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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제62장 활을 쏘는 자

· 44화 중 44화 · 5,165자 · 약 7분 · 무료

글자3 / 5

1988년 4월 / 1992년 3월 · 서울, 병실과 재우의 서재

윤성갑은 육 인실 창가 자리에 있었다. 코에 관을 끼우고 있었고, 관 때문에 콧등이 눌려 자국이 나 있었다.

열두 개의 태양 44화 제62장 활을 쏘는 자 — 헤더컷

사월인데 병실 창이 닫혀 있었다. 소독약 냄새와 밥 냄새가 섞여 있고, 옆 침대에서는 텔레비전을 소리 없이 켜놓고 있었다. 올림픽 준비 얘기가 나오고 있었던 것 같다.

들어가니까 눈만 돌렸다. 목을 돌리는 것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왔소."

"예."

"앉으시라요. 거기 걸상."

목소리에 만주가 남아 있었다. 서른일곱 해 동안 서울에서 살았는데도 마지막에는 그 소리로 돌아갔다.

그의 아들이 보온병을 들고 왔다가, 나를 보고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갔다. 마흔쯤 되어 보였다. 나가면서 문을 소리 안 나게 닫았다.

"아들이 은행 다닙네다."

"좋습니다."

"좋지. 나같이 안 살면 좋은 거지."

"댁은 어떻소. 아직 그 일 하시오."

"합니다. 요새는 기계 설명서보다 계약서가 많습니다."

"조카딸은."

"스물둘입니다. 대학 다닙니다."

"재옥이는."

"부산에 있습니다. 작년에 한 번 올라왔습니다."

그는 잠깐 숨을 골랐다. 관에서 소리가 났다.

"한 대위. 내가 요새 세고 있는 게 있소."

"뭘 세십니까."

"내가 살아남은 방법."

그는 이불 위에 손을 꺼냈다. 손톱이 두꺼웠다. 엄지를 폈다.

"하나. 만주국 때 통역 붙었다. 일본말 됐으니까."

검지를 폈다.

"둘. 사십오년에 소련군 들어올 때 미리 나왔다. 하루 먼저 나왔소."

중지.

"셋. 넘어와서 국군에 붙었다. 중국말 되고 러시아말 되니까 안 죽였디."

약지.

"넷. 육십일년에 또 붙었다. 그 뒤로는 뭐."

새끼손가락은 펴지 않았다. 손을 그대로 두었다.

"넷이오. 다섯 번째는 없소. 그리고 이 넷 중에 자랑할 게 하나도 없다."

"그중에 하나라도 안 하셨으면 준위님이 여기 안 계십니다."

"그러니까 자랑할 게 없다는 거요. 한 대위, 살아남는 데 이유가 있으면 그건 자랑이오. 나는 이유가 없었소. 그때그때 붙었을 뿐이디."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당신도 세어보시라요. 넷은 안 될 거요."


한참 있다가 내가 물었다.

"오십일년 오월 스무사흘 기억하십니까."

"...뒷마당."

"예."

"담배 하나 드렸디."

"주셨습니다. 그리고 옛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해가 열 개 떴다는 거."

"예."

"활 쏘는 놈이 아홉을 떨어뜨렸다고."

"거기까지 하셨습니다."

윤성갑은 천장을 봤다. 그러고는 웃었는데, 웃으니까 숨이 걸려서 한참 기침을 했다.

"뒤가 있소."

"들려주십시오."

"그놈이 아홉을 떨어뜨리고 나서 사람들이 절을 했디. 그런데 하늘이 미워하더란 말이오. 아홉을 지운 놈이니까. 뒷일이 어찌 됐는가 하니, 제 집에서 제 밑에 있던 놈한테 맞아 죽었소. 몽둥이로."

"활로가 아니고요."

"몽둥이로. 그게 이야기의 맛이오. 활 쏘는 놈은 활로 안 죽소."

"누구한테 맞아 죽었습니까."

"제자라고도 하고 부하라고도 하고. 판본이 여럿이오. 나는 부하 쪽을 좋아합네다."

"왜요."

"제자는 배운 놈이니까 이유가 있고, 부하는 그냥 시킨 사람이 있는 거요."

그는 손을 이불 안으로 넣었다. 손이 찼는지 오래 넣어두었다.

"열둘은 아무도 안 쐈고 아무도 안 맞아 죽었소. 그게 이 이야기하고 다른 점이오. 쏜 사람이 없는데 떨어지기는 열둘이 떨어졌디."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나흘 뒤에 아들한테서 연락이 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세어봤다. 살아남은 방법. 엄지를 폈다가 접었다. 하나도 세지 못했다. 내가 한 것은 붙은 것도 아니고 피한 것도 아니고, 그저 시키는 자리에 앉아서 시키는 말을 옮긴 것이다. 그것을 방법이라고 부르면 방법이 되고 안 부르면 안 된다.

윤성갑 준위는 자기 것에 이름을 붙일 줄 알았다. 나는 그것을 삼십칠 년 동안 배우지 못했다.


1992년 3월의 아침이었다. 밤새 비가 왔고 신문이 젖어 있어서 방바닥에 펴 말렸다.

물기 마른 자리가 우글우글했다. 신문을 펴니 사회면 아래쪽에 명단이 실려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공개된 문서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만주에 있었던 소련 공군 부대 — 제64전투비행군단이라고 적혀 있었다 — 의 전사자 명부 일부.

이름, 계급, 생년, 출신지, 사망 일자, 그리고 사인.

활자가 작아서 안경을 바꿔 썼다.

1951년 5월 29일 날짜가 붙은 이름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세었다. 한 번 세고, 종이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다시 세었다.

두 번 다 스물아홉이었다.

기사 본문에는 그날 서른한 명이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신문이 쓴 수와 신문이 실은 이름의 수가 두 개 어긋났다.

어느 쪽이 맞는지 나는 모른다. 명단이 잘렸을 수도 있고, 지면이 모자랐을 수도 있고, 애초에 옮겨 적으면서 빠졌을 수도 있다. 옮기는 데서 무엇이 빠지는지 나는 좀 안다.

사인란은 전부 같았다. 스물아홉 줄이 다 같은 글자였다.

훈련 중 사고.

출신지는 다 달랐다. 랴잔, 쿠르스크, 사라토프, 이르쿠츠크, 이름을 처음 보는 곳들. 나이는 스물셋에서 서른여섯까지였다.

그들은 그날 안둥에 있었다. 있었는데, 사십일 년 동안 없었다.

그날 그 비행장은 목록의 다섯째였다. 나는 그 이름을 회의실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랑터우. 두 자였고 발음하기 어렵지 않았다. 회의록에는 활주로와 주기장이라고만 적혔고, 그 활주로 끝에 시동을 걸고 있던 사람들의 국적은 그때 아무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몰랐다고 되어 있었다.

오정민이 이걸 보면 뭐라고 할지 생각했다.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는데 걸지 않았다. 이런 것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보는 것이지 나눠 보는 것이 아니다.


열두 개의 태양 44화 제62장 활을 쏘는 자 — 전환컷

가위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서랍을 두 개 열고 세 번째에서 찾았다.

명단을 오렸다. 기사 본문은 빼고 표만 남겼다. 손이 떨려서 한 줄이 비뚤게 잘렸다.

풀을 쓰지는 않았다. 붙이면 종이가 우니까.

서랍에서 둘째 수첩을 꺼냈다. 고무줄이 삭아서 갈아 끼운 지 얼마 안 됐다.

1951년 5월 스무사흘 쪽을 폈다. 그날 나는 지명 열두 개를 적어놨다. 그 종이는 사십일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오려낸 것을 그 페이지 위에 놓았다. 열두 개의 지명 위에 스물아홉 개의 이름이 놓였다. 크기가 맞지 않아서 종이가 옆으로 삐져나왔다. 반으로 접으면 이름 하나가 접히는 자리에 걸려서, 접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수첩을 덮었다. 종이가 두꺼워서 수첩이 그만큼 벌어졌다. 고무줄을 감는 데 두 번이면 되던 것이 그날부터 한 번 반밖에 감기지 않았다.


1994년 여름 · 서울, 재우의 서재

그해 여름은 창을 열어도 바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선풍기를 책상 반대쪽으로 돌려놓아야 종이가 날리지 않았고, 오후 세 시부터는 손등에 땀이 배어 원고지 오른쪽 아래가 우글거렸다.

책상 위에 세 가지가 있었다.

둘째 수첩. 1951년 4월부터 1954년 10월까지, 그리고 1992년 3월에 끼운 오려낸 종이 한 장.

콜린스가 1962년 10월에 보낸 편지. 봉투가 삭아서 두 번 갈아 넣었다. 그는 그것을 쓰고 육 년 뒤에 죽었고,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쓰려고 세 번 앉았다.

그리고 오정민의 『셈』. 1958년 초판, 백육십칠 쪽에 괄호가 있는 것.

제목은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 1951년 5월 스무사흘 저녁에 윤성갑 준위가 사령부 뒷마당에서 해가 열 개 뜬 이야기를 했고, 그날 목록에 있던 것은 열둘이었다.

재옥은 오월에 올라와 그대로 있다. 부산 집은 세를 놓았다. 미선이 저녁마다 두어 시간씩 타자를 쳐준다. 그 애는 낮에 회사에 다니고 밤에 여기 와서 친다. 삯을 주려고 했더니 받지 않았다.

시작한 것은 재작년 봄이다. 신문에서 오려낸 것을 수첩에 끼우고 고무줄이 안 감기는 것을 보고 있다가, 그날 저녁에 첫 장을 썼다. 삼십육 년 전에 오정민이 자기 책을 냈고 나는 그것을 옮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옮길 원문이 없다.


마지막 절은 셈이다.

여섯 줄을 세운다. 각 줄에 숫자를 셋 적는다. 정부 추계, 민간 학술단체 추계, 미국 자료의 추계. 세 숫자는 어느 줄에서도 맞지 않는다.

첫째, 1951년 5월 29일과 그 뒤 두 달 안에 죽은 사람. 즉사와 급성. 정부는 사만 천 명, 민간은 구만 팔천, 미국 자료는 이만 구천이라 한다.

둘째, 1951년 여름부터 1953년 끝까지 낙진 관련으로 죽은 사람. 정부 십일만 삼천, 민간 이십일만, 미국 육만 사천.

정부 숫자 두 개를 더하면 십오만 사천이 된다. 1974년 실태조사가 발표한 수와 정확히 같다. 정부는 그 뒤로 그 수를 고치지 않았고, 셋째 줄부터는 아예 만들지 않았다.

셋째, 1954년과 1955년 겨울에 굶어 죽은 사람. 민간은 십사만이라 한다. 미국 자료에는 이 항목이 없다. 굶주림은 작전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그쪽의 입장이다. 봉쇄가 작전의 일부였다는 것과 굶주림이 봉쇄의 결과였다는 것은 그쪽 서류에도 적혀 있다. 두 문장을 한 줄로 잇는 일만 아무도 하지 않았다.

넷째, 이주 명령 제7호로 옮겨지는 도중에 죽은 사람. 정부 사천 이백, 민간 이만 삼천, 미국 육천.

다섯째, 봉쇄구역에 남아 늙은 사람들의 초과 사망. 1951년부터 1989년까지. 민간 삼만 천, 미국 만 천. 정부는 이 줄을 만들지 않았다. 만들려면 먼저 그 안에 사람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숫자로 인정해야 한다.

여섯째, 남으로 내려와 다르게 죽은 사람. 오는 길에 죽은 사람과 와서 죽은 사람. 이 줄에는 세 숫자가 다 없다. 민간 표에는 산출 불가라고 적혀 있다.

합계를 낸다. 정부 십오만 팔천이백. 미국 십일만. 민간 오십만 이천.

십일만에서 오십만 사이.


이 폭을 줄일 수 있느냐고 미선이 물었다.

"하나로 못 써요? 사람들이 헷갈릴 텐데."

"헷갈리는 게 맞다."

"그래도 책인데요."

나는 그 애한테 이렇게 말했다. 세 숫자가 다른 것은 셈이 틀려서가 아니다. 세 사람이 각각 다른 사람을 셌기 때문이다. 정부는 등록된 사람을 셌고, 민간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을 셌고, 미국은 자기가 떨어뜨린 것과 인과가 이어지는 사람만 셌다. 셋 다 자기 방식으로는 틀리지 않았다.

가운데를 잡아 삼십만이라고 쓰면 사람들은 그 숫자를 외운다. 나는 그 숫자를 못 믿는다. 못 믿는 숫자를 외우게 하는 것은 옮기는 일 중에 제일 나쁜 축이다.

폭을 그대로 두었다.

"그럼 그거 안 했으면 좋았겠네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 했으면 어떻게 됐는지를 적는 줄이 이 표에는 없다. 그 줄을 만들려면 일어나지 않은 일을 세어야 한다. 삼팔선이 그대로 있었으면 그해 여름에 몇이 죽었을지, 그 뒤 사십 년 동안 몇이 죽었을지 나는 모른다. 모른다고 여섯 줄 밑에 한 줄 적어둘까 하다가 적지 않았다. 그것은 셈이 아니라 변명으로 읽힌다.

미선이는 고등학교 이학년 때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사진이 재옥이 방에 있다. 그 애한테 이 나라는 원래 이렇게 생긴 나라다. 청천선이라는 말은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다.

미선이 한참 있다가 다시 물었다.

"외삼촌, 할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그 애는 최복순을 본 적이 없다. 재옥이도 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나는 대답을 만들려고 했다. 만들어보니 스무 낱말쯤 되었다. 정주 사람이고, 오산학교 서무 하던 사람의 아내고, 손이 크고, 웃을 때 소리를 안 냈다.

옛날에 나는 사람 하나의 인생을 예순 낱말로 줄여서 미군 장교한테 넘기는 일을 몇 달 했다. 그때 줄여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나는 구분하지 않았다. 구분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모르겠다. 나중에 쓰마."

미선이 종이를 넘겼다.


셈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적어둔다.

강 저쪽. 열두 개 중 열하나는 강 저쪽에 있었다. 첫 번째 것은 다리 위였고 다리는 양쪽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쪽을 세지 않았다. 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세지 않았고, 왜 그랬는지는 여기 쓸 말이 없다.

랑터우 비행장에서 죽은 사람들. 1992년 3월 신문에 이름이 스물아홉 개 실렸고 기사는 서른한 명이라고 했다. 사인란은 스물아홉 줄이 다 같았다.

박노석 하사. 1929년 함흥 출생, 1951년 9월 부산 육군병원. 진단서 병명란에 원인 미상 열병이라고 적혔다. 그는 여섯 줄 중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오염 지역을 지나간 군인을 세는 줄은 만들어진 적이 없다.

김일성. 1951년 12월 3일 자강도에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시신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를 어느 줄에 넣을지 나는 정하지 못했다. 정하지 못한 채로 둔다. 이런 사람이 그 겨울에 그 사람 하나였을 리도 없다.

윤성갑 준위는 1951년 2월에 어떤 교육대 뒷마당에서 무언가를 세다가 그만두었다. 마흔세 해 뒤에 나는 그가 왜 그만두었는지 안다. 세는 것과 세어지는 것이 같은 것이 아니어서다.


1951년 1월, 어떤 미국 장군이 자기 부대에 우리가 왜 여기 있는가를 묻는 글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나는 통역석에서 전해 들었다. 그때 나는 스물넷이었고 그 질문이 나한테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흔세 해 동안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갖지 못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은 위의 여섯 줄이다. 그것이 대답인지는 모르겠다. 대답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안다.

콜린스의 편지는 이 책에 넣지 않기로 했다. 넣으려면 영어를 한국어로 옮겨야 하고, 그러면 그것은 그의 문장이 아니라 내 문장이 된다. 그는 그 문단을 세 번 고쳐 썼다고 편지에 적어놓았다. 세 번 고친 사람의 문장을 내가 한 번에 옮길 수는 없다.

편지는 수첩과 같은 서랍에 넣는다.


여드레 뒤 저녁에 미선이 타자기 앞에 앉아 리본을 갈고 종이를 끼웠다. 잉크 냄새가 잠깐 났다.

"외삼촌, 마지막 장이요."

나는 만년필을 들었다. 마흔세 해 동안 나는 남이 한 말을 받아 적거나 옮겨 적었다. 받을 것이 없는 문장을 쓰는 것은 처음이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써서 넘겼다. 미선이 읽고, 한 번 나를 보고, 자판에 손을 얹었다.

옆방에서 재옥이 무어라고 말했다. 미선이 네, 하고 대답했다. 무슨 말이었는지 나는 듣지 못했다.

타자기가 그 줄을 쳤다.

이 책에는 내가 옮긴 문장이 하나도 없고, 내가 틀리지 않게 셀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다.

최복순. 1902년생. 1951년 8월 3일.

최복순. 1902년생. 1951년 8월 3일.

내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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