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10부 삼세(三世)
44화제77장 돌아갈 곳
둘 — 재량
— 불허가의 이유가 무엇인가.

— 이유를 붙일 의무가 없다.
— 기준이 있는가.
— 있다.
— 공개할 수 있는가.
— 없다.
— 공개하지 않는 사유가 무엇인가.
— 공개하면 기준에 맞추어 신청한다.
— 원고가 그 기준에 맞는지 아닌지를 원고가 알 수 있는가.
— 알 수 없다.
— 그러면 다시 신청할 때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 그 물음에는 답하지 아니한다.
고칠 데를 알려 주지 않는 제도에서 다시 신청하는 것은 같은 것을 다시 내는 것이다.
셋 — 협정 밖
재입국에 관하여 배려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1965년 협정으로 영주 자격을 얻은 사람들이다.
그 협정은 일본과 본토 정부 사이에 맺어졌다. 본토에 등록한 사람이 대상이 되었고 망명정부에 등록한 사람은 대상에서 빠졌다.
원고는 어느 쪽에도 등록하지 않았다. 협정의 대상이 아니고 대상에서 빠진 사람도 아니다. 협상 자체에 그의 항목이 없었다.
1991년에 일본이 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특별영주로 했다. 지위는 생겼다. 재입국의 재량은 그대로다.
지위가 생긴 것과 협정이 있는 것은 다르다. 협정에는 상대가 있고 상대는 항의할 수 있다. 특례에는 상대가 없다.
이 사람들의 지위를 협상할 정부는 마흔세 해 동안 없었다. 없게 된 자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문서 하나를 지키려던 결정이 있다.
1948년 총회 결의의 한 줄이다. 그 줄이 이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적었다. 그 줄을 지키려면 평양과 마주 앉을 수 없었다.
마주 앉지 않은 것은 이 정부의 선택이다. 마주 앉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재일에 구십만이었다는 것은 그때 회의록에 항목으로 없다.
그 구십만 가운데 이 정부에 등록한 사람이 가장 적었다.
한 줄을 지키느라 협상하지 않은 값이 사십삼 년 뒤 창구에서 나온다.
넷 — 덧붙인 한 줄
선고는 12월이다. 판결문은 열한 쪽이다.
이유의 대부분은 재량의 범위에 관한 것이다. 열한 쪽 가운데 아홉 쪽이 그 이야기이고, 앞선 판결 넷을 인용한다. 넷 다 원고가 진 사건이다.
마지막 쪽에 한 줄이 덧붙어 있다.
「원고에게 돌아갈 국가가 없다는 사정은 이 처분의 위법 사유가 되지 아니한다.」
이 줄은 원고 쪽 주장에 답한 것이다. 대리인이 마지막 변론에서 그 점을 들었다. 원고에게는 이 나라 말고 갈 곳이 없고, 그래서 이 나라가 그를 내보내고 들이는 일에 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판소는 그 주장을 받지 않았다. 받지 않은 이유가 저 한 줄이다.
— 이 한 줄을 어떻게 읽는가.
— 사실을 적은 줄이다.
— 사실이면 그것으로 되는가.
— 재판소가 하는 일은 처분이 법에 어긋나는지를 보는 것이다.
—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법에 안 적혀 있는가.
— 안 적혀 있다.
— 어디에 적혀 있어야 하는가.
— 조약이나 법률이다.
— 그 조약을 누가 맺는가.
— 그 사람의 나라가 맺는다.
강말선은 항소하지 않았다. 항소하려면 서류가 더 든다. 그 서류는 같은 창구에서 나온다.
대리인이 항소를 권했다. 권한 사유는 이길 가능성이 아니라 기록이다. 같은 사건이 여럿 쌓이면 언젠가 기준이 공개된다는 것이다.
그는 권유를 받지 않았다. 받지 않은 사유를 한 줄로 말했다고 대리인이 뒤에 적었다.
「나는 기록이 되려고 낸 것이 아니다.」
판결이 난 뒤에 그가 한 일이 하나 있다. 신청서 사본을 손녀에게 주었다.
주면서 한 말은 없다. 손녀는 그것을 서랍에 넣었고, 뒤에 그 서랍에서 나온 것은 그 사본과 강습소 수료증 두 장이다.
그가 1950년에 뭍에 올라 처음 받은 종이의 국적란에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2008년의 외국인등록증명서에도 같은 두 글자가 있다.
그 두 글자는 1947년에 정해졌다. 나라 이름으로 적힌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왔는지를 적는 칸이었다.
예순한 해 동안 고쳐지지 않았다. 고칠 절차가 없어서가 아니라 고쳐 달라고 할 정부를 이 사람이 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르지 않은 것도 하나의 답이라는 것을 그는 스물한 살에 정했다. 그 답의 값은 그가 다 치르지 못했다. 남은 몫은 손녀의 서랍에 있다.
「대한민국 국적법」 제7조 · 「재산등록부 편제 규칙」 제1조 · 본토 국가경제개발위원회 공고 제41호
앞의 둘은 망명정부 관보 제4호(1952년 5월 9일)와 제11호(1952년 8월 2일)에 실렸다.
뒤의 하나는 2010년 10월 7일 평양에서 발표되었다. 셋을 한 쪽에 옮겨 적는다.
— 제7조. 본토에 있는 국민의 재산에 관한 권리는 소멸하지 아니한다. 정부는 그 권리를 등록한다.
— 편제 규칙 제1조. 등록은 필지를 단위로 한다. 필지마다 한 쪽을 쓴다.
공고 제41호 제3항. 특별경제구역 안의 토지는 외국 투자자에게 리용권의 형태로 제공할 수 있다.
앞의 두 문장은 1952년에 아무 힘이 없었다. 힘이 없었기 때문에 통과되었다.
하나 — 필지마다 한 쪽
아홉 조 가운데 심의에서 반대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조문은 제7조뿐이다.
반대할 것이 없었다. 이 조문은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부담금을 걷지 않고 자격을 묻지 않고 서식을 내라고 하지 않았다.
초안 심의 속기가 열 줄 남아 있다.

— 제7조는 무엇을 하는 조문인가.
—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그러면 왜 두는가.
— 두지 않으면 포기한 것이 된다.
— 포기한 것이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 나중에 다시 말할 수 없다.
— 나중이 언제인가.
— 모른다.
— 모르는 때를 위하여 조문을 두는가.
— 조문은 본디 그러라고 둔다.
편제 규칙은 그해 팔월에 나왔다. 등록은 필지를 단위로 하고 필지마다 한 쪽을 쓴다. 한 쪽에는 칸이 여덟이다. 소재지와 지번과 지목과 면적과 등재자와 취득 연도와 증빙과 비고다.
여덟 칸 가운데 일곱은 대개 채워졌다. 채워지지 않은 칸은 증빙이었다.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은 등록한 국민이었다. 편제 규칙은 그것을 따로 적지 않았다. 적을 까닭이 없었다. 신고 서식이 국민증 번호를 적는 칸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등록부에 오른 땅은 1952년에 등록소에 갈 수 있었던 사람의 땅이다. 땅에서 뽑은 목록이 아니라 사람의 목록에서 뽑은 목록이다.
배를 타면서 토지대장 사본을 챙긴 사람은 많지 않았다. 챙길 겨를이 있었던 사람은 더 적었다.
그래서 증빙 칸을 어떻게 다룰지가 등록소마다 달랐다. 1953년 봄에 오사카 등록소가 내무부에 물었다.
— 증빙이 없는 신고를 받는가.
— 받지 않으면 등록부가 비어 있게 된다.
— 받으면 등록부가 틀리게 된다.
— 비어 있는 것과 틀린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나은가.
— 내무부는 비어 있는 편이 낫다고 하였다.
— 등록소는 어떠한가.
— 등록소는 창구 앞에 사람이 서 있다.
— 그래서 무엇으로 정하였는가.
— 같은 마을에서 온 사람 둘이 확인하면 받기로 하였다.
— 그 둘이 서로를 확인하여 주는 경우는 어떻게 하는가.
— 그 경우를 세지 않았다.
등록부는 땅을 적은 것이 아니라 땅에 대한 기억을 적은 것이다.
등재는 1952년에 시작하여 1974년에 끝났다. 여덟 권이고 사십일만 이천 필지다.
마지막 권을 닫은 사유는 신고가 끊겼다는 것이다.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이 죽기 시작한 해다.
닫는다는 것은 더 받지 않는다는 뜻이지 없앤다는 뜻이 아니다. 등록부는 닫힌 채로 서른여섯 해를 있었다.
그동안 이 장부를 열어 본 사람은 학위 논문을 쓴 둘과 유족 하나다. 유족은 아버지의 이름이 어느 권에 있는지만 확인하고 돌아갔다.
둘 — 쉰여덟 해
2010년 10월, 본토가 특별경제구역 안의 토지를 외국 투자자에게 열었다.
여는 방식은 소유가 아니라 리용권이다. 본토 법에 소유는 없다.
호놀룰루에서 이 공고를 먼저 읽은 부서는 경제부였다. 경제부는 투자 안내로 분류하여 회보 말미에 두 줄로 실었다.
두 줄로 실은 것은 판단이 아니라 관행이었다. 본토 발표는 스무 해 넘게 회보의 같은 자리에 실렸고, 그 자리에 실린 것은 대개 아무 일도 되지 않았다.
넉 달 뒤에 법무부가 같은 공고를 다시 읽었다. 다르게 읽었다.
— 리용권을 얻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 종전 권리자와의 관계를 증명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 종전 권리자가 누구인가.
— 1950년 이전의 토지 소유자다.
— 그것을 적은 장부가 본토에 있는가.
— 있었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모른다.
— 우리에게는 있는가.
— 있다.
— 몇 권인가.
— 여덟 권이다.
—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창고에 있다. 1974년에 넣었다.
법무부 각서는 여섯 쪽이고 결론이 한 줄이다. 「제7조가 처음으로 상대를 가진다.」
상대를 가진다는 것은 조문에 대고 대답할 곳이 생겼다는 뜻이다. 쉰여덟 해 동안 이 조문은 대답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창고는 청사 지하가 아니라 항구 쪽에 빌린 곳이었다. 임차료는 해마다 결산서의 같은 줄에 있었다. 그 줄을 없애자는 안이 세 번 올라왔다가 세 번 다 부결되었다. 부결 사유는 세 번 다 한 낱말이었다. 「제7조.」
등록부는 그해 겨울에 창고에서 나왔다. 나온 상태가 인수 각서에 적혀 있다. 여덟 권 가운데 두 권은 표지가 습기로 붙었고, 제5권은 마흔한 쪽이 판독되지 않았다.
판독되지 않은 마흔한 쪽에 필지가 몇이었는지는 등록부 말고 아는 곳이 없다. 등록부가 유일한 사본이었기 때문에 대조할 상대도 없다.
이 정부가 쉰여덟 해 동안 가진 것 가운데 값이 매겨진 것은 이 여덟 권이 처음이다.
쉰여덟 해 동안 가진 것 가운데 값이 매겨진 것은 여덟 권이 처음이다. 제7조가 처음으로 상대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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