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나라 제1부 승선(乘船)
4화제7장 항적(航跡)
하나 — 빌린 것
순서는 늘 같다. 부두. 줄. 종이. 배. 바다. 다섯 마디다.

채록한 연구원은 이 순서가 외운 것처럼 들린다고 각서에 적었다. 그리고 외운 것처럼 들리는 것이 지어낸 것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예순 해 동안 같은 이야기를 하면 순서가 굳는다.
그가 말하는 줄은 각서의 항이다. 각서를 그는 본 적이 없다. 게시판은 통제소 안쪽에 있었고 그는 통제소 안에 들어간 적이 없다.
부두에서 항을 아는 방법은 게시문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앞에 선 사람이 어느 줄로 옮겨 가는지를 보고 자기 줄을 알았다.
— 나는 열아홉이었다.
— 우리 집은 셋째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관공서에 다니지 않았다.
— 부두에 사흘 있었다. 사흘 동안 줄이 세 번 바뀌었다.
— 넷째 줄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일본에서 나온 사람이다.
— 그 사람이 종이를 두 장 가지고 있었다.
— 한 장은 자기 것이고 한 장은 죽은 동생 것이었다.
— 그 사람이 나에게 그것을 주었다.
— 나는 그것을 샀다고 말한 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넷째 항의 종이는 재외국민 등록증이다. 그 전해 겨울에 생긴 법에 따라 밖에 있던 사람들이 받은 것이다.
그 종이는 이름과 등록 번호와 등록지를 적은 한 장이다. 가진 사람이 그 사람인지를 부두에서 가릴 방법은 그 종이 말고 없었다.
죽은 사람의 등록을 지우지 않은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다. 지우려면 사망을 신고해야 하고, 신고하려면 관청에 가야 하고, 그 관청은 바다 건너에 있었다.
그 사람이 왜 두 장을 다 쓰지 않았는지를 구술은 설명하지 않는다. 자료관은 그 대목에서 한 번 되물었고 구술자는 답하지 않았다. 되물은 문장은 녹취에 남았고 답은 남지 않았다.
서류로 사람을 가리는 제도에서 서류를 구한 사람은 그 사람이 된다. 이것은 부정이 아니라 정의(定義)다.
둘 — 시모노세키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 사흘이 걸리는 배는 빠른 배가 아니다. 그해 여름 그 항로에 들어간 배는 사람을 싣도록 만든 배가 아니었다.
내리는 절차는 그해 여름에 정해져 있지 않았다. 배가 들어오고 사람이 내렸다. 내린 사람을 어느 나라 사람으로 적을지는 그 항구의 소관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상태가 얼마나 이어졌는지는 항구마다 다르다. 어느 항구도 그 기간을 스스로 적어 두지 않았다.
— 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 화물선이었다. 아래 칸에 있었다.
— 사흘 동안 물을 세 번 받았다.
— 시모노세키에 닿았을 때는 아침이었다.
— 내리기 전에 나는 그 종이를 물에 버렸다.
— 왜 버렸느냐고 사람들이 뒤에 물었다.
— 그 이름으로 살면 그 이름의 식구가 생긴다.
— 나는 형을 두고 왔다. 형은 위에 있다.
— 내 이름이 어디에 적히면 그것이 형에게 간다고 나는 생각했다.
— 그 생각이 맞았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가 버린 것은 종이 한 장이다. 그 종이는 그를 넷째 항으로 만들어 준 물건이고, 두 해 뒤에 이 정부가 국민을 정의할 때 쓰게 되는 물건이기도 하다.
두 해 뒤 그는 등록소 앞까지 간다. 거기서 돌아선다.
서류를 버린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채록 세 회 내내 같은 문장으로 말했다.
이름을 적지 않는 것이 식구를 지키는 방법이던 때가 있었다. 그 때가 언제 끝났는지는 아무도 그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구술 제2회와 제3회는 일본에서 지낸 예순 해를 다룬다. 제1회만 사흘을 다룬다. 그 사흘이 예순 해보다 길게 채록되어 있다.
채록실에는 녹음기가 두 대 있었다. 하나는 자료관 것이고 하나는 구술자의 아들이 가져온 것이다.
구술이 끝나자 아들이 자기 녹음기를 껐다. 자료관 녹음기는 조금 더 돌았다.
그 사이가 녹취록에 남아 있다. 여섯 줄이 비어 있고, 그 아래에 「무언(無言)」이라고 적혀 있다.
「임시수용 시설 정비에 관한 건」 · 야마구치현 지사 관방, 소화 25년(1950) 7월
야마구치현 문서고 소장. 등사 원본 1부. 편철 표제 — 「망명 정권 수용 관계」.
— 오쓰·아부·도요우라·구가 네 지역에 임시건물 각 250동을 세운다. 수용 예정 인원 5만.
같은 문서의 사본 · 연합군 최고사령부 민정국 편철, 1950년 7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편철 표제 — 「재한 외국인 소개(疏開) 관계」.
본문은 두 곳이 같다. 다른 것은 그 종이를 무엇의 종이로 묶었는가다.
이 문서에는 무엇을 수용한다는 말이 없다.
적혀 있는 것은 동 수와 인원 수와 착공 예정일이다. 수용될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어느 판본에도 없다.
그래서 두 문서고가 같은 종이를 서로 다른 상자에 넣었다. 넣고 나면 표제가 문서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하나 — 표제
야마구치현 쪽 근거는 지사 관방이 같은 달에 낸 예산 조회다. 조회의 수신처가 외무성 관리국이었다. 소개는 외무성 관리국의 소관이 아니다.

민정국 쪽 근거는 같은 상자에 든 다른 종이들이다.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한국에서 나온 미국인과 군속의 수송 기록이 앞뒤로 붙어 있다.
두 근거는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종이 한 장이 두 계획에 동시에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에 이것을 두고 두 계열의 읽기가 갈린다. 하나는 육만 명 규모의 정권을 받으려던 준비였다고 읽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 있던 외국인을 빼내려던 준비였다고 읽는다. 두 읽기가 근거로 드는 종이는 같은 종이다.
이 회차는 어느 쪽도 정하지 않는다. 정할 자료가 없다. 다투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뿐이다. 1950년 7월에 야마구치현은 사람을 받을 자리를 세고 있었다.
세운 자리가 나중에 무엇이 되었는지는 다투어지지 않는다. 네 지역 가운데 오쓰와 도요우라 두 곳에만 건물이 올라갔고, 그것도 계획의 절반이 되기 전에 사람이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들은 계획서에 적힌 인원의 갑절이었다.
7월 중순의 조회와 회신이 남아 있다. 두 문서고에 같은 문면으로 있다.
현 관방이 물었다. — 수용 대상의 신분을 무엇으로 적는가.
— 적지 않는다.
— 적지 않으면 배급 근거가 서지 않는다.
— 배급은 인원 수로 낸다.
— 인원 수만으로 낸 전례가 있는가.
— 없다.
— 그러면 신분은 언제 정하는가.
— 오는 사람을 보고 정한다.
이 여덟 줄에는 나라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나오는 것은 인원과 배급과 전례뿐이다.
오는 사람을 보고 정한다는 것이 이 나라에 관하여 적힌 첫 번째 행정 방침이다.
둘 — 센자키
배는 8월 19일과 22일 사이에 부산을 떠났다. 뒤에 계산된 승선 인원은 약 삼십이만이다. 군이 십이만이고 민간이 이십만이다. 그때 부두에서 센 수가 아니라 나중에 배의 적재 기록으로 되짚은 수다.
닿은 곳은 두 곳이다. 시모노세키와 센자키다. 큰 배는 시모노세키의 하역 부두에 붙었고, 작은 배는 오쓰군 센자키의 어항에 붙었다.
센자키 접수소는 소학교 강당에 차려졌다. 서식은 현이 인쇄한 것이었고 항목이 다섯이다. 성명·연령·직업·출발지·국적이다. 마지막 항목이 그날 처음으로 물어진다.
시모노세키는 현이 아니라 연합군 최고사령부 제8군 병참부가 받았다. 그쪽 서식은 항목이 셋이다. 성명과 인원 구분과 하선 시각이다. 국적 칸이 없다.
두 항구의 서식이 다른 것은 그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두 서식이 만든 두 명부는 두 해 뒤에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접수소가 물었다. — 어느 나라 사람인가.
— 한국 사람이다.
— 증명할 서류를 보인다.
— 서류가 없다.
— 서류가 없으면 무엇으로 한국 사람인가.
— 부산에서 왔다.
— 부산에서 온 것은 여기 있는 사람이 다 같다.
— 그러면 나도 같다.
그날 국적 칸은 비워 두었다. 비워 둔 칸은 하루 만에 다섯째 항목에서 첫째 항목이 되었다. 서식이 바뀐 것이 아니라 묻는 순서가 바뀐 것이다.
배급은 인원 수로 나갔다. 7월의 회신대로였다. 신분은 오는 사람을 보고 정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온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생기지 않았다.
9월 15일 접수소 일지에는 한 줄이 적혀 있다.
— 본일 특기 사항 없음.
그날 서해안에 상륙한 부대는 없다. 여덟 달 전에 선 밖으로 밀려난 정부가 뭍에 오른 것은 그보다 넉 주 앞이고, 오른 곳은 인천이 아니다.
일지를 적은 사람은 그 문장이 무엇을 적지 않은 문장인지 몰랐다. 몰라야 적을 수 있는 문장이다. 뒤에 이 한 줄이 그해 가을의 자료로 여러 번 인용된다. 인용될 때마다 인용하는 쪽은 이 줄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이 나라가 뭍에 오른 곳은 센자키와 시모노세키다.
셋 — 발행지
관보 제1호는 9월 하순에 나왔다. 센자키 소학교 교사 한 칸에서 등사판으로 밀었다. 열두 쪽이고, 첫 쪽의 발행지 칸이 사흘 동안 비어 있었다.
비어 있던 이유는 내무부 회의 기록에 남아 있다. 사무관 윤계원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그때 마흔둘이었고, 배에 오를 때 셋째 항이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 발행지는 센자키다. 여기서 밀었다.
윤계원이 답했다. — 여기서 민 것과 여기서 난 것은 다르다.
— 무엇이 다른가.
— 여기로 적으면 이 정부는 1950년 9월에 일본에서 생긴 정부가 된다.
— 그러면 무엇으로 적는가.
— 부산이다. 우리는 부산에서 나와 여기 있는 것이지 여기서 난 것이 아니다.
— 부산에는 지금 우리 등사판이 없다.
— 관보는 등사판이 찍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찍는 것이다.
센자키에서 민 관보 제1호, 사흘 비어 있던 발행지 칸. 「여기서 민 것과 여기서 난 것은 다르다.」
남은 54화 · 약 191,466자 · 약 4시간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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