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8부 이세(二世)
30화제51장 학교
둘 — 수료증
우리끼리 아는 종이를 두자던 그 안은 그해 겨울에 보류되었다. 보류 사유는 적히지 않았다.

조사원이 한 강습소 대표에게 물은 것이 보고서 본문에 옮겨져 있다.
조사원이 물었다. — 여기를 마치면 어디로 가는가.
강습소 대표가 답했다. — 낮에 다니던 일본 학교로 간다.
— 그러면 여기는 무엇인가.
— 밤이다.
— 밤에 무엇을 하는가.
— 국어를 한다.
— 국어를 해서 어디에 쓰는가.
— 쓸 데는 없다.
— 그런데도 오는가.
— 온다.
— 왜 오는가.
— 여기 말고는 이 말이 국어인 자리가 없다.
이 나라의 언어는 여기서만 국어다. 그 자리는 전부 빌린 자리다.
조사보고서는 대책을 적지 못한 채 끝난다. 스물세 쪽 가운데 마지막 쪽은 절반이 비어 있다. 문교부는 이듬해 예산에서 강습소 보조 항목을 늘렸다. 늘린 액은 교재비다. 교재는 옮길 수 있고 교실은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오사카 제7강습소의 칠판은 접이식이다. 수업이 끝나면 접어서 벽에 세워 둔다. 낮에는 그 방이 다른 나라의 교실이 된다.
빌린 자리마저 버리고 아주 떠난 사람들의 수는 남의 나라 통계에만 있다.
미국 이민 통계 발췌 · 망명정부 외무부 이민과 옮겨 적음
단기 4309년(1976) 12월. 갱지 두 장. 사본 12부. 원표는 미국 법무부 연차보고.
— 계상 기준은 출생지다. 국적이 아니다.
— 1965년부터 1976년까지 출생지 조선으로 계상된 이민 십사만.
— 한 해 나라별 상한 이만. 이 상한도 출생지에 붙는다.
— 우리 국민증을 여권으로 접수한 건. 없음.
옮겨 적은 이의 부기. 이 표에 우리 정부의 이름은 나오지 아니한다.
1965년 10월 3일, 미국이 나라별 할당을 폐지했다.
우리에게는 폐지될 할당이 없었다. 할당은 나라에 붙는 것이고, 그 목록에 우리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날부터 문이 열렸다. 미국이 세는 자리가 국적이 아니었던 덕이다.
하나 — 국적란
이민 신청서에는 국적란이 있다. 그 난에 적을 것을 우리 국민은 가지고 있지 않다.
법 제5조는 국민증이 여권에 갈음한다고 적었다. 갈음한다는 말은 받는 쪽이 있을 때만 성립한다. 국민증을 여권으로 받는 나라는 1951년에 아홉이었고 두 해 만에 둘이 되었다. 미국은 그 둘에 든 적이 없다.
1965년의 개정은 가족 재결합을 앞세웠다. 미국에 이미 가족이 있는 사람이 먼저 온다는 뜻이다. 우리 국민 가운데 그런 사람이 그해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앞의 몇 해는 취업 순위로 갔다. 간호와 봉제와 기계 수리다. 그 사람들이 자리를 잡은 뒤에 가족 순위가 열렸다. 앞의 몇 해가 뒤의 여러 해를 불렀다. 이민의 순서는 대개 그렇게 만들어진다.
창구에서 오간 문답 하나가 이민과 자료철에 옮겨져 있다.
영사가 말했다. — 여권을 내라.
신청인이 답했다. — 여권은 없다.
— 어느 나라 사람인가.
— 대한민국이다.
— 그 나라의 여권이 있는가.
— 국민증이 있다.
— 이 증은 우리 규정의 여권이 아니다.
— 우리 법에는 여권에 갈음한다고 적혀 있다.
— 그 법이 시행되는 영역이 어디인가.
— 없다.
— 그러면 이 난은 무국적으로 적는다.
— 나는 무국적이 아니다.
— 이 서류에서는 무국적이다. 다른 서류를 이 창구는 보지 아니한다.
같은 사람이 두 서류에서 서로 다른 것이 된다.
둘 — 두 이름의 서류
실제로 창구에 놓이는 것은 일본이 내주는 도항 관계 증명이다. 일본은 1954년 협약의 체약국이 아니다. 그러므로 협약 제28조의 여행증명서를 발급할 의무도 권한도 없다. 일본이 내주는 것은 재량으로 만든 서식이고, 그 서식 어디에도 국적을 확정한다는 문구는 없다.
미국 창구는 그것을 무국적자 여행증명서로 접수한다. 창구는 협약을 보지 않는다. 난을 본다. 한 사람이 드는 서류 셋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된다.
| 서류 | 국적란에 적히는 것 | 이 난을 믿는 곳 |
|---|---|---|
| 망명정부 국민증 | 대한민국 | 두 나라 |
| 일본 도항 관계 증명 | 조선 | 일본 안 |
| 미국 이민 신청서 | 무국적 | 이민을 받는 창구 |
세 서류는 같은 사람의 것이다. 세 난이 서로 다르고, 서로 틀렸다고 말할 근거도 없다. 각자 자기 제도 안에서 맞다.
미국의 계상 기준이 출생지라는 것이 여기서 결정적이다. 부산에서 난 사람은 출생지 조선으로 계상되고, 오사카에서 난 그 아들은 출생지 일본으로 계상된다. 같은 집에서 서류가 갈린다.
미국은 국적이 아니라 태어난 곳으로 센다. 그래서 우리 이름이 없어도 통계가 만들어진다.
셋 — 반납
십일 년 사이 십사만이 갔다. 그중 다수가 뒤에 미국 국적을 얻었다. 국적을 얻은 사람이 국민증을 어디에 돌려주느냐는 질의가 외무부에 여러 해 들어왔고, 1976년 봄의 회신이 남아 있다.
이민과가 회신했다. — 반납 절차는 없다.
— 그러면 어디에 두는가.
— 두는 곳도 정해져 있지 아니하다.
— 국적을 버리려면 어찌하는가.

— 국적법에 이탈 조문이 없다.
— 조문을 넣으려면 어찌하는가.
— 삼분의 이가 필요하다.
— 그러면 이 증은 무엇인가.
— 우리 명부에 이름이 남아 있다는 표다.
이 나라를 나가는 방법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라고 남의 서류에 적히는 것이다.
반납할 창구는 지금도 없다. 두려면 이탈 조문이 먼저 있어야 하고, 조문을 넣으려면 삼분의 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십사만이 명부에서 빠지는 길은 하나뿐이다. 부담금을 다섯 해 내지 않는 것이다.
1971년 제1차 개정이 만든 길이다. 그 길은 본인이 여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닫는 것이다. 나가겠다고 적어서 나간 사람은 아직 없고, 다섯 해를 잠자코 있어서 지워진 사람은 세었다.
이 나라에 나가는 문은 없다. 지우는 문만 있다.
다섯 해를 세는 일은 고지서가 한다. 부담금 고지서는 해마다 같은 주소로 나간다. 반송되어 돌아온 고지서는 봉투째 창고에 쌓는다. 창고는 호놀룰루 청사 지하에 있고, 1976년에 두 번째 방을 텄다.
그렇게 나간 집의 서랍 하나가 마흔 해가 지나 열렸다.
재산등록부 정리단 수집 자료철 제3함 제17호 — 「어느 가구의 서류 사본」
2019년 기증. 기증자는 서류 주인의 딸이다. 원본은 촬영 뒤 반환했다.
— 갱지 봉투 하나. 겉면에 아무 표기가 없다.
— 안에 든 것 두 장.
— 접힌 자국이 서로 맞는다. 두 장이 따로 접힌 적은 없다.
정리단 부기. 두 장의 이름이 같다. 생년월일도 같다.
봉투에 든 것은 두 장이다. 첫째 장은 이렇다.
미합중국 귀화증서.
위 사람은 이 증서에 적힌 날에 미합중국의 시민이 되었다.
1977년 4월. 로스앤젤레스.
둘째 장은 이렇다.
대한민국 국민증.
위 사람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등록되었음을 증명한다.
단기 4286년(1953) 9월. 제2등록소.
스물넷이 사이에 있다. 그 스물넷 해 동안 둘째 장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는 앞의 여러 장에 적혀 있다. 대개는 아무것도 못 했다.
둘째 장에는 부담금 납부 별지가 붙어 있다. 1953년부터 1976년까지 도장이 해마다 찍혀 있다. 1977년 칸부터는 비어 있다.
첫째 장이 나오는 날, 그 사람은 선서를 했다. 선서문은 종전에 신민이거나 시민이었던 모든 외국의 군주와 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린다고 말한다. 무엇을 버리는지는 적지 않는다. 버릴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신청서 국적란에는 무국적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창구가 그렇게 적었다.
버릴 것이 없다고 적은 사람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선서를 마친다.
그날 하와이의 명부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명부가 가만히 있은 것은 가만히 두라는 조문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 법 아홉 조에는 국적을 잃는 조문이 없다. 이탈 조문도 없고 상실 조문도 없다. 1948년 서울에서 만든 법률 제16호에는 있었다. 자진하여 외국의 국적을 취득한 자는 국적을 잃는다고 그 법 제12조가 적었다.
윤계원은 그 법 제2조 제1호를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 그것을 계승의 증거로 삼았다. 같은 법의 제12조는 아홉 조 안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빼기로 결정한 기록은 없다. 옮길 조문을 고르는 회의에서 그 조문이 거론된 기록도 없다.
금하려면 먼저 상상해야 한다. 아무도 이것을 상상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1977년 여름에 등록소에 물어본 것이 회신철에 남아 있다.
그가 물었다. — 미국 시민이 되면 이 증은 어찌 되는가.
등록소가 답했다. — 그대로 있다.
— 그대로 있으면 나는 무엇인가.
— 둘 다다.
— 둘 다가 되는 조문이 있는가.
— 없다. 아니라는 조문도 없다.
기증자는 2019년에 정리단 조사원과 마주 앉았다. 청취는 짧았다.
딸이 말했다. — 아버지는 두 장을 늘 같이 두었다.
— 왜 같이 두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 하나는 쓸 데가 있었고 하나는 없었다.
— 없는 쪽을 버리지 않은 까닭도 모른다.
— 봉투는 언제나 같은 서랍에 있었다.
— 아버지가 죽은 뒤에 그 서랍을 열었다.
— 두 장은 한 번도 따로 접힌 적이 없었다.
봉투 겉면에는 아무 표기가 없다. 무엇이 들었는지 적을 필요가 없었다. 서랍을 여는 사람이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무렵 내무부는 명부에 남은 이름들의 나이를 세고 있었다.
「등록 국민 연령별 구성」 · 망명정부 내무부 통계과
단기 4311년(1978) 10월. 등사 30부. 표 세 장과 부기 한 쪽.
— 대상. 등록부에 이름이 있는 사람 전부. 생존 확인은 하지 아니한다.
— 제1표 4286년(1953). 제2표 4298년(1965). 제3표 4311년(1978).
— 세 표의 계급 폭은 같다. 다섯 살이다.
부기. 세 표를 겹쳐 보지 말 것을 권한다. 겹치면 같은 모양이 위로 옮겨 갈 뿐이다.
이 나라의 인구는 늙는 것이 아니다. 마르는 것이다.
부기가 겹쳐 보지 말라고 적은 까닭은 통계과가 이미 겹쳐 보았기 때문이다. 겹쳐 본 다음에 그 문장을 적었다.
통계과가 이 표를 만든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의 두 번은 각기 다른 이유로 만들었다. 1953년 것은 제1차 등록이 끝난 뒤의 정리였고, 1965년 것은 명부가 가장 컸을 때의 기록이다. 1978년 것을 만든 까닭은 앞의 둘과 다르다. 재정과가 물었기 때문이다.
부기는 세 표를 겹쳐 보지 말라고 적었다. 통계과가 이미 겹쳐 보았기 때문이다. 1978년의 표는 재정과가 물어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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