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8부 문(門)
35화제62장 문(門)
둘 — 축소(縮小)
축소는 해체가 아니다.

이 문장은 그해 가을 국회에서 아홉 번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록, 1989년 9월
— 문. 그 보도는 사실인가.
— 답. 확인하여 줄 수 없다.
— 문. 사실이라면 우리 병력을 줄일 수 있는가.
— 답. 축소는 해체가 아니다.
— 문. 무엇이 다른가.
— 답. 줄어든 것은 되돌릴 수 있다.
— 문. 우리 것도 되돌릴 수 있다.
— 답. 우리 것은 먼저 줄이지 아니한다.
「축소는 해체가 아니다」는 그해 국방위에서 아홉 번 나온다.
여덟 번은 답변하는 쪽이 말했다. 한 번은 질의하는 쪽이 말했다.
질의하는 쪽이 말한 것이 아홉 번째다. 그 뒤로 이 문장은 회의록에 다시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툴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제3조는 상비 병력의 규모를 해마다 국회가 정하게 되어 있다.
1989년 국회는 그 규모를 정했다. 전년과 같았다.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쓸 수 있다. 이 나라는 그 말을 저쪽에만 썼다.
그해 십일월, 베를린의 소식이 이 나라 신문 1면에 실렸다.
강 건너 부대에 관한 기사는 석 달 전 3면이었다.
1면과 3면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그해에 적은 사람은 없다.
이 나라에서 1989년은 다른 나라들이 달라진 해로 기록되었다.
달라진 나라의 목록은 길고 정확하다. 이름과 날짜가 다 적혀 있다.
그 목록에 이 나라가 없는 이유를 적은 줄은 어느 문서에도 없다. 없는 것은 설명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정 역사교과서』 2001년판 제10장은 그해를 열두 쪽으로 적는다.
앞의 열한 쪽이 세계다. 나머지 한 쪽이 이 나라다.
그 한 쪽에 이 기사는 없다.
외무부 「소련 정세 변화와 국경 정책에 관한 검토」
조약국·아주국 합동 · 1991년 12월 · 전 20쪽 · 대외비
— 본 검토는 소련의 소멸이 우리 국경선과 「국경수호법」의 운용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 검토 대상 구간은 두만강 하구 약 17킬로미터다.
결어. 영향 경미.
국경의 한쪽 상대가 없어졌다. 국경은 그대로였다.
하나 — 십칠
이 나라의 국경선은 천삼백삼십삼 킬로미터다.
이 수는 1951년 봄에 처음 계산되었고 그 뒤로 고쳐진 적이 없다.
셋으로 나뉜다.
| 구간 | 길이 | 1991년 12월 이전의 상대 | 이후의 상대 |
|---|---|---|---|
| 압록강 | 795 | 강 건너 나라 | 강 건너 나라 |
| 두만강 | 521 | 강 건너 나라 | 강 건너 나라 |
| 두만강 하구 | 17 | 소련 | 러시아 |
| 계 | 1,333 |
세 줄 가운데 한 줄만 오른쪽이 다르다.
십칠 킬로미터는 이 나라 국경선에서 가장 짧은 구간이다.
초소는 넷이고, 그중 둘은 겨울에 접근로가 끊긴다.
1950년 겨울 이래 이 구간에서 상황보고가 올라온 횟수는 나머지 두 구간의 백분의 일에 못 미친다. 짧고 조용했다.
가장 짧고 가장 조용한 구간에서 상대의 이름이 바뀌었다.
하구 구간의 이쪽은 행정 구역으로 한 개 면이다.
이 면의 주민이 강 건너로 건너갈 수 있는가를 묻는 물음의 답은 제5조에 있다. 제5조는 국경지대의 거주와 이전에 허가를 받게 한다.
제5조에는 상대가 누구인지 적혀 있지 않다. 상대가 바뀌어도 조문은 고칠 데가 없다.
둘 — 승계(承繼)
1991년 12월, 소련이라는 이름의 국가가 없어졌다.
이 나라가 그 나라와 맺은 문서는 열아홉 건이다. 그중 국경에 관한 것은 둘이다.
둘 다 러시아연방이 승계한다는 통보가 그달에 왔다.
승계 통보는 이쪽의 요청으로 온 것이 아니다.
새 나라가 먼저 보냈다. 자기가 이어받는 것의 목록을 적어 보내는 일은 새로 생긴 나라가 맨 처음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목록에 이 나라와의 국경 조약 둘이 들어 있었다. 순번은 앞쪽이 아니었다.
국경 조약은 승계된다. 이것은 국제법의 오래된 원칙이다.
나라가 없어져도 선은 남는다. 선을 다시 그으면 세계의 모든 국경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원칙은 이 나라에 유리하게 작동했다. 십칠 킬로미터를 다시 그을 일이 없어졌다.
외무부 조약국 검토 회의 요지, 1991년 12월 스무이렛날
— 문. 상대가 없어진 국경이 있다.
— 답. 없어진 것이 아니라 바뀐 것이다.
— 문. 바뀌었으면 다시 그어야 하지 아니한가.
— 답. 승계하면 다시 긋지 아니한다.
— 문.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 답. 서식의 이름을 고쳐 적는 일이다.

그해 겨울에 이 나라가 그 구간에 대하여 한 일은 그것이 전부다.
초소 넷의 관측 일지 서식에서 상대국 이름을 적는 칸의 인쇄를 고쳤다.
새 서식은 이듬해 2월에 내려갔다. 그때까지 초소는 옛 서식의 그 칸을 두 줄로 지우고 옆에 손으로 적었다.
소련의 소멸은 이 나라 신문 1면에 여러 날 실렸다.
여러 날 실린 뒤에 물음 하나가 지면에 나왔다. 이제 우리 국경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문서를 외무부는 만들지 않았다. 답할 서식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 외무통일위원회 회의록, 1992년 1월
— 문. 소련이 없어졌다. 우리 국경 정책에 변화가 있는가.
— 답. 검토를 마쳤다. 영향 경미로 판단하였다.
— 문. 무엇이 경미한가.
— 답. 십칠 킬로미터다.
— 문. 내가 물은 것은 킬로미터가 아니다.
— 답. 우리가 잰 것은 킬로미터다.
이 문답은 회의록 열두째 쪽에 있다.
질의한 의원은 더 묻지 않았다. 다음 질의자는 다른 안건으로 넘어갔다.
물음은 킬로미터로 오지 않았다. 답은 킬로미터로만 갔다.
셋 — 경미(輕微)
검토서 스무 쪽 가운데 열여덟 쪽이 소련의 변화를 적는다.
「국경수호법」에 관한 부분은 마지막 두 쪽이다.
그 두 쪽에 조문별 판정표가 있다.
| 항 | 검토 대상 | 판정 |
|---|---|---|
| 하나 | 국경선 획정 | 변동 없음 — 조약 승계 |
| 둘 | 제2조 국경지대의 범위 | 변동 없음 |
| 셋 | 제3조 상비 병력 | 변동 없음 |
| 넷 | 제4조 세출 배분 | 변동 없음 |
| 다섯 | 제5조 거주와 이전의 허가 | 변동 없음 |
| 여섯 | 제7조 재사정 | 차기 재사정에서 다룰 사항 |
여섯 항 가운데 다섯이 같은 넉 자다.
여섯째 항은 판정을 미룬다. 미룬 곳이 석 달 뒤의 제8차 재사정이다.
검토서는 열아홉 사람이 썼다. 조약국이 열하나, 아주국이 여덟이다.
앞의 열여덟 쪽에 열아홉 사람의 손이 갔다. 뒤의 두 쪽은 한 사람이 썼다.
두 쪽을 쓰는 데 걸린 날은 하루다. 판정표의 항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문이 여섯이면 항도 여섯이다.
검토서는 십칠을 천삼백삼십삼으로 나눈다.
몫은 1.3퍼센트다. 검토서는 이것을 「약 1퍼센트」로 적었다.
나머지는 98.7퍼센트다. 검토서는 이것을 「약 99퍼센트」로 적었다.
두 번의 반올림이 서로 반대 방향이다.
작은 쪽은 내렸고 큰 쪽은 올렸다.
두 번 다 변화가 작아 보이는 쪽이다.
같은 서식 안에서 반올림의 방향이 두 번 다 한쪽으로 기울면, 그것은 계산이 아니라 결론이다.
「영향 경미」는 외무부 검토서의 결어에 쓰는 네 등급 가운데 하나다.
나머지 셋은 「영향 중대」 「영향 상당」 「영향 없음」이다.
검토서는 「영향 없음」을 쓰지 않았다. 십칠 킬로미터가 있기 때문이다.
「영향 상당」도 쓰지 않았다. 천삼백십육 킬로미터가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외무부가 1950년 이래 국경에 관하여 낸 검토서는 편철로 남아 있다.
결어가 「영향 중대」인 것은 하나도 없다.
「영향 상당」이 둘이다. 1958년과 1969년이다. 둘 다 강 건너 나라의 내부 사정에 관한 것이었고, 둘 다 그해 안에 「영향 경미」로 정정되었다.
이 나라의 국경 문서에서 등급이 올라간 적은 없다. 올라갔다가 내려온 적이 두 번 있을 뿐이다.
외무부 「소련 정세 변화와 국경 정책에 관한 검토」 · 결어 앞의 한 줄
— 본 검토는 우리 국경 정책의 변경 필요성을 검토한 것이 아니라, 변경 필요성이 발생하였는지를 검토한 것이다.
— 발생하지 아니하였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그해 겨울에 국경을 새로 그었다.
새로 그은 국경은 그해에만 수천 킬로미터다. 지도 회사들이 판을 다시 짰다.
이 나라의 지도는 다시 짜지 않았다. 고친 것은 한 칸의 이름이다.
천삼백삼십삼 가운데 열일곱이 바뀌었고, 그 열일곱도 이름만 바뀌었다.
검토서 마지막 두 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낱말은 「변동 없음」이고 여섯 번이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오는 낱말은 「승계」이고 다섯 번이다.
「국경」은 네 번 나온다.
국방연구원 「탈냉전과 국경 위협 평가」
연례 위협 평가 제41호 · 1991년 12월 · 전 146쪽 · 3급 비밀
— 본 평가는 1991년 세계 안보 환경의 변화가 우리 국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 제1편은 세계를 다룬다. 제2편은 국경을 다룬다.
제2편의 결론 문장은 종전 평가의 것을 그대로 쓴다.
이 나라의 국경은 냉전이 아니라 미승인 위에 서 있다.
하나 — 미승인(未承認)
1950년 10월 열이튿날에 강 건너 나라는 파병하지 않았다.
그 뒤로 그 나라가 이 국경을 승인한 적은 없다.
승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했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강 건너 나라는 이 국경을 승인한 적이 없다. 승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했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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