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6부 역전(逆轉)
28화제48장 특수(特需)
『고등학교 일본사 B』 1998년 문부성 검정 통과본
제9장 「전후 부흥과 이웃의 전시」 도입부 · 발행 1999년 4월
— 우리 나라의 전후 부흥이 이웃의 전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 장의 전제다.
— 다만 이 장이 다루는 것은 그 시작이 아니라 그것이 끝나지 않은 스물다섯 해다.
— 1950년에 시작된 조달은 1953년에 끝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끝나지 않았다.
— 우리는 이 시기를 「이웃의 항구적 전시(戰時)」라 적는다. 이 표기는 이 판에서 처음 쓴다.
앞의 판본은 같은 시기를 「조선 특수의 연장」이라 적었다.

특수를 만드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지 않는 쪽이다.
하나 — 스물다섯 해
제9장의 첫 표는 다섯 줄이다. 값은 전부 지수와 구성비다. 금액은 한 칸도 없다.
| 기간 | 대한 조달 지수 | 수출 총액 중 대한 몫 |
|---|---|---|
| 1950~1953 | 100 | 27.4 |
| 1954~1958 | 88 | 19.1 |
| 1959~1963 | 106 | 15.8 |
| 1964~1968 | 143 | 14.2 |
| 1969~1973 | 191 | 12.6 |
가운데 열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의 연평균 조달을 백으로 놓은 것이다.
가운데 열은 올라가고 오른쪽 열은 내려간다. 두 열이 같은 것을 세는데 방향이 반대다.
파는 양은 두 배 가까이 되었다. 파는 곳은 그보다 더 늘었다. 그래서 몫이 줄었다.
스물다섯 해 동안 한쪽은 파는 곳을 늘렸고 한쪽은 사는 곳을 늘리지 못했다.
다섯 줄 가운데 내려간 것은 둘째 줄뿐이다.
내려간 까닭은 그 다섯 해에 조달의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앞의 세 해는 소모품이었고 그 뒤는 설비다.
소모품은 해마다 같은 양이 나가고 설비는 한 번에 크게 나갔다가 몇 해 쉰다.
1959년부터 다시 올라간 것은 국경 배치가 본격으로 시작되면서 설비가 다시 크게 나갔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이 표에 각주를 하나 달았다. 표의 값은 조달 계약액이며 실제 인도액과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정도는 적지 않았다. 적으려면 인접국의 결산이 있어야 하고, 그 결산의 해당 항목은 공표되지 아니한다.
둘 — 파는 쪽
제9장의 둘째 표는 두 나라를 나란히 놓았다.
| 구분 | 1953 | 1974 |
|---|---|---|
| 한국 총 세출 중 국방 관계 | 34.8 | 39.7 |
| 그 가운데 국외 조달 몫 | 9.2 | 11.8 |
| 일본 수출 총액 중 대한 몫 | 27.4 | 11.9 |
첫 줄과 둘째 줄은 한국 예산서에서 왔고 셋째 줄은 일본 통계에서 왔다.
첫 줄은 사 점 구 올랐다. 둘째 줄은 이 점 육 올랐다. 셋째 줄은 열다섯 점 오 내려갔다.
같은 스물한 해를 한쪽은 늘어난 것으로 적고 한쪽은 줄어든 것으로 적는다. 두 서술이 다 옳다.
군수는 사는 쪽에 남는 것이 없다. 소모품은 소모되고 설비는 국경에 서 있다가 낡는다.
파는 쪽에는 공장이 남는다. 그 공장이 이듬해에 다른 것을 만든다.
셋째 표는 조달 품목을 넷으로 묶었다.
| 품목 구분 | 1950~1953 | 1969~1973 |
|---|---|---|
| 피복·식량·연료 | 61 | 22 |
| 차량·통신 장비 | 24 | 31 |
| 공작 기계·설비 | 9 | 34 |
| 그 밖 | 6 | 13 |
| 계 | 100 | 100 |
첫 줄이 서른아홉 내려갔고 셋째 줄이 스물다섯 올랐다.
처음 세 해에 이웃이 판 것은 만들기 쉬운 것이었다. 스무 해 뒤에 판 것은 만들 줄 알아야 만드는 것이다.
판 쪽이 스무 해 동안 배운 것이 이 표에 있다. 산 쪽이 스무 해 동안 배운 것은 이 표에 없다.
판 쪽에는 설비가 남고 산 쪽에는 명세서가 남는다.
이 대목에서 두 나라를 견주어 어느 쪽이 이득을 보았는가를 묻는 것은 세는 방법이 아니다.
셀 수 있는 것은 하나다. 스물다섯 해 동안 한국이 국방 세출의 십 분의 일 언저리를 국외에 지불했고, 그만큼이 국내 산업으로 가지 않았다.
지불한 쪽이 그것을 손해라고 적은 문서는 없다. 국경은 지켜야 했고 지키는 데 드는 것은 사 와야 했다.
이웃이 그것으로 자란 것은 이웃이 한 일이 아니다. 사겠다고 한 쪽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 — 고친 낱말
1998년판에서 이 장이 앞의 판과 다른 곳은 낱말 하나다.
「조선 특수의 연장」이 「이웃의 항구적 전시」가 되었다.
교과용도서 검정조사심의회 제3부회 의견, 1997년
— 「연장」이라는 말은 끝을 전제한다.
— 이 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끝나지 않은 것을 연장이라 적으면 학생은 언제 끝났는지 찾게 된다.
— 찾을 수 없다.
— 그러므로 「항구적」으로 고친다.
— 이 낱말은 이웃 나라 법률에서 왔다. 그 법률 제1조가 그 낱말을 쓴다.
제1조의 그 낱말은 1952년에 임시법이 아니라는 뜻으로 적힌 것이다.
1997년에 다른 나라 교과서가 그것을 가져다 쓸 때 뜻은 하나였다.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낱말의 뜻은 가져다 쓰는 쪽이 정한다. 적은 쪽은 그 자리에 없다.

1998년판 제9장에는 각주가 열하나 붙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렇다.
본장의 서술은 인접국의 공표 통계에 의한다. 인접국이 공표하지 아니한 항목은 본장에 없다.
없는 항목이 무엇인지는 각주에 적혀 있지 않다.
지역별 1인당 국민소득, 1974~1978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제1표 · 1978년 12월 공표
— 이 공표본에는 1976년 12월에 조제된 내부본이 영인되어 실려 있다.
— 내부본은 세 해치다. 공표본은 다섯 해치다.
— 아래는 영인된 세 해치 쪽이다.
— 내부본 오른쪽 위에 「대외 배포 보류」가 찍혀 있다. 도장은 1976년 12월 27일 자다.
공표를 두 해 미룬 사유는 이 공표본에 적혀 있지 아니한다.
이 세 줄에서 넘어간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 해 | 이남 열두 개 도 | 이북 여섯 개 도 | 이북÷이남 |
|---|---|---|---|
| 1974 | 214 | 196 | 91.6 |
| 1975 | 228 | 216 | 94.7 |
| 1976 | 241 | 236 | 97.9 |
가운데 두 열은 1965년을 백으로 한 1인당 국민소득 지수다. 마지막 열은 앞의 둘을 나눈 값이다.
1976년 줄의 마지막 값은 구십칠 점 구다. 반올림하면 구십팔이다.
1인당은 나눈 값이다. 위가 늘어도 아래가 함께 늘면 값은 제자리에 있다.
이북의 아래는 1966년부터 해마다 늘고 있었다. 사람이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마지막 열이 올라갔다. 위가 아래보다 더 빨리 늘었다는 뜻이다.
마지막 열이 두 해에 육 점 삼 올랐다. 한 해로 나누면 삼 점 이다.
구십칠 점 구에 삼 점 이를 더하면 백일 점 일이다.
이 계산은 표에 없다. 세 줄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래서 이 표는 세 줄에서 끝난다.
넘어가는 해가 언제인지는 이 표가 말하지 않는다. 이 표를 본 사람이 말한다.
내부본에는 표가 하나 더 있다. 통계 단위를 앞선 표와 견준 것이다.
| 구분 | 1965년 제3표 | 1976년 내부본 |
|---|---|---|
| 이북 | 여섯 개 도 | 여섯 개 도 |
| 이남 | 아홉 개 도 | 열두 개 도 |
이남이 셋 늘었다. 늘어난 셋은 새로 생긴 땅이 아니다. 1971년에 세 시가 도와 같은 통계 단위가 되었다.
단위가 바뀌면 앞뒤가 끊긴다. 이 표를 열한 해 전의 공업 생산 지수표에 이어 붙일 수 없는 까닭이 그것이다.
그 지수표에는 각주가 둘 붙어 있었고, 첫째 각주는 그 표를 1인당 국민소득 추이표와 견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공장이 서 있는 곳과 그 공장이 낳은 것이 돌아가는 곳은 같지 않다. 각주의 뜻은 그것이었다.
열한 해가 지나자 두 곳이 같아졌다. 같아지는 데 걸린 시간을 센 문서는 없다.
조사통계국 제1과 공표 심의 요록, 1976년 12월
— 이 표는 무엇을 말하오.
— 세 해치 소득을 말하오.
— 그것 말고 무엇을 말하오.
— 그것 말고는 말하지 않소.
— 그러면 보류할 까닭이 없소.
— 보류할 까닭은 이 표에 없소. 이 표를 읽는 사람에게 있소.
— (이하 발언 기재 없음)
도장은 그날 찍혔다. 여섯 자다.
이듬해 조제본에도 같은 도장이 찍힌다.
그다음 해 조제본에는 찍히지 않는다.
찍히지 않은 까닭은 그해의 표가 세 줄이 아니라 다섯 줄이었기 때문이다.
다섯 줄짜리 표는 보류해도 소용이 없다.
내부본은 그 뒤 두 해 동안 제1과 서류함 셋째 칸에 있었다.
1978년 12월에 공표본이 나오면서 이 세 줄이 영인되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도장 자국도 함께 찍혔다.
영인은 원본을 그대로 뜬다. 도장을 지우려면 사람이 손을 대야 하고, 손을 댄 기록은 따로 남는다.
기록이 남는 쪽과 도장이 남는 쪽 가운데 조사통계국은 뒤를 골랐다.
지역 간 소득 격차에 관한 특별 조사
경제기획원 조사반 · 1978년 11월 · 전 194쪽 · 배포 32부
— 이 조사는 1977년 4월 지시로 시작되었다. 지시의 문면은 「이남 지역의 소득 정체 원인을 규명할 것」이었다.
— 조사가 끝난 1978년 11월에 그 전제는 성립하지 아니한다.
— 이남 지역은 정체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다른 쪽이 더 빨리 올라갔다.
— 조사반은 지시의 문면을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두었다. 지시를 고치는 것은 조사반의 권한이 아니다.
표제의 「격차」는 방향을 적지 아니한다. 이 조사가 시작될 때와 끝날 때 격차의 방향은 서로 반대였다.
이 조사는 한쪽이 뒤졌다는 전제에서 시작되었다. 끝났을 때 뒤진 쪽이 바뀌어 있었다.
이남의 정체 원인을 밝히라던 조사가 끝났을 때, 뒤진 쪽이 바뀌어 있었다. 「격차」라는 표제는 방향을 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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