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7부 상비(常備)
34화제60장 허가증(許可證)
셋 — 오 년
그래서 1986년에 갱신을 받은 사람은 1991년까지의 허가증을 손에 쥔 채로 이듬해의 표결을 기다렸다.

법이 폐지되면 그 허가증은 어떻게 되는가.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근거 법률이 없어지면 그 문서가 무엇을 허가한 것인지 정할 자리가 없어진다.
이 규정 열아홉 조 어디에도 법이 폐지되었을 때의 처리가 없다.
시행령에도 없고 시행규칙에도 없다. 국경수호법 본문에도 없다.
경과 규정을 두지 않은 이유를 물은 문서가 하나 있다. 1985년 가을의 내부 검토 회신이고, 답은 한 줄이다. 그러한 사정이 발생할 것을 전제하지 아니한다.
회신을 쓴 사람은 내무부 법무담당관이다. 법의 존속을 전제로 하위 규정을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전제를 의심하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끝나는 날짜를 적지 않은 법에는 끝난 뒤를 정한 조문도 없다.
서식 제1호는 종이 한 장이고 크기는 손바닥만 하다.
앞면에 사진과 번호와 본적이 있다. 뒷면 아래쪽에 유효기간란이 있다.
1986년에 발급된 것에는 그 칸에 1991년 12월 31일이 인쇄되어 있다. 그 아래 칸은 다음 갱신 날짜를 적는 자리다.
비어 있다. 그 칸은 오 년 뒤에 채워진다.
국경수호법 제7차 재사정 특별조사위원회 보고서
국회 사무처 편철, 1987년 2월 · 본문 104쪽 · 부록 2건
— 부록의 구성은 제6차와 같다. 제1호가 존속 의견서, 제2호가 폐지 법률안이다.
— 본 위원회는 제6차 위원회가 남긴 서식철을 인계받아 사용하였다.
— 서식철 표지의 빈 칸에 「제7차」를 적었다.
본 보고서의 목차는 제6차 보고서의 목차와 같다.
폐지안이 다시 붙었다. 붙는 것이 이번에 절차가 되었다.
하나 — 서식
제6차의 병기는 금지 조항이 없어서 가능했다. 제7차의 병기는 선례가 있어서 가능했다.
같은 일을 두 번 하면 관행이 된다. 관행이 문서로 적히면 서식이 된다.
1986년에 고쳐진 위원회 운영 지침 제9조에 대안 또는 폐지안을 병기할 수 있다는 문장이 들어갔다. 넣자고 한 사람도 반대한 사람도 회의록에 없다.
폐지 법률안을 발의한 것은 위원 스무 명 가운데 아홉이다. 제6차에는 스물한 명 가운데 여섯이었다.
보고서의 목차가 제6차와 같다는 것은 조사한 항목이 같다는 뜻이다.
무엇을 조사할지가 서식으로 정해지면 서식에 없는 것은 조사되지 않는다. 두 보고서의 쪽수가 다른 것은 항목이 늘어서가 아니라 표가 길어져서다.
물은 해를 늘어놓으면 이렇게 된다.
| 물은 해 | 무엇으로 물었는가 | 병기된 안 | 답 |
|---|---|---|---|
| 1952 | 제정 심의 | — | 필요하다 |
| 1957 | 제1차 재사정 | — | 변화 없음 |
| 1962 | 제2차 재사정 | — | 변화 없음 |
| 1967 | 제3차 재사정 | — | 변화 없음 |
| 1972 | 제4차 재사정 | — | 변화 없음 |
| 1977 | 제5차 재사정 | — | 변화 없음 |
| 1982 | 제6차 재사정 | 폐지 법률안 | 변화 없음 |
| 1987 | 제7차 재사정 | 폐지 법률안 | 변화 없음 |
오른쪽 끝 칸은 여덟 줄이 같은 말이다. 셋째 칸만 두 줄에서 채워졌다.
안을 붙이는 법이 생겼고, 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둘 — 여든하나
표결은 1987년 3월에 있었다.
폐지 법률안에 대한 표결이 먼저다. 찬성 팔십일, 반대 이백사. 부결이다.
재석 이백여든다섯 가운데 여든하나다. 넷 중 하나가 조금 넘는다.
여든하나가 어느 지역에서 나왔는지는 회의록에 없다. 기명 투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두 개의 수뿐이다.
그다음에 존속 의견서에 대한 처리가 있었다.
토론 신청이 없었고 이의도 없었다. 의장이 이의 없음을 확인하고 가결을 선포했다.
가결의 찬반은 회의록에 없다. 표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결에는 수가 남고 가결에는 수가 남지 않는다.
국경수호법 제7차 재사정 특별조사위원회 부록 제2호 이유서 말미, 1987년 2월
— 우리는 이 안이 통과되리라 보지 아니한다.
— 통과되지 않을 안을 붙이는 까닭을 적어 둔다.
— 부결된 표는 회의록에 남는다. 이의 없이 지나간 것은 남지 아니한다.
— 우리는 이 법이 몇 사람의 반대를 받았는지가 어딘가에 적히기를 바란다.
넉 줄은 제6차 이유서에 없던 것이다. 앞의 네 항은 제6차 것을 그대로 옮겼고 이 넉 줄만 새로 붙였다.
1982년의 수는 회의록에 있고 보고서에 없다. 두 해의 수를 나란히 놓은 문서는 1987년까지 나오지 않았다.
여든하나는 폐지에 찬성한 수다. 존속에 찬성한 수는 이날 세지 않았다.
셋 — 신문
서정협은 1911년에 났다. 1973년 12월에 예순둘로 퇴직했다.
1987년 3월의 표결을 그는 신문으로 보았다. 기사는 정치면 아래쪽 두 단이고, 제목에 「부결」이 들어가 있다.
그날 일 면은 다른 기사였다. 앞서 여섯 번의 재사정도 대개 그만한 자리에 실렸다.
그는 그해에 죽었다. 일흔여섯이다.

부고는 그해 겨울 법제처 회보 뒷장에 넉 줄로 실렸다.
직명과 재직 기간만 적혀 있다. 넉 줄 어디에도 국경수호법이라는 말은 들어가지 않았다.
『서정협 유고』는 1991년에 유족이 공개했다. 유품에서 나온 종이 상자 넷 가운데 손으로 쓴 것은 백서른 장 남짓이고, 그 가운데 아흔 장 넘게가 이 법에 관한 것이다.
날짜가 적힌 것 가운데 가장 나중 것은 1973년 12월 28일이다.
그 뒤 열넉 해 동안 그는 이 법에 관하여 한 줄도 적지 않았다.
퇴임 전날 그가 법령집 여백에 적은 석 줄의 마지막은, 이것이 답인지 습관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일곱 번째 물음에 답이 나왔을 때 그는 그 석 줄에 아무것도 보태지 않았다.
상자 넷에서 1987년의 신문 오림은 나오지 않았다. 그해 신문을 그가 어떻게 했는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대한민국 국정 역사교과서』 2001년판, 제10장 「냉전의 종결」
문교부 · 고등학교 과정 · 제10장 12쪽
— 1989년,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 체제가 바뀌었다. 그해 십일월 베를린에서 장벽이 열렸다.
— 이 변화로 세계의 냉전 구조는 끝났다.
— 우리 나라의 국경에는 변화가 없었다.
위의 마지막 한 줄이 제10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1989년에 이 나라에서 열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 — 기사(記事)
1989년 8월 스무이튿날, 한 일간지 3면에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열한 자다. 본문은 스물여덟 줄이다. 사진은 없다.
기사는 강 건너에 있는 부대의 편제 번호를 인쇄했다. 세 자리 숫자였다.
그 번호가 이 나라의 활자로 인쇄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부대는 1950년 겨울부터 거기 있었다. 서른아홉 해다.
그동안 이 나라의 문서는 그것을 번호로 부른 적이 없다.
| 연도 | 문서 | 이 부대를 부른 말 |
|---|---|---|
| 1951 | 국경수비사령부 상황보고 제1호 | 대안(對岸) 병력 |
| 1958 | 국방부 연례 정세 판단 | 대안 주둔 부대 |
| 1963 | 국경수비사령부 관측 요령 | 대안 부대 |
| 1974 | 국정 역사교과서 제9장 | 표기 없음 |
| 1989 | 8월 스무이튿날 일간지 3면 | 세 자리 번호 |
앞의 넉 줄은 같은 말을 조금씩 줄인 것이다. 다섯째 줄만 다른 말이다.
「대안」은 강 건너편이라는 뜻이다. 방향만 있고 이름이 없다.
기사가 든 근거는 셋이다.
| 항 | 근거 | 기사가 밝힌 것 |
|---|---|---|
| 하나 | 강 건너 지방 신문의 인사 기사 열한 건 | 발행 연월과 면수 |
| 둘 | 상류 교량의 통행 관측 기록 | 관측자 비공개 |
| 셋 | 귀환자 진술 넷 | 이름 비공개 |
셋 가운데 이 나라 관청의 자료는 하나도 없다.
기사 말미에 국방부 답변이 두 줄 붙어 있다. 「해당 보도의 내용에 관하여 확인하여 줄 수 없다. 이상.」
서른아홉 해 만에 인쇄된 그 번호를 이 나라 관청은 확인해 주지 않았다.
인사 기사 열한 건은 부대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
적은 것은 사람의 직함과 전출입이다. 기자는 그 직함을 세 해치 늘어놓고 없어진 자리를 셌다.
자리가 하나 없어지면 부대가 하나 없어졌다고 읽는다. 이 읽기의 근거는 저쪽의 편제 관행이다.
그 관행을 어디서 알았는지는 기사에 적혀 있지 않다.
이튿날 다른 일간지 여섯 곳 가운데 둘이 이 기사를 받아 적었고 넷은 적지 않았다.
받아 적은 둘은 국방부 답변을 함께 실었다. 답변을 실으면 기사가 절반이 된다.
기사를 쓴 기자는 그해 가을에 후속 기사를 넷 더 썼다. 다섯째 원고는 지면에 나가지 않았다. 나가지 않은 이유는 신문사 기록에 없다.
둘 — 축소(縮小)
기사의 요지는 번호가 아니다.
그 부대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는 세 해 사이에 예하 연대 하나가 없어졌고 주둔지 두 곳이 비었다고 적었다.
이쪽의 관측 초소가 볼 수 있는 것은 강 건너 첫 능선까지다.
그 부대의 주둔지는 능선 뒤에 있다.
서른아홉 해 동안 이 나라의 초소는 그 부대를 본 적이 없다. 본 것은 능선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서른아홉 해 지켰다. 줄었다는 소식도 보고 안 것이 아니다.
국방부 문서에서 그 부대의 규모를 적는 칸은 하나다.
1951년부터 1989년까지 그 칸에 적힌 것은 「미상」이다.
줄었다는 보도가 나온 해에도 그 칸은 미상이었다. 줄기 전을 모르면 줄어든 뒤도 모른다.
서른아홉 해 동안 규모란에 적힌 글자는 「미상」뿐이다. 줄었다는 보도가 나온 해에도 그 칸은 미상이었다 — 줄기 전을 모르면 줄어든 뒤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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