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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제4장 중지(中止)

· 57화 중 3화 · 3,527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둘 — 그다음 하루

문서고는 일어난 일을 보관한다.

국경 3화 제4장 중지(中止) — 헤더컷

일어나지 않은 일은 보관되지 않는다. 이것은 문서고의 결함이 아니라 정의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보관하기 시작하면 보관할 것이 무한해진다.

그래서 이 나라의 시작을 찾으려는 사람은 12일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여러 해 뒤에 이 서류철을 대출한 기록이 남아 있다. 대출자는 열람 사유란에 「국경 성립 경위」라고 적었다.

같은 사람이 이레 뒤에 반납하면서 비고란에 적은 것은 넉 자다.

「해당 없음.」


12일의 문서는 어느 쪽 세계에서도 똑같이 남았을 것이다. 회답의 문장도, 시각도, 붉은 연필 표시도 같다.

갈라지는 것은 문서가 아니라 그다음 하루다.

13일에는 회의가 열렸고 회의록이 남았다. 회의록 뒤에 와야 할 것이 오지 않았다. 그 없음에는 날짜도 번호도 붙지 않는다.

분기는 문서 안에 없다. 문서와 문서 사이에 있다.


이것이 뒤에 이 국경을 조사한 사람들을 오래 붙잡아 둔 자리다.

그들은 12일의 회답을 몇 번씩 다시 읽었다. 문장을 나누고 낱말을 세고 번역을 대조했다. 그 문서에서 결정의 무게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찾지 못했다. 그 문서에는 무게가 없다. 무게는 다음 날 아무도 손대지 않은 서류철에 있다.


문서로 남은 결정과 문서로 남지 않은 결정은 뒤에 전혀 다르게 취급된다.

남은 것은 검토되고 비판되고 개정된다. 개정하려면 원문이 있어야 하고, 원문이 있으면 고칠 자리를 짚을 수 있다.

남지 않은 것은 검토되지 않는다. 검토할 원문이 없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국경은 뒤엣것에서 나왔다.

셋 — 지우개 자국

선양의 사령부에서 그날 밤 실제로 일이 하나 있었다.

작전과 참모 한 사람이 벽에 걸린 상황도 앞에 섰다. 지도에는 강을 건널 지점이 연필로 찍혀 있었다. 여러 날에 걸쳐 옮기고 다시 찍은 자리였다.

그는 그것을 지웠다.


제13병단 사령부 작전과 근무일지, 1950년 10월 12일 야간

— 이십이시 삼십분, 상황도 정리.

— 도하 예정점 표시 말소. 부대 부호는 그대로 둠.

— 명령에 말소하라는 문구는 없음. 필요 없어졌다고 판단함.

— 판단 근거를 적을 난이 이 일지에는 없음.


지우는 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을 것이다. 점 몇 개다.

지우는 행위 자체에는 아무 권한도 필요하지 않았다. 상황도는 명령 문서가 아니라 작업 도구다. 도구를 정리하는 것은 야간 근무자의 일이다.

권한이 필요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결재란도 없고 이의를 달 사람도 없었다.


연필 표시는 지우개로 지워진다. 다만 종이가 얇으면 지운 자리가 나머지보다 밝아진다. 상황도는 여러 번 접혔다 펴진 종이였다.

그 지도는 1954년에 문서고로 넘어갔다. 이관 목록에 한 줄이 있다.

「사용 완료. 표면 마모 있음.」

마모라고 적힌 것이 지운 자리다.

지운 자리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무엇의 자국이라고 적어 두지 않았다.


참모의 이름은 근무일지에 없다. 야간 근무자 난은 부호로만 적게 되어 있었다.

그는 그날 밤 자기가 무엇을 지웠는지 몰랐을 것이다. 지도 위의 점 몇 개였다. 며칠 뒤에 다시 찍으면 되는 것이었다.

같은 일지의 그 주 나머지 날짜는 훈련과 방한 준비로 채워져 있다. 상황도에 관한 기재는 다시 나오지 않는다.

다시 찍은 기록은 없다.


중앙군사위원회 회의 요록(要錄) 발췌

1950년 10월 13일 오후

— 본 사본은 1979년 심사 기록 제3권에 증거로 편철되었다.

— 요록은 발언자를 직명으로만 적었다. 이름은 뒤에 연필로 보입(補入)되었다.

— 연필 보입은 심사 당시의 것이다. 요록 원본에는 없다.

편철 번호 3-41. 표지에 「대조 요망」이라 적혀 있다

발신 초안철 제3책 마흔한 쪽과 마흔두 쪽에 전보 두 통이 있다.

하나 — 요록(要錄)

회의는 오후에 열렸다.

전날 불려 온 두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 부르라고 적힌 전보가 12일 오전에 나갔으니, 온 것은 명령을 따른 것이다.

명령을 따라 온 사람이 그 명령의 근거를 뒤집으러 왔다는 것이, 이 회의의 성질이다.

이런 회의는 열리는 것 자체가 이미 절반의 답이다. 결정이 굳었으면 부르지 않는다. 불러서 듣겠다는 것은 아직 열려 있다는 뜻이다.

열려 있었으므로 이날은 다투는 회의가 되었다.


국경 3화 제4장 중지(中止) — 전환컷

요록은 발언을 이름으로 적지 않고 직명으로 적었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는 뒤에 연필로 붙었다.

연필로 붙은 것을 여기서는 옮기지 않는다. 요록 원본에 있는 것만 옮긴다.


요록 제3장(章) 발췌. 발언자는 직명으로만 적혀 있다

— 들어가면 평양과 원산을 잇는 선 이북에 자리를 잡을 수 있소.

— 그 선까지 무엇으로 가오.

— 걸어서 가오. 밤에 가오.

— 돌아올 때도 걸어서 오오. 그때는 낮이오.


— 두 달 반이면 봄이오. 봄까지는 견딜 수 있소.

— 견디는 것과 이기는 것은 같지 않소.

— 견디지 않으면 이길 자리도 없소.

— 자리를 얻으려고 부대를 다 쓰면, 그 자리를 지킬 부대가 없소.


마지막 문답에서 회의가 갈렸다.

산맥에 자리를 잡는다는 말은 옳다. 그 선 이북은 좁고 높고, 좁고 높은 데서는 적은 수로 버틸 수 있다. 이것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된 것은 거기까지 가는 길이었다.

산맥은 강에서 며칠 거리에 있다. 그 며칠 동안 부대는 좁고 높은 데가 아니라 넓고 낮은 데를 지나야 한다. 넓고 낮은 데에서는 하늘이 전부다.

목표가 옳다는 것과 그 목표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장이다. 이날 회의에서 앞의 문장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고, 뒤의 문장만 여러 번 되풀이되었다.

옳은 목표와 닿을 수 없는 목표는 회의에서 같은 말로 취급된다.

둘 — 아홉 시와 열 시

회의는 오후 네 시에 끝났다.

요록의 마지막 줄은 시각이다. 「십육시 산회.」 그 아래는 비어 있다.

비어 있는 것이 이날의 결론이다. 결론을 적지 않은 회의는 대개 어느 한쪽이 이겼다는 뜻이다. 진 쪽이 있으면 요록에 반대 의견을 남기는데, 이 요록에는 그것도 없다.


같은 날 발신 초안철에 남은 기재는 이렇다.

초안 번호수신기안발신
3-38선양12일12일
3-39모스크바12일12일
3-41선양13일 17시기재 없음
3-42모스크바13일 17시기재 없음
3-43평양13일 18시기재 없음

앞의 두 줄과 뒤의 세 줄이 다른 것은 마지막 칸뿐이다.

3-41은 집행 재개를 알리는 것이었다. 3-42는 앞의 회답을 거두어들이는 것이었다. 3-43은 물러서지 말라는 것이었다.

셋 다 기안되었다. 셋 다 결재란이 비어 있다.

셋 가운데 3-43이 가장 짧았다. 열 자 남짓이다. 물러설 준비를 하고 있던 쪽에 물러서지 말라고 알리는 데에는 긴 문장이 필요하지 않다.

그 열 자가 가지 않았으므로, 전날 나간 권고가 그대로 유효한 채로 남았다.

기안된 문서와 발신된 문서 사이에 이 나라의 국경이 있다.


발신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적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초안철에는 발신 시각을 적는 칸만 있고 발신하지 않은 사유를 적는 칸은 없다. 서식은 보내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문서가 만들어질 때 상상하지 못한 일은, 그 문서로 기록되지 않는다.


이날 이긴 쪽의 논리는 옳았다.

하늘이 두 달 반 비어 있는 동안 강을 건너 산맥까지 걸어 올라간 부대는 겨울에 보급을 받지 못한다. 이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고 산수의 문제다. 산수는 그해에도 그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

옳은 산수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는 이 요록에 없다. 요록은 그날 오후 네 시에서 끝난다.

표지에 적힌 「대조 요망」의 대조 대상은, 1979년까지도 지정되지 않았다.


국군 제1사단 일일 전황 보고 제19호~제26호

1950년 10월 19일부터 10월 26일까지, 여덟 장

— 등사 원지 인쇄. 각 한 장. 서식은 넉 줄이다.

— 「접적」란은 여덟 장이 모두 같은 낱말이다.

— 사상란은 옮기지 않는다. 이 여드레의 값은 다른 명부의 몫이다.

육군본부 군사연구소 소장, 문서철 제7권

이 여덟 장에는 아무 일도 적혀 있지 않다. 이 나라의 국경은 이 여드레에 그어졌다.


서식은 넉 줄이다. 일자, 전방 진출, 접적, 비고다.

접적란은 원래 지명과 시각을 적게 되어 있었다. 칸이 넓은 것은 그 때문이다.

전방 진출란은 여드레 내내 바뀌었다. 접적란은 여드레 내내 같았다. 두 글자를 적고 나면 칸의 대부분이 남았다.

일자전방 진출접적비고
10.19평양없음시가 수색
10.20순천없음
10.21안주·청천강없음도섭점 확인
10.22박천없음
10.23영변없음유기 장비 수습
10.24운산 남방없음
10.25운산없음주민 신고 없음
10.26운산 북방없음인접 사단 압록강 도달 통보

일곱째 줄이 이 문서철에서 가장 무거운 줄이다.

운산은 강을 건너온 부대가 들어올 경우 가장 먼저 닿게 되어 있던 곳이다. 그 자리에서 스물닷새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 아무도 강을 건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날의 「없음」은 앞의 여섯 개와 글자가 같고 무게가 다르다.

여드레 뒤에 이 여덟 장을 묶은 사람은 그것을 몰랐다. 묶는 순서는 날짜순이고, 날짜순으로 묶으면 일곱째 장은 그냥 일곱째 장이다.

여덟 장 가운데 일곱 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기록이다.

여덟 장 가운데 일곱 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기록이다. 여덟째 장의 비고란에 '인접 사단 압록강 도달'—국군이 강에 닿는다.

남은 54화 · 약 191,180자 · 약 4시간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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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전 57화

제1부 부재(不在)

1서장2제2장 별장(別莊)3제4장 중지(中止)4제6장 오지 않았다

제2부 도하(渡河)

5제8장 수풍(水豐)6제9장 이천구백만7제10장 천사백(千四百)8제12장 저편

제3부 초안(草案)

9제14장 조사국(調査局)10제16장 제이조(第二條)11제17장 삼분의 일12제19장 배치(配置)13제21장 통과(通過)

제4부 표(票)

14제23장 명부(名簿)15제25장 백사십칠 석16제26장 개표(開票)17제27장 해석(解釋)18제29장 회의록(會議錄)

제5부 배치(配置)

19제31장 원조(援助)20제33장 육조(六條)21제35장 남(南)22제37장 항구(港口)

제6부 역전(逆轉)

23제39장 격차(隔差)24제40장 이주(移住)25제42장 신의주(新義州)26제44장 명부(名簿) 둘27제46장 서울28제48장 특수(特需)29제50장 역전(逆轉)

제7부 상비(常備)

30제51장 세는 사람31제53장 판결문(判決文)32제56장 훈련(訓鍊)33제58장 감축안(減縮案)34제60장 허가증(許可證)

제8부 문(門)

35제62장 문(門)36제64장 남은 것37제66장 팔차(八次)38제68장 닫혔다

제9부 재사정(再査定)

39제70장 구차(九次)40제72장 십차(十次)41제74장 아무도 세지 않았다

제10부 세대(世代)

42제76장 열여덟43제77장 북(北)44제79장 이름45제81장 흥남의 손자46제83장 열두 번째47제84장 지도(地圖)

제11부 격리(隔離)

48제86장 격리(隔離)49제88장 범위(範圍)

제12부 계산(計算)

50제90장 육조의 값51제92장 한 번도52제94장 스물여섯 달53제95장 세다

제13부 국경(國境)

54제96장 유고(遺稿)55제97장 열다섯 번56제98장 이름이 없는 사람57제99장 저편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