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1부 부재(不在)
2화제2장 별장(別莊)
하나 — 여섯 시간
방에는 통역이 한 사람 있었다. 소련 쪽 정치국원 여럿이 배석했다.

배석자가 많은 회담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결론을 낼 자리라면 사람을 줄인다. 사람을 늘렸다는 것은, 오늘 나오는 말을 여럿이 같이 들어 두자는 뜻이다.
여섯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중국 쪽에서 온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그 부대를 맡기로 되어 있던 사람이었다.
부대를 맡을 사람이 그 부대를 보낼지 말지를 의논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회고록은 그가 그날 무슨 말을 얼마나 했는지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은 것을 두고 뒤에 여러 해설이 붙었다. 해설은 다음 장의 몫이다.
오간 것을 두 줄로 놓으면 이렇게 된다.
| 중국이 물은 것 | 그 자리에서 받은 답 |
|---|---|
| 지상군이 들어가면 공중 엄호를 하는가 | 지금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
| 준비에 얼마가 걸리는가 | 두 달, 또는 두 달 반 |
| 엄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 중국 영공에 한한다 |
| 조선 상공은 어떻게 되는가 | 답이 나오지 않았다 |
| 무기와 장비는 주는가 | 그것은 준다 |
넷째 줄에 답이 없다. 답이 없는 줄이 이 표의 전부다.
중국 영공을 지켜 주겠다는 말은 중국을 지켜 주겠다는 말이다. 조선 상공을 비워 두겠다는 말은, 강을 건넌 뒤부터는 혼자라는 말이다.
다섯째 줄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무기는 세면 되는 것이고 시간은 셀 수 없는 것이다. 회담에서 셀 수 없는 것을 요구한 쪽이 진다.
여섯 시간 동안 오간 것은 공군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둘 — 두 달 반
두 달 반이라는 답은 거절이 아니다. 거절이 아니어서 반박할 수 없다.
스저, 같은 책 제4장. 회담 넷째 시간의 기록이다
— 우리가 들어가면 공군은 언제 오오.
— 두 달, 어쩌면 두 달 반 뒤요.
— 그때면 겨울이 다 가오.
— 그렇소.
— 그러면 우리 보급선은 그 두 달 반 동안 하늘이 비어 있소.
— 비어 있소. 그것은 사실이오.
여섯 시간 가운데 이 대목이 가장 짧았다. 짧은 것은 다툼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쪽 다 같은 산수를 하고 있었다. 10월에 들어가면 12월 말이나 1월 초에 하늘이 열린다. 그 사이가 이 반도의 가장 추운 두 달이다.
산수가 같으면 논쟁이 길어지지 않는다.
보급선을 하늘에 내주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 방의 누구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다섯 해 전에 끝난 전쟁이 그것을 다 가르쳐 놓았다. 낮에 움직이면 없어진다. 밤에만 움직이면 짐의 절반이 못 온다. 못 온 절반은 다음 밤에도 오지 않는다.
이것은 용기로 메울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같은 계산을 마친 두 사람은 서로를 설득할 필요가 없다.
셋 — 그날 밤
그날 밤 전보 한 통이 베이징으로 갔다. 두 사람 명의였다.
명의가 둘이라는 것이 이 문서의 성질을 정한다. 소련 혼자 보냈으면 압력이 되고, 중국 대표 혼자 보냈으면 보고가 된다. 둘이 나란히 서명하면 그것은 권고가 된다.
권고는 반대보다 무겁다. 반대는 뒤집을 상대가 있지만 권고에는 상대가 없다.
전보에 담긴 것은 세 가지였다. 지금 국경을 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 조선의 주력을 북쪽으로 물려 보존하자는 것, 그리고 뒤의 일은 뒤에 다시 의논하자는 것이다.
첫째 항에는 「지금」이 붙어 있다. 그 두 글자가 이 전보를 최후통첩이 아니게 만들었다.
「지금」이 붙은 문장은 반박하기 어렵다. 지금이 아니라고 했지 영영 아니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항이 첫째 항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지금 하지 말자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뒤에 다시 의논하자는 말이 붙으면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밤에 만들어진 것은 결정이 아니라 유예의 형식이었다.
회고록 제4장은 회담을 길게 적고 전보를 짧게 적었다.
전문(全文)은 옮기지 않았다. 옮기지 않은 이유는 적혀 있지 않다.
통역은 1991년까지 살아 그 장을 썼고, 그때는 이미 국경이 마흔 해 가까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자기가 옮긴 말들이 무엇이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제4장의 마지막 문장은 회담이 아니라 방의 온도에 관한 것이다. 창을 열어 두었더니 바다 쪽에서 바람이 들어왔다고 적혀 있다.
『십월 전보 판본 문제』
중앙당사연구실 편, 1987년 내부 자료 제9호
— 1950년 10월 2일자 전보에 두 개의 문본이 있다.
— 갑본은 부대를 보낸다고 통고한다. 을본은 지금 보내기 어렵다고 통고한다.
— 두 문본은 서로를 부정한다. 그런데 두 문본 다 진본으로 보인다.
— 본 보고서는 어느 쪽이 발송되었는지를 확정하지 못한다.
내부 배포 여든 부. 편자 서명 없음
같은 날짜에 서로 반대되는 문서가 둘 있으면, 사료는 둘 다 사료다.

하나 — 갑(甲)과 을(乙)
두 문본을 놓고 다투는 사람들은 대개 위조를 의심한다.
의심의 방향은 둘이다. 뒤에 잘 보이려고 강한 쪽을 지어냈거나, 뒤에 변명하려고 약한 쪽을 지어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지어낸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보고서는 그 길로 가지 않았다. 지어낸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찾지 못한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다. 두 문본 다 그날의 종이에 그날의 먹으로 적혀 있었고, 두 문본 다 그날 그 방에 있던 사람의 손을 거쳤다.
위조는 대개 한쪽에만 흔적을 남긴다. 양쪽 다 깨끗하면 위조가 아니다.
서지 사항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된다.
| 항목 | 갑본 | 을본 |
|---|---|---|
| 첫 문장 | 지원군의 이름으로 부대를 보낸다 | 지금은 부대를 보내기 어렵다 |
| 전해진 경로 | 중국 측 문헌집에 수록 | 주중 대사가 다음 날 모스크바로 전달 |
| 남은 형태 | 친필이 섞인 초고 | 대사관 암호전보 사본 |
| 발송 기록 | 확인되지 않는다 | 확인되지 않는다 |
| 취소 기록 | 없다 | 없다 |
넷째 줄과 다섯째 줄이 같다.
발송도 취소도 확인되지 않는 문서가 둘이면, 남는 결론은 하나다. 그날 한 사람이 두 개를 다 썼을 수 있다.
한 사람이 같은 날 반대되는 문서를 둘 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둘 — 나란히
같은 자료집에 하나가 더 있다.
부대를 맡기로 되어 있던 사람이 지휘를 사양했다는 기록과, 사양한 바 없다는 기록이다. 두 기록은 같은 권에 여덟 쪽 사이를 두고 실려 있다.
편자는 앞의 것을 빼지 않았고 뒤의 것도 빼지 않았다.
한 사람의 사양은 그 자체로는 작은 일이다. 사양이 받아들여지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고, 그것으로 끝난다.
작지 않게 되는 것은 그 기록이 열흘 뒤의 문서와 나란히 놓일 때다. 사양이 있었다고 읽으면 12일의 정지는 예고된 것이 되고, 없었다고 읽으면 12일의 정지는 갑작스러운 것이 된다.
『십월 전보 판본 문제』 결어, 1987
— 우리는 두 문본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는 요구를 받았다.
— 고르면 나머지 하나는 위조가 된다. 위조로 판정된 문서는 폐기된다.
— 폐기하면 다시 물을 수 없다.
— 그러므로 우리는 고르지 않는다. 두 문본을 나란히 편철한다.
— 뒤에 오는 사람이 우리보다 나은 자를 가졌을 수 있다.
고르지 않기로 한 결정은 학문의 겸손처럼 읽힌다. 그렇게만 읽으면 절반만 읽은 것이다.
고르지 않은 문서는 힘을 잃지 않는다. 나란히 놓인 두 문본은 뒤에 오는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한 쪽씩 꺼내 쓸 수 있는 상태로 남는다.
1987년의 편자는 그것도 알고 있었다. 결어의 마지막 줄이 그 증거다. 나은 자를 가진 사람이 오리라고 적었지, 나은 답을 가진 사람이 오리라고 적지 않았다.
두 문본은 서로를 지우지 않았다. 나란히 편철되었기 때문이다.
10월 2일에 무엇이 결정되었는지는 여기서 정하지 않는다.
정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정하면 열흘 뒤의 문서를 읽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결정이 이미 서 있었다고 보면 12일의 전보는 배신이 되고, 결정이 없었다고 보면 12일의 전보는 그저 하나의 결론이 된다.
배신은 사람을 찾게 만들고 결론은 이유를 찾게 만든다. 뒤에 이 국경을 놓고 다툰 사람들은 대개 앞의 길을 갔다.
자료집의 그 쪽에는 편자 주가 한 줄 붙어 있다. 두 글자다.
「병존(倂存).」
로신 주중 소련대사 → 스탈린, 암호전보
1950년 10월 12일 베이징 발신
— 마오쩌둥 동지가 오늘 다음과 같이 회답하였다.
— 「스탈린 동지와 저우언라이 동지의 의견에 동의한다.」
— 중국군은 국경을 넘지 않는다. 조선 동지들에게는 북으로 물러설 것을 권고한다.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소장, 문서군 558
수신 확인란에 붉은 연필 표시가 하나 있다. 서명은 없다
1950년 10월 12일 오후, 베이징은 동의한다고 답했다.
하나 — 회답
회답은 네 문장이었다.
동의한다는 문장, 넘지 않는다는 문장, 권고한다는 문장, 그리고 뒤에 다시 의논하자는 문장이다. 앞의 셋은 전날 밤 받은 전보를 그대로 되받은 것이고, 넷째만 이쪽에서 붙였다.
붙인 문장이 하나뿐인 회답은 협상이 아니다. 수락이다.
넷째 문장이 무엇을 했는지는 그날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뒤에 다시 의논하자는 말은 회답을 닫지 않는다. 닫지 않은 회답은 되돌릴 수 있는 회답처럼 보인다. 되돌릴 수 있다고 보이면 그 회답에 서명하는 부담이 줄어든다.
부담이 줄어든 서명은 빨리 나간다.
그날 오후에 빨리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 한 문장 때문이다.
그날 베이징에서 나간 것과 들어온 것을 시각순으로 놓으면 이렇게 된다.
| 시각 | 문서 | 발신 → 수신 |
|---|---|---|
| 오전 | 십월 구일 명령의 집행 보류 | 베이징 → 선양 |
| 오전 | 두 지휘관 베이징 소환 | 베이징 → 선양 |
| 오후 | 두 동지의 의견에 동의한다 | 베이징 → 모스크바 |
| 오후 | 북으로 물러설 것을 권고한다 | 베이징 → 평양 방면 |
| 밤 | 도강 준비 중지 확인 | 선양 → 베이징 |
이 다섯 줄에는 이상한 것이 없다.
하루 안에 다섯 통이 오간 것은 많지도 적지도 않다. 순서도 자연스럽다. 부대를 먼저 세우고, 사람을 부르고, 밖에 알리고, 확인을 받는다.
행정이 정상으로 돌아간 하루의 기록이다. 그래서 이 하루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12일은 행정이 정상으로 돌아간 하루였고, 그 하루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갈라진 것은 문서가 아니라 그다음 하루다.
남은 55화 · 약 194,707자 · 약 4시간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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