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4부 표(票)
17화제27장 해석(解釋)
셋 — 채택
셋째 문서가 채택되었다.

처방이 가볍고, 소관이 뚜렷하고, 성과를 셀 수 있었다. 강연을 몇 번 했는지, 인쇄물을 몇 부 냈는지, 순회를 며칠 돌았는지는 그날로 셀 수 있다.
가벼운 처방이 채택되는 것은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성품 때문이 아니다. 회의는 결론을 내야 하고, 결론에는 소관 부처가 붙어야 하고, 소관 부처에는 예산 항목이 있어야 한다.
세 조건을 다 채우는 안이 하나뿐이면 그 안이 결론이 된다. 옳고 그름은 세 조건에 들어 있지 않다.
세 해석은 세 부처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채택된 것은 가장 옳은 해석이 아니라 처방이 가장 가벼운 해석이다.
관계 부처 연락회의 기록, 1954년 6월
— 셋째 안으로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 이북 주민이 이남을 알게 된다.
— 알게 되면 표가 옮겨 오는가.
— 옮겨 온다고 본다.
— 본다는 것과 그렇다는 것은 다르다. 어떻게 확인하는가.
— 다음 선거를 보면 된다.
— 다음 선거는 사 년 뒤다. 사 년 동안 이 사업을 계속하는가.
— 계속한다. 계속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다.
회의에 앉은 사람은 열하나다.
열한 사람 가운데 1945년 이후 이북에 가 본 사람은 없다. 1945년 이전에 살아 본 사람은 둘인데 둘 다 그때 학생이었다.
이북을 설명하는 문서 셋을 이북에 가 보지 않은 열한 사람이 골랐다.
그것이 그때 이 나라가 가진 인원의 전부였다는 것도 함께 적어 둔다. 골라야 할 사람이 따로 있었는데 부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업 예산은 1954년에 신설되어 1961년까지 여덟 해 편성되었다.
성과란에 적힌 것은 여덟 해 동안 같은 셋이다. 강연 횟수, 인쇄 부수, 순회 일수다.
넷째 줄은 없다.
1961년에 그 셋을 마지막으로 세었다. 셋 다 첫해보다 늘어 있었다.
둘째 문서가 제38쪽에 적어 둔 검증 셋 가운데 여덟 해 동안 실제로 해 본 것은 없다.
수기 제2책의 마지막 쪽은 백지다.
쪽 번호만 찍혀 있고 그 위는 비어 있다. 앞 쪽에서 문장이 끊긴 자리도 아니다. 앞 쪽은 온전히 끝나 있다.
유족은 기증하면서 그 쪽을 빼지 않았다.
제3대 국회 원구성 협상 기록
국회 사무처 의사국, 1955년 6월 · 협상 7차분 요록
— 제1차. 무소속 의원 108인의 교섭단체 등록 신청이 접수되었다.
— 제2차. 등록 요건은 20인이다. 요건 심사에 이의가 없었다.
— 제4차. 신청서의 강령란은 비어 있다. 사무처는 강령란이 필수 기재가 아님을 회신하였다.
— 제6차. 명칭은 세 번 고쳐 제출되었다.
— 제7차. 교섭단체가 낸 첫 요구는 상임위원장 배분이 아니라 예산이었다.
원구성 협상에서 예산이 첫 요구로 나온 것은 이 국회가 처음이다. 『국경수호법 제정사 자료집』 제2권 편찬자 주.
이 교섭단체에는 강령이 없었다.
하나 — 두 재적
재적이라는 말은 국회에서 두 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정족수를 셀 때의 재적이다. 삼백이라는 수가 그것이고, 그 삼백에서 과반이 나온다.
하나는 어디에 적을 두었다는 뜻의 재적이다. 상임위원회에 적을 두고 교섭단체에 적을 둔다.
백여덟은 첫째 재적에 개원 첫날부터 들어 있었다. 둘째 재적에는 한 해 동안 들어 있지 않았다.
교섭단체가 없으면 못 하는 일이 있다. 못 하는 일은 회의규칙에 적혀 있지 않고 관례에 적혀 있다.
| 무엇 | 교섭단체 있는 의원 | 없는 의원 |
|---|---|---|
| 상임위원장 배분 | 대상 | 아님 |
| 의사일정 협의 | 참여 | 통보받음 |
| 본회의 발언 시간 | 단체 몫에서 배분 | 남는 시간 |
| 대표질문 | 있음 | 없음 |
| 예산 심의 소위 구성 | 단체별 | 아님 |
다섯 줄 모두 관례다. 관례를 고치려면 관례를 만든 사람들이 동의해야 한다.
1954년 6월의 원구성에서 백여덟은 다섯 줄의 오른쪽에 있었다. 국회 제일의 수를 가지고 오른쪽에 있었다.
그 한 해 동안 백여덟이 본회의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회의록에 거의 남지 않았다.
발언 기록이 있는 사람은 스물아홉이고, 그 스물아홉의 발언을 다 합쳐도 대표질문 한 사람 몫에 미치지 못한다.
대신 남은 것이 있다. 서면 질의와 청원이다. 종이로 내는 것에는 교섭단체가 필요 없다.
그 한 해에 백여덟이 낸 서면 질의는 국회의 다른 어느 묶음보다 많았다.
한 해가 지나 1955년 6월에 등록 신청이 들어갔다.
요건은 스무 사람이다. 백여덟은 요건의 다섯 배가 넘는다. 심사에서 다툴 것이 없었다.
한 해를 기다린 것은 절차가 늦어서가 아니다. 백여덟이 한 덩어리라는 것을 백여덟 자신이 확인하는 데 그만큼 걸렸다.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아홉 개 도에서 따로 뽑혀 왔고 등록 서류상 아무 관계가 없었다.
한 해 동안 같은 칸의 오른쪽에 함께 있으면서 관계가 생겼다.

명칭은 세 번 고쳐 냈다.
| 차수 | 낸 이름 | 어떻게 되었나 |
|---|---|---|
| 1 | 국경지대 의원 구락부 | 자진 철회 |
| 2 | 북부 구락부 | 자진 철회 |
| 3 | 제일구락부 | 등록 |
두 번은 스스로 거두었다. 이름에 지역이 들어가면 지역 단체가 되고, 지역 단체가 되면 전국의 일을 말할 자격을 스스로 줄이게 된다.
세 번째 이름에는 지역이 없다. 대신 순서가 있다.
그 이름은 겸양이 아니었다. 그 교섭단체는 실제로 이 국회의 제일이었다.
둘 — 첫 요구
원구성 협상에서 첫 요구는 대개 자리다. 어느 상임위원장을 몇 개 가져가느냐가 첫 장에 온다.
제일구락부의 첫 요구는 자리가 아니었다. 종이였다.
요구는 두 줄이다. 국경수호법 제4조에 따른 세출의 도별 집행 명세를 매년 국회에 제출할 것. 명세는 예산안과 함께 낼 것.
협상에서 이 요구에 처음 나온 반응은 되물음이었다. 그 명세를 받아서 무엇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제일구락부의 답은 짧았다. 받아서 읽겠다는 것이었다.
읽겠다는 요구는 거절하기 어렵다. 거절하려면 읽으면 안 되는 이유를 대야 하고, 그 이유를 회의록에 남겨야 한다.
두 줄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풀어 적는다.
제4조는 국가 세출의 삼분의 일 이상을 국경 방위에 배정한다. 이 나라 예산의 삼분의 일이 하나의 목적으로 묶여 있다.
그 돈이 쓰이는 자리는 제2조가 정한다. 국경선 이남 사십 킬로미터다.
| 구분 | 도 수 | 제4조 세출이 닿는가 |
|---|---|---|
| 국경지대에 걸친 도 | 6 | 닿는다 |
| 이북 나머지 도 | 3 | 일부 닿는다 |
| 이남 아홉 개 도 | 9 | 후방 시설에만 |
여섯과 셋은 전부 이북이다.
그때까지 국방 예산은 비목과 부대로 편성되었다. 인건비, 급양비, 피복비, 장비 유지비다. 어느 도에서 얼마가 쓰였는지를 세는 서식이 없었다.
없었던 것은 감추려던 것이 아니다. 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방위는 나라 전체의 일이고 나라 전체의 일에 도별 칸을 만드는 부처는 없다.
제일구락부의 요구는 그 칸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칸이 생기면 값이 인쇄된다. 인쇄된 값은 다투는 대상이 된다.
요구는 통과되었다. 반대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산 명세를 국회에 내라는 요구를 국회의원이 반대하기는 어렵다. 반대하면 무엇을 감추느냐는 말을 듣는다.
협상은 그 한 줄을 넣고 사흘 만에 끝났다. 상임위원장 배분은 그 뒤에 붙었고, 제일구락부는 자리를 적게 가져갔다.
셋 — 소리
첫 명세는 그해 가을 예산안에 붙어 나왔다.
서식은 한 장이고 세로로 도명이 열여덟, 가로로 비목이 넷이다.
숫자가 찬 칸은 열여덟 줄 가운데 여섯 줄이었다. 나머지 열두 줄에는 후방 시설 몫만 적혔고 자릿수가 두 단계 아래였다.
이 명세를 본회의에서 처음 소리 내어 말한 사람은 이남 어느 도 출신 의원이다.
국회 본회의 회의록, 1955년 11월
— 이 표를 보면 나라 예산의 삼분의 일이 여섯 줄로 간다.
— 그 여섯 줄은 전부 압록강과 두만강 쪽이오.
— 그렇소. 국경이 거기 있으니 돈도 거기로 가오.
— 나는 국경을 지키는 것에 반대한 적이 없소. 다만 오늘 처음 알았소.
— 무엇을 처음 알았소.
— 우리가 이겨서 얻은 땅에 우리가 번 것의 삼분의 일을 매년 넣고 있다는 것이오.
그 발언에 답한 사람은 없다. 회의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넘어간 이유는 그 발언이 반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대라면 표결로 정하면 된다. 그것은 반대가 아니라 알아차림이었고, 알아차림에는 표결이 붙지 않는다.
같은 회기에 비슷한 발언이 넷 더 나왔다. 넷 다 이남 출신이고 넷 다 계열이 달랐다.
넷 가운데 셋은 예산을 줄이자고 하지 않았다. 셋 다 명세를 더 자세히 내라고 했다.
줄이자고 한 사람은 하나였고 그 안은 상정되지 않았다.
그날 처음 소리 내어 말해진 것은 값이 아니라 방향이다. 값은 그 전해에도 그만큼이었다.
명세 제출은 관례가 되었다. 이듬해부터 예산안에 같은 서식이 붙는다.
서식은 고쳐지지 않았다. 도명 열여덟에 비목 넷이고, 여섯 줄에 값이 찬다.
칸이 스무 해쯤 지나면 사람들은 그 모양을 원래 그런 것으로 여긴다. 처음 그 칸을 만들라고 한 사람들이 이북에서 온 백여덟이었다는 것은 서식에 적히지 않는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록 발췌
국회 사무처 속기과, 1956년 11월 · 속기록 3쪽
— 안건은 단기 4289년도 세입세출 결산이다.
— 발췌한 세 쪽은 국경수호법 제4조 관계 비목의 심사 대목이다.
— 자료집 제2권은 이 세 쪽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영인했다.
편찬 회의에서 이 대목을 넣을지 뺄지 두 번 표결했다. 두 번 다 넣기로 했다.
속기록 세 쪽 가운데 한 줄이 괄호다.
괄호 한 줄이 적은 것은 소리가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무슨 물음이 그 소란을 만들었는지, 속기록 세 쪽이 그대로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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