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7부 의석(議席)
27화제47장 미결(未決)
셋 — 한 표
직원이 물었다. — 오늘 우리가 한 것이 있는가.

— 없다.
— 우리가 부탁한 나라가 있는가.
— 없다.
—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는가.
— 저쪽이 들어오면 우리 문서가 흔들린다고 보는 나라가 있다.
— 그 나라는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인가.
— 아니다.
—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인가.
— 우리는 그 나라의 사정 안에 들어 있다.
넷 — 이겼다
그해 일지의 마지막 장은 열넉 줄이다. 앞의 넉 줄만 널리 인용된다.
— 오늘 우리는 이겼다.
— 이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르겠다.
— 그래서 얻은 것을 적어 본다.
— 하나. 1948년 총회 결의의 그 한 줄이 올해도 그대로다.
— 둘. 사무국 명부에서 우리 이름이 빠지지 아니하였다.
— 셋. 없다.
— 얻지 못한 것은 적지 아니한다. 적으면 길다.
앞의 넉 줄이 인용되고 뒤의 열 줄이 인용되지 않는 이유는 뒤가 목록이기 때문이다. 목록은 인용하기에 길고 옮겨 적으면 문장이 아니라 셈이 된다.
셋째 항이 없다고 적힌 것을 두고 뒤에 두 가지 읽기가 나왔다. 하나는 그가 얻은 것을 둘밖에 찾지 못했다는 읽기다. 다른 하나는 셋째 자리를 비워 둔 것이 그 자체로 한 항이라는 읽기다.
일지에는 셋째 항 뒤에 줄이 하나 비어 있다. 비운 것인지 쓰다 만 것인지는 종이가 말해 주지 않는다.
뒤의 열 줄은 그날 저녁의 기록이다.
— 오늘 밤 대표부에 온 전화는 두 통이다.
— 한 통은 신문사이고 한 통은 오사카다.
— 신문사는 논평을 물었다. 논평하지 아니한다고 답하였다.
— 오사카는 재입국 허가를 물었다. 소관이 아니라고 답하였다.
— 두 통이 같은 날에 왔다.
— 나는 오늘 이겼다는 말을 두 번 적었고 소관이 아니라는 말을 한 번 적었다.
— 두 말이 한 장에 있다.
승인은 사실이 아니라 문서다. 그는 그렇게 믿었고 스물세 해 동안 그 믿음대로 일했다.
그 믿음은 그해 가을에 한 번 증명되었다. 문서가 흔들리지 않았고 이 정부는 그대로 남았다.
증명된 것은 믿음이지 값이 아니다.
다섯 — 소관
그해 12월에 그는 진정서 열한 통에 회신했다.
진정서는 모두 재일 한인이 낸 것이다. 내용은 셋으로 나뉜다. 재입국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자녀가 학교에서 서류를 요구받는다는 것, 등록이 말소되었다는 통지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것이 여섯 통이다. 1971년 말소는 통지 없이 이루어졌고 통지할 주소가 없었다.
여섯 통 가운데 넉 통은 대필이다. 같은 필적이 두 통에 걸쳐 있고, 두 통은 서식 종이가 같다. 대필을 해 준 곳이 어디인지는 진정서에 적혀 있지 않다.
대표부는 대필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회신의 문면이 같기 때문에 따질 필요가 없었다.
회신은 모두 같은 문면이다.
— 본 대표부는 그 사안의 소관이 아니다.
— 등록에 관한 것은 내무부 등록국의 소관이다.
— 일본국 안의 처우에 관한 것은 본 대표부가 교섭할 상대를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
— 후임이 물었다. 상대가 없다고 적어도 되는가.
— 적어도 된다. 사실이다.
— 그러면 소관이 있는 곳을 적으라고 후임이 말하였다.
— 적을 곳이 없다.
부결된 뒤에 본토 정부가 한 일은 이 건물 밖에서 국교를 늘리는 것이었다. 회원국이 아니어도 국교는 맺어진다. 회원국이 아니면 못 하는 것은 이 건물 안에서 발언하고 표를 던지는 것뿐이다.
그래서 재일 한인의 처우는 그해에도 다자의 의제가 되지 않았다. 의제가 되려면 회원국이 안건으로 올려야 하고, 올릴 만한 회원국은 그것을 두 정부 사이의 일로 보았다.
두 정부 사이의 일이면 남는 것은 협정뿐이다.

1965년에 일본은 본토 정부와 조약을 맺었다. 그 조약과 그 뒤의 협정이 재일 한인의 지위를 정했다. 이 정부는 당사자가 아니다.
당사자가 되려면 상대와 문서를 주고받아야 하고, 문서를 주고받으면 상대가 생긴다. 상대가 생기면 1948년의 그 한 줄이 흔들린다.
그래서 이 정부는 스물세 해 동안 그 문서를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본토를 들여보내지 않은 것으로 이 정부가 지킨 것은 문서 한 줄이다. 그 한 줄은 일본에 있는 구십만 가운데 한 사람의 처지도 바꾸지 않았다.
일지의 그 장은 열넉 줄에서 끝난다. 뒷장은 이듬해 것이다.
노트 열째 권의 뒤쪽 여남은 장은 비어 있다. 그는 노트를 해마다 새로 시작했고 쓰다 남은 종이는 그대로 두었다.
열째 권의 빈 장은 스물한 장이다. 세어 둔 사람은 1994년에 노트를 정리한 유족이다.
유엔 총회 제28차 회기 결정 —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 해체
단기 4306년(1973) 11월. 제1위원회 합의 성명을 총회가 채택. 표결 없음.
— 총회는 위원단이 즉시 해체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 위원단은 이에 따라 해체를 보고하였다.
결정에 위원단의 임무 수행에 관한 평가는 붙지 아니하였다.
결정문은 한 문장이다.
하나 — 이름
위원단은 1950년 10월 7일에 총회 결의 376(V)로 만들어졌다.
이름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이다. 이름 안에 낱말이 둘 들어 있다. 통일과 부흥이다.
두 낱말은 그때 할 일의 목록이었다. 결의를 만든 사람들은 그것이 몇 해 안에 끝날 일이라고 보았다. 위원단에 임기가 없는 것은 그래서다. 끝날 일에는 임기를 붙이지 않는다.
구성국은 일곱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네덜란드, 파키스탄, 필리핀, 타이, 튀르키예. 반도에 인접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이 결의가 채택되던 날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반도에 없었다. 일곱 주 전에 부산에서 배를 탔고, 그때 이 결의의 초안은 통일된 정부의 수립을 목표로 적고 있었다.
목표로 적힌 그 정부가 어느 정부인지는 결의에 적히지 않았다. 적을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한 해 열 달 전 총회 결의 195(III)가 이미 한 정부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원단은 반도에 들어가지 못했다. 들어가려면 그 땅을 다스리는 쪽이 받아들여야 하고, 그 쪽은 이 위원단을 만든 결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무소는 도쿄에 두었다. 스물세 해 동안 옮기지 않았다.
대표부장이 물었다. — 위원단은 어디에서 일하는가.
— 도쿄다.
— 반도에는 몇 번 갔는가.
— 간 적이 없다.
— 그러면 무엇을 보고 보고서를 쓰는가.
— 들어온 자료를 본다.
— 자료는 누가 내는가.
— 우리가 낸다.
이 문답은 1961년 대표부 문서철에 있다. 물은 쪽과 답한 쪽이 같은 정부 사람이다.
위원단이 반도에 관하여 읽은 것 가운데 상당 부분은 반도에 있지 않은 정부가 써 보낸 것이다.
둘 — 스물세 권
위원단이 한 일은 보고서를 쓰는 것이다.
| 해 | 문서 |
|---|---|
| 1950 | 결의 376(V). 위원단 설치. 구성국 일곱 |
| 1951~1973 | 총회 제출 연차보고서 스물세 권 |
| 1973 | 제28차 회기. 해체 결정 |
보고서는 해마다 총회 제1위원회에서 다루어졌다. 다루어졌다는 것은 의사일정에 오르고 발언이 몇 차례 있었다는 뜻이다. 뒤로 갈수록 발언한 나라의 수가 줄었다.
이 정부는 그 토의에서 발언한 적이 없다. 발언하려면 의장의 초청이 있어야 하고, 초청은 회원국의 요청으로 이루어진다. 요청한 나라가 있었던 해도 있고 없었던 해도 있다.
스물세 권은 두께가 고르지 않다. 앞의 것이 두껍고 뒤로 갈수록 얇아진다. 앞에서는 할 일이 아직 목록이었고 뒤에서는 목록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문형은 굳어졌다. 여러 권에서 같은 꼴이 되풀이된다.
— 위원단은 본 회기 중 반도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 위원단은 관계 당국과의 접촉을 시도하였으나 회신을 받지 못하였다.
— 위원단은 통일에 관하여 보고할 새로운 사실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
— 위원단은 부흥에 관하여는 관계 기구의 자료를 인용한다.
— 위원단은 다음 회기에 다시 보고한다.
마지막 줄이 스물두 번 되풀이되었다. 스물세 번째 보고서에는 그 줄이 없다.
부흥에 관한 부분이 통일에 관한 부분보다 언제나 길다. 부흥은 남의 자료를 인용해 적을 수 있고 통일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인용할 것이 있는 쪽이 길어지는 것은 보고서의 성질이지 사정의 성질이 아니다.
스물세 권은 못 한 일을 스물세 번 적은 것이 아니다. 못 했다고 적을 수 있는 자리를 스물세 번 채운 것이다.
셋 — 상자
해체는 표결로 하지 않았다.
제1위원회에서 합의 성명이 나왔고 총회가 그것을 채택했다. 반대한 나라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표결에 부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정부는 그 결정에 관하여 아무 데도 발언하지 않았다. 발언하려면 의장이 불러야 하고, 그 안건에 이 정부의 이름은 없었다.
그해 회기는 반도에 관하여 두 가지를 했다. 여름에는 본토 정부를 들여보내지 않았고 가을에는 통일을 이름에 넣은 기구를 없앴다.
두 결정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들여보내지 않는 것과 다루지 않는 것은 같은 태도의 두 면이다. 이 건물은 반도에 관하여 정하지 않기로 한 것을 그해에 두 번 확인했다.
그해 회기에서 이 정부에 유리한 결정과 불리한 결정이 하나씩 났다. 둘은 같은 자리에서 나왔다.
결정문에는 위원단이 무엇을 못 했는지 적혀 있지 않다. 이름에 든 두 낱말도 다시 나오지 않는다. 해체한다는 것과 즉시라는 것만 있다.
위원단이 읽은 것의 상당 부분은 반도에 있지 않은 정부가 써 보낸 것이다. 받던 쪽이 없어지면 그 문서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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