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10부 세대(世代)
44화제79장 이름
하나 — 권과 쪽
청구서를 낸 것은 2007년 12월이다. 서식의 「청구하는 정보의 내용」란에 원고가 적은 것은 열두 자다.

정보공개는 열흘 안에 결정한다. 부득이하면 열흘을 연장한다.
회신은 넉 달 뒤에 왔다. 넉 달이 걸린 것은 판단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소관을 정하는 데 걸렸기 때문이다. 청구서는 세 부서를 돌았다.
국방부 정보공개 거부 처분 통지, 2008년 4월 21일
— 해당 명부의 소관 부대는 1994년 부대 개편으로 해체되었다.
— 인계 목록에 해당 명부의 표시가 없어 기재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
거부의 사유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명부는 다섯 권이고 권마다 소관이 갈린다. 1963년은 제1권에 든다.
제1권은 1950년 11월부터 1968년 11월까지고 전 23쪽이다. 마지막 쪽은 해마다 한 줄로 묶은 쪽이고 이름은 앞의 스물두 쪽에 있다.
스물두 쪽 가운데 어느 쪽인지는 그 쪽을 펴야 안다.
세 해 전에 국회가 다섯 권을 합산해 달라고 요구한 일이 있다. 답변은 해당 통계 없음이었다.
합산이 안 되는 것과 한 사람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같은 이유에서 나온다. 권마다 소관이 다르고, 소관은 부대와 함께 없어진다.
권은 세어서 알 수 있다. 쪽은 펴야 안다. 펴려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한다.
둘 — 사 년
판결 이유는 셋째 장에 있고 세 줄이다.
서울행정법원 판결 이유 중
— 문서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과 소재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 뒤의 것은 공개를 거부할 사유가 되지 아니한다.
— 피고는 보유하는 문서를 찾을 의무를 진다. 찾는 데 드는 노력의 정도는 별론으로 한다.
찾을 의무는 판결로 생겼다. 찾는 기한은 판결에 없다.
원고 본인 신문 요지, 2008년 7월
— 문. 권과 쪽을 알아 무엇을 하려는가.
— 답.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문. 그러면 왜 구하는가.
— 답. 적혀 있는 자리를 알고 싶다.
— 문. 이름은 이미 알고 있지 아니한가.
— 답. 이름은 우리 집에 있다. 나는 나라에 있는 쪽을 묻는 것이다.
항소는 없었다. 판결은 2008년 10월에 확정되었다.
이행은 2012년 8월이다. 그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이행 통지 뒤에 붙은 경과표 한 장이 전부다.
| 해 | 경과 |
|---|---|
| 2008 | 판결 확정. 기록정보관리단에 이관 요청 |
| 2009 | 옛 소관 부대의 인계 문서 목록 조회. 표시 없음 |
| 2010 | 후속 부대 셋의 문서고 조회. 없음 |
| 2011 | 미정리 문서 상자 조회 시작 |
| 2012 | 제1권 확인 |
다섯 줄 가운데 셋이 없다는 기재다.
2011년에 조회를 시작한 미정리 문서 상자는 사백열두 개다. 상자에는 부대 이름과 연도가 적혀 있고, 적히지 않은 상자가 그 가운데 백서른 남짓이다.
제1권은 적히지 않은 쪽에 있었다. 그래서 목록으로는 찾을 수 없고 열어 보아야 나온다.
마지막 줄에는 상자 번호가 적혀 있지 않다. 그 상자에 번호가 없었기 때문이다.
청구한 것은 숫자 둘이고 받은 것도 숫자 둘이다. 그 사이가 사 년이다.
2012년 8월의 회신은 한 장이고 두 줄이다. 제1권. 열일곱째 쪽.
그 쪽의 몇째 줄인지는 회신에 없다. 회신 서식에 줄을 적는 칸이 없다.
원고는 그것을 복사해 두 부를 만들었다. 왜 두 부인지는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다.

지역별 1인당 국민소득
한국은행 「지역별 국민계정」 2009년판 · 부표 제4표
— 1965년 평균을 100으로 한 지수다.
— 이남은 열두 개 도, 이북은 여섯 개 도다.
마지막 열은 앞의 두 열을 나눈 값이다.
이 표에는 설명이 없다.
| 해 | 이남 | 이북 | 이북÷이남 |
|---|---|---|---|
| 1976 | 241 | 236 | 97.9 |
| 1977 | 252 | 251 | 99.6 |
| 1978 | 263 | 271 | 103.0 |
| 1979 | 271 | 285 | 105.2 |
| 1980 | 264 | 285 | 108.0 |
| 1981 | 274 | 302 | 110.2 |
| 1982 | 289 | 324 | 112.1 |
| 1983 | 309 | 352 | 113.9 |
| 1984 | 328 | 379 | 115.5 |
| 1985 | 344 | 404 | 117.4 |
| 1986 | 370 | 441 | 119.2 |
| 1987 | 400 | 482 | 120.5 |
| 1988 | 431 | 525 | 121.8 |
| 1989 | 454 | 561 | 123.6 |
| 1990 | 485 | 605 | 124.7 |
| 1991 | 520 | 655 | 126.0 |
| 1992 | 541 | 689 | 127.4 |
| 1993 | 564 | 725 | 128.5 |
| 1994 | 599 | 776 | 129.5 |
| 1995 | 637 | 831 | 130.5 |
| 1996 | 671 | 883 | 131.6 |
| 1997 | 693 | 921 | 132.9 |
| 1998 | 650 | 876 | 134.8 |
| 1999 | 701 | 950 | 135.5 |
| 2000 | 744 | 1013 | 136.2 |
| 2001 | 767 | 1052 | 137.2 |
| 2002 | 809 | 1116 | 137.9 |
| 2003 | 829 | 1152 | 139.0 |
| 2004 | 860 | 1203 | 139.9 |
| 2005 | 887 | 1247 | 140.6 |
| 2006 | 923 | 1303 | 141.2 |
| 2007 | 963 | 1364 | 141.6 |
| 2008 | 981 | 1397 | 142.4 |
| 2009 | 972 | 1390 | 143.0 |
이 표는 서른네 줄이다.
첫 줄에서 마지막 열은 백에 닿지 않는다. 셋째 줄에서 넘는다.
넘은 뒤로 이 열은 한 번도 내려가지 않았다.
나눈 값은 위가 커져도 오르고 아래가 작아져도 오른다. 표는 어느 쪽인지 적지 않는다.
1998년 줄에서 두 열이 함께 내려간다. 그런데 마지막 열은 올라간다.
2009년 줄도 그렇다.
벌어지는 데 필요한 것은 한쪽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이 표가 1976년에서 시작하는 것은 앞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앞은 부표 제3표에 있다.
이 표는 마지막 열이 백을 넘기 두 해 전부터 싣는다. 왜 거기서 잘랐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표 아래 각주는 한 줄이다.
1953년 이전 자료 없음.
지역별 계정은 1953년에 처음 작성되었다. 그전의 값은 만들지 않았다.
만들려면 갈라지기 전의 두 지역을 갈라서 세어야 한다. 그 셈의 기준을 정한 문서가 없다.
각주는 서른네 해 동안 고쳐지지 않았다. 고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경모, 『흥남에서 흥남까지』, 흥남화학 사우회, 1997 · 2010년 재간본
후기 및 유족 보론 — 재간본에만 붙었다. 전 9쪽
— 초판은 삼백 부를 찍어 사우회 회원에게만 돌렸다.
— 재간은 저자가 죽은 지 일곱 해 뒤에 하였다. 이백 부다.
— 사우회는 유족에게 추모의 글을 청하였다. 받은 원고는 추모의 글이 아니다.
편집자는 원고를 한 자도 고치지 아니하였다. 다만 책의 앞에 두려던 것을 뒤로 옮겼다.
이 책의 초판에는 후기가 없다.
하나 — 스물아홉 번
보론을 쓴 사람은 저자의 손자다. 이름은 한재호다. 흥남에서 났고 흥남에서 일한다.
그는 2009년 겨울에 할아버지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연필을 들고 읽었다.
읽으면서 한 가지를 세었다.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같은 낱말로만 센 것은 아니다. 정치를 하지 않았다, 나는 정치와 무관하였다, 그것은 내가 정할 일이 아니었다. 셋을 한 묶음으로 세었다.
묶은 기준은 보론 제1절에 있다. 그 문장에서 부인되는 것이 자기 직무 바깥의 결정일 것.
세지 않은 것도 적어 두었다. 남이 그를 두고 한 말은 세지 않았다. 인용 부호 안의 말과 회의 기록을 옮긴 대목이 거기 든다. 넷이다.
책은 전 204쪽이고 장은 열하나다.
| 장 | 다루는 해 | 쪽 | 그 말이 나온 횟수 |
|---|---|---|---|
| 제1장 | 1938~1941 | 20 | 0 |
| 제2장 | 1941~1945 | 16 | 0 |
| 제3장 | 1945~1958 | 34 | 9 |
| 제4장 | 1958~1960 | 18 | 4 |
| 제5장 | 1961~1963 | 14 | 2 |
| 제6장 | 1964~1967 | 16 | 1 |
| 제7장 | — | 1 | 0 |
| 제8장 | 1967~1968 | 12 | 2 |
| 제9장 | 1968~1974 | 41 | 8 |
| 제10장 | 1974~1988 | 20 | 2 |
| 제11장 | 1989~1996 | 12 | 1 |
| 계 | — | 204 | 29 |
제7장은 표제가 「명부」다. 표제 아래는 백지다. 쪽으로는 한 쪽이고 그 한 쪽에는 문장이 없다.
그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장은 셋이다. 처음 두 장과, 백지인 제7장이다.
스물아홉 가운데 열일곱이 두 장에 몰려 있다. 제3장과 제9장이다.
둘 — 자리
제3장은 1945년 8월부터 1958년 6월까지다. 그 장은 인수 명부를 넘긴 날에서 끝난다.
제9장은 1968년 4월 신의주 부임에서 시작한다. 마흔한 쪽이고 그 가운데 사람을 적은 것이 일곱 쪽이다.
두 장이 다루는 것은 그가 자리를 옮긴 두 해다.
손자는 스물아홉을 세 갈래로 나누었다. 나눈 기준은 그 문장의 앞뒤 열 줄 안에 사건이 있는가이다.
| 갈래 | 횟수 | 앞뒤 열 줄 안의 사건 |
|---|---|---|
| 공정과 설비를 적다가 붙은 것 | 6 | 없다 |
| 앞뒤에 아무것도 없이 홀로 나온 것 | 5 | 없다 |
| 자리가 바뀌는 대목에 붙은 것 | 18 | 있다 |
| 계 | 29 | — |
셋째 갈래가 열여덟이다. 나머지 둘을 합친 것보다 많다.
열여덟이 붙어 있는 사건은 다섯이다.
| 해 | 그해에 있었던 일 | 그 대목의 횟수 |
|---|---|---|
| 1958 | 남쪽 자본이 들어오고 인수 명부를 넘겼다 | 5 |
| 1960 | 현장에서 관리직으로 옮겼다 | 3 |
| 1968 | 신의주 화학공업단지 부지배인이 되었다 | 5 |
| 1971 | 단지 제2공장 증설을 맡았다 | 2 |
| 1974 | 흥남으로 돌아왔다 | 3 |
| 계 | — | 18 |
다섯 줄에 공통된 것이 하나 있다. 부르는 쪽이 먼저 있었다는 문장이 다섯 번 다 앞에 붙어 있다.
부인은 사건을 따라 나온다. 사건이 없는 장에는 부인도 없다.
그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장은 셋—처음 두 장과, 표제만 있고 백지인 제7장 「명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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