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2부 도하(渡河)
5화제8장 수풍(水豐)
하나 — 일곱 대
송전 계통은 이렇게 되어 있다.

| 계통 | 방면 | 주요 종점 | 1950년 11월 소관 |
|---|---|---|---|
| 제1계통 | 조선 방면 | 신의주·평양 | 통일 정부 상공부 |
| 제2계통 | 만주 방면 | 안둥 및 그 이북 | 기재 없음 |
| 소내(所內) | 발전소 자체 | — | 발전소 |
가운데 줄이 이 회차의 전부다.
「기재 없음」은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전기가 어디로 가는지는 계량기에 다 적혀 있다. 적히지 않은 것은 그것을 받는 쪽의 이름이다.
몇 대가 돌고 있는지도 문서마다 다르다.
| 문서 | 날짜 | 가동 대수 기재 |
|---|---|---|
| 상공부 접수 보고 | 1950.11.04 | 「사(四) 대 가동」 |
| 미 극동군사령부 참고자료 | 1950.11 | 「가동 대수 미상」 |
| 발전소 일지 | 1950.11.09 | 「정상」 |
| 국방부 시설 조사 | 1950.11.21 | 「이(二) 대 이상 가동 확인」 |
넷 다 같은 달에 같은 시설을 보고 적은 것이다.
참고자료가 시설의 처리에 관하여 권고하지 않은 이유는 뒤쪽에 한 줄로 적혀 있다. 이 시설을 못 쓰게 만들면 국경 이남도 함께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부수면 이쪽이 손해고, 두면 저쪽이 이득이다. 이런 표적에는 권고를 쓰지 않는다.
댐은 하나고 계통은 둘이다. 그리고 그 둘을 함께 세는 서식은 어디에도 없다.
둘 — 상대
11월 중순, 통일 정부는 이 문제를 외교로 처리하기로 한다.
전기를 계속 보낼 것인지, 보낸다면 무엇을 받을 것인지, 끊는다면 언제 끊을 것인지를 정하려면 상대와 말을 해야 한다.
준비는 빨랐다. 문안은 사흘 만에 나왔다.
그다음에서 멈췄다.
외무부 정무국 내부 검토 요지, 1950년 11월
— 교섭 상대의 부존재에 관하여.
— 상대는 국경 너머에 있고, 부대를 편성해 두었으며, 그 부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 우리와 싸운 일이 없다. 그러므로 정전할 것이 없다.
— 우리를 승인한 일도 없다. 그러므로 승인을 전제로 한 문서를 보낼 수 없다.
— 문안은 준비되었다. 수신처를 적을 수 없다.
접촉을 시도한 경로는 셋이다.
| 경로 | 방식 | 결과 |
|---|---|---|
| 제삼국 공관 | 구술서 전달 요청 | 「전달할 상대를 지정해 달라」는 회신 |
| 국제기구 | 기술 사안으로 상정 | 의제 채택 보류 |
| 발전소 실무 | 소장 명의 연락 | 회신 있음. 서명 없음 |
셋째 줄만 답이 왔다.
발전소장이 만주 쪽 변전소에 보낸 연락에 회신이 왔고, 회신에는 이름도 직인도 없었다. 내용은 한 줄이었다. 「종전대로.」
국가끼리는 말할 수 없었고 변전소끼리는 말할 수 있었다.
셋 — 청구하지 않은 것
그해 겨울 내내 전기는 양쪽으로 갔다.
조선 쪽 계통은 신의주와 평양을 밝혔다. 만주 쪽 계통도 끊기지 않았다.
상공부는 만주 방면 송전분에 대해 대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청구하려면 청구서에 수신인을 적어야 한다. 수신인을 적으면 그쪽을 인정한 것이 된다. 인정하지 않기 위해 받을 것을 받지 않았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였다. 만주 쪽은 압록강 물을 쓰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요구하면 이쪽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같은 이유로 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
받지 않는 것과 주지 않는 것이 이 국경에서 처음으로 같은 뜻이 되었다.
이북 최대의 전력 수요처는 수풍이 아니라 흥남이다. 흥남은 다른 수계의 발전소에 물려 있고, 그 계통은 국경을 지나지 않는다.
이 사실이 뒤에 중요해진다. 국경을 지나지 않는 전기가 어디에 있는가가 공장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1950년 11월에는 아무도 그 계산을 하지 않았다. 그때 상공부가 센 것은 킬로와트뿐이었다.
그해 겨울에 상공부가 만든 표가 하나 더 있다. 이북 지역 발전 설비를 계통별로 묶은 것이다.
묶는 기준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발전량이고 하나는 국경을 지나는가였다.
두 번째 기준으로 묶은 표가 뒤에 산업 배치의 근거가 된다. 만든 사람은 그것을 배치 자료로 만들지 않았다. 송전 안전을 따지려고 만든 것이다.
발전소 직원들은 1945년부터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소속이 세 번 바뀌었다. 하는 일은 바뀌지 않았다. 계량기를 읽고 장부에 적는 일이다.
장부는 매달 같은 자리에 숫자가 들어간다. 표지에는 시설 이름만 있고 나라 이름은 없다.
그 장부가 어느 나라 장부인지 물은 사람은 그해에 아무도 없었다.

임시 인구조사 집계표 (제1차 잠정)
내무부 지방국, 단기 4283년(1950) 12월
— 조사 기준일은 1950년 12월 1일로 한다.
— 이북 지역은 행정 계통이 복구된 군(郡)에 한하여 실지 조사하였다.
— 미조사 군은 추계로 채웠다. 추계 방법은 부표에 적었다.
본 집계는 잠정이다. 확정 집계는 1951년 하반기로 예정한다.
이 집계표에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 — 세는 일
통일 정부가 처음 한 일은 사람을 세는 것이다.
세지 않으면 아무것도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석을 정하려면 세야 하고, 예산을 나누려면 세야 하고, 쌀을 배급하려면 세야 한다.
그래서 총만 내려놓고 바로 셈이 시작되었다.
11월 중순에 지시가 내려갔고 12월 1일을 기준일로 잡았다. 준비 기간은 보름이었다.
이북에서 세는 일은 이남에서 세는 일과 달랐다.
이남에는 면사무소가 있고 면사무소에는 대장이 있다. 조사원은 대장을 펴고 대조만 하면 된다.
이북에는 면사무소 자리에 다른 이름의 사무소가 있었고, 그 사무소의 대장은 다른 서식으로 되어 있었다.
조사원은 그 서식을 읽을 수 있었다. 읽을 수 있는 것과 옮겨 적을 수 있는 것은 다르다.
내무부 지방국장 지시 요지, 1950년 11월
— 세는 일은 늦출 수 없다. 늦추면 정할 것을 정하지 못한다.
— 다만 급하게 센 숫자는 오래 남는다. 그것을 알고 세라.
— 세지 못한 것은 세지 못했다고 적어라. 채워 넣지 마라.
— 채워 넣은 것은 반드시 표시하고, 무엇으로 채웠는지 적어라.
— 이 지시의 마지막 두 줄이 지켜지지 않으면 이 조사는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마지막 두 줄은 지켜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반쯤 지켜졌다. 채워 넣은 것은 표시되었고, 무엇으로 채웠는지는 적히지 않았다.
부표는 만들어졌다. 부표를 만든 계원이 12월에 다른 부서로 옮겨 갔고 부표는 미완으로 편철되었다.
이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완성되지 않은 부표다.
둘 — 아홉 칸
집계표를 펴면 왼쪽에 지역 칸이 있다.
이남은 열 칸이다. 아홉 개 도와 서울시다. 여기에는 다툴 것이 없다.
이북은 아홉 칸이다. 이 아홉이 어떻게 아홉이 되었는지를 설명한 문서는 없다.
| 칸 | 근거 | 성격 |
|---|---|---|
| 평안남도 | 1945년 8월 이전 편제 | 도 |
| 평안북도 | 1945년 8월 이전 편제 | 도 |
| 함경남도 | 1945년 8월 이전 편제 | 도 |
| 함경북도 | 1945년 8월 이전 편제 | 도 |
| 황해도 | 1945년 8월 이전 편제 | 도 |
| 강원도 이북 | 삼팔선 분할 잔여 | 도의 일부 |
| 경기도 이북 | 삼팔선 분할 잔여 | 도의 일부 |
| 자강도 | 1949년 이북 신설 | 도 |
| 평양시 | 1946년 특별시 승격 | 시 |
다섯은 온전한 도다. 둘은 도의 조각이다. 하나는 이북이 만든 도이고, 하나는 도가 아니라 시다.
집계표에 인쇄된 표제는 「이북 구도(九道)」다.
표제가 틀렸다는 것은 조판 단계에서 지적되었다.
고치려면 표를 다시 짜야 하고, 다시 짜면 기준일 전에 배포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치지 않았다. 고치지 않은 표제가 다음 조사에 그대로 옮겨 갔고, 그다음 조사에도 옮겨 갔다.
아홉이라는 숫자는 세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는 일은 그 아홉 칸을 채우는 일이 되었다.
칸이 정해지면 그다음은 저절로 따라온다.
자강도를 한 칸으로 인정한 것은 이북의 1949년 편제를 인정한 것이다. 인정하지 않으려면 자강도를 평안북도에 도로 합쳐야 하는데, 합치면 이북이 아홉 칸이 되지 않는다.
인정할 생각은 없었고 아홉 칸은 필요했다. 그래서 인정하지 않은 채로 칸만 두었다.
이런 처리를 그해에는 「사실 정리」라고 불렀다.
사실 정리는 뒤에 자주 쓰인다. 인정하면 곤란하고 지우면 일이 되지 않는 것을 처리할 때 쓴다.
처음 쓴 곳이 인구조사 집계표라는 것은 오래 잊혔다. 1980년대에 행정 용어를 정리하던 사람이 출전을 찾다가 이 집계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출전을 확인하고 정리안에서 그 항목을 뺐다. 뺀 이유는 적지 않았다.
셋 — 오 년
조사원들이 이북 군청 서고를 열었을 때 나온 것은 두 종류의 기록이다.
1945년 8월까지의 것과 그 뒤의 것이다.
앞의 것은 총독부 양식이다. 뒤의 것은 이북 양식이다. 둘은 세는 단위가 다르다.
| 항목 | 1945년 8월 이전 | 그 이후 | 내무부 처리 |
|---|---|---|---|
| 가구 | 호주 기준 | 세대주 기준 | 호주로 환산 |
| 직업 | 십이 분류 | 팔 분류 | 환산 불능 |
| 토지 | 지목별 면적 | 경작 단위 | 환산 불능 |
| 이동 | 기류(寄留) 신고 | 거주 등록 | 일부만 대응 |
| 연령 | 세는 나이 | 만 나이 | 재계산 |
환산 불능이 둘이다. 일부만 대응이 하나다.
내무부는 환산할 수 없는 것을 버렸다. 버린다는 말은 쓰지 않았다. 「자료 미비」라고 적었다.
내무부는 환산할 수 없는 다섯 해를 「자료 미비」라고 적었다. 강계의 조사원은 복명서에 적지 않은 한 줄을 남긴다—미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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