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2부 도하(渡河)
6화제9장 이천구백만
셋 — 오 년
조사원 복명서 발췌, 강계, 1950년 12월

— 군청 서고는 온전하다. 종이는 다 있다.
— 다만 다섯 해치를 우리 서식으로 옮길 수가 없다.
— 옮기려면 한 사람마다 물어야 하는데, 물을 사람이 그 다섯 해 동안 두 번 바뀌었다.
— 나는 자료 미비라고 적었다. 미비가 아니다. 우리가 읽지 않기로 한 것이다.
— 이 줄은 복명서에 적지 않고 여기에만 적는다.
없는 것이 아니라 읽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읽지 않기로 한 것은 몇 해 지나면 없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해서 이북 아홉 칸에 다섯 해의 공백이 생겼다.
공백은 곧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구를 세는 데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만 세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토지 소유를 가리거나, 전력(前歷)을 따지거나, 누가 어디 살았는지를 물을 때마다 그 다섯 해가 비어 있다.
비어 있는 자리에는 진술이 들어간다. 진술은 세는 것이 아니다.
진술에는 보증이 필요했다. 본인이 말한 것을 누가 뒷받침하느냐는 것이다.
보증인은 같은 리(里)에 사는 사람 둘이어야 했다. 두 사람을 세울 수 없는 사람은 진술을 인정받지 못했다.
다섯 해 동안 두 번 이사한 사람에게는 그 둘이 없다. 국경 쪽으로 올라간 사람일수록 그렇다.
이 절차는 인구조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인구조사가 끝난 뒤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세기 위해 만든 절차가 자격을 가르는 절차로 남았다.
넷 — 백만
집계는 12월 말에 끝났다. 산출은 이렇게 되어 있다.
| 구분 | 값 | 근거 |
|---|---|---|
| 이남 | 2,100만 | 1949년 총조사 2,017만의 이월 추계 |
| 이북 | 900만 | 1946년 이북 조사 결과의 이월 추계 |
| 소계 | 3,000만 | 위 둘의 합 |
| 감산 | −100만 | 부표 두 줄 |
| 계 | 2,900만 | — |
부표의 두 줄은 이렇다. 「전쟁 사망 및 행방불명」, 「국경 밖 이동」.
두 줄 모두 값이 「미상」이다. 값이 없는데 합은 백만으로 잡혀 있다.
백만의 출처란에는 한 줄이 적혀 있다. 「기왕의 추계에 의함.」
어느 추계인지는 적히지 않았다.
이 백만을 나누려는 시도가 1951년에 두 번 있었다.
두 번 다 나누지 못했다. 죽은 사람과 떠난 사람을 가르려면 떠난 사람의 행선지를 알아야 하는데, 행선지의 절반이 국경 너머다.
국경 너머를 조사하려면 상대와 말을 해야 한다. 말할 상대가 없다.
두 번째 시도는 방법을 바꿨다. 국경 이남의 가구에 물어보는 방식이다. 집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있다면 어디로 갔다고 들었는지를 묻는다.
들었다는 것은 자료가 아니다. 그래서 그 조사의 결과는 집계표에 올라가지 못했다.
올라가지 못한 조사표는 그대로 편철되어 남았다. 뒤에 명부를 만들 때 그것부터 꺼내게 된다.
백만은 그래서 한 줄로 남았다. 한 줄로 남은 것은 나중에 명부의 마지막 항목이 된다.
다섯 — 이천구백만
1951년 1월, 이천구백만이 인쇄되어 나갔다.
이 숫자는 잠정이었다. 확정 집계는 1951년 하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예정대로 실시되지 않았다.
실시되지 않은 이유는 문서에 남아 있다. 그해 하반기에 국경 방위 소요가 먼저 계산되었고, 조사 인력이 그쪽으로 갔다.
잠정이 확정을 대신했다. 대신한 것은 그해뿐이 아니었다.
이천구백만으로 정해진 것을 적는다.
첫째, 의석이다. 인구비로 선거구를 나누면 이북 몫이 정해진다.
둘째, 예산이다. 사람 수로 나누는 항목이 있고 그 항목의 분모가 이 숫자다.
셋째, 배급이다.
넷째로 정해진 것이 하나 더 있다. 국경에 가까운 쪽에 몇 사람이 사는가다.
이 비율은 1950년 12월에는 산출되지 않았다. 산출할 기준선이 아직 법으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선은 이 년 뒤에 그어진다.
선이 그어진 뒤에 이 집계표를 다시 펴서 계산한 사람이 있었다. 계산하고 나서 그는 그 값을 보고서에 넣지 않았다.
값이 작았기 때문이다. 작은 쪽의 일은 큰 쪽의 표결로 정해진다.
집계표 원본은 국회도서관에 있다. 마지막 장 여백에 연필로 한 줄이 적혀 있다.
「이 표는 다시 세어야 함.」
글씨체는 부표를 만들다 만 계원의 것으로 보인다. 확인된 것은 아니다.
다시 센 일은 없다.
국방부 「국경 방위 소요 판단」 제1차
단기 4284년(1951) 1월 · 작전국 편성과
— 본 판단은 국경선 전 연장을 상시 방위한다는 전제에서 작성하였다.
— 전제를 바꾸면 결과가 바뀐다. 전제를 정하는 것은 본과의 권한이 아니다.
소요는 산출하였다. 조달 가능성은 산출하지 아니하였다.
판단서는 요구받은 것을 전부 산출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하나 — 재기
먼저 잰다.
국경선은 세 토막이다. 압록강, 두만강, 그리고 두만강 하구에서 동쪽으로 나가는 짧은 육상 구간이다.
| 구간 | 실측 연장 |
|---|---|
| 압록강 | 795km |
| 두만강 | 521km |
| 하구 이동(以東) 육상 | 17km |
| 계 | 1,333km |
이 수치에는 다툼이 없다고 판단서는 적었다. 재면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재는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지도 위에서 강을 따라갈 때 자를 짧게 잡으면 굽이가 더 잡히고, 굽이가 더 잡히면 강이 길어진다.
편성과는 오만분의 일 지도에 일 킬로미터 자를 썼다. 십만분의 일에 이 킬로미터 자를 쓰면 이보다 짧게 나온다.
어느 쪽이 맞는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정해져 있지 않은 채로 한 쪽이 표에 인쇄되었다.
다툼은 그다음에서 더 커진다. 강의 길이와 지켜야 할 정면의 길이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강은 다 같은 강이 아니다.
압록강은 상류의 절반 이상이 산악이다. 산이 강을 끼고 서면 건널 수 있는 자리가 몇 군데로 줄어든다. 지켜야 할 곳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두만강은 반대다. 폭이 좁고 얕고, 얼어 있는 기간이 압록강보다 길다. 얼면 어디서나 건넌다. 지켜야 할 곳이 강 전체가 된다.
편성과는 여기에 계수를 붙였다.
| 구간 | 실측 | 계수 | 계수의 근거 | 환산 |
|---|---|---|---|---|
| 압록강 | 795km | 0.9 | 상류 산악, 도하 지점 제한 | 716km |
| 두만강 | 521km | 1.3 | 폭 좁음, 결빙 기간 김 | 677km |
| 하구 이동 육상 | 17km | 1.0 | 지형 보정 없음 | 17km |
| 계 | 1,333km | — | — | 1,410km |
1,410을 십 단위에서 잘라 1,400으로 적었다.
실측은 천삼백삼십삼이었다. 판단서에 인쇄된 것은 천사백이다.
늘어난 예순일곱 킬로미터는 어디에도 없는 땅이다.
계수가 만든 숫자이므로 걸어서 갈 수 없다. 그런데 병력은 이 숫자에 붙는다.
계수를 정한 과장은 뒤에 이렇게 적었다.
작전국 편성과장 각서, 1951년 1월
— 계수는 교리에 없다. 우리가 정한 것이다.
— 정하지 않으면 강 길이 그대로 곱하게 되고, 그러면 두만강이 실제보다 덜 위험해진다.
— 덜 위험하게 적으면 그쪽에 병력을 덜 보낸다. 덜 보낸 자리가 겨울에 어떻게 되는지는 본과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 그래서 올려 잡았다. 올려 잡은 것을 표에 적어 두었다.
— 적어 두었으니 뒤에 고칠 사람이 고치면 된다.
고친 사람은 없다. 1,400은 그 뒤 이십 년 동안 모든 소요 판단의 출발 숫자가 된다.
고치지 않은 이유는 계수가 틀려서가 아니다. 계수를 고치려면 다시 재야 하고, 다시 재면 지난 이십 년의 판단서가 전부 달라진다.
숫자 하나가 오래 쓰이면 그 숫자를 고치는 값이 그 숫자를 만든 값보다 커진다.
둘 — 곱하기
다음은 나눈다.
무엇으로 나누는가. 지금까지 이 나라가 실제로 지켜 본 정면으로 나눈다.
1950년 6월 이전에 경비하던 삼팔선 정면은 약 이백오십 킬로미터다. 그 정면에 얼마를 배치했는지는 편성표에 있다.
이 대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삼팔선은 지킨 선이 아니라 뚫린 선이다.
뚫린 선의 배치 밀도를 그대로 곱하면, 뚫릴 만큼의 병력을 다섯 배 반으로 늘리는 것이 된다.
판단서는 이 문제를 각주로만 달았다. 각주의 내용은 「본 대조는 최소치를 준다」이다.
| 항목 | 값 | 산출 |
|---|---|---|
| 판단 연장 | 1,400km | 위 환산표의 절사값 |
| 대조 정면 | 250km | 1950년 6월 이전 삼팔선 경비 정면 |
| 배수 | 5.6 | 1,400 ÷ 250 |
다섯 배 반이다.
배수만 적고 절대 수는 적지 않았다.
절대 수는 별책 부표로 뺐다. 부표에는 편성표의 실제 병력이 들어가고, 편성표는 그 자체로 등급이 다른 문서다.
별책은 남아 있지 않다. 자료집 제4권에 목록만 실려 있고, 목록 옆에 「소재 불명」이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 이 편은 그 숫자를 쓰지 않는다. 판단서가 쓰지 않은 숫자를 뒤에서 채워 넣는 것은 세는 일이 아니다.
배수 하나로도 정해지는 것이 있다.
병력이 다섯 배 반이 되면 급식이 다섯 배 반이고 피복이 다섯 배 반이고 막사가 다섯 배 반이다.
그리고 그 병력을 채우려면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 데려오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병력 배수는 곧 징집 배수다. 이 표에서 정해진 것은 병사의 수가 아니라 한 세대가 군복으로 살 햇수였다.
계절만 지키자는 안이 있었다.
강이 얼어 있는 넉 달만 상시 배치하고 나머지 여덟 달은 물리자는 것이다. 소요가 삼분의 일로 줄어든다.
편성과는 이 안을 계산해 보고 부록으로 돌렸다. 이유는 두 가지다.
물린 부대를 어디에 두는가가 첫째다. 국경에서 물리면 후방에 두어야 하고, 후방에 둘 자리가 없으면 해산해야 한다. 해산한 부대는 부대가 아니다.
다시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둘째다. 강이 어는 날짜는 매년 다르다. 늦게 어는 해에 맞추면 이르게 어는 해에 늦고, 이르게 어는 해에 맞추면 여덟 달이 다섯 달이 된다.
강은 날짜를 지키지 않는다. 여유를 두면 여유만큼 상시가 된다—계산은 스물여덟 쪽째, 마지막 장의 세 문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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