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1부 부재(不在)
4화제6장 오지 않았다
제1사단 작전일지 여백 기재, 1950년 10월 26일
— 오늘도 없다.

— 여드레째다.
— 없는 것을 여드레 적으면 그것도 기록이 된다.
— 다만 무엇의 기록인지는 적을 자리가 없다.
— 등사 원지를 새로 긁지 않았다. 접적란만 그대로 두면 되었다.
강 건너에서 부대가 편성된 것은 10월 8일이다. 국군 선두가 강에 닿은 것은 10월 26일이다.
두 날짜 사이가 열여드레다.
그 열여드레 동안 편성된 부대는 강 북쪽 기슭에 있었고, 강 남쪽에서 올라온 부대는 강 남쪽 기슭에 닿았다. 두 부대는 만나지 않았다.
만나지 않은 것은 한쪽이 물러서서가 아니다. 양쪽 다 제자리에 있었고, 그 사이에 강이 있었다.
만나지 않은 두 부대 사이에 선이 하나 남았다.
여덟 장은 그해 겨울에 문서철 제7권으로 넘어갔다.
여덟째 장의 비고란은 한 줄이다.
「인접 사단 압록강 도달.」
그 아래 여백에 연필로 적은 것이 있다. 등사 원지에는 없고 이 한 장에만 있다.
「강폭 확인 요망.」
『대한민국 국정 역사교과서』 중학교 과정
문교부, 1962년판, 제5장 「통일과 국경」 도입부
— 단기 4283년(1950) 시월, 국군은 압록강에 이르렀다.
— 이로써 국토는 온전해졌다. 앞선 세대의 과업은 그날 끝났다.
이 장에서 여러분이 배울 것은 그 뒤에 시작된 일이다.
그날 초산에서 남쪽으로 간 것은 수통 하나였다.
하나 — 수통
1950년 10월 26일 오전, 제6사단 제7연대 수색대가 초산에 닿았다.
강은 아직 얼지 않았다. 가장자리에 살얼음이 잡혀 있었고 가운데는 검게 흘렀다.
대원 하나가 둔치로 내려가 수통을 채웠다. 채운 뒤 마개를 두 번 돌려 잠갔다.
그 수통은 그날 오후에 남쪽으로 떠났다.
물을 뜨라고 지시한 사람은 없다. 지시가 있었다면 문서가 남았을 것이고 그 문서는 없다.
대원들이 한 일이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무엇으로든 남기고 싶었던 것이고, 남길 수 있는 것이 강물뿐이었다.
뜬 다음에는 곤란해졌다. 물을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보내서 무엇을 하는지 정해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상급 부대로 올려 보냈다. 상급 부대도 같은 이유로 위로 올려 보냈다.
수통이 어디까지 갔는지는 문서로 남았다. 물이 아니라 종이가 남았다.
| 인계 지점 | 문서 | 기재 |
|---|---|---|
| 초산 | 수색대 인계증 | 「압록강수 일(壹) 수통」 |
| 강계 | 연대 수령부 | 「전달품 일 건」 |
| 평양 | 군단 부관부 | 「상동」 |
| 서울 | — | 기재 없음 |
마지막 칸이 비어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다. 닿지 않았거나, 닿은 것을 적을 서식이 없었거나.
압록강 물이 서울까지 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보냈다는 기록만 넷 있다.
1962년판 교과서 제5장 첫 쪽에는 사진이 한 장 실려 있다.
설명은 「초산, 단기 4283년 시월」이다. 강가에 병사 셋이 서 있고 그중 하나가 몸을 굽히고 있다.
수색대에는 사진기가 없었다. 그 중대의 장비 목록에 사진기는 없고, 종군기자가 초산까지 올라온 기록도 없다.
교과서는 사진의 출처를 적지 않았다. 그 뒤 판에서도 적지 않았다.
1971년에 국사편찬위원회가 그 사진의 원판을 찾으려 한 기록이 있다. 찾지 못했다는 회신 한 장이 남았다.
회신에는 사유가 적혀 있다. 「해당 사진의 촬영 주체를 특정할 수 없음.」
그 뒤로 아무도 다시 찾지 않았다. 사진은 계속 실렸다.
둘 — 북안(北岸)
수통을 채운 뒤 수색대가 한 일은 강 건너를 보는 것이었다.
건너편은 만주다. 압록강 국경선은 칠백구십오 킬로미터고 그 앞에 선 부대는 한 개 중대였다.
관측은 사흘 계속되었다. 기록은 이렇다.
| 항목 | 관측 결과 |
|---|---|
| 도하 기재 | 없음 |
| 차량 바퀴 자국 | 없음 |
| 취사 연기 | 없음 |
| 사람 | 없음 |
| 진지 | 있음. 파여 있고 비어 있음 |
마지막 줄이 수색대장을 오래 붙잡았다. 진지는 사람이 판 것이다. 판 사람이 거기 있지 않다는 것과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은 다르다.
그 진지를 판 부대는 10월 12일에 멈추라는 명령을 받았다.
명령을 낸 쪽도 받은 쪽도 그것이 하루짜리인 줄 알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고 명령은 고쳐지지 않았다.
초산에 선 중대는 그런 명령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십 년 뒤에도 몰랐다.
그들이 본 것은 결과뿐이다. 파여 있고 비어 있는 구덩이 열 몇 개.
제7연대 진중일지, 1950년 10월 29일
— 북안 관측 삼일차. 접적 없음.
— 진지 십여 개소 확인. 전부 비어 있음.

— 대장이 물었다. 저것을 무엇으로 보고할 것인가.
— 부관이 답했다. 접적 없음으로 보고할 수밖에 없다.
— 대장이 말했다. 접적 없음은 아무도 안 왔다는 뜻이지, 아무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 그래도 서식에는 그 칸밖에 없다.
강 건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보고할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보고할 칸이 없다는 뜻이다.
셋 — 결빙
11월에 관측 항목이 하나 늘었다. 결빙 예상일이다.
압록강은 상류부터 언다. 초산은 중류에 가깝고, 언 해에는 12월에 얼고 늦은 해에는 이듬해 1월에 언다.
얼면 강이 아니게 된다. 얼음은 다리다. 다리는 양쪽에서 건널 수 있다.
수색대장은 그해 겨울에 처음으로 강을 지형이 아니라 시간으로 세기 시작했다.
| 구간 | 통상 결빙 | 통상 해빙 | 얼음 위 통행 |
|---|---|---|---|
| 상류 | 11월 하순 | 3월 하순 | 가능 |
| 중류 | 12월 중순 | 3월 중순 | 조건부 |
| 하류·하구 | 12월 하순 | 3월 초순 | 불확실 |
이 표는 그해 겨울에 만들어졌고 그 뒤로 고쳐지지 않았다. 고칠 이유가 없었다. 강은 매년 같은 순서로 언다.
제7연대 진중일지, 1950년 11월 14일
— 오늘 상류 쪽 여울에 살얼음이 붙었다.
— 위생병이 물었다. 얼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 나는 답하지 않았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 좋다고 하면 진지를 파지 않을 것이고, 나쁘다고 하면 겨울 내내 잠을 못 잘 것이기 때문이다.
넷 — 서 있는 일
11월이 다 가도록 전진 명령은 오지 않았다.
올 수가 없었다. 앞이 강이고 강 건너가 남의 나라다. 국군이 도달한 곳은 목표가 아니라 끝이었다.
부대는 그 자리에서 땅을 팠다. 언 땅이라 곡괭이가 튀었다.
진지를 파는 데 걸린 시간이 초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보다 길었다.
멈춘 부대가 하는 일은 진격하는 부대가 하는 일과 다르다.
진격하는 부대는 앞을 본다. 멈춘 부대는 뒤를 본다. 보급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다음 것이 언제 오는지를 본다.
10월에 제7연대의 문서는 대부분 상황 보고였다. 12월에는 대부분 청구서였다.
문서의 종류가 바뀐 것이 부대의 성격이 바뀐 것보다 먼저였다.
이때 문서에 쓰인 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선」이다. 다른 하나는 「북방」이다.
전선은 움직이는 것이고 북방은 방향이다. 둘 다 서 있는 것을 가리키지 못한다.
「국경」이라는 말은 이 겨울의 어느 문서에도 없다. 그 말은 넉 달 뒤에 온다.
말이 없으면 예산 항목도 없다. 항목이 없으면 부대는 자기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구하지 못한다.
교과서는 그날로 과업이 끝났다고 적었다.
끝난 것은 진격이다. 진격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된 것에는 그때 이름이 없었고, 이름이 없는 것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다.
1962년판 제5장의 분량은 열한 쪽이다. 그중 압록강 도달까지가 아홉 쪽이고, 그 뒤 일곱 해가 두 쪽이다.
11월 초, 수색대원 하나가 강가에 말뚝을 박았다.
측량용이 아니었다. 측량은 공병이 하고 공병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는 그냥 여기까지 왔다는 표시를 하고 싶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진중일지에는 그 말뚝이 한 줄로 적혔다. 「표항(標杭) 일(壹)」.
무엇의 표항인지는 적히지 않았다. 적을 말이 그때는 없었다.
미 극동군사령부 작전 참고자료 「수풍 발전 시설」
1950년 11월 · 배포 제한
— 본 시설은 압록강 본류 위에 있다. 댐 축선이 국경선을 가로지른다.
— 발전 설비는 두 계통으로 나뉘어 있고, 두 계통의 종점은 서로 다른 나라에 있다.
— 본 자료는 시설의 처리에 관하여 권고하지 아니한다. 판단에 필요한 사실만 적는다.
판단은 정치의 영역이며 본부의 영역이 아니다.
전기는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적어 두지 않는다.
하나 — 일곱 대
수풍댐은 압록강 본류를 막고 있다.
댐 위를 걸어서 건널 수 있다. 걸어서 건너면 중간쯤에서 나라가 바뀐다. 어디가 중간인지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발전기는 일곱 대다. 한 대가 십만 킬로와트고 전부 돌면 칠십만이다.
이 시설을 지은 회사는 조선 쪽과 만주 쪽이 함께 세운 것이다. 회사가 하나였으므로 전기를 나누는 규칙도 하나였다.
1945년 8월에 그 회사가 없어졌다. 규칙은 없어지지 않았다. 규칙을 적용할 주체가 없어졌을 뿐이다.
11월 초에 상공부 직원 둘이 댐 위로 올라갔다. 국경선이 지나는 자리에 표시를 하러 간 것이다.
올라가서 그만두고 내려왔다. 표시를 하려면 어디까지가 이쪽인지를 먼저 정해야 하는데, 그것을 정한 문서가 없었다.
강 가운데를 국경으로 삼는 방식이 둘 있다. 물길의 한가운데를 잡는 방식과 가장 깊은 곳을 잇는 방식이다. 둘은 같은 선이 아니다.
댐이 생긴 뒤로는 어느 쪽도 잴 수 없게 되었다. 댐이 물길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댐 위를 걸어서 건너면 중간쯤에서 나라가 바뀐다. 어디가 중간인지 표시하러 올라간 두 사람은 그만두고 내려왔다. 전기는 계속 양쪽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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