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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제2장 왜 여기 있는가

· 44화 중 2화 · 3,602자 · 약 5분 · 무료

글자3 / 5

일월 이십일 일. 여주의 방은 벽 한쪽이 종이로 막혀 있었고 그 종이 너머에서 소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서서 구술했다. 부관이 받아 적었다.

열두 개의 태양 2화 제2장 왜 여기 있는가 — 헤더컷

우리가 왜 여기 있는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거기서 그는 멈췄다. 부관의 연필이 종이 위에서 기다렸다.

"두 번째 문장을 앞으로 옮기시오. 아니오. 그대로 두시오."

그는 창 쪽으로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창이라고 할 것도 없이 널판을 뜯어낸 구멍이었고 거기에 담요를 못으로 박아놓았다.

"이 땅을." 그가 말했다. "아니오. '이 땅'은 지우시오. 병사들이 이 땅을 위해 죽고 싶어 하지 않소. 나라도 그렇겠소."

부관이 지웠다.

"'인간의 존엄'이라고 쓰시오. 포로를 쏘고 제 국민을 노예로 만들고 사람의 존엄을 비웃는 통치가 이길 것인가, 개인과 그의 권리가 신성한 통치가 이길 것인가. 그것이 여기서 판가름 난다고 쓰시오."

참모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각하, 사병들한테는 좀 어려운 낱말입니다."

"어렵겠지." 리지웨이가 종이를 받아 훑었다. "쉬운 말로 쓰면 저들이 무엇을 위해 죽는지 여섯 달 뒤에 잊소. 어려운 말은 잊히지 않소. 알아듣지 못하니까."

그는 마지막 줄에서 한 낱말을 더 고쳤다. 그러고 나서 서명했다.

"전군 배포. 중대까지 내려가야 하오. 게시만 하지 말고 소리 내어 읽히시오."

"한국말로도 나갑니까." 참모장이 물었다. "번역을 붙이려면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군도 여기서 죽고 있소."

참모장이 서류 아래쪽에 표시를 했다. 리지웨이는 그 표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는 묻지 않았다. 문장을 만드는 것이 자기 일이고, 그 문장이 다른 언어로 어떤 모양이 되는지는 다른 사람의 일이었다.


대구의 후방사령부는 여주보다 따뜻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외투를 벗고 있었다. 리지웨이는 벗지 않았다.

먼저 정보 보고가 올라왔다. 이달 칠일 이후로 적의 압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접촉이 끊긴 정면이 늘고 있고 포로들은 하나같이 굶주려 있으며, 상당수 부대가 후방으로 빠졌다는 징후가 잡힌다는 것이었다.

"보급이 따라오지 못하는 거요." 리지웨이가 말했다. "저들도 우리처럼 트럭이 필요하고 우리처럼 길이 하나뿐이오. 저들은 지금 자기 승리에 목이 졸리고 있소."

그는 지도 위 한 지점에 손가락 마디를 얹었다. "이십오일에 서쪽부터 밀어 올리시오. 진격이 아니라 접촉이오. 하루에 몇 킬로미터인지는 내가 정하겠소."

참모들이 받아 적는 동안 그는 다음 서류를 기다렸다.

G-1 인사참모가 서류철을 폈다.

"각하, 한국군 연락장교 정원 건입니다. 현재 사령부 배속 인원으로는 각하의 메시지 하나 내리는 데도 나흘이 걸립니다. 예하 군단마다 통역 인력이 모자랍니다. 증원 요청 명단을 올렸읍니다."

"몇이오."

"우선 열넷입니다. 육본 협조는 끝났읍니다."

명단은 한 장이었다. 성이 넉 자를 넘지 않는 이름들이 세로로 늘어서 있었고, 로마자 옆에 한자가 괄호 안에 붙어 있었다. 리지웨이는 종이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세 번째 줄에 HAN, Chae-woo, 1st Lt.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그 줄을 읽지 않았다. 명단을 읽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일은 숫자가 열넷이라는 것과 그 열넷이 언제까지 배치되느냐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월 첫 주까지 배치."

"예, 각하."

만년필이 종이 아래쪽을 한 번 긋고 지나갔다. 부관이 명단을 받아 서류함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함석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방 안에서 두 번 울렸다.


1951년 1월 26일 ~ 2월 3일 · 수원 남쪽 미 제1군단 포로 임시수용소, 오산 부근 전진로

천막 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손이었다.

포로들은 무릎을 세우고 앉아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조금 낫다. 그러나 이미 늦은 손들이 있었다. 손끝이 검고 부풀어서, 검은 부분과 검지 않은 부분 사이에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선은 하루에 조금씩 손목 쪽으로 온다.

논에 그대로 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둘렀다. 언 논은 단단해서 말뚝이 잘 들어가지 않았고, 그래서 말뚝이 삐뚤빼뚤했다. 천막은 여섯 동이었다.

누비 군복은 솜이 얇았고 신발은 헝겊이었다. 어깨에 두른 긴 자루가 눈에 띄어 국군 병사에게 물었더니, 볶은 밀가루를 넣어 다니는 것이라고 했다. 물에 개어 먹는다고 했다. 자루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심문 천막에는 난로와 상 하나가 있었다. 미군 심문관은 준위였고, 무릎에 회화집을 펴놓고 있었다. 표지에 중국어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가 그것을 몇 장이나 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 중위, 이 친구들 중에 조선말 하는 사람이 있다던데."

"한 명 있다고 들었읍니다."

첫 번째 사람이 들어왔다. 스물 몇쯤. 그가 앉으면서 상 위에 손을 올려놓았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없었다. 오래된 상처였다.

열두 개의 태양 2화 제2장 왜 여기 있는가 — 전환컷

"조선말 아십니까."

"함네다." 그가 말했다. "쬐끔 함네다."

옌볜 룽징에서 왔다고 했다. 집에서는 조선말을 쓰고 밖에서는 중국말을 썼다고 했다. 그는 자기 이름을 먼저 말했다. 최영근. 나는 그것을 적었다.

말이 통하기는 했으나 말과 말 사이에 자꾸 웅덩이가 생겼다. 그가 아는 조선말은 부엌과 마당의 말이었고 내가 물어야 하는 것은 사단과 보급과 도하 날짜였다. 사단이라는 말을 그가 몰라서 나는 그것을 만 명쯤 되는 군대라고 바꿔 말해야 했다. 만 명쯤 되는 군대. 그렇게 물어서 나온 대답을 나는 다시 영어로 옮겼고, 준위는 그것을 서식의 칸에 넣었다. 칸은 좁았다.

두 번째 사람이 들어왔다.

"어디서 왔습니까."

그가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준위가 회화집을 넘겨 한 줄을 읽었다. 포로가 고개를 저었다. 준위가 다른 줄을 읽었다. 포로가 또 고개를 저었는데, 이번에는 못 알아들어서 젓는 것인지 아니라고 젓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수첩을 찢어 상 위에 놓고 연필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한자로 썼다. 何處來. 어디서 왔는가.

그는 종이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연필을 쥐었는데, 쥐는 법이 젓가락 쥐듯 했고 손이 얼어서 잘 잡히지도 않았다. 그가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었다. 획이 아니라 그냥 선이었다. 두 번 긋고 그는 연필을 놓았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나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그 상 위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산학교에서 선교사한테 영어를 배웠고 국민학교에서 일본말을 배웠고 집에서 한문을 배웠다. 세 가지를 다 가지고도 이 사람에게 닿는 길이 없었다.

세 번째 사람은 말을 했다. 많이 했다. 손짓까지 했다.

나는 최영근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가 세 번째 사람의 말을 듣더니 미간을 좁혔다. 두 사람이 서로 몇 마디를 주고받았고 그러다 둘 다 조용해졌다.

"뭐라고 합니까."

"모르갔습네다." 최영근이 말했다. "저 사람 말은 저도 모릅네다. 남쪽 말입네다. 같은 중국 사람이라도 말이 다릅네다."

준위가 회화집을 덮었다. 서식에는 열여덟 개의 칸이 있었고 두 사람 분은 전부 비었다.


밖에서 소령 하나가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다. 어깨의 금빛 떡갈나무 잎이 새것이 아니었고 방한모 귀덮개를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가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손짓했다.

"콜린스요. 팔군 정보참모부."

"한재웁니다."

"두 사람은 안 됐다면서."

"예. 아무것도 못 옮겼읍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배를 한 번 빨았다. "아무것도 못 옮겼다고 말해줘서 고맙소."

나는 그 말을 잘못 들은 줄 알고 그를 보았다.

"내가 받는 심문 요약의 절반은 통역이 알아듣지 못한 것을 알아들은 것처럼 적어 보내는 거요." 그가 연기를 옆으로 뱉었다. "그러면 나는 그 종이를 가지고 적이 몇 명인지를 계산하오. 그 숫자는 위로 올라가고 위에서는 그 숫자로 부대를 움직이오. 그런데 그 밑바닥에 알아듣지 못한 말이 깔려 있소."

그는 나보다 열 살쯤 위로 보였다. 뉴저지에서 왔다고 했다. 프린스턴에서 동양사를 하다가 학위를 못 끝내고 왔다고 했다.

"한자는 읽소." 그가 말했다. "당나라 문서를 읽으려고 삼 년을 했으니까. 그런데 저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하는 소리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듣소. 그게 우습소?"

"안 우습니다."

"나도 안 우습소." 그가 담배를 눈 위에 비벼 껐다. "중위는 어디 출신이오."

"평안북도입니다."

"북쪽이군."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는 사람에게 물을 것을 하루에 하나씩만 물었다.

"내가 필요한 건 저 안에 몇 개 군이 있느냐요. 지금 우리 숫자는 추정에 추정을 얹은 거요. 밑에서 하나 틀리면 위에서 열 틀리오."

나는 손이 검게 언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밥자루가 비어 있었읍니다."

콜린스가 나를 한참 보았다. "그건 서식에 칸이 없소."

"압니다."

"그래도 다음부터 그건 나한테 말해주시오."


이월 초에 나는 오산 위쪽 전진로로 나갔다.

작전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전차와 보병이 하루에 삼 킬로미터씩 올라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 멈추고 진지를 팠다. 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를 대고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뛰지 않는 군대를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길가에 시체가 있었다. 우리 것도 있고 저쪽 것도 있고 군복을 입지 않은 것도 있었다. 미군 하사 하나가 저쪽 것들 앞에서 걸음을 늦추며 손가락으로 헤아렸다. 그가 열둘까지 세고 나서 나를 보고 웃었다.

"오늘 열둘. 어제는 스물다섯."

그것을 왜 세느냐고 물으니, 저녁에 보고해야 한다고 했다. 숫자가 있어야 위에서 우리가 이기고 있는지를 안다고 했다.

포로가 다섯 잡혀왔고 그중 조선말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옮기지 못했다. 통역이 서 있을 필요가 없는 자리에 서서, 나는 그들이 손짓으로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물은 손짓으로 통했다.

포로가 다섯 잡혀왔고 그중 조선말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옮기지 못했다. 통역이 서 있을 필요가 없는 자리에 서서, 나는 그들이…

남은 42화 · 약 150,370자 · 약 3시간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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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태양전 44화