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제13부 국경(國境)
54화제96장 유고(遺稿)
하나 — 원장(原張)
옮겨 적을 수 있는 것은 낱말이다. 옮겨 적을 수 없는 것은 두 낱말 사이의 스물한 해다.

둘 — 남용(濫用)
먹지 석 줄은 이렇다.
임시법은 반드시 남용된다. 끝나는 날짜가 적혀 있으면 사람은 그날까지 무엇이든 한다.
그러므로 이 법은 끝나는 날짜를 적지 않는다. 대신 오 년마다 다시 묻게 한다.
다시 묻는 법은 남용되지 않는다.
옆 여백 여섯 줄은 이 셋째 줄을 세 번 고쳐 읽은 기록이다. 맞다고 읽었고, 틀렸다고 읽었고, 다시 맞다고 읽었다.
그 여섯 줄은 자료집 제3권에 활자로 한 번 더 실린다. 두 번 실리는 문장은 자료집 다섯 권에서 그것뿐이다.
앞의 두 줄은 관찰과 처방이다. 셋째 줄은 예언이다.
예언은 검증할 수 있다. 검증하려면 남용이 무엇인지 먼저 정해야 한다.
법령에서 남용은 권한을 그 목적 밖에 쓰는 것이다. 쓰지 않는 것은 남용이 아니고, 서투르게 쓰는 것도 남용이 아니다.
제7조의 권한은 존속 필요성을 판정하는 것이다. 목적 밖에 쓴 일이 있는가를 세 가지로 나누어 본다.
| 남용의 형태 | 제7조에서 확인되는가 |
|---|---|
| 정해진 때에 하지 아니한 것 | 없다. 열네 번 다 그해 3월이다 |
| 정해지지 아니한 자가 한 것 | 없다. 열네 번 다 본회의다 |
| 정해진 것 말고 다른 것을 판정한 것 | 판정의 대상이 조문에 적혀 있지 아니하다 |
앞의 두 줄은 판정이 끝났다. 셋째 줄은 판정할 수 없다.
판정의 대상이 무엇인지가 조문에 없다는 것은 제12차 재사정 때 확인되었다. 조문에 없는 것을 목적 밖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경수호법 제정사 자료집』 제1권 편찬 검토 각서, 2026년 10월
— 문. 셋째 줄이 맞았다고 적을 수 있소.
— 답. 적을 수 있소. 남용의 뜻을 앞에 적어 두면 되오.
— 문. 그러면 그 뜻은 누가 정하오.
— 답. 정해져 있소. 법령의 남용은 목적 밖 행사요.
— 문. 이 조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어디에 적혀 있소.
— 답. 적혀 있지 아니하오.
서정협은 옳았다. 이 조문은 일흔넉 해 동안 한 번도 남용되지 않았다.
남용되지 않은 조문이 무엇을 했는가는 다른 물음이다.
이 조문은 오 년마다 이 법을 다시 정당하게 만들었다. 그 일을 절차대로 했고, 절차를 어긴 적이 없다.
어기지 않았다는 것이 이 조문이 한 일의 전부라면 셋째 줄은 맞는 문장이다.
셋째 줄은 맞았다. 맞은 방식이 그가 적을 때 생각한 방식이 아니었을 뿐이다.
셋 — 연필
연필 두 줄은 아래 여백에 있다. 가로줄 밑이다.
『서정협 유고』 제1문서 원장 아래 여백, 1973년 12월 28일
— 나는 이것이 답인지 습관인지 모르겠다.
— 답이면 물어서 나온 것이고 습관이면 물어도 나온 것이다.
둘째 줄이 첫 줄보다 흐리다.
흐린 까닭은 심이 닳아서일 수도 있고 손에 힘이 덜 들어가서일 수도 있다. 그것을 적은 문서는 없고, 종이로는 어느 쪽인지 가려지지 않는다.
연필은 지워진다. 지워지는 것으로 적었다는 것은 지울 수 있게 두었다는 뜻이다.
그는 지우지 않았다. 그 종이는 스물두 해 동안 쓰던 서랍에서 나왔다.
1973년 12월 28일은 그가 법제조사국을 나온 날이다.
그날 그가 적은 것은 이 두 줄만이 아니다. 유고 제3부의 마지막 장에 다섯 번 물었다는 문장이 있고, 날짜가 같다.
그쪽은 원고지에 적혔고 이쪽은 스물한 해 된 먹지 사본에 적혔다. 같은 날 같은 손이 종이 두 가지를 썼다.
그날 그는 1952년 2월의 종이를 꺼냈다. 꺼내서 아래 여백에 연필을 댔다.
꺼냈다는 것이 이 쪽에서 확인되는 전부다. 왜 꺼냈는지는 이 종이에 없다.
넷 — 한 쪽
세 가지를 어떻게 실을 것인가를 두고 편찬 회의가 세 안을 놓았다.
| 안 | 어떻게 싣는가 | 그렇게 하면 |
|---|---|---|
| 갑 | 의견서만 제1문서로 싣고 연필과 잉크는 제3권 유고 편으로 보낸다 | 세 글씨가 두 권만큼 떨어진다 |
| 을 | 셋을 다 싣되 활자로 옮겨 나란히 짠다 | 세 글씨가 같은 크기가 된다 |
| 병 | 종이 한 장을 그대로 사진 제판한다 | 옮기지 않는다 |
병으로 정해졌다. 정한 사람은 서희원이다.
그가 적은 이유는 한 줄이다. 옮기면 고른 것이 된다.
유족이 낸 조건은 병과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조건과 결정이 같아서 회의는 짧았다.

조건이 온 것은 결정보다 뒤다. 자료 제공 승낙서에 손으로 덧붙인 한 줄이었고, 덧붙인 사람은 유고를 1991년에 사가본으로 묶은 유족이다.
그 사가본은 인쇄된 것을 넣지 않았다. 손으로 쓴 것만 넣는다는 기준으로 골랐고, 이 종이는 반은 먹지고 반은 손이어서 그때 빠졌다.
서른다섯 해 만에 같은 종이가 갈리지 말라는 조건과 함께 왔다.
그가 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이 쪽에 주를 달지 않았다. 자료집 다섯 권에서 주가 없는 쪽은 이 쪽뿐이다.
주를 달면 먹지 셋째 줄과 연필 첫째 줄 가운데 어느 쪽이 뒤에 오는 문장인지를 편찬자가 정하는 일이 된다. 종이 위에서는 연필이 뒤다. 자료집 안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시험쇄는 두 번 걸렸다.
첫 시험쇄에서 연필 두 줄이 사라졌다. 망점이 그 농도를 잡지 못했다.
두 번째 시험쇄는 연필 쪽에 맞추어 걸었다. 연필이 나오자 먹지가 물러났다.
인쇄된 쪽에서 먹지 석 줄은 원장보다 흐리고 연필 두 줄은 원장보다 진하다.
제1권 첫 쪽에서 더 잘 보이는 것은 나중에 적힌 쪽이다. 그렇게 만든 사람은 인쇄공이다.
국경수호법 재사정 표결 기록 — 제1차부터 제14차까지
국회 사무처 의사국 회신 자료, 2027년 1월 · 회신 12건 · 별지 14매
— 본 자료는 하나의 문서가 아니다. 열두 번에 걸쳐 회신된 별지를 회차순으로 묶은 것이다.
— 회신마다 서식이 다르다. 찬반의 수를 적은 것이 아홉, 반대와 기권만 적은 것이 다섯이다.
— 요구서에 적은 물음은 한 줄이었다. 열네 번의 표결이 각각 어떻게 끝났는가.
회신 열두 건에 붙은 사유는 다 같다. 「보유 자료 범위 내에서 회신함.」
표결은 열네 번 다 같은 쪽으로 끝났다. 표를 그리고 나서 남은 것은 결과가 아니다.
하나 — 열네 줄
일흔 해 넘게 흩어져 있던 것을 한 장에 놓는 데 걸린 것은 계산이 아니라 회신이다.
첫 요구서는 2026년 8월에 나갔고 마지막 회신은 2027년 1월에 왔다. 그 사이에 요구서를 네 번 고쳐 썼다.
고친 까닭은 매번 같다. 물음이 서식에 맞지 않으면 회신이 오지 않는다.
| 회차 | 해 | 무엇을 표결하였는가 | 존속 쪽 | 폐지 쪽 | 기권 | 재석 |
|---|---|---|---|---|---|---|
| 제1차 | 1957 | 존속 | — | 0 | 0 | — |
| 제2차 | 1962 | 존속 | — | 3 | 0 | — |
| 제3차 | 1967 | 존속 | — | 0 | 0 | — |
| 제4차 | 1972 | 존속 | — | 0 | 0 | — |
| 제5차 | 1977 | 존속 | — | 6 | 2 | — |
| 제6차 | 1982 | 폐지안 | 209 | 62 | — | 271 |
| 제7차 | 1987 | 폐지안 | 204 | 81 | — | 285 |
| 제8차 | 1992 | 존속 | 157 | 143 | 0 | 300 |
| 제9차 | 1997 | 폐지안 | 191 | 68 | — | 259 |
| 제10차 | 2002 | 존속 | 201 | 17 | — | 218 |
| 제11차 | 2007 | 존속 | 249 | 33 | 5 | 287 |
| 제12차 | 2012 | 존속 | 244 | 29 | 4 | 277 |
| 제13차 | 2017 | 존속 | 251 | 26 | 7 | 284 |
| 제14차 | 2022 | 폐지안 | 231 | 44 | — | 275 |
폐지안을 표결한 줄에서는 좌우가 뒤집힌다. 폐지안에 찬성한 수가 폐지 쪽이고 반대한 수가 존속 쪽이다.
두 가지를 한 칸에 담기로 한 것은 서희원이다. 나누어 담으면 열네 줄이 두 표가 되고, 두 표는 나란히 읽히지 않는다.
위의 다섯 줄에서 존속 쪽 칸이 비어 있다.
비어 있는 것이 없어진 자리는 아니다. 1957년 서식에 찬성을 적는 칸이 없었다.
그때 서식은 반대와 기권만 적었다. 가결을 전제로 짠 서식이고, 전제가 맞았으므로 일흔 해 동안 고칠 사유가 생기지 않았다.
찬성란은 1980년 서식 개정에서 생겼다. 생긴 까닭은 국경수호법과 관계가 없다. 그해에 기명 표결의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다섯 줄에서 재석 칸도 비어 있다.
재석을 적는 칸은 찬성란과 함께 생겼다. 그 앞의 다섯 번은 몇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가 남아 있지 않다.
국회 정수는 그 사이에 여러 번 바뀌었고 1988년 뒤로 삼백이다. 앞의 다섯 줄은 재석이 없으니 비율로 옮겨 놓을 수도 없다.
세 개 없는 것과 하나 없는 것을 같은 표에 놓으면, 없는 쪽이 적은 것처럼 보인다.
빈 칸 다섯은 자료가 없어진 자리가 아니다. 처음부터 적지 아니한 자리다.
국회 사무처 의사국 회신 협의, 2027년 1월
— 문. 제1차부터 제5차까지 찬성의 수를 찾을 수 있소.
— 답. 회의록에도 표결 기록에도 없소.
— 문. 어디에 있겠소.
— 답. 그때 서식에 그 칸이 없었소.
— 문. 칸이 없으면 세지 않은 것이오.
— 답. 세었을 것이오. 적지 않았을 뿐이오.
— 문. 세고 적지 않은 것을 무어라고 적어야 하오.
— 답. 그것을 정한 서식이 없소.
둘 — 여섯과 넷
폐지 법률안이 재사정에 붙은 것은 여섯 번이다.
그 여섯 가운데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 것은 넷이다.
넷 가운데 가결된 것은 없다.
여섯 번 가운데 표결에 부쳐진 것은 넷. 넷 가운데 가결된 것은 없다 — 부쳐지지 못한 둘은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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