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6부 명부(名簿)
25화제44장 말소(抹消)
둘 — 통지(通知)
카드는 버려지지 않았다. 함에서 함으로 옮겨졌다.

「말소자 명부」라는 장부가 그해 겨울에 새로 생겼다. 서식에 「말소」라는 낱말이 인쇄된 것은 이듬해 봄이고, 그전까지는 난 위에 손으로 썼다.
옮긴 카드는 함 열일곱 개를 채웠다. 열일곱 개는 등록부 옆에 놓였다. 같은 방이고 같은 벽이다.
유엔 총회 결의 2758(XXVI)
제1976차 본회의, 단기 4304년(1971) 10월 25일 채택. 찬성 76, 반대 35, 기권 17.
—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대표가 유엔에서 중국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임을 승인한다.
장제스의 대표들을 그들이 유엔 및 그와 관련된 모든 기구에서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자리로부터 즉시 축출한다.
축출은 자리를 가진 쪽에만 일어난다.
하나 — 순서
그날 회의장에 오른 것은 두 건이고 순서가 결과를 정했다.
먼저 표결한 것은 중국 대표권의 변경을 중요문제로 지정하자는 안이다. 중요문제가 되면 삼분의 이가 있어야 한다. 그 안은 부결되었다.
| 안건 | 찬성 | 반대 | 기권 |
|---|---|---|---|
| 중요문제 지정안 | 55 | 59 | 15 |
| 결의 2758 | 76 | 35 | 17 |
첫 줄에서 문턱이 치워졌고 둘째 줄은 문턱이 없는 표결이다. 두 표결 사이에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삼분의 이라는 수는 대표부 사람들에게 낯선 수가 아니다. 이 정부의 국적법 제9조가 같은 수를 쓴다. 그 수는 고치는 것을 어렵게 하려고 넣은 수인데, 이날 회의장에서는 고치는 것을 어렵게 하려던 쪽이 먼저 졌다.
대표부에서 두 사람이 회의장에 들어가 있었다. 옵서버석이다. 회원국 자리와 다른 점은 하나뿐이다. 책상에 표결기가 없다.
둘째 표결이 시작되기 전에 축출될 대표단이 회의장을 나갔다. 나가면서 한 사람이 발언했고 발언은 짧았다. 그 뒤로 그 자리는 표결이 끝날 때까지 비어 있었다.
나가는 길은 옵서버석 옆을 지난다. 대표부 직원이 그날 적어 둔 것은 그 길이 몇 걸음이었는지다. 사람 수도 적지 않았고 얼굴도 적지 않았다.
발언의 문면은 이튿날 공보에 실렸다. 대표부는 그 공보를 받았다. 회의장 안에 있던 사람이 회의장 밖으로 나간 발언을 종이로 다시 읽는 일은 그해에 처음이었다.
직원이 물었다. — 우리 자리는 어디까지 들어가는가.
— 회의장 안까지 들어간다.
— 그러면 회원국과 무엇이 다른가.
— 저 책상에는 단추가 셋 있고 이 책상에는 없다.
— 발언은 하는가.
— 의장이 부르면 한다.
— 오늘 부르는가.
— 오늘 안건에 우리가 없다.
이 문답은 백영주가 그날 밤 각서 앞머리에 옮겨 적어 둔 것이다. 물은 쪽이 직원이고 답한 쪽이 대표부장이다.
오늘 안건에 우리가 없다는 것이 그날 대표부에서 가장 여러 번 쓰인 문장이다.
둘 — 축출
결의의 낱말은 축출이다. 축출에는 요건이 있다.
내보내려면 안에 있어야 한다. 자리로부터 축출한다고 적으려면 그 자리가 문서 위에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다고 적혀 있어야 한다. 중화민국은 스물여섯 해 동안 그 자리에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은 그 자리에 적힌 적이 없다.
1949년의 가입 신청은 안보리에서 부결되었다. 신청서는 철회되지 않았고 다시 상정되지도 않았다. 그 뒤로 이 정부가 이 건물에서 가진 것은 상임 옵서버 대표부 하나다.
옵서버 지위는 총회가 표결로 만든 것이 아니다. 사무총장이 통보를 접수하고 사무국이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유지된다. 명부는 해마다 다시 찍힌다. 다시 찍을 때 이 정부의 이름이 빠진 해는 없었다.
빠진 해가 없는 이유를 대표부는 두 가지로 적어 두었다. 하나는 빼자고 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빼는 절차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둘 가운데 뒤엣것이 앞엣것보다 오래간다.
표결로 생기지 않은 것은 표결로 없어지지 않는다.
백영주가 물었다. — 우리 지위를 없애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 없애자는 안건이 있어야 한다.
— 안건은 누가 내는가.
— 회원국이 낸다.
— 내겠다고 한 나라가 있는가.
— 없다.
— 왜 없는가.
— 안건이 되면 그 표결로 우리가 무엇인지 정해진다.
— 정하고 싶어 하는 나라가 없다는 말인가.
— 정하면 값을 치른다. 정하지 아니하면 값이 없다.
없앨 수 있는 것은 만들어진 적이 있는 것뿐이다.
셋 — 이익
각서는 그날 밤에 쓰였다. 제목이 「의석 없음의 이익에 관하여」다. 본문은 다섯 항이고 한 항이 한 줄이다.
— 첫째. 우리에게는 축출될 의석이 없다.
— 둘째. 의석이 없으므로 우리는 오늘 표결의 대상이 아니었다.
— 셋째. 우리 지위는 결의로 생긴 것이 아니므로 결의로 없어지지 아니한다.
— 넷째.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잃은 것은 없다.
— 다섯째. 다만 오늘 잃은 쪽은 스물여섯 해 동안 회원국이었다.

각서를 다 쓴 것은 새벽 두 시가 넘어서다. 백영주는 그것을 두 번 고쳤다. 고친 자리는 넷째 항과 다섯째 항 사이의 접속이다. 처음에는 두 항이 한 문장이었고, 나중에는 마침표로 끊겼다.
끊긴 뒤에는 넷째 항만 떼어 읽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뒤에 일어난 일이다.
각서는 그날 새벽 전신으로 호놀룰루에 갔다. 회신은 사흘 뒤에 왔고 세 줄이다.
— 각서 받았다.
— 다섯째 항은 빼고 회람한다.
— 사유. 두 지위를 나란히 적으면 나란히 읽힌다.
넉 항으로 줄어든 각서가 각 공관과 국회 외무위원회에 돌았다. 넉 항만 읽으면 이 문서는 좋은 소식이다. 다섯째 항이 있어야 첫째 항의 뜻이 바뀐다. 잃을 것이 없다는 말은 가진 적이 있는 쪽 옆에 놓일 때에만 값을 갖는다.
본부는 그것을 알고 뺐다. 회신의 셋째 줄이 그 말을 하고 있다.
회람본은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한 번 읽혔다. 의원 하나가 각서에 다섯째 항이 있었는지를 물었고, 답한 사람은 회람본에 있는 것이 각서의 전부라고 답했다. 그 답은 거짓이 아니다. 회람본에 있는 것이 회람본의 전부다.
이 정부가 자기 이익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의 손해와 나란히 적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란히 적지 않기로 했다.
넷 — 이튿날
이튿날 사무국은 회의장 좌석의 명패를 바꾸고 문서 배포 명부를 고쳤다.
대표부 앞으로 오던 문서는 그대로 왔다. 회기 문서철도, 본회의 의사일정도, 사무국 정기 회람도 부수가 같았다. 고쳐진 줄이 한 줄도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 하나가 문서과에 가서 그것을 확인하고 왔다. 확인하러 간 것은 지시를 받아서가 아니다.
직원이 물었다. — 배포 명부에서 고친 줄이 몇 줄인가.
— 어제 표결과 관련하여 스물몇 줄이다.
— 우리 줄은 그 안에 있는가.
— 없다.
— 우리 줄은 어디에 있는가.
— 회원국 명부 뒤에 따로 있다.
— 그 뒤 명부는 어제 고쳐졌는가.
— 고칠 일이 없었다.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날 이 정부의 성적이다.
스물한 해 전에 사무국 법률국이 쓴 각서가 하나 있다. 영토를 잃은 승인 정부의 대표권을 다룬 열한 쪽짜리다. 그 각서는 두 줄로 끝난다. 본 사안에 선례가 없다. 선례가 생길 것이다.
대표부에는 그 두 줄 때문에 만들어 둔 봉투가 있다. 겉에 선례라고만 적혀 있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남아 있지 않고, 스물한 해 동안 안에 든 것이 없다.
그날 밤 대표부는 결의문 사본을 두 부 떴다. 한 부는 문서철에 넣었다.
다른 한 부는 봉투 옆에 놓아두고 넣지 않았다.
넣으려면 이 결의가 우리 선례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정하는 일을 그날 밤 대표부는 하지 않았다.
봉투는 그날도 비어 있었다.
빈 봉투를 스물한 해 동안 둔 부서가 그날 밤 한 일은 봉투를 옮겨 놓은 것뿐이다. 사본은 이튿날 아침 문서철로 갔다.
유엔 사무국 법률국 「대표권 선례 정리」
단기 4305년(1972) 6월. 사무국 내부 배포. 본문 스물여섯 쪽, 부록 열넉 항.
— 목적. 제26차 회기의 결정이 대표권에 관한 선례로서 미치는 범위를 정리한다.
— 범위. 이 정리는 회원국의 대표권에 관한 것이다.
부록. 회원국이 아닌 실체의 지위에 관하여 접수된 문의를 유형별로 붙인다.
이 보고서는 대한민국을 다루려고 쓰인 것이 아니다.
하나 — 부록
본문 스물여섯 쪽에 이 정부의 이름은 없다. 이름이 나오는 곳은 부록이다.
부록은 열넉 항이고 이 정부는 열한째 항이다. 넉 줄이다. 첫 줄이 명칭이고 둘째 줄이 접수 연도이며 셋째 줄이 문의의 요지다. 넷째 줄이 처리다.
문의를 낸 것은 이 정부가 아니다. 회원국 하나가 자기 나라 재외공관의 사무 처리를 위해 물은 것이다. 이 정부가 발급한 증명서를 어느 난에 적어야 하는지가 물음의 내용이었다.
넉 줄의 문면은 이렇다.
— 명칭. 대한민국 상임 옵서버 대표부.
— 접수. 1950년.
— 요지. 이 실체가 발급한 신분 증명서를 국적 증명으로 취급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 처리. 미결.
접수 연도가 스물두 해 전이다. 문의를 낸 나라는 그 사이에 두 번 바뀐 정부를 가졌고, 물어본 사무 처리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굳어졌다. 물음만 남았다.
대표부가 이 문서의 존재를 안 것은 그해 가을이다. 알려 준 사람은 없다.
우리를 넉 줄로 적은 문서가 사무국 안에 만들어졌다. 대표부는 그 존재를 그해 가을에야 안다. 알려 준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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