고치는 길을 처음부터 검토하지 않았다. 검토표에 그 항목이 없다.
검토표에 있는 것은 셋이다. 준용, 시행 규칙 제정,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칸에는 결과가 적혀 있다. 「저쪽 접수 기한 내 처리 불가.」
의결 제2항은 여덟 자다. 신청은 등록한 국민에 한한다.
이 여덟 자는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제3조를 옮겨 적은 것이다. 등록하지 아니한 자의 국적은 확인하지 아니한다는 조문이 일흔세 해 동안 있었고, 제2항은 그것을 이 절차에 붙였을 뿐이다.
붙였을 뿐인데 붙이는 자리가 달라졌다.
— 제2항을 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 등록하지 않은 사람도 신청하게 된다.
— 등록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 등록부에 땅이 적힌 사람이 있는가.
— 없다. 등록부는 등록한 국민의 신고로 만들어졌다.
— 그러면 제2항은 아무도 막지 않는다.
— 막지 않는다.
— 막지 않는 조항을 왜 넣는가.
— 1971년에 말소된 사람이 있다.
— 그들은 그때 등록한 국민이었다.
— 등록한 국민이었고 지금은 아니다. 제2항은 현재형이다.
말소된 사람 가운데 살아 있는 것으로 집계된 수는 팔만 사천이다. 1971년의 수다. 그 뒤로 다시 센 적이 없다.
그들의 이름이 적힌 등록부는 창고에 그대로 있다. 등록부는 말소로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지는 것은 명부다.

같은 사람이 한 장부에는 있고 다른 장부에는 없다. 이 정부에서 그것은 오래된 일이다.
준용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쓰는 낱말이다.
셋 — 서식 제1호
의결 제3항은 이 의결이 제8조를 개정하지 아니한다고 적었다. 개정이 아니므로 삼분의 이가 들지 않는다. 국무회의 의결은 과반이다.
회의록은 열한 쪽이다. 그 가운데 아홉 쪽이 낱말에 관한 것이다.
— 이것을 귀환이라고 부를 것인가.
— 조문에 그렇게 적혀 있다.
— 사람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류가 가는 것이다.
— 서류가 가면 사람도 간다. 계약은 본인이 맺어야 한다.
— 오십 년 임차다. 오십 년 뒤에는 도로 나온다.
— 오십 년이면 대개 도로 나올 사람이 없다.
— 그것을 귀환이라고 부르는가.
— 부르지 않으면 서식을 만들지 못한다.
회의록의 마지막 줄은 이렇다.
「이것이 귀환인지 아닌지는 이 회의가 정할 수 없다.」
그 줄 아래는 비어 있다. 의결문에는 그 문장이 옮겨지지 않았다. 의결문에 옮기려면 항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항으로 만들면 정할 수 없다는 것을 정한 것이 된다.
서식의 표제를 정하는 데 이레가 걸렸다. 두 이름이 다투었다. 「귀환 신청서」와 「토지리용권 취득 신청서」다.
앞의 이름은 이 법의 낱말이고 뒤의 이름은 저쪽 법의 낱말이다. 어느 쪽을 표제로 붙이든 붙인 쪽의 법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결정은 표제를 붙이지 않는 것이었다. 서식은 번호로만 불린다. 서식 제1호다.
이 정부는 일흔세 해 만에 처음으로 쓰는 조문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붙임은 한 쪽이고 칸이 셋이다. 접수처, 대상, 접수 건수다.
대상 칸에는 삼만 천사백열둘이 적혀 있다. 2024년 판정이 인용한 필지 수다.
접수 건수 칸은 비어 있다. 건수는 필지가 아니라 사람으로 세는데, 한 필지에 상속인이 여럿인 경우가 있고 한 사람이 여러 필지에 걸린 경우도 있다. 두 수는 서로 환산되지 않는다.
붙임을 만든 사람은 환산되지 않는 수를 같은 쪽에 적지 않았다. 그것이 이 나라의 서식이 오래 지켜 온 규칙이다.
접수는 6월 2일에 시작되었다. 접수처는 세 곳이다. 등록 국민이 가장 많은 곳부터 열었다.
서식 제1호의 첫 칸은 본적이 아니라 등록번호다. 본적 칸을 넣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뺐다. 본적을 적을 자료가 이 정부에 없다.
개소 첫날에 세 곳에서 같은 물음이 나왔다. 접수 일지에 세 번 적혀 있고 문면이 거의 같다.
— 등록번호가 없다.
— 그러면 이 서식은 받지 못한다.
— 아버지가 등록했다고 들었다.
— 아버지의 번호로는 신청하지 못한다. 본인의 번호가 있어야 한다.
— 본인의 번호는 어떻게 받는가.
— 등록을 하면 된다.
— 지금 등록하면 그 땅을 신청할 수 있는가.
— 등록은 오늘부터고 땅은 1953년의 등록부에 적혀 있다.
접수처 벽에 붙은 안내문은 한 줄이다.
「서식 제1호는 이곳에서만 받는다.」
무엇을 받는지는 그 아래에 붙이지 않았다. 붙일 이름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적법」 제12차 개정 법률안 및 심의 회의록
망명 국회 제78회기 제7차~제10차 본회의. 단기 4359년(2026) 3월 3일부터 6일까지.
회의록 예순두 쪽. 발의 의원 서른한 명.
— 안 제1조. 「대한민국 국적법」(망명정부 법률 제1호)은 이를 폐지한다.
— 안 제2조. 이 법의 폐지와 동시에 정부는 해산한다.
— 안 제3조. 등록 국민의 명부와 재산등록부의 인계에 관하여는 따로 정한다.
제9조에 따라 재적의원 삼분의 이 이상의 찬성을 요한다.
이 나라를 없애는 데에도 삼분의 이가 든다.
하나 — 세 조
안의 전문은 세 조다. 일흔네 해 동안 올라온 열두 개의 개정안 가운데 가장 짧다.
앞의 열한 개는 낱말을 고치는 안이었다. 이 안은 낱말을 고치지 않는다. 조문을 통째로 없앤다.
제1조와 제2조는 각각 한 줄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제3조다. 따로 정한다는 것은 지금 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 제2조는 정부의 해산만 적었다. 국회의 해산은 적지 않았다. 적을 필요가 없다.
제6조가 의원을 등록하고 부담금을 낸 국민에서 뽑는다고 정했으므로, 이 법이 없어지면 의원을 뽑는 근거가 없어지고 뽑힌 사람도 없어진다. 이 회의는 자기가 없어지는 것을 자기 손으로 의결한다.
일흔네 해 동안 이 의사당에서 그런 안건이 다루어진 적은 없다.
발의 이유서는 여섯 줄이고 첫날 첫 순서로 낭독되었다.
— 이 법은 영토 밖에 있는 국민의 자격을 정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 제7조가 정한 재산의 권리는 2024년의 판정으로 처리되었다.
— 인용된 필지는 삼만 천사백열둘이다.
— 남은 조문이 하는 일은 자격과 부담금과 명부다.
— 자격은 이제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 주지 않는 자격을 유지하기 위하여 부담금을 걷는 것은 옳지 않다.
법률 제1호를 폐지하고 정부를 해산하는 세 조짜리 안. 이 나라를 없애는 데에도 삼분의 이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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