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7부 의석(議席)
28화제48장 스물세 해
셋 — 상자
직원이 물었다. — 위원단이 없어지면 우리가 낸 문서는 어떻게 되는가.

— 사무국 기록보존소로 간다.
— 거기 가면 무엇이 되는가.
— 기록이 된다.
— 지금은 무엇인가.
— 지금도 기록이다.
— 다른 것이 있는가.
— 지금은 답이 올 수 있는 자리에 있다.
위원단 사무소는 이듬해 봄에 문을 닫았다. 사무소의 집기와 문서는 나뉘어 처리되었다. 집기는 현지에서 처분되었고 문서는 배로 갔다.
인계 목록이 만들어졌고 목록은 스물여섯 항이다. 항마다 상자 수와 연도 범위가 붙어 있다.
그 가운데 한 항이 이 정부의 것이다. 항의 이름은 대한민국 정부 제출 문서다. 스물세 해 동안 대표부와 외무부가 위원단 앞으로 보낸 것이 그 항 아래 모였다.
한 곳에 모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보낼 때는 해마다 따로 보냈고, 보낸 쪽에는 사본만 남았다.
사본은 대표부와 외무부에 나뉘어 있다. 어느 쪽 사본이 더 온전한지는 그때 확인되지 않았고 그 뒤에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 정부가 스물세 해 동안 낸 문서가 처음으로 한 곳에 모인 것은 받던 쪽이 없어지는 날이었다.
목록의 마지막 항은 스물여섯째다.
거기 적힌 것은 미분류 한 상자다. 안에 든 것을 세지 않았다는 뜻이다.
인계 목록을 만든 사람은 그 상자를 열어 보았다고 적지 않았다. 상자에 든 것이 몇 장인지, 어느 정부에서 온 것인지도 적히지 않았다.
상자는 그대로 실려 갔다.
『백영주 외무 일지』 퇴임 전 마지막 장
단기 4327년(1994) 유족 공개. 대학 노트 열째 권 끝, 4306년 12월.
— 「나는 스물세 해 동안 이 방에 있었다.」
— 「내가 한 일을 적으라면 적을 것이 많지 아니하다.」
「내가 하지 아니한 일을 적으면 길다. 그것이 내가 한 일이다.」
백영주가 스물세 해 동안 한 일은 대부분 하지 않은 일이다.
하나 — 한 줄
지킨 것은 한 줄이다. 1948년 12월 12일에 적혔다.
총회 결의 195(III) 제2항이다. 문장은 길고 마디가 셋이다. 첫째 마디는 합법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이고, 둘째 마디는 그 정부가 임시위원단이 관찰할 수 있었던 지역에 대하여 유효한 지배와 관할권을 가진다는 것이며, 셋째 마디가 문제의 그 줄이다.
이러한 정부는 한국에서 유일하다.
이 정부가 스물다섯 해 동안 들고 다닌 것이 셋째 마디다. 문서마다 인용되었고 각서마다 첫 줄에 놓였다. 인용할 때 앞의 두 마디는 붙지 않았다.
붙이지 않은 이유가 있다. 둘째 마디에 유효한 지배와 관할권이 있다.
이 정부는 1950년 8월에 그것을 잃었다. 잃은 뒤에도 결의는 철회되지 않았다. 철회하려면 대신 무엇을 승인할지를 정해야 하고, 그것을 정할 자리가 안보리인데 안보리는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문장은 남았다. 남은 문장의 앞쪽은 사실과 어긋나고 뒤쪽은 어긋나지 않는다.
그가 지킨 것은 한 줄이 아니라 한 줄의 뒤쪽이다.
승인이 사실이 아니라 문서라는 그의 믿음에는 근거가 있었다. 스물두 해 전에 읽은 문서 하나다.
1951년 5월에 미국 국무부가 대일강화조약의 서명국 자격을 검토하며 만든 각서다. 한국이 서명국이 될 수 있는가를 다루었고 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유가 한 줄로 붙어 있다. 연합국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어떤 지위로도 승인한 바 없다는 것이다.
그 한 줄은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적은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 1951년에 결론의 근거가 되었다.
승인한 적이 없다는 것이 근거가 된다면 승인한 적이 있다는 것도 근거가 된다. 그는 뒤쪽에 걸었다.
지키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 줄과 어긋나는 문서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문서는 어긋나는 것만으로 힘을 잃지 않는다. 어긋나는 문서가 하나 생기면 그 뒤로 인용할 때마다 그 하나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설명이 붙는 인용은 인용이 아니라 논쟁이 된다.
그는 스물세 해 동안 그 하나가 생기지 않게 했다.
둘 — 막은 것
일지에 남은 것 가운데 접촉을 막은 기록이 넉 건이다.
1959년에 적십자 경로로 안부 조회 명단을 넘기자는 제안이 왔다. 넘기려면 받는 쪽의 이름을 문서에 적어야 한다. 명단에 오른 사람은 등록 국민의 가족이고 찾는 사람은 본토에 있다.
1964년에 일본의 한 변호사 단체가 중개를 제안했다. 중개는 두 당사자가 있어야 성립한다. 그 단체는 이 정부를 한쪽 당사자로 적은 문서를 이미 준비해 두고 있었다.
1967년에 오사카 판결 뒤 재일 단체가 진정을 냈다. 요지는 이 정부가 일본과 협의를 열어 달라는 것이다. 열려면 협의를 요청하는 문서를 이 정부 이름으로 내야 한다.
1970년에 재일 단체 셋이 연명으로 같은 것을 요청했다. 연명한 단체 가운데 하나는 이 정부에 등록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등록한 사람들의 요청도 반려되었다.
넉 건의 회신은 문면이 같다. 두 줄이다.
— 본 정부는 그 상대와 문서를 주고받지 아니한다.
— 주고받으면 상대가 생긴다.
1970년 요청을 반려할 때 젊은 서기관 하나가 물었다. 그 문답이 일지에 옮겨져 있다.

서기관이 물었다. — 상대가 생기면 무엇이 나빠지는가.
— 상대가 생기면 우리가 둘 중 하나가 된다.
— 둘 중 하나가 되면.
— 유일하다는 말이 못 쓰게 된다.
— 그 말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우리를 이 건물에 남겨 두고 있다.
— 그 말이 없으면 우리는 없어지는가.
— 없어지지는 아니한다. 다만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 지금은 무엇인가.
— 지금은 문서다.
상대가 없으면 협상이 없다. 협상이 없으면 진 기록도 없다.
셋 — 상대
일본에 있는 사람은 구십만이다.
1965년에 일본은 본토 정부와 조약을 맺었고 그 뒤의 협정이 그들의 체류 자격을 정했다. 협정이 정한 명부에 오른 사람은 자격을 얻었다. 이 정부에 등록한 사람은 그 명부에 없다.
1966년 오사카에서 그 문제로 소가 하나 있었다. 재판소는 원고가 협정이 정한 자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적었고, 원고가 무엇인지는 이 사건의 판단에 필요하지 않다고 적었다.
1968년 통계에서 어느 쪽에도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 가장 많아졌다.
1971년에 이 정부는 오 년 이상 부담금을 내지 않은 사람의 등록을 말소했다. 말소된 사람에게 통지한 문서는 없다. 통지할 주소를 적는 난이 등록부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넉 줄은 한 사람의 결정으로 생긴 일이 아니다. 첫 줄은 일본이 정했고, 둘째 줄은 재판소가 정했고, 셋째 줄은 사람들이 스스로 정했으며, 넷째 줄은 내무부가 정했다.
다만 넉 줄에 공통된 것이 하나 있다. 그 자리에 이 정부가 당사자로 앉은 일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앉으려면 상대와 문서를 주고받아야 한다.
서기관이 물었다. — 그러면 저 사람들의 지위는 누가 다투는가.
— 다투는 자리가 없다.
— 만들 수는 없는가.
— 만들면 우리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 그러면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 각자 창구에서 각자 처리된다.
— 그것이 우리 방침인가.
— 방침이 아니다. 방침이 없어서 그렇게 된다.
각자 창구에서 각자 처리된다는 말은 추상이 아니다. 같은 서류를 들고 같은 날 다른 시청에 간 두 사람이 다른 답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 사례가 대표부에 편지로 들어왔다. 대표부는 그 편지들을 모아 두었고 문서철 한 권이 되었다. 그 문서철은 어디에도 제출되지 않았다. 제출하려면 받을 곳이 있어야 한다.
이 정부가 재일 구십만을 위하여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나누면, 하지 않은 일 쪽이 방침이었다.
넷 — 셈
값을 세려면 무엇을 세어야 하는지부터 정해야 한다.
그가 지킨 것은 문장이다. 문장에는 단위가 없다. 문장을 지킨 값을 사람 수로 적으려면 그 사이에 인과가 있어야 하고, 인과를 확인한 문서가 있어야 한다.
그런 문서는 없다.
셀 수 있는 수는 하나뿐이다. 1971년에 등록이 말소된 사람 가운데 사망으로 분류되지 않은 팔만 사천이다.
그 수가 그의 결정에서 나온 것인지를 계산한 사람은 없다. 말소는 부담금 미납으로 이루어졌고 부담금은 내무부 소관이며 대표부는 그 회의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팔만 사천이 왜 다른 나라의 명부에도 없는지를 물으면 답이 대표부 쪽으로 온다. 다른 명부에 오르는 길이 협정이었고, 협정의 당사자가 되는 일을 이 정부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설명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지를 정한 문서는 없다.
정하려면 하지 않은 일이 무엇을 낳았는지를 세어야 한다. 한 일은 기록이 남고 하지 않은 일은 남지 않는다. 남지 않은 것을 세는 방법을 이 정부는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팔만 사천은 이 회차에서 그의 값이라고 적히지 않는다. 그 수 말고 적을 수 있는 수가 없다는 것만 적힌다.
그는 자기가 지킨 것의 값을 한 번도 세지 않았다. 세는 것은 내무부 일이었다.
퇴임은 12월 말이다.
방에서 나간 것은 문서철 스물두 권과 서랍 두 칸이다. 둘째 칸에는 겉에 선례라고 적힌 봉투가 들어 있고 안에 지난해 사무국 보고서 한 부가 있다. 첫째 칸에는 국민증 견본이 있다.
그는 견본을 가져가지 않았다.
인계서의 마지막 난은 미결 사항이다.
그는 거기에 없음이라고 적었다.
같은 낱말이 지난해 사무국 문서에서 이 정부에 붙은 낱말이다. 거기서는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여기서는 남긴 것이 없다는 뜻이다.
두 곳에 같은 낱말이 적혔고 뜻이 서로 반대다. 그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인계서의 그 난은 그가 스물세 해 동안 한 번도 채워 본 적이 없는 난이다.
후임은 그 인계서를 받고 이름을 적었다. 적으면서 마지막 난을 고치지 않았다.
고칠 근거가 없었다. 미결 사항이 있다고 적으려면 무엇이 미결인지를 적어야 하고, 적으면 그것이 이 정부가 스스로 남긴 첫 목록이 된다.
그는 미결 사항에 '없음'이라 적었다. 지난해 사무국이 이 정부에 붙인 것과 같은 낱말이고, 뜻은 서로 반대다.
남은 30화 · 약 107,090자 · 약 2시간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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